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 치유 하는 교회
......최근 10년 사이 미국 선교단체와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
'내적 치유(inner healing)'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적 치유'라는 주제는 이제 제가 속한 교단의 신학교인 장신목회 상담학회에서 다루어질 정도로 이미 한국 교회의 목양에서도 중요한 안건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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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성령의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를 강조하는 존 윔버의 능력치유에 영향을 받은
풀러 신학교의 챨스 크래프트 박사는 '내적 치유'라는 말보다는
'깊은 차원의 치유'(deep-level healing)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깊은 차원의 치유'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서,
이는 성령의 능력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질병 중 대다수가 상한 감정이나 영적인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적 치유는 이러한 영역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내적 치유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유되기를 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트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내적 치유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자신의 축사(deliverance) 사역에 근거해서 말합니다.
그는 "축사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역이지만
불행히도 많은 축사 사역에서 사람들은 귀신이 일단 쫓겨 나가면
그들의 문제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간주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짜 문제는 귀신들은 달라붙는 것들이지 귀신들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축사 사역은 쓰레기보다는 쥐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커다란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귀신들이 나가더라도 상당히 많은 쓰레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똑같은 문제를 계속 경험한다.
깊은 차원의 치유에서는 귀신과의 관련 여부와는 상관없이
근원이 되는 문제인 쓰레기를 다룬다."고 말합니다.
내적 치유는 과거의 상처와 기억으로 말미암은
거절, 열등감, 교만, 반항, 분투, 자기 연민, 우울, 공포, 슬픔, 열등감, 죄책감, 무가치함 등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므로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적 치유는 위 성경구절과 관련된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 치유란 기독교 상담과 기도의 한 형태로
어떤 감정적, 영적 문제들에 대한 성령의 치유 능력에 중점을 두는 사역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적 치유는 각 사람을 위한 하나의 독특한, 그리고 유일한 성령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 사역이 어떤 특정한, 천편일률적인 형식에 의해 행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적 치유는 목회 상담학에서와 같이 명확하게 학문적으로 규정하거나
이론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신비적인 부분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적 치유뿐 아니라 축사, 신유와 같은 성령의 치유 사역에 관한 부분들이
학문으로서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마지막 때의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신학화 작업은
지금까지 교회사를 돌아본다면 족히 100년도 넘는 시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 치유는 내담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엄청난 치유와 예방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내적 치유가 일회적이거나 즉각적이 아닌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과정이라는 것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임을 인정하고 나간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획기적인 성장과 도약을 가져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축사 사역이란?
제가 축사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은 내적 치유를 알고 난 뒤 얼마 후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선교사로 헌신을 하였는데, 성령께서는 제게 필드로 나갈 것이 아니라
한국에 남아서 중보기도 운동을 하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섬기던 온누리교회의 청년 몇 사람과 함께 매주 한 번 중보기도 모임을 열게 되었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어 그 날도 저는 중보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사무실로 나갔지만
왠지 제 마음에는 그 날은 모두 바빠서 한 사람도 오지 않을 것도 같고 또 오지 않기를 내심 바라는,
그래서 설날을 하루 앞두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자 엉뚱하게 당시에 온누리교회 청년부의 부회장이자
제 여동생의 친구 되는 자매가 문을 밀치고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가게 일을 도우면서 바쁜데 너무 이곳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찬양을 인도하면서 몇 분쯤의 시간이 지나서 일어났습니다.
믿음 좋은 것으로 알려진 그녀의 혀가
마치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길게 앞으로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축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였지만
순간적으로 그것이 귀신의 역사라고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제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저는 제가 주최한 기도모임에서, 단단한 신앙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는 그녀의 앞으로 길게 빠진 혀를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으로 만들어 집으로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성령님을 불렀습니다.
"어떻게 해요...어떻게 해요...성령님..."
그러자 성령님의 답이 즉각 왔습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써 있느냐?"
"네,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러면 너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된단다."
"성령님, 성경에서는 항상 두 사람이 하던데요.
저 혼자는 너무 당황스러워요...한 사람을 더 보내 주세요."
결국 저는 예수 이름으로 그 자매에게 역사 하는 귀신을 묶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자 한 청년이 더 와서 우리는 그 귀신을 그 자매에게서 내쫓았습니다.
후에 저는 그 자매와 자세한 상담을 하면서
그 자매에게 귀신이 달라붙게 된 특정한 영역들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이 귀신 쫓는 솜씨는 소문이 나서
그 이후에 내적 치유 사역과 더불어 축사 사역도 지치게 해내곤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축복으로 피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우주 가운데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하나님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반역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못하시도록 방해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인 우리들을 그리고 피조물을
노예상태와 속박으로 다스리고 통치합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노략질합니다.
그는 거짓말로 인류를 속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 또한 인류에게 둘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는 문이 있습니다.
나의 인격이 문지기이며 파수꾼은 나의 영입니다.
내 인격이 파수꾼의 목소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이면 내 삶은 보호를 받지만
거짓말을 받아들이면 내 삶은 균열이 생깁니다.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도록 특히 생각을 통하여 죄를 받아들이도록
계속 속이고 유혹하고 우리의 환경을 조정합니다.
견고한 진은 거룩하지 못한 생각들의 집이고 귀신은 이 견고한 집에 거하며 다스립니다.
세대를 따라 내려가는 죄악이나 용서치 못하는 것, 잘못된 유전, 충격적인 경험들, 의도적인 죄,
부정적인 맹세 등이 견고한 진을 만듭니다.
사탄에게 열려진 모든 문들은 누군가의 죄의 결과입니다.
죄를 향해서 문을 열면 죄가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렇게 매여 있는 자녀들을 자유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므로
우리를 억압하는 사탄의 세력을 부수어 주십니다.
축사는 그러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축사 사역과 상담 축사 사역이란 축귀 사역이라고도 불리는데
악령 즉 귀신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며 악령을 추방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가장 극적인 치유 사역이며 예수님도 공생애의 기간 중에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이제는 능력 있는 성도들에게 이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막16:17,18).
특히 소위 신끼가 있거나 신내림 굿을 하려는 분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치유 사역으로
그들을 말할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우리 성도들은 축사를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축사를 통하여 자유케 되어 아름답게 회복되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 주님의 군대로 부르시는데
사탄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 성경, 보혈, 찬양,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무기로 주셔서
우리로 승리케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16:17)
바울은 구원받은 자와 하나님의 관계를 양자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공동 후사(상속자)로 출생신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권세는 위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성도 된 아니 제자 된 우리는 모두 축사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주셨으니"(마28:18)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권세를 우리에게 인계하셨고,
우리는 하늘의 높은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경찰관의 비유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경찰국장은 경찰관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고 법과 질서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경찰관의 배지와 신분증은 모든 사람들에게 경찰관의 권한을 상징합니다.
믿는 자도 이와 같이 영적 세계에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 알아야 합니다.
오래된 신자나 초신자나 모두 다 똑같은 권세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지혜를 추구하고 훈련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권세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에 의해서 증명이 됩니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20세기 성령운동을 3기로 나누어
제 1, 2, 3 성령의 물결로 표현했는데,
제 1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요,
제 2 물결을 카리스마적 운동이며,
제 3 물결은 오순절 운동과 카리스마적 운동을 합친 것을 말합니다.
제 3의 물결은 제 1, 2 물결의 내용을 받아들이면서 성령 충만을 통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므로
제 3의 물결에서는 병자가 치유 받으며, 귀신이 쫓겨나고, 죽은 자가 일어나는 등
초대교회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능력의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은사주의 운동에서 축사 사역과 치유사역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나 지도자가 했으나
제 3의 물결에서의 축사 사역과 치유사역은 예수를 믿고 교회의 지체된 사람은
누구나 축사 사역과 치유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합니다.
제 3의 물결은 은사는 계속하여 성장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그분은 분명히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있어야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자도 고친다고 알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며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성령에 의한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축사 사역을 해야 하나요?
우리들의 기도는 능력이 있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병든 자 위에 손을 얹고 그 병을 고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그 영과 함께 하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7,18에서 제시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누구라도 축사 사역을 감당할 수 있으며 감당해야만 할 것입니다.
켄 블루는 우리가 축사 사역을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로 축사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 눌려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권세와 능력을 성령을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축사 사역을 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켜보기만 하고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은사를 절대로 체험할 수도 없고 활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할 때에 축사 사역의 기름 부으심도 점점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축사 사역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로 고통받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줍니다.
축사 사역으로 그런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돕고 섬길 수 있습니다.
저는 축사 사역이 다소 고된 사역이기도 하지만
회복된 지체들을 바라볼 때에 주님의 사랑으로 제 영이 기뻐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링겔을 맞아 가면서 며칠을 계속 축사 사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축사 사역 가운데 귀신이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 앞에 두려워하며 복종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함께 일하시지 않으신다면 축사 사역은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겸손히 구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와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큰 진보를 보게 됩니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엡1:9)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언약교회에서도 치유 사역 훈련은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계속 되어야 할 것이며
갬선교회와 네트워크 된 교회와 선교단체와도 서로 배우면서 축사 사역을 더 성숙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가 귀신을 내쫓는다는 사실로 교만해져서는 안됩니다.
축사 사역에서도 우리는 성령님께서 지시하는 것만을 하여 승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전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에게 직접 지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에서 사용하는 우리의 영적 무기인
성령님의 지시와 명령에는 권세가 따르는 것입니다.
축사 사역의 실제
축사 사역에서 저는 실제로는 내적 치유 사역과 많이 연결하여 사역합니다.
축사 사역 시간에 먼저 영적 자가 진단과 사전 상담을 통하여
과거의 상처로 인한 쓴뿌리, 상한 감정들, 용서하지 못한 깨어진 관계들,
조상들로부터 받은 죄의 영향력들, 영적 쓰레기와 같은 허물과 죄,
악한 영들에게 틈을 내어 주고 문을 열어 준 영역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사전 상담으로 찾지 못한 사건들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알게 되어
그것들을 모두 십자가 아래로 가져가 깨끗하게 씻어버림으로
악한 영이 거처하거나 권리를 주장할 근거지를 없애 버리고 악령을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 축사는 자가축사를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약하여 능히 자가축사를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더 영권이 강한 사역자가 돕는 것입니다.
이 과정 중에 성령 하나님께서 사역자나 내담자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고 주관하여 주시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내담자에게 역사 하는 악령을 축출하고 내담자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축사 사역자는 마귀와 공유한 부분이 없을수록 즉 거룩한 삶을 살수록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역자 안에 귀신을 허용하면서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에게 나가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이유로 불의와 불법이 많이 행해지는 한국 교회에서
신학적인 이유보다는 축사 사역이 실제로 행해지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내적 치유가 중요하다.", "축사 사역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두 부류가 있었지만
축사와 내적 치유, 내적 치유와 축사 사역을 잘 통합할 때에
사역자는 내담자들을 가장 안전하고 온전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내적 치유와 축사에 관한 균형 잡힌 성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지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축사와 내적 치유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 치유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들을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듣기는 많이 하는 데,
느끼거나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거로서의 기적과 치유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 사상들 중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임하는 것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의 생애 전체가 말씀 선포(Word, what he said) + 실증(works, what he did)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치유 사역의 성경적 원리를 배우고
예수님의 권세와 사랑으로 축사 사역을 함으로
교회는 영적전쟁에서 특출한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많은 부흥하는 교회가 축사 사역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국내의 셀교회, G12 사역 교회들도 축사 사역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압니다.
물론 알파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알파코스에는 성령사역과 내적 치유 및 축사를 포함한 치유 사역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사 사역의 문이라 할 수 있는 '가계의 저주'에 관하여 신학적인 논란이 많이 있어
한국 교회에 축사 사역이 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가계 저주론에 관하여 2001년도 합신총회와 2006년 통합총회에서
‘위험한 사상’, ‘사이비성 농후’ 판정이 내린 바도 있습니다.
알파코스도 가계 저주론과의 관계로 인하여 예장 통합 교단의 이단 대책위원회는
이 가계 저주론에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도입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단은 통일교, JMS와 같은 완전 이단, 그리고 신앙적 열심은 있는데 해석이 잘못된 중간 이단,
그리고 억울하게 이단으로 몰렸다가 오해가 풀린 이단 등으로 구분이 될 것입니다.
알파코스의 불신자 정착율이 80% 이상이라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현재 알파컨퍼런스에 대해 이단이라는 말보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더욱 우세적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에 따라 앞으로의 평가가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에서 도입하고 있는 것은 셀 목회인데
셀을 통해 굉장히 성공한 교회가 ICM교회이고
그 ICM교회의 성공의 이유가
축사 사역과 가계 저주를 끊는 것을 일찍 도입했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목사님들이 많이 가시는 곳이 김성곤 목사님(풍성한교회)이 여시는 D12 세미나입니다.
그런데 풍성한교회의 모델이 바로 ICM교회에서 따온 것으로 압니다.
콜롬비아 ICM교회 같은 경우는
10년 간 제자훈련을 했지만 변화가 안 되고 개인의 문제가 그대로 있어
처음 예수를 믿을 때 빨리 가계의 저주를 해결하니까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새언약교회도 가능한 초신자 때에 축사 사역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교회부흥에 앞서 개인의 회복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축사 사역을 훨씬 많이 합니다.
물론 교부 시대에도 축사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극장보다도 더 재미있는 축사 사역을 보러 교회로 오라는
초대 교회의 교부의 문서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10년 전에는 미국에서 축사를 가르치는 학교가 10여 군데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다음은 세계 기독교계의 유명인사들의 축사 사역에 대한 언질들입니다.
그들의 간증과 같이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에 양들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으로
우리들은 신학적인 논란 속에서도 축사 사역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미국 최대 교회인 레이크우드 교회 담임 목사 및 [긍정의 힘]의 저자)
“우리 가문은 오랫동안 가난과 패배의 저주 속에 살아왔다… 과거의 장애물을 과감하게 뛰어넘자, 우리 가족을 그토록 괴롭히던 가난의 저주가 드디어 풀렸다… 하나님이 분명 도와주시지만 가문의 저주를 풀려면 변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억지로 기도 한 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긍정의 힘], 38면,48면)
●ICM교회(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세계최대 셀 교회; 담임목사 세자르 까스떼야노스)
“까스떼야노스(Castellanos) 목사님의 교회는 올해(1998년) 말에는 5만 가정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회는 특히 처음 예수를 믿는 회심자들에게 3일간의 수련회를 갖도록 하고 있는데 이 수련회 기간 중 내린 결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축사 사역과 가계로부터 흐르는 저주를 끊는 기도를 받도록 한다. 초신자들에게 있어 이 3일간의 수련회는 필수이다!” (도리스 M. 와그너, [내 이름으로 쫓아내며(How to Cast out Demons)], 61-62면)
●여의도순복음교회(순복음영성훈련원 평신도훈련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순복음영성훈련원 평신도훈련소를 통해 ‘가계의 저주를 끊는’ 사역을 가정치유 사역에 포함하고 있다. 3일 동안 진행된 강의 주제는 “가계에 스며든 죄악, 가계도 사역, 가계의 저주를 축복으로 회복하라” 등이다. (순복음가족신문, 2004년 4월 16일, 여의도 리포트 “치유와 능력의 현장”)
●두란노 아버지 학교
“과거의 잘못된 아버지 상을 거두고 새로운 아버지 상을 보여주겠다고 결단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아내에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가지겠다고 결단하는 아버지에겐 수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가계의 저주를 끊고 새로운 아버지 상을 개척해 나갈 아버지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아버지 학교 수료식, “아버지들이여 깨어나라!”)
새언약교회는 영, 혼, 육의 완전한 구원, 전인 치유를 구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들,
하나님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셨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는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없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신앙은 창조자와 구원자를 서로 다른 존재로 믿는 영지주의(靈智主義)의 세계상과
자연계가 영계에 비해 열등하거나 악한 것이라는 헬레니즘의 이원론적 세계상을 거부합니다.
이원론적인 사상은 오랫동안 기독교인의 이원론적 심성을 지배해 왔습니다.
특히 헬레니즘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실로 기독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기독교 신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로 잔존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 우리의 일상적 존재는 한낱 감옥과 같은 것입니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지는 세계는 실로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므로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영혼은 이데아(Idea)의 세계로 끝없이 비약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이데아만이 완벽하고 유일한 실재성을 지니며,
소멸하는 세계와 달리 끊임없이 존재하는 불멸의 실재이고
이 세계는 이데아의 모상 혹은 그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헬라적 이원론은 고대 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떨쳤으며
종교개혁자들을 지나 지금까지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세속적 진보와 육체적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어 온 성경 구절들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18:36)라는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비록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혹은 저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눅17:21).
큰 착각을 이룰 수 있는 생각 중 하나가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라고 고백하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을 통해 이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 세계가 악한 신의 창조물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그래서 이 세계와 그에 속한 것들, 특히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을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것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한 작품이므로 우리는 이 선물을 감사히 받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 세계가 언젠가 완전히 망하거나 사라질 것이 아니라 회복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에 대해 신실하시고 이를 끝까지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세계가 혼돈에 처하거나 파괴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끝없이 통치하시고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세계가 마귀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의 완전한 구원을 열망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완전히 떠난 구원을 바라는 것이 비성경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전인치유의 중요한 신학적 출발점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병들게 되면,
탄식 속에서 내세만을 열망하거나 영혼만의 안식을 구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전적인 치유를 간구하게 됩니다.
성경은 헬레니즘의 인간이해와는 달리 인간을 전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전인으로 창조되었고 인간은 전적으로 살고, 전적으로 죽으며, 전적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인간의 육체성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고,
그 반대로 인간의 몸도 죽은 육체가 아니라 그 모든 생활양상에서 영혼의 작용을 받고 있습니다.
영혼은 몸에 매여 있고, 몸은 영혼에 매여 있습니다.
영혼과 몸은 서로 관통하고 침투하며 일체를 이룹니다.
그런데 전인의 구원은 칭의, 성화 및 영화의 단계를 거쳐 완성됩니다.
칭의는 죄의 처벌(the penalty of sins)로부터,
성화는 죄의 세력(the presence of sins)으로부터,
영화는 죄의 존재(the presence of sins)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완성은 사망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영화 때 즉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빌 3:20-21; 요일 3:2; 계 21:4; 22:3).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조직 신학 책은 영화와 재림을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전인의 구원은 칭의, 성화 및 영화의 단계를 거쳐 완성됩니다.
칭의는 구원의 시작이고, 성화의 구원의 과정이고, 영화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칭의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성화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내적 치유나 축사는 성도의 성화의 단계 중에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성화의 구원’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부터의 회복, 즉 저주로부터의 완전한 구속
그리고 치유 역시 계속 연속되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 구원은 치유로도 이해됩니다.
구원은 치유와 같은 뜻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치유는 구원의 구체적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치유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로 오시면 고통을 당하던 피조물들은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원수가 뿌린 죽음을 몰아내며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씨앗을 퍼뜨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적 구원만이 아니라 육체적 건강도 가져옵니다.
병자 치유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육체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만약 몸의 치유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치유는 하나님 나라의 전령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통해 우리는 부활의 열매를 미리 맛봅니다.
치유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느끼며, 생명을 다시 선물로 받았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치유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미리 맛보는 부활의 생명은 마지막 날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다치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치유 현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혼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로 위축된 것은
영혼불멸을 가르치는 헬레니즘의 이원론 때문입니다.
비록 장차 우리의 신체적 구성이 완전히 달라질지라도, 구원의 신체적 특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새 몸은 분명히 지금의 몸과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몸이 멸절 되는 것이 아니라 새 몸을 덧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몸으로 행한 모든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몸 안으로 수용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열등한 것으로 비하하거나 언젠가 완전히 벗어버릴 일시적인 껍데기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우리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려고 애쓰며, 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애씁니다.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고전 16:9).
세상에는 환자로 넘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영, 육 간에 병들어 있는 사람들로 넘쳐 흐르고,
대다수의 질병의 원인이 영적으로 원인이 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하는 치유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과 긍휼로만 엄청난 치유는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는 영혼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성령사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사역을 행해야 합니다.
물론 인격자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 중 능력만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축사 사역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치유 사역의 중요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치유자로 보내셨고 4복음서의 1/5이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당연히 축사 사역을 포함하며,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그의 명령과 가르침에 따라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엔 아직도 축사 사역이 희귀합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에서 셀목회 도입이 빈번하지만
성령의 외적 능력의 나타남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능력 은사를 구하지 못하게 한 기적종식론(사도시대에 기사와 이적이 끝났다는 주장)의 교리와
불행하게도 능력 사역자들의 윤리에 문제가 많이 발견되고 무속적인 부분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사실 한국의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성장의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윌로우크릭교회나 새들백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을 보면
다른 모든 종류의 전도 방법 ; 대면 전도, 관계 전도, 봉사 전도 등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정작 성경의 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한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은사적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전 세계적에서 비은사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외에 80%는 성령의 외적 능력을 중시하면서 집회나 셀 모임에서 표적과 기사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은사적 교회들입니다.
또하나 아직도 한국 교회에 귀신을 쫓는 축사 사역이나, 치유 사역 또 성령 사역을 터부시여기는 교회가 많은 이유는
귀신들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 역사 하는 귀신들의 방해와 공격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 악한 영에 대적하는 힘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에 귀신들린 자가 오면 그 사람을 위해 축사 사역은 고사하고 귀찮고 두려워하여 달갑게 여기지 않는 형편입니다.
실제로 귀신이 들리는 정도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본다면,
그 정도가 심하게 되면 그 성도의 인생에는 죽고 사는 위급한 문제가 됩니다.
수년 사이에 저희 사이트를 통하여 인터넷 상으로 상담하는 회원의 사정이 제가 보기에 너무 위급한데
마땅히 부탁할 목사님을 찾지 못하여 귀국하여 사역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성도일 경우에는 참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었습니다.
지옥의 문을 뜯어내는 이기는 교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여 주시는 그분의 자녀이며
우주의 왕 되신 주님과 약혼 중인 공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진정한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여 마치 거지처럼 살아갑니다.
자신이 공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보내 주신 성령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을 치유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거역하거나 무시하는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그분을 모심으로 영, 혼, 육이 온전히 치유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로 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한 일들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면
우리는 많은 대중매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또한 우리 주변에서 적지 않게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더욱 극악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죄악이 더 팽배해 졌다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과거보다 더 필요한 때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제3의 물결에서는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성경의 구절이 없으므로 은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교회는 은사의 결핍으로 지극히 약해졌고 빈혈증에 걸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지상적 수준의 영적 전쟁인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약한 자를 치료하며 강건케 하는 사역에 눈을 떠야 합니다.
특히 선교적으로도 중국, 네팔, 모잠비크 같은 나라에서는 귀신 쫓는 사역을 하지 않고는
효과적인 선교 사역이나 교회 개척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서도 이제 치유 사역은 교호에서 다시 조명되고 행해져야 할 줄 믿습니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태복음 8:2,3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누가복음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22장 2절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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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06년 3월 24일
여러분과 함께
열방을 위한 사도적 경배군대로 부르심을 받은
김마리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