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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이야기

<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 ( 1 ) - 성석제

작성자색연필|작성시간10.12.06|조회수3,34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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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말해야 했을까?  아니, 모르겠어.

  다시 그때가 된다면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도 몰라.

  내가 아는 건 내가 할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은 그 일 때문에 내 삶이 달라졌다는 거야.

 

  그래, 달라졌어.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른 직업을 가졌겠지.

  남을 속이는 교활한 장사꾼?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군인?

  뭘 했을 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겠지.

 

  그 일이 일어난 건 내 탓이 아냐.  그건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

  우연이야.  아니 누군가의 실수지.  내 실수는 아니라구.

 

  나는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겉으로 보면 그래.

  지금 내가 그린 그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랑의 벽을 장식하고

  값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만 봐도.

  이런 척도를 속물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재능이 없으면 내 그림을 산 사람들이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되겠지.

  그러니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

 

  나 혼자 내 재능을 의심하지.  나를 의심해왔지.  그날 그 일이 있은 뒤부터.

  혼자서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그 누구도, 나를 미술의 길에 들어서게 한 아버지도 모르게.

 

  만난 이후 수십 년 동안 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격려하고 내가 벽에 막혀 더 나가지 못하고

  서성거리거나 좌절할 때마다 나를 위로해준 내 아내도 모르게.

 

  내게 이런저런 상을 안겨준 평론가들, 원로들, 스승들이라고 알 수 있었겠어?

  나는 이런 내 마음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

  내가 타고난 재능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고개를 쳐들고 상대의 눈을 쏘아보며.

 

  생각해봐야겠어. 왜 그 일이 생겨났는지.

  그 일은, 그 사건의 싹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자라기 시작했어.

  그래, 천수기 선생님. 천 선생님이 내 담임선생님이 되면서부터야.

 

  선생님은 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이었어. 졸업생이스무 명도 안 되는 학교의 동창.

  두 사람은 그 졸업생 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였지.

 

  한 사람은 교사가 되었지만 한 사람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던 화가가 못 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되었어.

  졸업한 이후 각자 서른 살이 되기까지 만나지 못했지만 서로를 잊지 않고 있었지.

 

  아버지는 염소를 팔러 나갔다가 장터에서 선생님과 마주쳤어.

  두 사람은 십수 년 만에 만난 어린 시절 친구를 금방 알아보지는 못 했어.

  선생님은 밀짚모자를 쓰고 흙탕물이 튄 옷을 입은 농부에게서

  어린 시절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

 

  선생님이 지켜보는 동안 아버지의 염소가 팔렸고

  아버지는 돈을 손에 든 채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화방으로 갔다지.

  그걸 보고 선생님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친구라는 걸 확신했지.

  군 전체 인구가 20만 명, 읍내에 사는 인구가 5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에서

  화방까지 가서 그림 재료를 살 사람은 흔치 않았지.

 

  미술 선생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장화를 신고 염소의 목에 달려 있던

  방울을 손에 쥔 농부였어. 선생님은 아버지를 뒤따라 화방 안으로 들어갔고,

  두 사람은 거기서 서로에게 남아 있는 어릴 때의 옛 모습을 찾아냈지.

  다가서서 손을 맞잡았어.

 

  "자네는 공부를 잘하더니만 결국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군.

   양복과 자전거가 잘 어울려. 어디 사는가?"

 

  선생님이 근무하는 초등학교 근처에 산다고 말하고는

  아버지에게 아직도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었어.

 

  "어, 내 아들놈이 지금 열 살이야.

   난 아버님의 유언 때문에 그림을 포기한 대신 장가는 일찍 갔다네.

   그 애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래도 한때 그림을 좀 그렸던 사람으로서

   재료는 좋은 걸 써야겠기에 우리 형편에는 좀 과분하지만 이리로 온 걸세."

 

  아버지는 화방에서 권하는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집어 들었어.

  선생님은 아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었어.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학교를 말했고 그 학교는 바로 선생님이 막 전근 온 학교였어. 

  선생님은 마침 3학년 담임을 맡은 터였지.

 

  "그럼 자네 아들 이름이?"

 

  "선규일세.  백선규."

 

  선생님은 소리 내어 웃었지. 선생님 반에 우연히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우연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진 걸까.

  아니야,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에 친구의 아들이 있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그날 저녁 집에 온 아버지는 내게 말했어.

 

  "읍에서 네 담임섬생님을 만났다. 그 사람이 아버지의 친구더라.

   그렇다고 너를 다른 아이들보다 잘 봐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오히려 이 아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

 

  다음 날 아침, 조회가 끝난 뒤에 선생님이 나를 부르고는 복도에 세워놓은 채 말했어.

  

  "네 아버지가 내 친구라는 걸 들었겠지?

   그렇지만 선생님은 친구의 아들이라고 봐주지는 않는다.

   뭐든지 더 열심히 해야 해. 알았느냐?"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 하고 대답했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뭘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할 줄은 몰랐어.

  내가 그때 열심히 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 열심히 공을 차는 거였어.

 

  나는 축구를 좋아했어.

  아이들과 공을 차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까지 십 리나 되는 길을 

  여우를 만날까 도깨비를 만날까 무서워하며 달려가는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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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림을 좋아해.

  오늘도 미술관에 나와서 전시된 그림을 보았어.

  유명한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어쩌다 한번 가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화랑과 작은 미술관이 즐비한 거리를 돌아다니지.

 

  걷고 또 걸으며 돌아다니다 눈과 다리가 아프면 찻집 '고갱과 고호' 로 가곤 해.

  여기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창문 밖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얼굴빛과

  하늘의 색깔을 비교해 보지.

  사람의 배경이 되는 나무줄기의 빛깔과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에서 무슨 느낌을 얻기도 해.

 

  바람을 그릴 수 있을까?  

  바람은 보이지 않아서 그릴 수 없어.

  하지만 바람 때문에 휘어지는 나뭇가지, 바람에 뒤집히는 우산을 통해 바람을 표현할 수는 있어.

 

  그런 일이 그림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하곤 해.

  그림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학자도 비평가도 화가도 아니니까,

  그냥 그림을 좋아하고 좋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애호가로서

  내 마음대로 생각할 거야.

 

  물론 진짜 예술가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겠지.

  바람도 붙들어서 화폭 안에 고정시키고 구름도 악보 안에 잡아놓고, 시간도 그렇게 하는 거지.

  시간, 시간도 무대와 음악과 화폭 속에 붙들어 영원하게 만들겠지.

 

  좋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

 

  화가는 가는 시간을 화폭에 담아서 잡아놓고

  다른 사람의 시간은 마냥 흘러가도 모른 척하는 사람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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