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차의 관해서.....

작성자초로현지(草露 賢智)|작성시간09.02.09|조회수952 목록 댓글 1


 

茶道란 차를 마시는 멋과 더불어 인간의 건전한 삶의 길을 걷자는 것을 말함이다. 정상구의 『韓國茶文化學』에서는 건전한 삶의 길이란 심신(心身), 즉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하며 멋속에 삶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으로 논하고 있다.

차는 처음에 약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기호음료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보건음료로서 효과가 큰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차는 우리 인간들이 건전한 삶의 길을 걷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몸을 튼튼히 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귀중한 기호음료이다. 뿐만아니라 차를 끓이고 마시며 대접하는데 있어 따르는 정성과 예의범절 및 청정하고 고요로운 분위기 등에서 알뜰한 각성의 생활을 체득(體得)하게 된다. 즉, 다도는 우리 인간들의 정신면에 있어 사심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기르고 나아가 봉사하고 일하는 실천력을 기르고 이를 통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다같이 한없는 기쁨속에 깨달음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다산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라는 것은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것은... 중략... 이미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고치는 것, 이를 배움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우리 다도인들이 차를 마시며 인간다운 삶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배움의 길 즉, 깨달음의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명배의 『茶道學』에서는 "찻잎 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의 차일(茶事)로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를 말한다" 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그러면 道란 과연 무엇일까 ?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이라 부르고, 성에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라고 중용에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다도란 차의 성품에 따르는 것이 될 것이다. 차의 성품에 대해서는 대흥사의 초의선사가 김명희에게 보낸 다시(茶詩)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옛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즐겼나니

차는 군자처럼 성미에 사악함이 없어서라네

(古來聖賢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

그리고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차는 풀의 현성(즉, 禪)이다. 현미한 도, 청화의 덕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송나라의 소식도 「차의 청정무구한 힘은 참으로 덕망있는 군자와 같아서 더럽힐 수가 없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다도는 물. 불. 바람. 차. 다구 등을 매개체로 하여 차의 천성을 따라서 덕을 쌓는 수도행위이다.

석용운은 『한국다예』에서 다도란 차 다(茶)와 길 도(道)자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문자로서 차라고 하는 물질적 또는 정신적 세계와 道라고 하는 절대적 진리적 경지가 한 단어로 표현된 말로 정의내리고 있다. 이는 차생활을 통해서 절대의 경지인 도의 차원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도란 차생활을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경지이지 차생활의 예절이나 법도 그리고 차를 끓이는 행다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차를 대접하는 예법이요, 차 끓이는 방법일 뿐이지 결코 다도는 아니다.

禮는 차생활의 예법이요 행동의식인 과학적인 차원이요 형이하학적인 범주이다. 그리고 禮는 과학적 차원인 차생활에 예의범절과 법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정신세계의 심미안적 예술세계요, 그 예술성을 포함한 정신적 만족감 등을 말한다. 그리고 道라고 하는 경지는 형이상학적 경지에서 최고도로 승화되어 이루어진 절대의 경지요 진리의 차원이다. 이 경지는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로서 상대적인 것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의 세계로 선악과 시비와 유무와 색채와 형상과 언어가 떨어진 경지이다.

제 2 절 다도와 다례

최근 다도와 다례에 관하여 「다도는 일본 고유의 것이며 한국에는 다도라는 것이 없고 다례이며 중국은 다법이다.」라고 하고, 「한국의 다서에는 다례라는 말은 있어도 다도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으며 중국의 다서에도 다례라는 말은 있어도 다도라는 말은 없다.」라고 말하고,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전통을 살리는 다운동이 우리 다론에도 발견할 수 없는 다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전통계승과 배반되는 행위이며 일본의 것에 추종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우리는 하루 속히 일본 고유명사인 다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다도라는 말은 어떤 중국 다서에도 없는 말이며 또, 어떤 한국 다서에도 없는 말인가. 이러한 점을 살펴보기 위해 「다신전」「동다송」등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다신전」에 보면 차의 보관부분 이후의 구절만 봐도 다도라는 말이 세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차의 보관부분을 보자.

차를 만드는 데에는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에는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하며 탕을 끓일 때에는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정성을 다하고 건조하게 보관하면 청결하게 끓이게 되면 다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다.

(造詩精 歲詩燥 泡詩潔 精燥潔 茶道盡矣)

그리고 동다송 29송 포법 부분에 보면 다음과 같이 다도란 말이 나오고 있다.

평해서 말하면 차를 달일 때에는 오묘함을 다하고 차를 만들 때에는 그 정기를 간직하며 물은 참된 물을 얻고 포법에는 중화를 얻으며 체와 신이 즉, 차와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웅건함과 신령스러움을 갖추니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다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신전」 끝부분에서도 다음과 같이 다도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불가에도 혹은 조주의 풍이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다도를 완전하게 알 수 없기에 써 보지만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처럼 다도라는 용어는 일본 고유의 말이 아니고 우리 조상들도 옛부터 다도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도와 다례는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 의하면 다도와 다례는 얼핏 같은 것 같지만 그 질, 양면에 있어서 다른 것이라고 하겠다. 즉, 그의 연구대상의 양면에 있어서 볼 때 다도는 그 폭이 광범위하며 그 질 면에 있어 구도적인 측면이 깊다 하겠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도란 다와 더불어 심신을 수련하여 다도의 멋속에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다에 관한 전반적인 수련의 길인데 반하여, 다례란 다를 마시는 데 있어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예절과 심신수련을 말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도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다도정신, 다도문화사, 다의 역사를 비롯하여 단의 산지, 기후, 다와 타학문과의 관계 등 광범위한 연구와 더불어 다례가 또한 핵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례는 그 양면에 있어서 다도의 핵심적인 한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 비유하면 마치 불교의 선과 같은 것이다. 선은 불교의 핵심이지만 선 자체가 불교의 전부는 아니다.

다음 다례와 다도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 차이는 무엇인가 ? 넓은 의미의 다례에는 실용다법도 있어 이는 다를 마시는데 있어 간단한 예법과 더불어 누구라도 손쉽게 마시는 다사이다. 이는 다 애호가들이 마시는 가장 간략한 다법이다. 여기에는 구도적인 자세란 물론 있을 수 없다. 도까지를 추구하지 않으나 불교, 유교, 궁중 예법 등과 더불어 행하는 다례는 이를 의식다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과거 우리 조상들이 해 온 다례는 궁중다례, 불교식 다례, 유교식 다례들이 있었으나 이 다례에선 의식중심의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구도적인 경향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구도적인 자세가 깊었던 다법은 불교의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다례는 다도의 핵심적인 부분이지 다도 즉 도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미흡했다.

다만 다도가 다례에 그치지 않고 심오한 도의 경지에 가기 위해서는 참선 또는 다시 들의 연구와 더불어 다정신을 체득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런 경지는 불교에서 있었다 하여 草衣는 茶道라고 했다. 도란 유(有)와 무(無)가 같은 근본에서 나와 이름만을 달리하는 동일한 것이라고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말했지마는, 그와 같은 어려운 철학적인 풀이는 유교에서는 하늘의 길이라 하였으며 이것은 곧 참된 사감의 길이기도 하다. 중용에 보면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誠者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했는데 하늘의 길이란 참을 행하는 사람의 길이 된다.

때문에 다도란 다와 더불어 참된 사람의 길을 걷자는 천리(天理)를 행한 구심적인 행위를 말하는데 비하여 茶禮는 다를 마시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예의범절 즉 예(禮)나 몸가짐 그리고 茶와의 조화를 중심한 분위기와 지식 등을 일컬음이다.

김명배의 『茶道學』에서는 사람(人). 귀신(神). 부처님(佛)에게 차탕을 바치는 예의를 다례(Tea Ceremony)라고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다례의 종류로 역대 왕조의 조정다례, 유불도교의 종교적인 다례, 여염집에서의 손님맞이 다례가 있다.

신라. 고려. 조선왕조의 조정에서는 이웃나라의 사신을 영송하는 다례와 왕실의 궁중다례가 거행되었다. 종교적인 다례로서 유교의 다례. 불교의 다례. 도교의 다례가 있다. 신라시대 유교적인 다례에 대해서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전재된 김양감의 「가락국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송나라의 주희가 「주자가례」에 제정해 놓은 관혼상제의 다례는 고려 말기에 정몽주와 이숭인의 상주에 의해 채택되었다.

신라시대에는 미륵하생신앙에 의하여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였고 , 화엄사상에 의하여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도의선사는 당나라에 유학하는 동안 홍주 백장산과 대지수성선사에 있는 백장회해선사를 만나고 돌아 왔으니 「백장청규」에 의한 다례법을 전파하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지켜진 「백장청규」에는 특정한 인물을 위한 다례인 특위차를 비롯한 불전헌다법이 적혀 있다. 대개 음력 5월 5일의 단오명절이면 민간에서는 창포주를 마시어 백병과 백충을 물리친다지만 선사에서는 새벽에 창포차를 달이는 것이다. 또 음력 9월 9일의 중양절이면 민간에서는 수유주를 마시고 술에 국화를 띄워서 장수를 빌지만 절에서는 수유차로 대신한다.

도교에서는 절에 있는 칠성각, 도교의 관사, 복원궁, 소격서에서 옥황상제, 보화천존, 사해용왕 등의 여러 신에게 단잔으로 다례를 받들었다.

손님맞이 다례는 여염집에 문득 찾아오거나 초청한 손님에게 차를 접대하는 것인데 『난파선생 시권』의 「후서」에 손님맞이 다례의 좋은 예가 보인다.

거인 청주 이상국은 내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어른이시다. 난파는 그 호요, 수부는 그 자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이상한 풍속을 즐기고 숭상하였다. 손님이 오면 반드시 향을 사르고 차를 달이고 노래를 읊으며 잔을 돌렸다.

※ 참고문헌

김명배. 「茶道學」. 학문사. 1993

석용운. 「韓國茶藝」. 초의. 1993

정상구. 「韓國茶文化學」. 세종출판사. 1997


제 3 장 한국의 다도

한국다도정신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먼저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중국의 다도정신을 고찰하는 방식처럼 중국의 유명한 다서를 중심하여 다서 중에 표현된 정신-- 음유적 표현 또는 직설적 표현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방법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다도정신을 구명할 만한 다서가 초의선사의 다서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한국의 시대별 다도정신의 구명은 다인들의 茶詩 또는 다생활을 중심으로 고찰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다도정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서는 한국의 다도정신은 이미 신라시대에서부터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도정신의 기원은 화랑도에서 엿볼 수 있으며 한국다도정신의 뿌리는 원효의 화쟁지화(和諍之和)정신과 그의 적지적(寂之寂)정신 즉 靜정신에서 일어났다고 논의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다도정신은 원효성사의 화정(和靜)정신을 기조로 하여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의 다시, 정몽주(鄭夢周)의 다시를 비롯하여 조선조시대의 서산대사의 다시 그리고 초의선사의 다시 및 다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하겠다.

제 1 절 신라시대의 다도정신 -- 화(和). 정(靜). 청(淸)

1. 화랑정신과 다도정신

신라의 화랑들과 다도와는 깊은 관계가 있다 삼국유사의 충담(忠談)과 차 관계에 관한 것에서 이미 충담은 미륵세존에게 차 공양을 올리고 남산의 오솔길을 내려오면서 지난날 화랑 기파랑(耆婆郞)의 인격을 기리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헤치고 나타난 달이

횐구름 쫓차 떠가는 어디에

새파란 냇물속에 기랑의 모습 잠겼세라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이

랑의 지나신 마음갓(際)을 쫓고자

아 잦(栢)가지 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차는 이미 선덕여왕 시대부터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기록된 바에 의하면 홍덕왕 2년에 입당회사인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차씨를 화개동에 심었다 하여 점점 퍼지게 된 것이다. 경덕왕은 충담사를 궁중에까지 맞아서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왕은 「차의 기미가 신기하여 입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차다.」(茶之氣味異常구中異香郁烈)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왕이 차를 얼마나 좋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신라 화랑과 다도와의 관계는 고려 중엽의 문인 이곡의 기행문 동유기(東遊記)에서도 엿볼 수 있고 그의 다시 가운데에도 엿볼 수 있다. 그의 다시 「강릉동헌의 운을 잇다.」(次江陸東軒韻) 또는 「한송정(寒松亭)」등에서 엿볼 수 있다. 뿐아니라 김극기의 화랑 「차부뚜막」을 읊는 시 등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대학자 이규보(李奎報)의 「원효방(元曉房군)」을 심방하고 원효와 사복(蛇福)간의 차생활 기록 등에서도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러면 화랑도정신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세속오계를 드나 이는 합당치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미덕을 들기도 하나 미덕이란 지나치게 개연적인 것이어서 이를 취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그럼 과연 화랑정신이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이름하여 풍류라 이른다. 그 교의 기원은 선사에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실로 이는 삼교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효도를 다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의 뜻 그대로이며, 그 한없는 일을 당하여 말없는 교를 행하는 것은 주주사의 종지를 다함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함은 축건태자의 교화 그대로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랑도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했으며, 충효신의를 지켜 유교를 무의무언지교 화광동진(和光同塵) 충기이위화 하는 선교를 또 자비덕행하는 석가의 불도를 다 같이 수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랑의 기상은 유. 불. 선의 장점을 산천에의 주유와 더불어 심신을 단련하여 또 차와 더불어 체득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라시대의 화랑정신은 이를 「화합(和合). 충절(忠節).숭경(崇敬). 청결(淸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랑의 다정신도 화(和). 충(忠). 경(敬). 청(淸)이라고 하겠다.

정영선의 「다도철학」에서는 화랑의 다문화를 논의하면서 6세기 이전의 인물로 추정되는 신라 사선이 경포대와 한송정에서 「석지조(石池조)」라는 돌못화덕을 사용하여 차를 끓여 마셨다는 기록이 흔히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선은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祥)으로 선인이자 초기 화랑으로 이러한 특수한 다구를 써서 야외의 특정장소에서 차를 끓어 마셨다.

맨 처음 사선의 다조를 글로 남긴 사람은 김극기(金克己,1148-1209)로서 그는 <한송정>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아래와 같이 읊고 있다.

여기가 네 신선이 자유로이 완상하던 곳

지금도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구나

주대는 기울어 푸른 풀 속에 잠겼고

다조는 내버려져 이끼 끼었네


또한 이곡(이곡,1298-1351)이 동해안지방을 여행하고 쓴 『동유기』를 보면 경포대와 한송정에 있는 사선의 전다구(煎茶具)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날이 아직 기울기 전에 경포대에 올랐다. 옛날에는 대에 집이 없었는데 요즈음 호사자가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옛날 선인의 석조가 있으니 대개 차를 달이는 도구이다. 동쪽에 사선비가 있었으니 호공단이 물 속에 넣어 버리고 오직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송정에서 송별연을 했다. 이 정자 또한 사선이 유람하던 곳인데, 고을 사람은 구경꾼들이 많은 것을 귀찮게 여겨 집을 헐어 버렸고 소나무도 들불에 타버렸다. 오직 서리내리는 밤의 달이 맑을 뿐이다. 다만 석조 석지와 두 개의 석정(돌우물)이 그 곁에 남아 있는데 역시 사선의 다구이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한송정 뿐만 아니라 경포대에도 화랑들이 차를 마셨고, 그 자리에 석조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송정에도 석지와 두 개의 석정이 있음도 적고 있다. 우물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제사장용이거나 차 끓이는 물을 쓰기 위한 신성한 샘이고, 다른 하나는 낭도들이 쓰거나 허드렛 물을 쓰기 위해 파놓은 우물이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신라의 음다풍속을 살펴 볼 때, 주류를 이루는 계층은 화랑이었다고 하겠다. 대표적 인물로는 6세기 이전의 초기 화랑인 사선과 후기의 화랑승인 충담, 월명, 보천과 효명 등이라고 하겠다. 사선이 경포와 한송정에서 차를 끓인 이유는 이곡이 쓴 『동유기』에서의 내용과 여지승람을 참고하면 아마 차를 끓여 누군가에게 바치고 기도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차를 바친 대상은 사선과 선인들이 떠받들었던 삼신혹은 셋을 하나로 본 시조삼신(始祖三神)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용운은 사선랑의 행다법을 재구성하면서 그 의의는 풍류도를 닦은 선인들이 한송정이나 경포대에서 차를 달여 마시며 심신수련을 하는 선가의 다풍을 알 수 있는 독특한 행다법에 있다고 보았다. 선랑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심신수련을 하였는데 그들의 수련장에는 차를 달이는 돌절구와 돌부뚜막, 돌우물과 다구들이 있었다. 항상 차를 달여 마시기 때문에 깨지지 않는 돌로 만든 다구들을 준비해 두고 사용했으며 산수간에 노닐면서 오악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또 낭도들이 차를 나누어 마시기 편리하도록 그 자리에 고정시킨 다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헌다순서로 차를 마셨다고 보고 있다.

① 한송정에서 석지조를 이용하여 차 끓일 준비를 한다.

② 석조는 찻물을 끓이며 차 달이는 부뚜막이고, 석지는 찻물을 보관하는 기구이다.

③ 석지에 찻물을 길어다 놓고 석조에 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인다.

④ 석조 옆에 물을 채워서 물이 데워지도록 하고 연료는 숯이나 백탄을 쓰되 솔방울을 주워다 쓰기도 한다.

⑤ 다구를 깨끗이 씻어서 준비하고 찻물이 끓기를 기다려 물이 끓으면 약간의 탕수를 떠내 찻잔을 데운다.

⑥ 떡차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돌솥에 넣어 끓인다.

⑦ 차의 양은 손님의 수에 따라 가감을 한다.

⑧ 찻잔에 물을 버리고 잘 달여진 차를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⑨ 낭도 한명이 찻잔을 받쳐들고 정자 안에 계시는 사선에게 차를 날라다 드린다.

사선에게 차 대접을 마치고 나면 다른 낭도들이 마실 차를 달인다.

전과 같은 순서로 차를 달여 낭도들에게 차례로 나누어준다.

낭도들은 자기의 찻잔은 각자가 휴대하며 차 마실 때 꺼내어 차를 받아서 마신다.

사선은 정자 안에서 마시고 낭도들은 밖에서 아무 곳이나 편리한 속에서 차를 마신 다.

사선이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찻잔을 거두어 가지고 나와 석조의 데워진 물에 씻어서 보관한다.

석조에 설거지하는 통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원효의 화쟁지화와 적지적의 靜 사상과 다도의 和.靜 정신

신라에 있어 茶와 佛敎와는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충담사와 기파랑, 월명대사, 혜소, 진감국사 등의 고승이 있었으며 이들과 다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크게 불교계 영향을 미친 깃은 원효대사이다. 원효대사와 다에 관한 것은 사포와의 일화 및 감천전설 등을 비롯하여 원효방 다론 등 많다.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서는 원효가 불교계의 해동보살일 뿐 아니라 우리의 다도정신을 그의 自得道通한 견지에서 승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논하고 있다. 신라통일 조를 전후하여 많은 고승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당나라 유학을 갔다와 당나라 불교의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당나라 영향을 받은 스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당나라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던 원효는 스승없이 자득달통한 사람이다. 이에 관해 삼국유사는 「원효는 일정한 스승이 없이 스스로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또 고려의 대표적인 고승인 의천대각국사는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불교를 생각하여 선대 선지식들의 학덕을 두루 배우고 익혀 관찰해 왔으나 원효성사위에 지나가는 이는 없다.」 라고 하여 원효를 聖師라 칭했으며 또 海東菩薩이라고 칭했다.

이런 점에서 더욱 다와 불교와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다도정신에 있어 화합은 막연한 화합 정신에만 그치지 않고 원효의 위대한 和靜사상과 자연 결합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백가이쟁(百家異諍)의 실마리를 풀어서 진리의 바다에 되돌려 보냄으로 하여 한국적 화쟁사상 곧 원융회득하는 정신을 이룩했다. 즉, 화는 원효의 반야경종요서(般若經宗要序)에 나오는 화쟁지화 사상은 다음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백가의 서로 다른 다툼을 회통시켜서 드디어 요란한 四生의 중생들로 하여금 둘도 없는 참다운 본성에 들어가게 하여 꿈꾸는 생사의 긴 잠을 깨워서 큰 깨달음의 지극한 果에 이르게 하며 지극한 과의 큰 깨달음을 이르게 한다.

그리고 靜사상은 원효의 해동기신론별기의 다음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즉, 「불도가 진리의 길이 되는 것은 텅 비고 고요하고 말숙하면서 깊고도 그윽하기 때문이다. 그윽하고 그윽하지만 만가지 형상밖에 벗어나지 않으며 고요하고 고요하지만 오히려 백가의 이론속에 있도다.」

여기에서 원효가 제일 중요시하는 사상은 「寂之寂」사상이다. 적지적 사상이란 무엇인가. 寂은 고요할 적 즉, 靜也, 安也가 주격이다. 적지적 사상은 즉 極寂을 말함으로 극적이란 적의 근원에 돌아감을 말함인데 적의 근원은 바로 淸寂 즉 靜이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의 다음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체 모든 물은 운운하지만 각각 그 근원에 돌아가는 것을 정이라 한다.

노자는 여기에서 무위자연 곧 적지적함을 두텁게 지키면 천지만물이 모두 일어나는데 그것이 靜에 돌아간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와같이 근본 뿌리에 돌아가는 것을 즉, 靜이라 한다는 것이다. 노자의 이치를 통해 볼 때 寂의 본질은 靜인 것이다.

원효의 적지적 사상도 바로 노자의 그것과 상통한다고 본다. 寂은 고요할 적, 바로 靜也다. 적을 강조하여 적지적이라 함은 바로 적의 근원인 靜, 바로 깨달음을 일컬음이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원효의 불교사상은 바로 和靜이라 하겠고, 茶禪一禮觀을 가진 원효의 다도정신 역시 和靜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원효에 있어 차를 마시는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원효가 불법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당정산 고총에서 어느날 밤에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그 맛이 감로수 같았던 것이 날이 밝아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라 구토를 느꼈다. 여기에서 그는 깨달음을 가져 왔다. 다 같은 물인데 어느 때는 감로수 같고 어느때는 구토를 느끼고 그는 三界가 모두 허위이며 三界唯心의 진리를 깨우쳤다. 「마음 그것은 내가 없는 무아경에 이를 때 眞性이며 陽을 나타날 때 和가 된다. 고로 화는 교의 근본이다.」 라고 그는 교의를 세웠으리라.

이상과 같이 원효는 그 누구에게도 배운 바 없이 스스로 因心自得하여 후일 고려왕조에서는 그의 위대한 화정사상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화정국사라는 칭호를 내리기까지 했다. 화정국사 원효의 화정정신이 바로 한국다도정신의 근원이라고 하겠다.

원효대사에 얽힌 차얘기는 고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튿날 부령현재인 이군 및 다른 손님 6-7인과 원효방에 이르렀다. 높이가 수십길의 나무 사다리가 있는데, 발을 포개고 매우 조심하여 걸어서 도달하였더니, 뜨락의 층계와 창문이 수풀 끝에 솟아 있었다. 듣자니 가끔 범과 표범이 있는데 아직은 당겨서 올라온 놈이 없다고 한다. 곁에서 한 암자가 있는데, 속말로 사포성인이 옛날에 살던 곳이라고 한다. 원효가 와서 살았기에 사포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서 효공에게 올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음을 근심하다가, 그 물이 문득 바위 틈에서 솟아나고, 맛이 매우 달고 젖과 같아서 점다를 시험하였다.

이 글에 나오는 원효방터는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개암사의 뒷산인 우금 암밑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원효대사가 그 곳에 간 시기는 백제가 멸망한 뒤 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원효대사와 사포스님에 대한 설화는 「삼국유사」의 「말하지 않은 사복」조에 적혀 있다.

참고로 석용운의 「한국다예」에 나오는 원효성사의 행다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먼저 다신 밖에서 탕관에 물을 끓일 준비를 한다. 불을 피울 숯이나 마른 나무를 가 져 온다.

② 다실 밖에서 불을 피워 찻물을 끓일 차비를 해 놓고 샘에서 물을 길어 온다.

③ 화로에 차솥을 올려 놓고 물을 끓인다. 물 끓이는 일은 밖에서 한다.

④ 차 달일 다구를 챙겨서 다실로 가지고 들어가 배열을 마친다.

⑤ 밖에서 물이 다 끓으면 삼발이나 화로를 준비해서 차솥을 가지고 들어와 다실에 놓 는다.

⑥ 떡차를 다연에 넣고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가루차는 거친 가루이다.

⑦ 차솥의 탕수를 한 바가지 떠서 잔을 데운다. 그리고 가루차를 차솥에 넣는다.

⑧ 또는 가루차를 찻잔에 넣고 탕수를 한 바가지 떠서 그 위에 붓는다.

⑨ 차솥에 넣은 차는 잘 끓여진 후에 찻잔에 떠내서 따로 만나지만

찻잔에 가루차를 넣고 그 위에 탕수를 부어서 만든 차는 다선으로 저어서 거품을 낸 다.

적당하게 물과 차가 섞여지고 거품이 나면 찻잔을 찻상으로 옮긴다.

찻상에 받들어 가지고 가서 원효대사께 드린다. 차를 다 마시면 찻잔을 물린다.

찻상에 찻잔을 받아 가지고 물러나 다구를 챙겨서 치운다.

3. 고려시대의 다도정신 -- 청허(淸虛), 청화(淸和), 사무사(思無邪)

이상과 같이 전개된 한국의 다도정신은 고려시대에 와서도 정몽주(鄭夢周), 이규보(李奎報), 이행(李行) 등의 시 등에서 계속 이어져 그 정신적 발전을 만개하였다.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서는 고려시대의 다도정신이 본질적으로 和靜精神과 동질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먼저 고려시대 이규보의 茶詩 중에서 다도정신을 잘 표현한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밤은 깊어 물시계 딩동할 때 그대에게 三語와의 차이를 묻노니 말해 다오.

나는 긴세월 정진했으나 스스로 구하기 어려웠도다. 그대를 잠시 보고 나니 모든 것이 空함을 알메라.

韓退之의 쌍조부(雙鳥賦)는 싫증나고 장자의 소요유(逍죠謠遊)는 구미에 맞노라.

타오르는 불에 끓인 향기로운 차는 바로 도의 맛이며 흰구름과 밝은 달은 곧 나의 가풍이로다.

이 시에서는 깊은 밤 물시계의 딩동하는 소리가 바로 여래의 삼어와 같다는 인식이다. 여래의 삼어를 살펴 보면 ①수자의어(隨自意語) -- 부처님이 자의대로 자기가 증득한 실법을 설한 것 ②수타의어(隨他意語) --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설한 것 ③수자타의어(隨自他意語) -- 부처님이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하실 때 절반은 자의에 따라 설하시고 절반은 타의 근기에 따라 설하신 것을 말함. 앞의 구절에서 물시계의 소리가 여래의 삼어와 차이가 없다는 것은 바로 실유불성(實有佛性)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오랜 세월 정진하였으나 스스로 구하기 어려웠던 것을 다를 만나고 나니 공한 것을 알았다는 것이며 장자의 소요유를 한퇴지의 쌍조두보다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현실직인 세계관보다 淸虛와 靜寂의 노장사상에 심취해 감을 읊조린 것이며, 茶의 맛을 道의 맛으로 승화시키는 청정한 그의 마음가짐은 흰구름과 밝은 달을 기풍으로 한다는 청정무구(淸靜無垢)한 무소득무아(無所得無我)의 경지를 가풍으로 한다는 것을 읊조린 것이라 하겠다.

이 시에 나타난 이규보의 다도정신을 『한국다문화학』에서는 청허(淸虛)와 무사의(無邪意)로 보고 있다. 이규보가 설봉선사의 청에 의해서 지은 다음과 같은 茶詩속에도 그의 청허한 다도정신을 알 수 있다.

돌화롯불 활화로 피워 차 손수 달이니

찻잔의 차 빛깔과 맛 자랑스럽네.

끈끈한 그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어머니 젖내와 젖내 맡는 얘기같네.

고요로운 방안에 아무 것도 업고

오직 차솥 생황소리(물 끓이는 소리) 기뻐네.

차 이야기 물 고르는 것은 이 집의 가풍

어찌 千世의 영화를 바라랴.


화롯불 차 손수 달이는 것 등은 自得自覺의 修行心을 표현한 것이며, 차 맛 입속에 녹으리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얘기 같다는 것은 無邪意한 정신, 즉 淸和精神을 말함이라 하겠다. 방안에 아무 것도 없고 차솥 물 끓이는 소리 기쁘네 하는 구절은 청허정적(淸虛靜寂)한 마음자리를 나타내고 있고, 차 이야기 물 고르는 것을 가풍으로 삼고 천세의 영화를 버린다는 것은 陸羽의 精行儉德 정신과 유무상통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이규보의 다시를 살펴 볼 때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이규보의 다도정신은 靜虛, 淸和, 無邪意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쁜 평판을 모두 허령한 마음 밖에 던지고 나니

오묘한 도는 오히려 눈앞에 있구나.

돌솥에 끓는 차는 향기롭고 흰 젖이 뜨고

벽돌 화로에 피는 불은 저녁놀 같이 붉구나

인간사의 영광과 욕됨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호수와 산을 유랑하는 늙은이가 되리라


위시는 이규보의 茶詩로서 그의 茶道一如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자신의 虛한 마음을 밖으로 던지고 나니 비로소 도가 보이는데, 이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끓고 있는 차속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읊고 있다. 이 茶道一如를 통해서 인간사의 영광과 욕됨의 허무함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거기에서 벗어나서 자연속을 유랑하는 삶을 택하겠다는 고고한 정신을 암시하였다. 또한 이 茶詩에는 차의 아름다움을 정말 멋지게 표현하고 있는데, 차를 맑은 흰 젖에 비유하거나 화로의 불을 저녁놀께 비유함으로서 차를 대자연과 조화롭게 이해하려는 이규보의 다정신의 일면을 알 수 있겠다. 정영선은 이규보의 道를 논의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道는 佛家나 儒家의 도가 아니라 道家의 도라고 보고 있다. 그 예로서 아래의 시를 인용하고 논증하였다.

한자의 쌍조이야기는 듣기가 싫고

장자의 이충설을 몹시 좋아한다네

타오르는 불에 끓인 향차는 진실로 道의 맛이고

흰 구름과 밝은 달은 곧 집의 풍경이네

생공의 설법은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녀 육신이 해탈했네

그대를 만나 망형하고 애오라지 뜻을 이루었으니

그날은 방덕공에게 부끄럽지 않았다오


위 시에서 이규보는 장자의 설을 몹시 좋아하다고 밝히면서 생공과 열자를 인용하고 있다. 노장의 無爲自然을 상징하는 흰 구름과 밝은 달이 곧 자신의 집이라고 하면서 이 老莊에 의해서 육신을 벗어나서 해탈을 얻으니 형태를 잊어서 부끄럽지 않은 살을 살고 있노라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또한 익제 이제현선생도 차를 사랑하고 아끼는 다인이었다. 이제현선생은 고려의 충절이요, 대문장가로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점잖기가 성인 같았다고 전한다. 14세 때 성균시에 장원 급제하였고, 15세때 병과에서 급제하였다. 익제선생은 <익제난고(益濟亂稿)> 를 지었는데 권4에 「소악부」 11편을 남기고 있는데 <고려사> 「악지」에 소개된 내용과 같은 것으로 「장암」「사리화」「처용」등이다.

익제의 아버지 이진 때도 집안에서 차를 즐겨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익제집>에 혜감(慧鑑)이 새차(新榖)을 동암(東菴)에게 보내면 동참은 반드시 시를 지어 보답했으며 이제와서 자원국사 역시 차를 익제에게 보내니 이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이에 <송광화상이 햇차를 보내준 은혜에 대하여 붓가는 대로 적어 방장실에 붙임> 이라는 긴 제목의 시를 지어 바쳤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대바구니 보내와

옥과보다 더 좋은 신선한 차를 얻었네.

맑은 향기는 한식 전에 따왔는지

고운 빛깔은 숲속의 이슬을 머금은 듯

돌솥에 찻물 끓는 소리 솔바람 부는 듯

자기 찻잔에 도는 무늬는 꽃망울을 토한다.

황정견이 운용차를 자랑할 수 있으려나

소동파의 월토차보다 월등함을 알았네.

서로의 친분은 혜감의 기풍이 남아 있고

사례하려 하나 동암의 글귀가 없구나.

붓솜씨도 노동을 본받을 수 없는데

더구나 육우를 따라 다경을 쓰겠는가.

원중에서 공안을 다시 찾지 마시오

나도 역시 지금부터 시에 전념하겠소.


천병식의 『韓國茶詩作家論』에서는 이 시에 대하여 햇차의 신선삼, 차의 빛깔, 차 솥에 물끓는 소리가 마치 솔바람 소리 같다는 것 그리고 찻잔에 뜨는 무늬의 아름다움 등 찻자리에서의 모든 일들이 거의 다 묘사되어 있다고 논하였다. 그러나 익제는 스스로 겸손의 미덕으로 글 솜씨의 비천함과 육우 같은 재주가 없어 <다경> 같은 글을 지을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이제부터 시를 짓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다짐하고 있다.

한번은 묘련사의 순암 법사가 찻자리를 벌이고 그의 친구들을 초청하여 옛날에 쓰던 석지조를 가져와 그 내력을 설명하고 차를 한잔 씩 마신 후에 그 석지조의 내력을 다 설명하고 익제에게 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함에 익제는 <묘련사석지조기>를 지었다.

김명배는 고려의 다경을 크게 보아 1. 망형(忘形) 2. 다선삼매(茶禪三昧) 3. 역리의 음양사상 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선 망형사상의 예로서 다음과 같은 茶詩를 들고 있다.

강변을 방랑하니 저절로 형체를 잃고

-- 이규보 --

무너지듯 평상에 누으니 문득 형체를 잊고

한 낮의 베개에 바람 불어오니 잠이 절로 깨누나

-- 임 춘 --

나무의 이끼와 흰 납의 차림에 이미 형체를 잊고

-- 이숭인 --


이처럼 고려시대의 다시를 살펴 볼 때 자기의 형체를 잊고 자연에 합일되는 초월적 정신이 표현되었음을 이해하겠다. 그리고 이규보는 「장원 방연보의 화답시를 보고 운을 이어서 답하다.」 라는 茶詩에서 세계 최초로 茶禪三昧의 경지를 제창하고 있다.

초암의 다른 날 선방을 두드려

몇 권의 오묘한 책 깊은 뜻을 토론하리

늙기는 했어도 오히려 손수 샘물 뜰 수 있으니

한 사발은 곧 이것이 참선의 시작이라네


이처럼 이규보는 차를 통해서 참선의 경지에 이르는 지극한 다도정신을 느끼고 표현한 茶人이었다. 이러한 茶禪三昧의 정신이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다도정신이라 하겠다.

돌솥의 차는 비로소 끓고

풍로불은 빨갛게 피었구나

물불은 천지의 쓰임이니

곧 이 뜻은 무궁하도다


위 詩는 정몽주의 「역경일기」라는 茶詩인데 여기서 역리를 도입한 점이 눈에 띄인다. 『易經』의 설괘전에 따르면 감리의 괘는 물. 불이다. 그러므로 정몽주의 「역경읽기」에 보이는 감리는 천지를 뜻하는 건곤이라고 하겠다. 이 茶詩를 통해서 정몽주의 다도정신은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천지의 정기를 느끼는 역리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겠다.

제 3 절 조선조 시대의 다도정신

-청허(晴虛). 사무사(思無邪). 청화(淸和). 중정(中正)

다음 조선조 시대의 다도정신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조선시대의 다도정신은 西山대사의 茶詩와 한국의 茶神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의선사의 동다송, 다신전 및 그의 다시 등에서 엿볼 수 있겠다.

먼저 西山대사의 茶詩에서 그의 다도정신을 찾아보기로 하겠다.

西山대사는 중종 15년 (1520년) 3월 26일 안주에서 태어나셨다. 속성은 최씨요, 호는 淸虛 또는 休諍 자는 현응(玄應)이다. 묘향산에 오래 계셨으므로 서산대사라 하였다.

낮에는 차 한잔하고

밤이 되면 잠한슴자네

푸른산 흰 구름

더불어 無生死를 말함이여


이 시에 대해 「한국다문화학」에서는 인생의 사고 즉, 生. 老. 病. 死 따위를 초월한 서산대사의 인생관이 표현된 작품으로 보고 있다. 낮에는 차 한잔하고 밤에는 잠 한숨자네 에는 이러한 대사의 초월적 인생관이 담겨져 있고, 푸른 산 흰 구름 하는 구절은 진리의 침묵, 대자연의 淸淨心 靜虛한 法身 등을 엿볼 수 있으며 無生死를 말함이라는 無我의 경지에 이름을 말하고 있다.

스님 몇 명이 있어

내 암자 앞에 집 지었구나

새벽종에 함께 일어나고

저녁 북에 함께 잠든다.

산골물 달과 함께 길러

다 달이니 푸른 연기나고

염 불과 참선일세


여기에서도 서산대사의 고고한 정신을 알 수 있는 바, 새벽종에 일어나고 저녁북에 함께 잠든다 라는 구절은 佛의 소리, 空의 소리, 淸虛의 소리를 담고 있으며 산골물 달과 함께 길러 차 달이는 푸른 연기하는 구절에서는 淸虛한 空思想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날마다 하는 일은 염불과 참선일세 하는 대목은 차 달이는 일이 곧 선의 경지에 이른 것 즉, 차-염불-참선의 茶禪一體, 茶禪不二의 그의 淸虛한 반야의 진리를 밝히고 있다.

산골물 길어 낙엽으로 태워

차 끓여 한잔 마시네

밤에는 바위밑에 자니

얼은 나는 용을 탄 듯하네

내일 아침 천하를 굽어 살피면

온 고을이 벌집처림 펼쳐 있으리


여기에서 맑고 맑은 그 산골물을 손수 길어와 또 청정무구한 낙엽으로 스스로 태우는 그 한 점 꺼리김없는 淸虛한 마음자리, 거기에 밤으로 또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 바위 밑에 자는 無所得의 정신세계 그 기슭에서 그는 淸虛의 극치인 해탈의 세계를 걷는 것 같은 마음자리, 즉 얼을 나르는 용을 탄것 같은 그 마음자리, 이는 서산대사만이 가질 수 있는 淸虛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茶詩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튿날 대사는 천하를 굽어 살피면 어찌 온 마을이 벌집처럼 펼쳐 보이지 않겠는가. 서산대사의 다시 한편을 음미해 보자.

만국의 도성은 개미거머리 같고

고금의 호걸들 하루살이 벌레와 같네

창가의 밝은 달 청허에 벼개하니

차솥 물 끓는 소리 가지런 하지 않음이 풍류로워


제 1, 2행의 '만국의 도성은 개미거머리과 같고 고금의 호걸들 하루살이 벌레와 같네' 라는 구절은 마치 白居易의 詩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즉, 달팽이 뿔위의 싸움 같은 하잖은 일하고 비웃듯 만국의 도성, 고금의 호걸들 다 하잘 것 없는 미의 세계의 것임을 질타하고 인들이 거대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도인의 눈에서 볼 때는 마치 개미거머리 같고 천하를 호령하는 호걸들이라 뽐내지만 하루살이 벌레에 불과한 것으로 깨친 자의 눈에는 보인다는 뜻으로 이 구절에서 전미개오(轉迷開悟)의 높은 淸淨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창가 밝은 달 청허에 벼개하니' 에서는 대사의 淸修한 모습과 해탈의 경지에 이른 淸虛한 마음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다음 '차솥 물 끓이는 소리 그대로 풍류로다' 라고 이어지는 구절은 대사의 禪定의 경지에 이름을 알게해 준다.

이상과 같은 서산대사의 시를 종합해 볼 때 조선조 시대를 대표하는 禪茶詩人으로서 西山대사의 茶詩는 그의 다도정신을 잘 나타내는 동시에 조선조 시대의 다도정신을 잘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를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산대사의 다도정신은 바로 淸虛, 茶禪一如 정신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한국의 茶神이라 일컬어지는 草衣禪師의 다신전(茶神傳), 동다송 (東茶頌)과 그의 茶詩에 나타난 茶道精神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草衣禪師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조선조 시대에 한국 차의 중흥을 이룬 茶聖이라고까지 칭할 수 있는 분이다. 그의 속성은 장의순(張意恂)이며 나주 삼향 사람으로 자는 중부(仲孚)요, 법호는 초의이다. 15세때 전라남도 남평 운흥사에 입산하여 벽봉민생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19세때에는 운흥사의 본산인 海南 大興寺에서 고승 완호에게 법을 받는 한편 완호선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丁茶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茶山草堂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그후 금강산 비로봉을 비롯 경사의 여러 산을 두루 답습하는 한편 김추사(金秋史), 신관호(申觀浩), 김명희(金命喜) 등의 명사들과도 사귀어 견문을 넓히는 한편 불교와 선의 오묘(奧妙)함과 다도의 현모함을 깨우쳤다. 특히 두륜산에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지관을 닦기 40년 다생활에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 그리하여 초의선사는 순조 28년에는 지리산 화개동의 칠불암(七佛庵)에서 유명한 茶神傳을 저술하는 한편 일지암에서는 유명한 「東茶頌」을 비롯하여 「草衣集」이권과 「一枝庵遺稿」등을 저술했다. 먼저 초의선사의 「東茶頌」을 중심으로 한 그의 다도정신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선사의 저서 동다송 29송에는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비록 茶의 水體와 茶의 神氣가 온전타 하여도

오히려 중정을 잃을까 두렵네

중정을 잃지 않는다면

건전함과 신령스러움이 잘 어울이리라


여기에서 선사는 차의 정신으로서 「中正」을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동다송」에 있어 茶의 포법(泡法)에 있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泡法은 中正을 얻어야 한다. 體와 神이 서로 고르고 健과 靈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을 일컬어 茶道를 다함이라 즉, 茶道에 이르렀다 함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초의선사는 다도정신의 中和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초의선사의 다도정신은 선사의 茶詩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초의 선사가 완당(玩堂) 金正喜에게 보낸 茶詩 중에 다음 구절은 선사의 茶精神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가을 하늘은 맑고 달빛 같아

청화(淸和)로

그 맑음 비할 수 있으랴

잘 생기고 못 생김은

감히 뉘가 말하며

진. 가 또한 다 한가지 초월함이여


위의 詩에서 다도정신의 淸和, 그리고 진. 가마저 초월하는 眞空의 세계의 높은 경지를 알 수 있다. 끝으로 초의선사의 茶詩 한구절만 더 살펴 보고 선사의 다도정신을 음미해 보자.

옛성현들이 차를 좋아함은

차는 군자와 같아 그 됨됨이가 사기가 없으매라.

사람들이 차를 먹게 된 것은

멀리 설영에서 이슬맺힌 茶눈을 따옴으로 하여 비롯되었다.


위시에서 草衣禪師는 茶의 性을 사악함이 없고 眞性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草衣禪師의 茶道觀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사무사(思無邪)라 하겠다. 思無邪란 논어 위정편(爲政編) 第三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서 그 뜻의 깊은 보배로움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詩經 300여권의 詩를 한마디로 표현하다면 생각에 있어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子曰 詩三百一言以초 之曰 思無邪)」 이 한구절만 보더라도 공자사상에 있어서 사무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사무사는 바로 공자사상에 있어 仁의 근원이 되는 사상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茶道에 있어서 和靜의 근원이 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草衣禪師의 저서인 「동다송(東茶頌)」 및 그의 茶詩 등을 통해 나타난 선사의 茶精神을 종합해 볼 때 「중정(中正)」 「중화(中和)」 「사무사(思無邪)」로 집약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韓國 茶道精神을 종합 분석할 때 화정(和靜), 청허(淸虛), 중정(中正), 중화(中和)라 하겠다.

조선조 후기에 중요한 茶人으로서 茶山 丁若鏞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겠다. 다산선생님은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남기신 민족의 큰 스승이시다. 강진의 초암에서 18년간의 긴긴 유배생활을 하시면서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참으로 선비답게 의연하고 꿋꿋하게 사신 큰 인물이셨다.

그 분의 외롭고 힘든 유배생활에서 귀한 벗이 되어 주었던 것은 茶였고, 또한 茶山선생님은 차나무를 무척 사랑하시어 스스로 호를 다산(茶山)이라 지으셨다.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귀양 갔던 그는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심한 고문 끝에 사형에 처해질 위급한 상황에서 황일환의 도움으로 죽음에서 구해져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805년 정순대비의 승하로 다산의 활동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 늘 만나고 싶다고 전갈을 보낸 백련사(白蓮社)의 혜장(惠藏)을 만나러 갔다. 한나절을 보낸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지 않고 있었다. 다산선생이 돌아간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혜장이 뒤쫓아 와서 그 밤을 지새우며 학문을 논하게 되었고 이후 혜장이 40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6년동안 교유하였다. 혜장은 다산선생이 그렇게 좋아하는 차를 함께 마시고 정성껏 만든 차를 때에 따라 보내주었다. 어느 해 겨울 <걸명소(乞茗疎)>를 지어 아암 혜장(惠藏)에게 보내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을축(1805) 겨울 아암선사에게 보냄

나그네는 요즘 차만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마십니다. 글중이 묘함은 유우의 <다경삼편(茶經三編)>이요, 병든 몸은 누에인양 노동(盧仝)의 칠완(七婉)차를 들이키오. 비록 정력은 쇠퇴했으나 기모경의 말은 잊지 않았고 막힘을 풀고 흉터를 없애기 위해 이찬황이 차 마시는 버릇을 얻었소. 아침 햇살에 찻빛의 일어남은 맑은 하늘에 횐 구름이 일어남 같고, 낮잠에서 일어나 달이는 차는 밝은 달인 푸른 시내에 잔잔히 부서지는 듯하오. 차를 갈 때 일어나는 가루는 잔 구슬인지 백설인지 등잔불 아래서는 가리기 아득한데 자줏빛 어린 차순의 향기만 그윽하오. 활황와 신천은 산신께 바치는 백포의 맛과 같소. 꽃자기 홍옥의 차완은 노공에게 양보하고 돌솥의 푸른 연기의 담소함은 한비에게 가까웁네. 물 끓는 모습 게눈. 고기눈에 비기던 옛선비의 취미만을 부질없이 즐기고 용단. 봉단은 이미 바닥이 났소. 이에 채신의 병이 있어 애오라지 걸명(乞茗)의 정을 비는 바이오. 듣건데 고해를 건너는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을 뭉친 차를 몰래 보내 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고려하사 베푸는 것을 잊지 마소서.

위의 걸명소에는 차를 좋아하는 다산선생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평소 차를 즐겨 마시고 또한 차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셔서 육우의 다경과 노동의 칠완, 그리고 차 끓이는 방법, 차의 빛깔과 향기, 물 끓는 모습, 차를 가는 방법 등 차일에 관해서 소상히 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좋은 다완, 용단. 봉단 같은 고급 차도 알고 계시는 등 차에 관해서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다.

천병식의 『韓國茶詩作家論』에서는 다산 자신도 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제다 방법을 가르쳤다고 논의하고 있다. 다산선생이 강진을 떠날 때 그에게 글을 배운 많은 제자들이 중심이 된 「茶信契」를 만들도록 하여 그의 제자 24인이 다산이 떠난 뒤에도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신의를 지키도록 다음과 같은 절목을 만들었다. 즉, 계원 명단, 자산 내용과 관리인, 봄가을의 시사와 경비, 동암의 이엉잇기, 차 따는 부역, 차를 만들어 유산에게 보내는 일 등이다.

다산선생은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짓고 정원에 큰 돌을 옮겨다 놓고 물을 끌어 들어 폭포를 만들고 그 바위에다 '정석(丁石)'이라 글씨를 쓰고 이를 새겨 두었다. 처소를 귤동으로 옮긴 다산선생은 마을사람으로부터 차 한 봉지를 얻고서 그 기쁨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아곡의 햇차가 처음으로 피어날 제

마을 사람으로부터 차 한포를 얻었네

체천의 물이 얼마나 맑은지

한가로이 은병에 넣어 그 맛을 시험해 보리


낯선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에서도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많은 저서를 남기기도 한 다산을 떠 받쳐 준 힘은 차에서 나왔다고 하겠다. 선생은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을 사랑하였으니 그의 많은 시편들에는 愛民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김명배는 조선의 다정신을 自得의 정신, 비우사상, 茶禪三昧 등으로 보고있다. 아래의 茶山선생의 茶詩는 이런 自得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산골물 차가운 소리 천 떨기 대나무에 이르고

봄의 정취는 뜨락의 한 그루 매화에 있네

지극한 즐거움 이 속에 있어도 달랠곳 없어

맑게 갠 밤에 여러번 일어나 어정거리네


위시에는 언제 귀양에서 풀려날는지 기약도 없는 극한상황을 逍遙와 自得의 드높은 정신력으로 극복한 다산선생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정신적인 소요란 현실을 觀照하고 긍정하는 達觀의 경지이고, 自得이란 주어진 여건을 선택된 것으로 여기고 긍정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영선은 『다도철학』에서 이러한 자득의 정신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정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차를 끓여 마시며 근심을 덜고 빈천을 분수로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선비 다인들은 차와 더불어 검박하게 살므로써 자연과 쉽게 동화되어 인간이 자연임을 체득하는 정신적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즐겁기만 한데 무엇을 근심하리오

가난과 천함이 분수에 맞도다.


위시는 중인 계급의 학자이며 시인인 장혼이 그의 이웃의 작은 오두막 집에서의 「옥경산방다회」에 참석하여 읊은 것이다. 이처럼 선비들은 스스로 가난함과 천함을 자신의 분수로 알고 만족하며 살았던 것이다. 장흔은 <청렴한 선비의 갖춰야 할 물건 80개>를 들었는데, 그 중에는 중요한 책이름, 기를 나무 등을 포함하여 「이름난 차」 「차솥」 「바구니 다함」등이 있었다. 또 <선비가 할 일 34가지>에는 글쓰기와 거울보기, 정원을 가꾸는 여러 일들과 더불어, 「차 달이기」 「샘물 긷기」를 들어 선비의 검소한 생활에도 다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는가를 알 수 있다. 김시습의 다음 시는 차가 어떠한 부나 명리보다 높은 가치를 지녔음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솥 속의 감미로운 차가 황금을 천하게 하고

소나무 아래 띠집이 벼슬아치 붉은 관복의 술띠를 가치없게 하네


옛날 서울의 신설동과 보문동 사이에 있었던 숭신방의 동대문외계에는 우산각리가 있었다. 이 우산각의 주인공은 태조대왕부터 세종대왕까지 4대 임금을 정승으로 섬긴 유관(柳寬)인데, 우산각이란 장마철에 지붕에서 빗물이 새어 방안에서 우산을 받고 살았다는 일화가 있는 집을 말하는 것이다.

우산각에서 그의 외종손인 판서 이희검(李希儉)이 청빈의 전통을 이어 받고 살았다. 그의 청빈한 생활신조란 「옷은 몸을 가리기만 하면 족하고 밥은 창자를 채우기만 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청빈의 집인 우산각이 임진왜란 때 불이 타서 주춧돌만 남게 되었는데 이회검의 아들로서 실학의 선구자인 판서 이수광(李杙光)이 조촐하게 재건하였는데 근근히 비를 가린다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라는 집이름을 붙였다. 이수광은 비우당에서 「차마시기」(飮茶)의 육언시(六言詩)를 읊기도 하고 채다론(採茶論)을 논술하고, 사헌부의 찻때를 적어 남기기도 하였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알은 불의 상태에

거문고도 피리도 아닌 솔바람소리

노동이 잃은 주발의 마시기를 마치니

표연한 신상은 매우 편안하여라.


효종대왕의 장인인 부원군(府院君) 장유(張維)가 적은 이수광의 묘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향을 사르지 않고, 초를 밝히지 않으며, 성악(聲樂)을 듣지 않고, 무색옷을 입지 않으며, 가재에 칠이나 조각을 하지 않고, 베옷으로 소식(素食)하는 생활」 이라는 철학이 적혀 있다.

결국 조선왕조의 청빈한 관리에 대한 정신적 메카가 된 것이 비우당이라 하겠다. 이러한 비우사상에 의하여 많은 선비 다인들비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특히 淸白吏들이 차를 몹시 즐긴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청백리는 일반적으로 청렴한 관리를 말하나, 옛날에는 의정부 등의 2품이상 당상관과 사헌부와 사간원의 높은 관리들이 추천하여 선정하기도 하였다. 높은 직책을 맡은 그들은 부를 탐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으로 차를 끓여 마시는 생활속에서 허욕을 버리고 즐거운 마음을 지녔다.

비와 바람은 이미 지붕을 뚫었고

시와 글씨는 부질없이 집에 가득하네

-- (중 략) --

조용히 가는 글씨를 쓰고

한가롭게 게눈차를 끓인다네


위시는 우리나라 다인들 중에서 다사의 달인이었던 서거정(徐居正)의 다시이다. 여기에는 지붕이 뚫린 초가집에서 살며 한가로이 글씨를 쓰며 차를 끓여 마신 청빈한 서거정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서거정은 궁핍함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조용하게 책을 읽고 차를 달이는 유유자적한 달관된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정신이 과거 선비들의 맑은 청백리 정신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다선삼매의 다도정신에 대해 살펴보면 다성이라 일컬어지는 초의선사의 다시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초의선사가 읊은 것 중에서 「산천도인이 차를 사례함을 받들어 화답하여 짓다.」라 하는 다게(茶偈)에서 선사의 다경을 찾아볼 수 있겠다.

옛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즐겼나니

차는 군자처럼 성미에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라네...

알가의 참된 근본은 묘한 근원을 다하고

묘한 근원에 집착함이 없으면 바라밀이라네



※ 참고문헌

김명배. 「茶道學」. 학문사. 1993

김명배. 「茶道學論集」. 대광문화사. 1996

석용운. 「韓國茶藝」. 도서출판 초의. 1993

정상구. 「韓國茶文化學」. 세종출판사. 1997

정영선. 「다도철학」. 너럭바위. 1996

천병식. 「韓國茶詩作家論」. 국학자료원. 1996


제 4 장 한국의 다도 역사

제 1 절 古代社會의 茶

우리나라 固有의 茶는 草衣禪師의 東茶頌에 의하면 우리나라 古來로 長白山에 白山茶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長白山 중에 있는 나뭇잎을 따서 알맞게 다려 사람들이 마셨다고 한다. 曉堂 崔凡述은 이 나무를 생강나무일 것이라 하고 應松 스님은 石南科에 속하는 철쭉꽃 이라고 하였다.

우리 民族이 韓半島에 移動하여 農耕生活을 하면서 정착하여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되면서 茶 마시는 풍속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崔凡述 先生은 우리의 飮茶 풍속이 이미 三韓, 漢四郡 이전부터 시작되어 中國과 文化交流가 활발해지면서 中國으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飮茶 풍속과 中國茶의 移植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 2 절 古代 國家 時代의 茶 文化

1. 伽倻時代의 茶文化

洛東江 下流에 위치한 伽倻地方에 일찍부터 음다 풍속이 있었다. AD 49년 首露王의 王妃가 印度에서 가져왔다는 보통 茶 나뭇잎보다 큰 장군 茶가 지금도 金海 일대에 재배되고 있으며 許王后가 올 때 같이온 王后의 兄弟들이 河東七佛庵에서 佛道를 修行 할 때 茶 나무를 심었다는 설도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駕洛國記에 新羅 30代 文武王 元年(661) 王은 金官伽佛 始祖인 金首露王의 墓에 제사(祭祀)를 지내게 하였다.

王命으로 宗廟제사에 술과 단술을 빚고 떡, 밥, 茶, 과일등 여러 가지 음식이 차려 졌다.

王之十七代孫 世級干祗稟朝旨 主堂漆田 釀요醴정設以 飯茶菓庶치等尊」

위의 사실들을 볼때에 洛東江 下流에 위치한 伽倻地方은 토지가 비옥하고 중국 남쪽과 交易이 성하여 철기문화와 벼농사가 들어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발달하고 사회가 안정되었다. 이에 茶생활도 일찍 시작되어 土産茶를 재배하고 茶를 祭禮에도 사용하였으며 飮茶 풍속이 널리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高句麗 시대의 茶文化

고구려 시대의 飮茶 풍속은 부족국가시대 있어 우리 固有茶와 연결된다.

고구려가 강력한 중앙 집권적 귀족 중심의 사회로 발전됨에 따라 茶文化는 성행되었다. 고구려의 귀족 분묘에서 錢茶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死者가 生前에 茶를 좋아했거나 土神에게 茶를 바쳤다고 볼 수 있다.

그외 고구려 初期 首都 집안현(輯安縣)에서 굴뚝이 달린 이동식 화덕이 발견되어 들(野)에서 茶를 끓였거나 음식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3. 百濟時代의 茶文化

百濟의 茶文化는 記錄과 遺蹟은 없으나 일찍이 中國南朝와 활발한 文化交流로 학문, 예술, 산업 등 文化 전반이 발달되고 귀족사회가 정착되었다.

특히 4세기 후반 불교의 전래에 의하여 왕실과 귀족사회가 강화되고 화려한 불교 문화의 융성을 이룩하게 되자 寺院과 귀족층에서 飮茶 풍속이 성행되었다.

일본 東大寺要륵에 百濟의 귀화승 行基(행기)(668 - 748)가 중생을 위하여 茶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百濟의 茶가 일본에 전래되었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다.

백제는 지리적 위치나 기후로 보아 일찍이 茶나무를 재배하고 茶를 생산하였을 것이다.

4. 新羅時代의 茶文化

新羅는 地理的 위치로 사회적, 文化的으로 그 발전이 고구려와 百濟에 비하여 後進的 이었으나 6세기 초 佛敎의 公認(공인)과 더불어 왕권의 강화와 貴族사회의 안정이 확립되고 文化가 전반적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특히 眞興王(579 - 632)이후 花郞제도의 公認으로 청소년들의 인재양성과 佛敎의 護國的 信仰의 性格은 국가발전과 삼국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법흥왕 19년(532)의 金官伽倻 합병과 眞興王 23年(562) 大伽倻 정복은 新羅가 낙동강유역의 伽倻地方을 완전히 귀속시킴과 동시에 伽倻지역의 茶文化의 유입이 시작되었으며 中國唐과 통교에 의한 唐문화의 수입과 동시에 中國의 茶가 들어오는 계기가 된다.

·三國史記 권2에 茶는 善德女王(632 - 647)부터 있었다는 기록

「茶自善德女王之時有之」

·三國史記 弟 10拳 興德女王에 王3年(828) 唐나라 사신으로 갔던 金大廉(김대렴)이 돌아오는 길에 中國茶를 가져와 智異山에 심었다는

「入唐廻使 大廉特茶種子來 王使植智異山」

기록을 보면 新羅時代부터 있어온 茶가 佛敎의 공인, 중국과의 文化交流의 확대에 의하여 6세기 이후부터 9세기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왕족, 귀족, 승려, 화랑等 下流 사회에 飮茶풍속이 성행되고 佛敎寺院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獻茶行事와 팔관회 행사에서 獻茶(헌차)행사가 행하여 졌다. 또 儒敎 仙 思想의 영향을 받은 花郞(화랑)들 사이에서는 心身의 修練(수련)과 더불어 茶 생활을 즐겼다. 그 증거로 江陸의 寒松亭(한송정) 四仙의 茶 유적을 들 수 있다.

5. 統一新羅 社會 茶文化(676-935)

新羅는 삼국통일 후 전쟁이 없는 平和스러운 생활 가운데 영토의 확장 경제활동의 확대, 귀족사회의 고착등 많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불교의 문화의 융성과 화려한 귀족사회의 발전은 예술 문화전반이 발달하여 사회 전반에 茶文化가 보급된다.

八關會(팔관회)등 국가정 행사와 각종 궁정행사에도 獻茶儀式이 널리 행하여지고 귀족, 관리, 文人들의 생활과 花郞들의 修練(수련)에도 茶가 큰 역할을 하고 승려들의 修行 생활에도 茶는 필수가 되었다.

통일신라 사회에서 彌勒佛(미륵불)에 獻茶(헌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미륵불은 도탄에 빠진 民衆을 구제하는 理想佛이며 未來佛(미래불)로서 미륵이 化身하여 花郞이 되고 화랑이 나라를 구한다는 民衆的信仰으로써 신라인들은 화랑을 미륵불의 化身으로 생각하고 화랑을 삼국통일의 역군으로 양성하여 이들은 통일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미륵불과 花郞, 茶를 연관시켜 볼때에 신라人들이 미륵불에 올린 茶는 미래 이상세계를 믿고 기다리는 신라인들의 염원을 미륵불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茶人들을 보면

· 원효(元曉 617 - 686)

통일기의 학자적 승려로 韓國佛敎思想史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和靜(화정) 사상으로 茶道情神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고려 후기의 文人 李奎報의 「南行日記」 의 元曉房(원효방)의 기록에서 원효의 茶에 대한 경지를 엿볼 수 있다.

· 설총(薛聰 692 - 746)

원효의 아들이며 유학자로 神文王(신문왕)을 訓戒(훈계)한 花王戒(화왕계) 說話(설화) 내용에 「임금께서 그렇게 잘먹고 잘지내지만 茶와 술로서 정신을 맑게 하시라」

「高粱以充腹 茶酒以情神」

· 보천(寶川)과 孝名(효명)

31대 神文王의 두아들로서 강원도 오대산에서 佛道를 닦으면서 문수보살(文殊菩薩)에 게 茶를 끓여 바쳤다는 기록(三國遺事 3卷)

· 충담사(忠談師)

신라 35대 景德王(742 - 764)때 茶僧이자 詩心이 뛰어난 鄕歌(향가) 作家였다. 일찍이 화랑도에 몸을 담아 기파랑의 고매한 인격을 찬양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었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忠談師는 每年(매년) 3월3일과 9월9일에 경주 南山 三花領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茶공양을 올렸으며 경덕왕 24年에는 王에게 茶를 끓여 올리고 王의 요청으로 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忠談師가 삼짇날 (3.3)과 重陽節(중양절 9.9)에 미륵세존에게 茶를 올린 것은 불교 적 헌차(佛敎的 獻茶)의 의식(儀式)만이 아니고 신라의 下層民(하층민)인 大衆(대중)구제에 대한 염원이 담겨져 있으며 지난날 통일 전쟁에 희생된 신라 壯丁(장정)들의 넋을 위로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3 절 高麗時代의 茶文化

고려시대는 불교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茶文化의 전성기로 왕과 귀족 관리 백성들 모두가 일상 생활에서 茶를 즐겨 마셨다. 茶는 귀중한 예물로써 왕이 신하에게 茶를 下賜(하사)하였으며 宮中의 여러 行使를 준비하는 茶房(다방)이란 관청을 두었고 일반 백성들이 茶를 사서 마실 수 있는 茶店(차점)을 설치하여 茶를 마시는 풍속이 사회전반에 성행하였다.

또 특히 나라의 큰 행사인 八關會(팔관회)와 煙燈會(연등회)때 土神과 부처님께 獻茶하고 宮中의 각종 의식에도 茶禮가 베풀어졌다.

또 귀족과 文人사회에도 獻茶(헌차) 풍속이 매우 성행하여 茗席(명석 : 찻 자리)을 마련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茶를 마시며 담소하기도 하였다.

고려와 茶人은 우리 茶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강하며 無我(무아)의 경지에서 손수 차를 끓여 마시며 하나의 道의 경지에 이르렀다.

李奎報(이규보), 李仁老, 李穀, 鄭夢周, 李교 등의 茶人은 茶생활의 멋과 풍류를 읊은 茶 詩를 많이 남기고 있다.

특히 寺院의 僧房(승방)에서 茶文化가 발달하여 茶禪一致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수행시 茶로서 잠을 쫓기도 하였다.

고려사회에 茶文化가 성행되었다는 사실은 仁宗(1122 - 1146)때 사신으로 왔던 徐兢(서긍)이 지은 高麗圖經(고려도경)의 行狀圖(행장도)에 보는 바와 같이 茶가 성행되었으며 세계에 자랑하는 靑磁(청자)도 茶文化 발달의 所産(소산)이라 볼 수 있다.

高麗의 茶人들

· 義川(의천 1055 -1101)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宋(송)에 遊學(유학)하고 돌아와 불교 天台宗(천태종)을 開創 (개창)하고 續藏經(속장경)을 刊行(간행)하였다.

義天의 文集(문집)에 茶에 관한 기록이 많아 그가 뛰어나 茶人이었음을 알 수 있다.

· 李奎報(이규보 1168-1241)

고려 중기의 大文章家(대문장가)로 號(호)는 白雲居士(백운거사)로 武臣政權(무신정권) 시대에 큰뜻을 펴지 못하였지만 뛰어난 文人으로 東國李相國集(동국이상국집), 白雲小 說(백운소설), 國先生傳(국선생전)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茶生活(차생활)을 좋아하여 손 수 茶를 끓여 마시고 「茶는 禪의 시작이고」 「茶맛은 道(도)의 맛이다」 라고 하여 다도일미(茶道一味)를 주장하고 茶時 40여편을 남기고 있다.

· 李齋賢(이제현 1287 - 1367)

고려말의 文人이요 性理學者(성리학자) 忠宣王(충선왕)때 元에 유학하였으며 益제潗(익 제집), 益제亂苦(익제난고), 轢翁稗設(역옹패설)등의 문집을 남겼다.

元나라에서 火前春茶(화전춘차)를 가져와 손수 달여 마시며 茶人들에게 나누어 준 기 록도 있다.

松廣寺(송광사) 스님들로부터 茶를 선물로 받고 쓴 편지체의 長詩가 있어 이제현 茶生 活 경지를 알 수 있다.

· 李穡(이색 1328 - 1396)

고려말 文人이며 性理學者 號는 牧隱(목은)이며 관직이 성균관 大事成(대사성)에 이르 렀다. 고려가 멸망하자 節義(절의)를 지켜 朝鮮朝에 出仕(출사)하지 않았다.

牧隱도 茶를 좋아하며, 茶를 끓여 마시니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밝아 생각에 그릇됨 이 없다하여 無邪意(무사의)한 경지를 표현하였다. 松廣寺, 聞天寺 승려들이 보내준 茶 를 받고 감사의 茶詩를 남기고 있다.

제 4 절 朝鮮時代의 茶文化

조선 初期에 왕실과 조정의 儀禮(의례)에서도 茶가 사용되고 조선예법의 기준이 되는 朱子家禮(주자가례)에도 祭祠(제사), 婚禮(혼례), 祠堂(사당)의 祭禮(제례)등에 茶를 올리는 獻茶(헌다)의 법도가 있어 양반 관료 사회에 飮茶(음다) 풍속이 성행되었다.

조선중기 倭亂(왜란), 胡亂(호란)등 양란이후 경제적 사회적 혼란으로 茶생산이 감소되어 茶文化의 쇠퇴를 가져왔다.

그러나 寺院의 僧房(승방)에서 飮茶의 생활과 造茶(조다)의 기술이 유지 발전되어 왔다.

조선 말기에 茶山丁若鏞 秋史金正喜 草衣大禪師가 쇠퇴한 茶文化를 다시 일으키고 특히 草衣禪師는 海南(해남)에 一枝菴(일지암)을 중건하고 40년동안 茶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韓國茶文化를 中興(중흥)시켰다.

대체로 조선왕조가 신라와 고려시대에 비하여 茶文化가 쇠퇴한 원인은 조선초기 불교의 탄압과 寺院에 重稅(중세)를 과하여 불교가 힘을 잃은점과 일반가정의 祭禮(제례)에서도 淸酒(청주)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일상생활에 담배와 술 같은 기호품의 성행과 韓國의 좋은 生水(생수)와 식탁에서 숭늉을 많이 마시는 등 한국인의 생활습관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또 조선후기 地方官吏(지방관리) 茶貢(다공)에 대한 지나친 수탈도 茶文化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 5 절 朝鮮의 茶人들

1. 茶山 丁若鏞(정약용 1762-1836, 영조 38년-헌종 2년)

가. 경기도 양근(陽根 : 지금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출신 정조 6년 文科에 급제 정치, 경제, 地理, 經學에 능통했으며, 實學의 集大成 조선후기 최대의학자

나. 호는 三尾(삼미) 興유당 1789년 天主敎信者라 하여 海美(해미)네 유배되었다고 다시 등용되어 水原城을 설계하고 西洋式 起重機를 사용하여 수원성 축조에 기여하였다. 그후 承旨(승지), 암행어사 兵曹參議(병조참의)등 역임 1800년(40세)에 천주교 문제로 장기(경북)으로 유배

다. 1801년(순조元年) 申酉邪獄(신유사옥)에 연류되어 金南康津으로 유배되어 18년간 귀양 살이를 하다가 57세(1818)에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 살다가 1836년 75세로 별세 茶 山은 18년간 유배생활동안 牧民心書, 經世遺表, 欽欽新書등 三部作외 500여권의 저서 를 남김

라. 茶山은 귀양지에서 茶山草堂을 지어 손수물을 길어 茶를 끓였다. 그가 유배된 뒷山에 茶나무가 많고, 野生茶 나무를 키우고 유유히 뜨는 구름, 나는새, 푸른산, 떨어지는 낙 엽, 빗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의 손으로 不間水를 떠다 茶를 끓였다.

「책뿐인 茶山草堂 오직 봄꽃 만발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 비개인 뒤 글나무숲의 아름 다움이여 나는 바위터 샘물을 길어 차병을 씻네.」

마. 茶山은 44세(1805)때에 10살 아래인 大芚寺(대둔사 : 대흥사)의 兒庵(아암) 惠藏(혜장) 스님을 만나 茶生活에 심취 茶山은 兒庵에게 周易(주역)을 가르치고 茶를 얻어 마셨 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암은 40세에 요절하였다.

바. 茶山은 48세(1809)때에 24세인 草衣를 만나 이때에 草衣는 茶山이 德業이 나라안에 으 뜸가고 文質이 빛나는 스승이라 했고, 그를 만난 기쁨을 "하늘이 나를 孟子곁에 있게 했다." 라고 표현했다.

사. 茶山은 茶가 나쁜 버릇을 고친다고 하였으며 茶를 잘재배하면 中國의 馬(말)과 바꾸어 나라살핌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

아. 茶山이 1818년 유배생활에서 풀려 고향으로 귀향하자 康津(강진)의 제자 18명이 모여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茶信契(다신계)를 조직하였다.

「다신계 절목(茶信契節目)」 序文 1818년 8월 그믐날의 논

귀하다는 사람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떼지어 모여 서로 즐기다가도 흩어진 뒤에 서로 잊어버린다면 이는 금수의 짓이다. 우리들 여남은 사람은 1808년의 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이나 동리들 여남은 사람은 1808년의 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이나 동생처럼 모여서 글공부를 하였다. 이제 스승은 북녘으로 돌아가고 우리들은 별처럼 흩어져 만약에 망연히 서로를 잊고 신의의 도리로써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이 또한 방정맞지 않을 손가. 지난해 봄 우리들은 이일을 염려하여 계를 세워 돈을 모은 것이 그 시초였다.

2. 秋史 金正喜(김정희 1786-1856, 정조 10년-철종 7년)

가. 書畵家이며 文臣 호는 阮堂(완당), 秋史(추사), 茶老(다로), 勝雪學人(승설학인)학문에 는 實學派(실학파)에 속하며 서예에는 독특한 秋史體(추사체)를 대성예서(隸書)와 行 書(행서)에 새경지를 이룩, 저서에 阮堂集, 金石過眼錄등이 있다.

나. 秋史는 30세에 茶山의 아들 有山의 소개로(1815) 草衣를 만나 친교가 두터워 해마다 茶를 얻어 마셨다(金蘭之交)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갔을 때(1840 - 1848 : 55세 - 63 세) 草衣는 제주도에 찾아가 같이 지내며 茶나무도 심고 참선도 하였다. 秋史는 예술 의 茶에도 조예가 깊어 높은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다. 「참선과 茶 끓이는 일로 한해를 보냈다」는 말이나 草衣에게 써준 「茗禪」에는 「草衣가 손수 만든 茶를 보내어 왔는데 그제다(製茶) 솜씨를 칭찬하고 글로써 이를 보답한다」고 쓰여있다. 그의 茶詩 20여수가 전해지고 있다. "고요히 앉았노라면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듯하고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는 듯하네(請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3. 草衣禪師(초의선사 1786-1866, 정조 10년-고종 3년)

가. 본명은 장의순(張意恂) 15세에 출가하여 운홍사(雲興寺)에서 중이 되고 大興寺의 毯虎 (완호)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草衣라는 法名을 받았다. 24세(1809) 茶山 의 문하 들어가 3년 동안 수학하였다.

나. 39세에(1815) 폐허가 된 一枝菴(일지암)을 중건하고 그곳에서 수행과 저술에 몰두하여 조선후기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禪風(선풍)을 일으키고 명맥만 유지해오던 韓國茶 道를 中興시켰다. 茶에 관한 그의 저술로 「茶쳐神傳 「東茶頌」 있어 茶에 대한 모 든 것을 정리하였다.

다. 초의는 詩, 佛畵, 書, 茶道에 뛰어나고(四節) 서울의 많은 茶人, 학자들과 교류했는데 金正喜, 金命喜 형제, 茶山의 아들 丁有山, 洪顯周(홍현주: 정조의 부마), 홍석주, 신관 호 등이며 특히 秋史 金正喜와는 金蘭之交의 우정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4. 草衣와 秋史(金蘭之交)

가. 草衣와 阮堂이 그토록 親交하게된 요인이 무엇일까? 여러모로 異質的 요소가 많았는 데 첫째는 동갑(1786 병오생)나기요, 둘째 두사람 모두 天性이 지극히 순수했다는것 셋째는 宗敎와, 身分 계급을 초월했다는 것 넷째 藝術의 本質에 투철했다는 것 다섯 째 茶道의 眞髓를 터득했다는 것

나. 草衣가 漢陽에 오면 도봉산 청량사에 머물었는데 그 소문이 서울 장안에 퍼지면 「촌 놈의 중」을 만나려고 하는 내노라하는 名士들이 줄을 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 申獻求 (신헌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漢陽의 名士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德望높 은 수로승 때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누구나 친근할 수 있는 人間性 때문이다. 詩作, 撑畵佛事(탱화불사), 茶道가 밖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內面으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 이다. 사실 世人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면서 남들 흉내만 내어 草衣하느니라"

다. 大興寺 一枝菴을 찾아온 김정희의 生父 金魯敬과 草衣와의 대화

1) 김노경: 중년에 내가 中原(北京)에 冬至使兼謝恩使(동지사겸사은사)로 갔을 때 그곳의 (명순)을 마셔보았지만 그 맛과 香이 이곳의 우리네 것만 못한 것 같더군 왜 그 럴까?

2) 草衣: 그렇습니다 陸羽(육우)의 茶經에 이르기를 명순은 名山에서 난다 했습니다. 東茶가 좋은 것은 우리나라의 山水가 수려한 까닭입니다.

3) 김노경 : 하지만 이 茶는 유달리 맛이 좋군 왜 그럴까?

4) 草衣: 茶에 쓰는 물은 결국 茶의 체가 되는 까닭으로 茶神 아무리 뛰어나도 물이 나 쁘면 좋은 茶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토굴뒤안에서 좋은 물이 솟고 있습니다. 乳泉(유천)입니다.

5) 김노경: 과시 소酪(소락)이로고 東茶頌에는 酉堂大爺過一宿紫千山 房味乳泉曰勝소酪

6) 草衣: 다는 홀로마시는 것이 으뜸으로 칩니다 마시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후 교차하는 만감이 차차 줄어듭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은 공허(空虛)뿐입 니다. 그리고 空虛를 다시 조이면 省察(성찰)이 생깁니다. 그 성찰을 거듭하면 나를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 나를 헤치려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 용 서하는 마음은 이전에 지녔던 욕망, 집착, 손익, 타산, 선악, 고정관념을 차차 줄여주 고 드디어는 사라지게 합니다. 그것은 모두 瞑想(명상)의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래 서 다를 瞑想文化(명상문화)의 일종이라고도 하고 禪(선)의 방편이라고도 합니다.

7) 김노경: 茶禪一如 하는 뜻인가?

8) 草衣: 그렇습니다.


제 5 장 차의 모든 것

제 1 절 차의 정의

'차'라고 하는 것은 식사 후나 여가 시에 즐겨 마시는 기호음료를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차'라고 하는 것은 산다화과(山茶花科)에 속하는 상록관엽수인 차나무(camellia Sinensis (L))의 어린잎을 따서 가공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전통 차는 차나무의 순(筍)이나 어린잎을 봄철(곡우(4/20∼입하(5/6)사이))에 채취하여 산화효소를 파괴하여 발효를 방지시킨 녹차가 있으며 완전히 발효시킨 홍차(紅茶:black tea)가 있고 반쯤 발효시킨 반 발효차도 있다.

차란 말의 기원은 중국의 푸찌엔성과 광동성에서 유래 되었다. 중국에서는 중국내에서 생산된 차가 광동성(육로)과 푸찌엔성(해로)의 항구를 통해 세계 각국에 전파되므로 푸찌엔성의 발음인 'Tay'가 한국의 'Ta'발음에 영향을 주어 '차'혹은 '다'로 부르게 되었다.

각국에서 부르는 말을 보면 영국은 tea, 독일은 thee, 프랑스는 The로 중국은 cha(관동어계) 또는 Te (복건어계), 일본은 cha (복건어계)로 부르고 있다.

차를 나타내는 글자는 초두(艸)를 쓰기도 하고 어떤때는 나무목(木)변을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초두와 나무목변을 합하여 쓰는 경우도 있다. 초두로 적으면 당연히 차(茶)자가 되는데 그 글자는 개원문자음의(開元文字音義)에 나온다. 나무목변으로 적으면 도(宮)가 만들어지는데 그 글자는 본초(本草)에 나온다. 초두와 나무목변을 다 합치면 다(茶)가 되는데, 그 글자는 이아(爾雅)에 나온다. 다경에는 대부분 다(茶)나 씀바귀 도(宮)로 쓰여 있으나 본초에는 다(茶)로 적혀 있다.

차를 나타내는 이름은 차 이외에 가 또는 설, 천이라고도 썼는데 주공은 가는 쓴 차(苦茶)라고 하고, 양집극은 촉나라 서남사람들이 차를 설이라 한다 하였으며 곽흥농은 일찍 딴 것을 차(茶)라 하고 늦게 딴 것은 명(茗)또는 천이라 한다 하였다.

또 한편 차의 맛으로도 그 이름을 달리 불렀는데 '다경'의 '5'차 달이기에 그 맛이 단 것이 가요, 달지도 않고 쓴 것은 천이요, 마시매 쓰고 목구멍이 단 것이 차(茶)다. "基味 甘 也 不甘而苦 也 甘 苦咽甘茶也"라고도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이름도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차 '다(茶)'자와 차싹 '명(茗)'자만 사용한 듯하다. 차 '다(茶)'는 차싹 '명(茗)'자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비문과 와당, 시문, 토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보인다.

이는 '차'자와 '다'자가 전체 차의 대명사격으로 쓰여졌다는 증거이다. 이외에도 차를 가리키는 말로는 불경에 나오는 '알가(閼伽)'라는 것이 있고, 영어로는 '티(TEA)'와 세계각국의 공용학술어로 '데아(THEA)'가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차'라고 부르고 있는 인삼차, 율무차, 칡차, 유자차 등은 무엇인가? 이들은 차대신 곡류나 식물의 열매 혹은 뿌리 등의 다른 재료를 뜨거운 물에 우려서 먹으므로 대용차(代用茶)라 부를 수 있다. 대용 차는 차가 쇠퇴하기 시작한 조선 중엽이후 쓰이게 되었는데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탕(湯), 환(丸), 고(膏)와 같은 약물 달인 것을 '차'라고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이러한 차는 세계의 음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커피, 코코아와 함께 3대 기호음료로 1백 60여개 국가에서 널리 음용되고 있다.

제 2 절 차의 유래

인류가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오랜 역사동안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만병통치약적인 약의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 삼황(三皇 : 신농, 수인, 복희) 중의 한 사람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씨가 초목의 식용과 약용을 알아내기 위해 하루에 100가지의 풀잎, 나뭇잎을 씹어보다가 독초를 맛보고 중독이 되자 차 잎을 씹었더니 그 독이 풀어져 그때부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현대 과학으로 살펴보면 약초의 주요 독성분인 알카로이드(Alkaloids)와 차 잎 중의 폴리페놀(Poly phenols)성분이 쉽게 결합해 해독의 효과를 나타내었고 또 카페인 성분이 강심제로 작용하여 뇌를 자극해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육우 (陸羽 : 727∼803?)사 쓴 『다경』「차의 옛일」편에도 신농의 『식경』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 마시면 뭇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紳農 食經 茶茗又服 含人有悅志"고 하였으므로 신농황제때인 BC 2737년 경에는 차가 마셔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료들은 인용된 책의 성립연대나 차를 가리키는 글자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차문화에 대해 문헌상에 가장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BC 59년 전한(前漢)시대 선제(宣帝) 때에 왕포라는 선비가 만든 노예매매계약서 「동약(동約)」이다. 이 계약서에는 편료라는 남자종이 하는 일들이 적혀 있는데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한 가지가 무양에 가서 차를 사오고,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는 일(烹茶)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차 마시는 풍습이 전한 시대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수서(隋書)에 등장하는 수나라 문제의 이야기가 있다. 수나라 문제가 미련할때(581년 황제 등극) 꿈에 귀신이 그의 뇌골을 바꾸면서부터 머리가 아팠다. 문득 만난 스님이 이르기를 "산 속에서 차가 있사오니 달여 잡수시면 마땅히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제황이 이를 먹었더니 효험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차를 마시어 천하에서 차 마시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고사는 스님으로부터 차 마시기의 권유를 받은 것, 차를 약으로 마셨다는 것, 차 마시기의 풍습이 확산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독일의 브레트슈나이데르(Bletschneider)는 이 글을 차 마시기의 기원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처음부터 마시는 기호음료로서 이용된 것은 아니고, 어린 찻잎을 먹어보아 해가 없고 특별한 효능이 있으므로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다가 천지 신과 조상의 제례에 사용되면서 점차 일상의 생활 중에 마시는 기호음료로 정착되었다. 그러므로 음료 차의 유래는 농경사회의 식생활 문화와 더불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의 전파

중국에서 시작된 차는 승려들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함께 전해지거나 통상무역의 발전 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당시 수양을 하는 승려들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없애준다고 하여 차를 애용하였기 때문에 사원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가 티벳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차를 가지고 가 티벳에 음다 풍습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차가 외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기 805년에는 일본의 승려 사이조우선사가 중국에 불교를 배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에 차종자를 가지고 와서 일본 자가현(玆가顯)의 고꾸다이산(國公山) 기슭에 파종을 하 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은 1187년에서 1191년 사이에 에이자이선사가 차 종자와 더 불어 차의 제조법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가야시대부터 차종자가 전해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에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한다.

차의 전파 경로

제 3 절 차나무

학명은 Cammellia Sinensis(L)로서 린네(C.V. Linne)의 분류에 의하면 차나무과(Theaceae) 차나무속(Thea) 차나무(Sinensis)이다. 차나무, 차 꽃, 씨앗, 일창1기, 꽃과 열매, 차 순

1. 차나무의 형상

육우는 『다경』에서 차나무의 생김새를 그 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와 같으며, 꽃은 흰장미와 같고 열매는 병려곡 같으며, 줄기는 정향과 같고, 뿌리는 호도를 닳았다고 하였다. 잎은 짙푸른 긴 타원형으로 잎 둘레에 톱니가 있으며 약간 두텁고 윤기가 흐르고 질기다.

꽃은 9월에서 11월 사이에 걸쳐 흰장미나 흰 찔레꽃 같은 꽃이 피며, 동백나무 씨앗같은 열매는 꽃이 핀 이듬해인 10월∼11월 사이에 영글므로 가을에 새 꽃과 열매가 만난 후(實花相逢樹)익어 터진다. 지름은 1cm정도이며 번식 외에 기름을 짜서 쓰며, 그 찌꺼기는 비료로 쓴다. 뿌리는 세근(細根)이 적고 깊이 흙 속에 내리며 주근은 2∼4m까지 뿌리를 내리는 심근성(深根性)이어서 이식이 어렵다.

그러나 교잡은 쉬워 잡종과 변종이 많다. 우리의 선인들은 자녀들이 결혼할 때 이와 같은 성정을 지닌 차나무에서 만든 차를 다른 예물과 더불어 주고 받았다.

특히 여인들은 시집을 갈 때 반드시 차를 가지고 가서 정성스레 차를 달여 사당에 올렸다. 이는 단순히 한 잔의 차를 올리는 행위가 아니고 차나무가 지니고 있는 성정을 받들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는 것이다.

즉 차나무의 늘 푸른 잎과 같이 언제나 마음을 변함없이 가질 것이며 심근성 이어서 옮겨 심으면 곧잘 죽어버리므로 옮겨 심지 않은 차나무처럼 그 집에 뿌리를 내려 가문을 번창시키며 오래도록 지킬 것을 약조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 차 나무의 품종

차나무에는 수십 미터의 교목이 있는가 하면 30cm 밖에 안 되는 관목이 있고, 차잎의 길이도 25cm의 대엽종이 있는가 하면 3cm 정도밖에 안 되는 소엽종도 있다. 차나무 품종은 차 잎의 크기에 따라 중국 소엽종과 대엽종 및 인도 아샘종(인도대엽종) 버어마산종의 4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가. 중국소엽종(Var. bohea)

여러 개의 줄기로 된 떨기나무(multistem : 관목) 이며, 길이 4∼5센터미터의 단단하고 짙푸른 잎이 8∼12개 마주 달려 있으며 잎줄기는 6∼8쌍이다. 나무크기가 2∼3m밖에 안되고 겨울철 추위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라 품종을 개량하여 다량 생산할 수 있는 좋은 수종이다. 재배할 때는 수익성 때문에 줄기와 가지를 잘라 1m 정도로 키운다. 중국의 동남부와 한국, 일본, 타이완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녹차용으로 쓰인다.


나. 중국대엽종(VAr, macrophylla) 또는 운남대엽종

키가 5∼32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이며, 길이 13∼15㎝(엽장), 넓이 5∼6.5㎝의 타원형의 큰 잎을 가지고 있으며 잎줄기는 8∼9쌍이다. 중국의 사천성, 운남성에 분포하고 있다.


다. 인도 아샘종(Var, Assamica)

높이가 10∼20m까지 자라며 줄기가 하나인 큰키나무(single : 교목)와 여러 가지 변종이 있다. 잎이 넓어서 22∼30㎝이며, 엽질은 엷고 부드러우며, 잎색은 짙은 농녹색이고 잎줄기는 12∼16쌍이다. 인도의 아샘(Assam), 매니푸(Maipur), 카차르(Cachar) 지방에서 주로 생육된다.


라. 버마산(Shan)종

높이가 4∼10m에 달하고 잎은 비교적 넓어서 15㎝내외가 되고 엽색은 엷은 녹색이며 잎줄기는 열 쌍이다. 버마의 샨 공원이나 타이 북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차나무의 품종에 따라 각기 알맞은 차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야생종은 모두 녹차 만들기에 알맞은 품종이다. 그리고 인도종은 홍차 만들기에 알맞고, 중국종은 백차, 오룡차, 떡차 만들기에 알맞은 품종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는 중국 소엽종 계열로서 온대성 기후에 알맞고 추위에도 강한 품종으로 수입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재래종 차나무이다. 그리고 전남지방 일부단원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는 차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한 야부끼다 종 차나무로서 생산량이 많고 추위에도 비교적 잘 견딘다. 그러나 추위에도 가장 잘 견디고 동사율이 낮은 차종은 재래종이므로 우리나라의 기후나 토양에 맞는 품종개발과 보급이 필요하다.

3. 차 나무의 분포

가. 세계적 분포

차나무 재배의 북방한계는 북위 45。 에 위치한 소련의 크라스노다르에서 남위 30。 에 가까운 아프리카의 나탈과 북부 아르헨티나이다.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는 인도 스리랑카 공화국(실론섬 포함), 중국, 일본, 아프리카 여러나라, 소련의 코카서스 지방, 남아메리카 일부 지방이다.

나. 우리나라의 분포

한반도의 역사적 북방한계는 북위30。 30′∼35。 30′로써 동경 126。 1′∼128。 10′이내의 지역에서 차나무가 자랐다. 한반도에서는 같은 위도에서도 겨울의 저온, 일교차, 봄의 지나친 건조와 늦서리, 강우량 부족 등의 생육 제한조건 때문에 차나무의 북방한계는 북위 33。선 이남인 전라북도의 김제, 남원, 경상남고의 함양, 울산 이남에서 제주도까지이다.

차나무의 재배환경

1) 입지조건

개울물을 굽어보면 배수가 잘되는 산골에 해풍이 불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산에 닿 아서 안개가 되어 개울물과 함께 흐르는 산중턱의 경사지가 이상적인 재배적지이다.

2) 토 양

육우는 『다경』에서 "상품의 차는 자갈밭에서 나며 중품의 차는 사질양토에서 나며 하품의 차는 황토에서 난다"고 하였다. 가장 이상적인 토양은 겉 흙이 깊고 모래와 조 약돌이 섞인 부식토로서 배수가 잘 되면서도 보수력이 강한 곳이다. 산도는 PH5 안팎 의 약 산성이 알맞다.

3) 기 온

연평균기온이 12℃에서 17℃∼18℃사이의 기온에서 잘 자란다. 최고 온도는 32℃를 넘 어서는 안되며, 6℃의 저온에서는 차나무를 인공적으로 보호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차 나무 잎의 동해(凍害) 한계 기온은 영하 5℃∼10℃이다.

우리나라 차 재배지의 연평균 기온을 살펴보면 제주도의 서귀포는 15.5℃, 전남 보성은 13.1℃ 광주는 12.8℃이다.

4) 강우량

연평균 강수량은 1400mm∼2400mm이어야 하며, 60%이상이 생육 기간인 봄,여름에 내 리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차 재배지의 연평균 강우량을 살펴보면, 제주도의 서귀포가 1816mm, 전남의 보성이 1429mm, 광주가 1222mm이다.

5) 일조(日照)량

홍차의 경우는 충분한 일조량이 요구되지만 녹차의 경우는 일조가 강열하면 차잎의 섬 유가 발달하여 프라본(flavone : 황색색소)의 함량이 많아져 쓰고 떫은맛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해가림으로 일조량을 조절하여 차맛을 좌우하는 아미노산의 함량을 늘이는 것이 좋다. 즉, 반양반음(半養半音)인 양지바른 벼랑의 그늘진 숲속이 좋다.

6) 번식법

종자번식법과 삽목, 취목, 근삽 등의 영양번식법에 의해서 번식된다. 과거에는 종자번식 이나 나무 가지를 땅에 묻어 뿌리가 나게하는 휘묻이 방법을 사용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모수(母樹)의 형질을 그대로 간직하는 삽목(꺽꽃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삽수는 보통 2년 정도 지난 뒤 차밭에 정식으로 옮겨 심는다. 차나무 식재는 3월경에 묘목을 차밭에 옮겨 심은 뒤 보통 3∼4년 정도 지나야 차 잎의 수확이 가능하다. 차나무는 몇 백년까 지도 살 수 있지만 수명이 오래 될수록 생산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개 40년 정도 지나 면 개식작업을 하게된다.



제 4 절 차의 종류

차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색(色), 향(香), 미(味)가 달라지고 또 이름도 다르게 부른다. 찻잎을 발효시켜 만드는가 발효시키지 않고 만드는가에 따라 다르며, 또 쪄서 만드는가 볶아서 만드는가에 따라, 제조방법 및 품질에 따라서도 구별할 수 있다.

1. 발효 정도에 따른 분류

발효(醱酵)라 함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에서 찻잎 속에 들어있는 탄닌(폴리페놀) 성분이 산화효소인 폴리페놀 옥시디아제에 의해 산화되어 녹색이 누런색(데아플라빈)이나 붉은 색(데아루비킨)으로 변하면서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특한 향기와 맛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발효가 많이 된 것일수록 마른 차는 검붉은 색이 되며 차 탕은 홍색이 진하다. 발효가 적게 된 것은 차 탕이 녹황색이나 황금색이다.

가. 불발효차

찻잎을 전혀 발효시키지 않고 엽록소를 그대로 보존시켜서 만든 차로 녹차계열(엽차, 말차)이 이에 속한다.

녹차는 가마에서 볶아내는 부초차(釜炒茶)와 시루에서 쪄내는 증제차(蒸製茶)가 있는데, 부초차는 맛과 향이 좋고 증제차는 색이 곱다.

나. 부분발효차

찻잎을 햇빛이나 실내에서 시들리기와 교반을 하여 차잎의 폴리펙놀 성분을 10∼70% 정도 발효시켜서 만든 차로 중국의 푸찌엔성과 광동성, 그리고 대만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으며 독특한 꽃향기와 체중감소 효과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자스민차는 15∼20%, 포종차는 30∼40%, 오룡차는 60∼70%, 황차는 85% 발효시킨 부분 발효차이다.

다. 강발효차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켜서 만든 홍차계열이 이에 속한다. 각국에서 생산되는 홍차(black tea)는 95%이상을 발효시킨 차이다. 홍차의 제조과정은 시들리기, 비비기 발효, 건조의 순서이며 홍차의 특유한 향기는 시들리기와 발효에 의한 것이고 맛은 탄닌 성분에 의한 것이다.

라. 후발효차

녹차의 제조방법과 같이 효소를 파괴시킨 뒤 차잎을 퇴적하여 공기중에 있는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해 다시 발효가 일어나게 만든 차로 보이차, 육보차등이 이에 속한다.

마. 자비차(煮沸茶)

찻잎을 가마에 넣고 약 10∼20분간 더운물에 데친 후 멍석에 펴서 양지 바른 곳에서 말린다. 말리는 찻잎을 뒤집어서 찻잎 삶은 물을 2-3회 부으면 맛과 빛깔이 좋아진다.

발효차의 구분 (단위 : %)

2.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

가. 잎차

잎 차는 차나무의 잎을 그대로 볶거나 찌거나 발효시키기도 하여 찻잎의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고 원래대로 보전된 것을 말한다. 잎차의 종류는 부초차, 증제차, 부분발효차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잎 차는 조선시대부터 성행하던 것으로 지금은 거의 모두가 이 잎 차를 많이 애음하고 있다. 잎 차의 재료는 차나무의 잎 오직 한 가지로서 제다 방법, 차나무 산지, 제다한 사람, 제다 회사, 찻잎을 채취한 시기 등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혼합차 : 화차(花茶), 현미차

· 화차(花茶): 화차는 차잎이 꽃향기가 흡착되도록 하여 만든 차로서 자스민 차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의 자스민 차는 녹차에 자스민 꽃을 첨가하여 만들며 대만에서 는 발효시킨 포종차에 꽃을 첨가하여 만들기도 한다. 자스민차 이외에도 국화꽃이나 장미꽃 또는 난꽃 등을 첨가하여 화차를 만들기도 한다.

· 현미차: 현미를 볶아서 차와 섞어서 만든차로 맛이 구수하여 차를 시작하는 초보자들 이 마시기에 알맞다.

· 섞은 차(혼합차) : 꽃차(포종차+자스민 꽃)

현미차(녹차+현미)

나. 가루차

시루에서 쪄낸 찻잎을 그늘에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만든 차로 점다(鮎茶)하여 차유(茶乳)로 마신다.

가루차는 떡차를 가루내서 만들기도 하고 다른 하나는 잎차를 가루내서 만들기도 한다. 떡차를 가루내서 만든 가루차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루차이고 잎차를 가루내서 만든 가루차는 요즘에 일본에서 유입된 방법이다.

이 분말 차는 삼국시대부터 애음해오던 것으로 그 제조방법이 복잡하고 사용법이 까다로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들어 쇠퇴해 버렸으나 앞으로 잎차와 더불어 널리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다. 떡차

찻잎을 시루에 넣고 수증기로 익혀서 절구에 넣어 떡처럼 찧어서 틀에다 박아낸 고형차이다. 고려때에는 뇌원다(腦原茶), 유다(孺茶), 청태전(靑苔錢) 등이 떡차가 있었다. 동전모양으로 만들면 돈차(錢茶), 둥글게 만들면 단차(團茶), 인절미모양으로 만들면 병차(餠茶)가 되고, 벽돌이나 판자모양으로 만들면 전차( 茶)가 된다. 돈차는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이러한 차들은 먹을 때 가루를 내어 마시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 덩어리로 우려 마시기도 하고, 전차는 칼로 깍거나 부스러뜨려 끓여 마신다.




녹전차(綠 茶 : Green Brick Tea)

1차 가공된 녹차를 재료로 하여 2차 공정에서 증기를 통하여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압 착한 것으로 완제품은 갈색이다. 히말라야산 주변의 티베트계 민족이 녹전차(綠 茶)를 마셔 야채 대신 비타민 C를 섭취한다. 흑전차(黑 茶)는 누룩균이 발효된 보이차(잎차)가 원료이며 홍전차(紅 茶 : Black Brick Tea)는 홍차가루가 원료이고 매우 딱딱하며 소련 에서 즐긴다.

3. 찻잎 채취시기와 품질에 의한 분류

명(明)나라의 장원은 『다록(茶綠)』에서 "차를 따는 철은 그 때가 귀중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고 늦으면 신령스러움이 흩어진다"고 하였다. 차는 일찍 딸수록 전질소 함유량이 많아서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

가. 잎을 따는 시기에 따른 구분

봄차 첫물차 : 양력 4월 하순(곡우)∼5월 상순

두물차 : 양력 5월 하순∼6월 상순

여름차(세물차) : 양력 6월 하순∼7월

가을차(끝물차) : 양력 8월 하순(처서)∼9월 상순(백로)

나. 찻잎의 여리고 굳은 정도에 따른 구분

1) 세작(細作, 上省)

곡우∼입하경에 딴 차로 잎이 다 펴지지 않은 창(槍)과 기(旗)만을 따서 만든 차다. 우리나라의 곡우 5일전에 딴 것을 작설차라 하는데 이는 중국 다인들이 송나라 때부 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러온 이름으로 이는 싹의 모양이 참새의 혀 모양을 한 것에 서 연유한 것이다.


2) 중작(中雀, 보통차)

잎이 좀 더 자란 후 창(槍)과 기(旗)가 펴진 잎을 한두 장 함께 따서 만든 차로 일 명 명차(銘茶라)라고도 한다.

3) 하작(下雀, 거친 차)

중차보다 더 굳은 잎을 딴 것으로 조차(粗茶)라고도 한다.

4) 창(槍)과 기(旗)

창(槍)은 가지에서 처음에 나오는 움이며, 창기(旗)는 잎이 피기 시작된 것이다.

4. 색상에 따른 분류

중국에서는 차의 제조 공정과 제품의 색상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우롱차, 홍차, 흑차 등의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가. 백차

백차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 싹을 따서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로서, 차잎이 은색의 광택을 낸다.


향기가 맑고 맛이 산뜻하며 여름철에 열을 내려주는 작용이 강하여 한약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정화(政和), 복정(福정) 등이 주산지이다.

나. 녹차

차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서 덖어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기때문에 차의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비타민 C가 레몬의 5배∼8배나 함유되어 있고, 노화 억제나 암 예방, 식중독 방지 등 여러 가지 질병의 예방과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카테킨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기능성이 큰 차이다.

다. 황차(黃茶)

황차는 녹차와는 달리 차잎을 쌓아두는 퇴적 과정을 거쳐 습열(濕熱) 상태에서 차엽의 성분 변화가 일어나 특유의 품질을 나타내게 된다. 녹차와 우롱차의 중간에 해당되는 차로서 차엽 중의 엽록소가 파괴되어 황색을 띠고, 쓰고 떫은 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약 50∼60% 감소되므로 차의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황차(黃茶)는 차잎의 색상과 우려낸 수색, 그리고 차엽 찌꺼기의 세 가지 색이 모두 황색을 띤다.


라. 오룡차(烏龍茶)

오룡차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으로 발효정도가 20%∼65% 사이의 차를 말하며 반발효과로 불류된다.

중국 남부의 복건성(福建省)과 광동성(廣東省), 그리고 대만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중국 고유의 차로 차잎의 모양이 까마귀와 같이 검고 용처럼 구부러져 있다고 하여 이처럼 불렸다는 설이 있다.

원래 오룡차는 60% 가량으로 발효 정도가 높은 차를 일컫지만 지금은 발효가 낮은 포종차(包種茶)류를 포함해서 모두 오룡차로 불리워지고 있다.


마. 홍차

홍차

홍차는 발효정도가 85% 이상으로 떫은 맛이 강하고 등홍색의 수색을 나타내는 차이다.

인도의 다즐링(dazzeling), 중국의 기문(祁門), 스리랑카의 우바(Uva) 홍차가 세계 3대 홍차로 꼽히며, 차엽 그대로 우려 마시는 스트레이트티와 밀크를 첨가시켜 마시는 밀크티 형태가 있다.

바. 흑차(黑茶)

흑차는 차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퇴적하여 곰팡이가 번식하도록 함으로써 곰팡이에 의해 자연히 후발효가 일어나도록 만든 차이다. 차잎이 흑갈색을 나타내고 수색은 갈황색이나 갈홍색을 띤다. 처음 마실때는 곰팡이 냄새로 인해 약간 역겨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독특한 풍미와 부드러운 차맛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잎차류보다 차를 압착하여 덩어리로 만든 고형차가 주로 생산되며 저장기간이 오래될수록 고급차로 간주된다.


보이긴압차 (普溹緊壓茶)

5. 차의 이름

차의 이름을 찻잎을 따는 시기, 차의 산지, 차의 모양, 전설 표방 등에 의하여 붙여진다.

가. 찻잎을 따는 시기에 의한 차 이름

1) 작설차(雀舌茶) : 곡우(양력 4월 20일∼입하 5월 6일)사이에 채취한다.

2) 입하차(立夏茶) : 입하 때 채취(양력 5월 6일∼5월 8일)... 다신 계절목에 나옴

3) 사전차(社前茶) : 춘분 전후 술(戌)일 이전에 딴 차(3월 21일)

4) 기화차(騎火茶) : 한식(4월 5일∼6일, 동지 후 105일 禁火)때 따서 만든 차

5) 매차(每次) : 망종(6월 5일∼7일)때 만든 차......... 소동과의 詩句에 나옴

6) 추차(秋茶) : 입추(8월 8일)와 상강(10월 3일)사이에 따서 만든 차

7) 납차(臘茶) : 동지후 셋째 납일(음력12월)에 따서 만든 차

8) 유차(孺茶) : 섣달(음력 12월)에 따서 만든 차......... 이규보의 詩句에 나옴

나. 차의 산지에 따른 차 이름

1) 작설차 : 경남 하동군 화개와 전남 보성 제다에서 만든 차

2) 춘설차 : 전남 광주시 허백련 선생님의 춘설헌에서 나오는 차

3) 설록차 : 전남 강진과 제주도 태평양 다원에서 만든 차

4) 보정차 : 전남 장흥군 보림사 부근의 차

5) 반야차 : 경남 사천군 다솔사 부근에서 재배한 차

6) 학사차 : 구례 화엄사 부근에서 나오는 차(고운 최치원)

7) 반야로 : 전남 대흥사 부근에서 나오는 차

중국

·육안차(六安茶) : 안위정 육안현에서 산출된 차

·용정차(龍井茶) : 절강성 항주시의 풍화령의 남녘기슭에서 출하된 차

·무이차(武夷茶) : 복건성 승안현의 무이산에서 출하된 차

다. 기타(차의 모양 표방 등)

1) 작설차(雀舌茶) : 새의 혀 같은 찻잎 ........ 신숙주 詩句에 나옴

2) 용봉단차(龍鳳團茶) : 용봉 무의 음각 ........ 고려도경

3) 영아차(靈芽茶) : 신령스런 찻잎 ........ 이색 詩句에 나옴

4) 뇌원차(腦原茶) : 전라도 지명 ......... 고려사에 나옴

5) 죽로차(竹露茶) : 대나무 숲에 있는 차나무가 대나무의 이슬을 먹고 자라 맛이 좋다 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6) 원후차(洊 茶) : 사람이 올라가기 어려운 벼랑에 있는 찻잎을 원숭이로 하여금 따오 게 하여 만든차

제 5 절 차의 성분

차는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분이 건강증진에 좋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서와 이성을 본연으로 잡아주는 역할까지 해 주므로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으로 인간을 건강하게 해 주는 음료이다. 고대인들은 차의 성분과 효능을 과학적 실험에 의해 학리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고, 많은 다인(茶人)들의 음차 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다성(茶性)과 그 효능을 규명했다하여 차의 효능을 옛 선현(先賢)들의 문헌에 의한 신체 및 정신건강 측면의 효능과 현대 약리적 분석에 의한 효능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본다.

1. 문헌적 고찰에 의한 효능

우리나라 대표적 의서인 「동의보감」에는 차는 "숙식을 소화하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갈증을 멎게 하고 잠을 적게 하여 독을 해독시켜 준다"고 했다.

또 그 외의 문헌에는

·차는 오래 마시면 마음과 몸에 병이 생기지 않으므로 뜻과 기운에 좋다.

·차는 산천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가슴을 열며 체기를 씻어 맑고 화창한 기운을 내 게 한다.

·차를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비워지고 옹호한 기운이 생긴다.

·차는 머리를 맑게 하고 귀를 밝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밥맛과 소화를 촉진시켜주며, 술을 깨게하고 잠을 적게 하며, 갈증을 멈추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추위나 더위를 막아준다고 했다.

차는 처음엔 약용으로 마시기 시작하였지만 사람들의 지식이 발달하면서 단순한 약리적 효능에만 그치지 않고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는데도 이용하였다.

사실 한잔의 차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엔 분명히 있어 그 구실을 다하는 게 차인 듯싶다. 그리하여 일찍이 공자(孔子)도 차를 불기(不器)라고 하였다. 그것은 차의 약리적 효능보다 정신적 효능을 중시한 대목이기도 하다.

당나라 육우는 그의 『다경(茶經)』에서 "차는 성품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바르고 검소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적합하다(형이상학 : 心). 만약 열이 나고 갈증이 나거나 번민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껄끄럽거나 팔다리가 번거로워 뼈마디가 잘 펴지지 않으면 너뎃 번만 마셔도 제호나 감로처럼 효과가 있다. (형이하학 : 身) (茶之爲用 味至寒 爲飮最宜 精行儉德之人 苦熱渴疑悶 疼 目澁 四煩 百節不聊 四五 醍 甘露抗衡也)"라고 했다.

이는 차가 형이상학적인 정신과 형이하학적인 신체에 동시에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차의 오미(五味)에는 온갖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 그 맛은 시고 떫고 쓰면서 향기롭다. 차 맛을 음미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생의 시고 떫고 단 삶을 재영(再映)시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부여한다. 이러한 정신적 수양과정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당(唐)대 유정일(劉貞一)의 차선십덕(茶扇十德)이다.

① 우울한 기분을 가시게 한다.

② 졸음을 없앤다.

③ 기력을 솟게 한다.

④ 병을 제거한다.

⑤ 예절을 지키게 한다.

⑥ 경의를 표하게 한다.

⑦ 맛을 즐긴다.

⑧ 몸을 다스리게 한다.

⑨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⑩ 도리를 생활에 옮긴다.


이것은 다도의 덕목을 잘 나타낸 것으로 차는 병을 치유하는 원리도 있지만 차로써 정신을 맑게 하고 생기를 기르는 내적인(약리적) 효능과 수양의 덕을 갖추고 바른 길로 향하는 전인적인 역할을 만드는 외적인(수행적) 효능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수신을 하여 도(道)를 깨치게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도(道)의 경지에 이르러 정신의 통일과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정신에 바탕을 둔 건강이야말로 바로 진성(眞性)의 건강이며 정신적 건강이야말로 바로 다인(茶人)의 본령(本領)이다.

2. 과학적 분석에 의한 성분과 효능

차의 성분은 차나무의 품종, 재배조건, 채엽 시기, 토질, 제조방법에 따라 다소 달라진다.

한국산 다엽은 75%의 수분과 25%의 고형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식물에 비해 유리아미노산(데아닌), 카페인, 탄닌(폴리페놀)이 많으며 무기성분 중에는 망간이나 불소가 많이 들어 있어 여러 가지 약리적 효능을 나타낸다.

뜨거운 물에 우러난 차 탕의 성분함양은 다음과 같다.

* 차 탕의 화학성분 함량


표에서 볼 때 채엽 시기가 빠를수록 총 질소, 카페인, 비타민 C,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많으며 반대로 늦게 딴 찻잎일수록 탄닌 성분이 많다.

가. 성분

1) 탄닌(폴리케놀, 카데킨)

차의 가장 중요한 성분의 하나로 차의 맛, 향기 및 색에 깊이 관여하며 여러 가지 생리작용을 가지고 있다. 이 탄닌은 광합성에 의해 형성되므로 일조량에 따라 함유량이 많아 채엽시기가 늦어질수록 함량이 높아지면 90℃이상의 고온에서 용출된다. 탄닌의 맛은 온화한 떫은 맛으로 밤 속껍질 또는 덜익은 감의 떫은 맛과 같이 혀나 입 안의 점막에 부착하는 불쾌한 느낌이 없이 다른 맛과 조화를 이루어 깔끔한 풍미를 이룬다. 차의 카데친류는 화학구조상 수산기(-OH)를 많이 가지고 있어 여러 가지 물질과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중금속 제거나 항산화 작용, 발암성분의 무력화, 해독작용 등의 약리작용을 나타내게 된다.


2) Caffeine(카페인)

탄닌과 함께 차를 상징하는 중요 성분으로 상쾌한 쓴 맛을 나타내고 더운물에 거의 100% 용출되며 탄닌과는 반대로 채엽시기가 빠를수록 함량이 많고 또 차광 재배하면 증가한다.

차엽 중의 카페인은 1827년 오드리(Oudry)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카페인외에 카페인과 유사한 화학구조와 생리작용을 하는 데오브로민과 데오피린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커피에는 카페인, 코코아에는 데오브로민만 들어있다. 이들의 생리작용을 살펴보면 대외 중추신경 흥분작용은 카페인, 데이피린, 데오브로민으로 나타나며 호흡기 흥분작용, 이뇨작용, 기관지 및 혈관 확대작용은 데오피린이 가장 강하고 그 다음에 데오브로민, 카페인 순이다. 따라서 차에 함유된 카페인의 대뇌중추신경에 대한 흥분·강심·이뇨 및 혈관 확대작용 등은 카페인만 들어있는 커피를 섭취했을 때보다 그 작용이 완만하게 일어나며 지속 시간도 짧은 것이 특징이다.

녹차의 카페인 함량은 커피콩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차를 우릴 때 낮은 온도로 우리기 때문에 차엽 중의 카페인 성분이 60∼70% 정도만 우러나 한잔 당 카페인 함량은 녹차가 커피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한 잔 당 카페인 함유량을 비교할 경우 차는 대개 27mg 정도인데 비해 커피는 66mg으로 녹차 보다 월등히 많다.

또한 녹차 중에는 커피에 들어 있지 않은 카테킨과 데아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이 카페인과 결합되어 카페인이 불용성 성분으로 되거나 활성이 억제되기 때문에 커피와 같은 부작용이 없는 것도 차만이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기호 식품 한잔당 카페인 함유량

구분

함량

인스턴트 커피

캔 커 피

콜 라

쵸 콜 릿

66㎎/잔

46㎎/잔

40㎎/잔

20㎎/잔

27㎎/잔


3) 아미노산 및 질소화합물

차의 독특한 감칠맛과 향미 성분의 주체로서 차의 품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에는 25종의 아미노산이 있으며, 이 중 데아닌(단 감칠맛)이 60%정도로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데아닌 다음으로는 글루타민산(신 감칠맛)이 8.67%, 아스파라긴산(신 감칠맛)이 9.4%, 아르기닌(쓴 감칠맛)이 13.4%, 그리고 세린이 8.14%등이다. 주요 아미노산으로 채엽시기가 빠른 차일수록 아미노산 함량이 많아 여름차가 봄차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데아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작용은 카페인의 작용을 억제 즉, 카페인에 의한 중추신경의 자극을 저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아미노산은 60℃정도의 저온에서도 잘 용출된다.

4) 비타민류

차엽 중에는 여러 가지 비타민이 매우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바타민C와 토코페롤, 비타민A, B군이 다른 식물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비타민 P의 작용을 하는 루틴도 있다.

특히 비타민 C는 레몬에 비해 5∼8배나 많이 함유되어 일찍부터 괴혈병의 치료제로 차가 이용되어 왔다. 물론 발효 정도나 재배 방법에 따라 비타민 C의 함량이 다르다.

비타민B1 또한 정신건강에 중요한 성분으로 당질 대사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보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결핍되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권태로워지며 집중력이 저하된다. 또 비타민 P의 작용을 가진 루틴은 혈관벽을 강화시킨다. 비타민 E는 지용성이지만 항노화, 항불임 및 항암 작용의 기능이 있다.

5) 무기염류

차엽 중에는 칼륨, 인, 칼슘, 마그네슘, 철, 나트륨 등 여러 가지 미네랄 성분이 5∼6% 정도 함유되어 있다. 이 중 60∼70% 정도가 뜨거운 물에 용출되어 신진대사 및 차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 또 성분 중에는 구강보건성 성분인 불소가 수용성 형태로 40∼200ppm 정도 들어 있어 치아 부식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불소는 경화한 잎으로 만든 여름차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 외에도 생체에 필요한 미량 필수 원수인 셀렌(항산화 및 암 예방), 망간(효소의 활성화) 그리고 아연(피부염 방지·면역기능 저하 억제)등도 다른 식물에 비해 많은 편이다.

6) 색소

주요 색소 성분은 엽록·플라보놀·데아플라빈 등의 카데친 산화물 안토시안 등이며, 차 제품의 외관과 차 침출액의 색깔 등 품질평가의 기준이 되며 차의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

녹차의 경우는 차잎을 바로 열처리하여 산화효소를 파괴시킴으로써 엽록소가 남아 녹색을 띤다. 반면 우롱차나 홍차는 시들기나 비비기를 하는 과정에서 엽록소가 급격히 분해되어 흑색이나 갈색으로 변화되고, 또 카테킨의 산화에 의한 발효 작용으로 오렌지색과 선홍색의 성분이 생기게 된다.

또한 차광재배할 경우에는 엽록소가 증가되어 녹색이 강해지므로 옥로차의 수색이 일반 녹차보다 녹색이 진하다.

7) 탄수화물

단맛 성분이며, 글루코스·아라비노스·리보스 등이 있으며 카데친의 형당 상승 억제 작용을 도와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대부분이 불용성이기 때문에 차를 그대로 마시는 말차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음용 방법으로는 거의 섭취가 어려운 편이다. 최근에는 차엽에 함유된 다당류가 혈당치를 낮추어 주는 작용이 있어 당뇨병 환자에 유익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당뇨병 약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8) 유기산

당류의 분해 생성물로 호흡 작용에 영향을 주며 카데친류와 항산화 상승효과의 기능이 있다.

9) 향기 성분

차는 기호식품으로 즉, 맛이나 수색과 더불어 향기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차엽 중의 향기 성분은 녹차는 약 200종, 홍차의 경우에는 300종이 확인되고 있으며 알콜류가 전체의 80% 정도로 가장 많으며 기타 카보닐화합물 케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적으로는 매우 적어 0.005∼0.03%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향기 성분의 분석이 매우 어려웠으나 분석기기의 발달로 각종 차의 향기 성분이 규명되고 있다.

10) 사포닌

사포닌은 차잎중에 0.1%정도 함유되어 있으며 가루를 마실 때 나는 거품의 주요 성분으로 약간의 쓴 맛과 아린 맛을 낸다.

거품을 형성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말차를 마실 때 차선으로 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고 있다. 사포닌에는 거담 작용이나 소염 작용, 항균작용이 있다.

11) r-Aminobutylic acid(GABA)

생차잎을 알루미늄 봉투에 넣고 진공 상태에서 처리하면 고혈압 치료 성분인 r-Aminobutylic acid가 생성된다. 혈압 강하작용이 있다.

나. 차의 효능

차의 화학성분과 그 작용을 토대로 차가 나타내는 일반적인 효용을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심신의 피로 회복효과

차를 마시면 카페인의 각성 강심 이뇨작용에 의해 대뇌중추신경을 알맞게 흥분시켜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매우 효과적이다. 따라서 사고력 판단력이 증진되고 혈액의 순환과 신장의 기능을 높여 배뇨를 활발하게 하여 피로물질의 체외 배출을 촉진하므로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활동력을 증진시킨다.

2) 성인병 예방효과

현대의학의 면에서 보면 차에는 고혈압 동맥경화 암 당뇨 및 비만등의 성인병에 유효한 카데친, 비타민 C, 데아닌, 비타민 B1, 루틴, 다당류 및 무질등이 함유되어 있다. 차의 카데친 성분은 발암성 물질의 활성을 저지시키고 보통의 세포가 암 세포로 이행하는 것을 방지하여 암예방과 돌연변이 억제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저하시켜 동맥경화를 억제하여 심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루틴은 차액의 황금색을 나타내는 색소로 모세혈관의 저항성을 높이고 혈관벽의 위약성을 저지하는 작용이 있으며 비타민 C는 모세혈관 벽의 조직을 강하게 하여 그 위약성 투과성을 개선해서 출혈을 막고 혈중 콜레스테롤의 배출을 촉진하는 작용이 있다. 탄닌은 지방분해 중성지질을 감소시키는 작용이있어 체중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3) 방사능 방어효과

원자폭탄이 투하 된 히로시마에서 차 생산지로 이주하여 녹차를 많이 음용한 사람들은 생존율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상태도 양호하다는 조사 결과로 방사능 방어효과를 판명하고 있으며 동물실험에서도 방사성 Sr90의 90%는 흡착됨이 연구 결과로 밝혀지고 있다.

4) 살균, 방부, 항충치, 항바이러스 효과

차 카테친 성분은 우롱차, 홍차의 산화형 폴리페놀 성분보다 항염성 및 항균성 효과가 크며 장내세균의 생육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

5) 해독작용

카테친 성분은 유기수은, 카드뮴, 납, 구리 등과 같이 호흡기나 소화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가게 되면 배설되지 않고 축적되는 중금속, 담배, 모르핀 등의 독성물질과 쉽게 결합하여 침전물을 생성한다.

6) 변비 예방효과

차와 탄닌 성분은 긴장성을 높여 위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식욕을 촉진시키고 위 점막을 보호하며 장관에 대해서는 긴장성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신경성 변비에도 효과가 기대된다.

7) 숙취제거효과

카페인의 중추신경흥분 및 이뇨작용, 탄닌 성분에 의한 주독의 해독작용 비타민C의 상승효과에 의해 간장의 알코올 분해효소의 활성 및 배설이 촉진되어 숙취에 효과적이다.

8) 충치 예방효과

차에는 구강보건성 성분인 불소가 가용성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 차를 마시면 치아가 단단해지고 산에 대해서 저항하는 힘이 커지게 되어 치아우식이 예방된다.

9) 방취 및 탈취효과

차의 탄닌 성분 및 엽록소는 강력한 방취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입안의 냄새제거에 매우 효과적으로 텁텁한 입안이 개운해 짐을 느끼게 한다.

10) 감기 예방효과

11) 노화 방지 및 피부 미용 효과

노화는 산화되기 쉬운 불포화 지방산을 섭취했을 때 생기는 과산화지질에 의해 세포조직 중에 세포막이 파괴되므로써 일어나는데 녹차는 탄닌 성분인 카데친에 의해 과산화지질의 생성이 억제되어 노화가 방지되며 또 커피에는 없는 비타민 C가 있어 항산화력을 높여 준다.

또 녹차는 알카리성 무기질, 비타민C을 비롯한 B군을 함유한 알카리성 음료로 피부에 탄력성을 주며 멜라닌 색소의 생성을 저해하여 피부를 곱게 하여 준다.

제 6 절 차의 응용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득수준의 증가와 더불어 소비자들의 건강 및 자연물 지향적인 욕구에 따라, 인공적인 착색제나 가공제품보다는 천연의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차를 단순히 마시는 음료로서 뿐만 아니라 자연성, 건강성, 심미성등을 감미하여 여러 가지로 응용하고 있다.

차의 여러 가지 보건성분화 생리활성이 밝혀짐에 따라, 차의 응용은 마시는 기호음료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약품이나 식품, 생활용품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1. 차를 이용한 요리

가. 녹차 더치 빵

재료 : 빵반죽 강력분 1200g, 물 720g, 생이스트 36g, 이스트푸드 1.2g, 소금 21.6g, 설탕 24g, 쇼트닝 36g, 탈지분유 48g, 흰자 36g, 차잎 20g, 토핑용 반죽 멥쌀가루 300g, 중력분 60g, 생이스트 6g, 소금 6g, 물 255g, 마가린 90g, 차잎 10g,


[만들기]

1) 보올에 모든 재료를 넣어 고르게 섞어 반죽을 만들고 주물러 끈기를 내어 널빤지에 200번 정도 쳐 쇼트닝을 바른 보울에 넣어 비닐이나 랩으로 씌운 후 27℃ 정도의 온도 와 75-8-%의 습도를 유지시켜 90-120분 정도 두어 발효시킨다.

2) 토핑 반죽은 마가린 외 전 재료를 섞어준 후 용해시킨 마가린을 넣고 혼합하여 27℃정 도에서 발효시킨다.

3) 1의 빵 반죽이 2.5 - 3배정도 부풀었으면 반죽을 300g식 갈라 둥글게 빚어 비닐이나 랩을 씌워 10분 정도 상온에 둔다.

4) 반죽을 밀대로 가스를 빼면서 밀어 편 후 단단히 말아 차원형으로 만든 후 이음새를 잘 봉한다.

5) 사각 팬에 얇게 기름을 바른 후 3개 씩 이음새가 밑으로 가게하여 간격을 맞추어 놓는 다.

6) 38℃ 정도의 온도에서 25-35분간 두어 약 2.5배로 부풀면 반죽을 조금 말린 후 토핑용 반죽을 윗면에 두껍지 않게 고르게 바르고 200℃의 오븐에서 25-35분간 굽는다.

나. 녹차 돈가스

재료 : 돼지고기 안심(150g ×4개), 밀가루 1/2컵, 달걀 1개, 우유 1/4컵, 식빵 4장, 식용유 2컵, 가루차 1작은술

소스 : 돈가스 소스 1/2컵, 토마토케찹 1/2컵, 우스터소스 3큰술, 사과즙 3큰술, 맛술 2작은술, 타바스코 소스 1작은술, 물 1큰술


[만들기]

1) 돼지고기는 도톰하게 썰어 칼집을 넣는다.

2) 손질 한 돼지고기에 밀가루를 묻힌다.

3) 달걀물 (달걀 : 우유 = 1 : 1)에 가루차를 섞어 2의 돼지고기를 적신다.

4) 달걀물을 입힌 고기에 빵가루를 묻힌다.

5) 식용유의 온도가 160∼170℃ 정도일 때 튀겨낸다.

[소스 만들기]

돈가스 소스, 우스터소스, 케찹, 사과즙, 맛술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한 김 식은 뒤 타바스코소스, 꿀을 넣고 섞는다.

※빵가루대신 땅콩, 아몬드 다진 것 크래커 검은깨를 묻혀 튀겨도 좋다.

밀가루에 가루차를 섞어 튀김옷을 만들면 고운색을 얻을 수 있다.

다. 녹차 조밥


재료 : 차조 2컵, 소금 1/3작은술, 붉은콩 2큰술, 은행 1큰술, 진간장, 설탄 1작은술, 작설차쎼 2큰술

[만들기]

1) 차조는 깨끗이 씻어 조리로 잘 인 후 물에 담가 불린다.

2) 붉은 콩은 물에 불린후 설탕과 진간장을 넣고 조린다. 은행은 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 고 볶아 거즈로 닦아 껍질을 제거한다.

3) 찜통에 베 보자기를 깔고 불린 차조를 넣어 소금물에 뿌려가며 찐다.

4) 큰그릇에 작설차 잎을 담고 잘 찐 밥을 위에 담아 뚜껑을 덮어둔다.

5) 녹차조밥을 모양 틀로 원하는 모양을 만든다.

6) 붉은 콩과 은행을 빠지지 않도록 꼭꼭 눌러 박는다.

※ 차조는 돌이 많기 때문에 씻은 다음 반드시 조리로 일어서 밥을 지어야 한다.

라. 녹차 핫 케이크


재료 : 밀가루 2컵, 소금 1/4 작은술, 달걀 5개, 설탕 1컵, Baking powor 1큰술, 우유 1/2컵, 식용유 2큰술, 가루차 2작은술

[만들기]

1) 달걀 5개를 잘 섞은 후 설탕을 조금씩 넣으면서 잘 젓는다.

2) 밀가루에 베이킹 파우더와 가루차를 넣고 체에 내린다.

3) 1의 달걀, 체에 내린 밀가루, 우유와 식용유등 모든 재료를 넣고 가볍게 반죽한다.

4) 팬이 뜨거워지면 기름을 두르지 말고 반죽을 한국자씩 떠서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굽는다. 위에 구멍이 숭숭나면 뒤집는다. (전기 프라이팬일 때는 150℃에서 4分정도.)

마. 차 죽


재료 : 쌀 1/2컵, 차잎 1큰술, 참기름 1큰술, 물 4컵, 소금

[만들기]

1) 쌀을 씻은 후 물에 담가 불린다.

2) 차잎은 찬물에 우려낸 후 건더기는 건져 놓는다.

3)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쌀을 넣고 볶는다.

4) 우린 차잎과 우려낸 찻물을 부어 은근히 끓인다.

5) 쌀이 다 퍼지면 불을 끄고 먹기 전에 간을 한다.

바. 녹차 크림소스 스파게티


재료 : 스파케티 100g, 베이컨 2장, 생크림 1/4컵, 소금, 흰 후추가루, 버터 1/2큰술, 가루차 1작은술, 햄 30g, 양파 1/2개, 굵은파 10g

[만들기]

1) 스파케티 삶기 : 냄비에 물이 끓으면 소금을 1큰술 정도 넣고 스파게티를 세워 넣어 12분 정도 삶아 물기를 뺀다.

2) 소스 만들기

가) 베이컨은 0.5㎝ 너비로 썬다. 햄과 양파는 가로 세로 0.5㎝ 길이 5㎝ 썬다. 파는 흰 부분만 잘게 다진다.

나) 팬을 달구어 버터를 두르고 베이컨을 볶다가 햄, 파, 양파를 넣어 볶는다.

다) 양파가 투명해 지면 생크림을 넣고 섞어 졸여 되직해지면 불을 끄고 가루차와 소금 을 넣어 간을 한다.

라) 다른 펜에 버터를 조금 둘러 달군 후 스파게티를 볶다가 소금과 횐 후추가루로 간한 다.

마) 소스에 볶은 스파게티를 넣고 골고루 버무려 상에 낸다.

사. 횐살 생선 탕수육


재료 : 횐살 생선 1509, 소금, 횐 후추가루, 차잎 1 큰술, 튀김옷, 달걀 2개, 얼음물 1/2컵, 밀가루 3큰술, 녹말가루 3큰술

소스 : 육수 1컵, 간장 1큰술, 설탕 3

큰술, 식초 3큰술, 소금, 후추가루 녹말물 : 녹말가루 1큰술, 물 2큰술 1만들기

[만들기]

1) 횐살생선은 길이 5cm 폭 1cm로 썰어 소금, 횐 후추가루로 간을 한 후 밀가루를 묻힌다.

2) 차잎을 물에 불려 물은 차게 식혀 놓고 건더기는 건져 잘게 다진다.

3) 달걀에 차게 식힌 찻물을 붓고 밀가루와 녹말가루, 잘게 다진 차를 섞어 튀김옷을 만든 다.

4) 밑간을 해둔 생선에 튀김옷을 입혀 180℃정도의 튀김기름에 넣어 바삭하게 튀겨 낸다.

5) 냄비에 육수를 붓고 끓으면 간장, 설탕, 식초 조금, 후추가루를 넣고 끓이다가 녹말 물로 걸쭉하게 만든다.

6) 튀겨낸 생선살을 그릇에 담고 소스를 끼얹는다.

아. 차잎 김치


재료 : 우려 마신 차잎 1C, 죽순 2009,

대추 5개, 실파 5뿌리, 고추가루 2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 통깨 1작은술, 멸치 액젓 2큰술, 마른고추 5개

[만들기]

1) 차잎은 헹구어 마른행주에 싸서 물기를 제거한다.

2) 죽순은 끓는 물에 데쳐 낸 후 돌려 깎아 채 썬다.

3) 실파는 3cm 길이로 썬다

4) 대추는 씨를 발라 가늘게 채 썬다.

5) 마른 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털어 낸 후 찬물7il 불린다. 불린 후 믹서에 곱게 갈아 놓 는다 (물을 약간 넣어야 잘 갈아진다. )

6) 차잎, 실파 썬 것, 죽순, 대추를 그릇에 담고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자. 차잎 마찜

재료 : 차잎 1큰술, 마 400g, 소금 2 작은술, (다진파, 다진마늘 1큰술)

[만들기]


1) 마늘 껍질을 벗겨 강판에 곱게 갈아 소금을 조금 친다.

2) 파, 마늘, 차잎은 곱게 다져 갈아 놓은 마즙에 넣고 고루 섞어 1인분씩 그룻에 담아 중탕 으로 찐다.

※ 마는 강장 식품으로 소화불량에 좋은 식품이다.

차. 녹차 전갱이 구이와 녹차 소스


재 료

전갱히 구이 재료; 전갱이 300g, 소금 1작은술, 레몬즙 1작은술, 무 200g, 다시국물 ½컵, 소금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미림 3큰술

녹차 소스 재료 ; 가루차 1작은술, 물 ½컵, 와사비 1작은술, 녹말 1큰술

[만들기]

1) 전갱이는 배를 갈라 뼈를 발라내고 포를 떠서 4cm정도의 크기로 토막내어 소금과 레몬 즙을 뿌려 20분정도 둔다.

2) 전갱이의 물기를 마른 행주로 가볍게 닦고 밀가루를 묻힌 다음 170∼180℃의 튀김기름에 한 조각씩 튀긴다.

3) 무를 강판에 간것과 다시국물, 설탕, 소금, 미림을 냄비에 넣고 끓으면 생선을 넣어 잠깐 익힌다.

4) 녹차소스를 만든다. : 조림국물을 덜어내어 끓이다가 끓으면 찬물에 푼 녹말가루를 넣어 약간 농도를 주어 걸쭉하면 불에서 내려 가루차와 와사비를 넣고 잘 섞는다.

5) 접시에 조림국물을 담고 튀긴 생선을 얹은 다음 녹차소스를 끼얹는다.

※ 소스를 만들 때 양송이나 좋아하는 야채를 넣으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 전갱이 대신 고등어나 삼치, 민어 등 여러가지 생선을 이용하여 석쇠에 굽거나 팬에 지져도 좋다.

카. 차 두부 만두


재 료

만두피; 두부 1모, 가루차 2작은술, 소금 1작은술 고기소; 표고버섯 5개, 파 1뿌리, 돼지

고기 150g, 소금 1작은술, 생강즙 ½ 작은술, 후추가루 ¼작은술, 참기름 1큰술.

[만들기]

1) 두부를 잘 으깨어 물기를 꼭 잔 후 가루차와 소금을 넣고 잘 섞어 체에 내린다.

2) 표고버섯은 물에 불린 후 다져서 기름으로 볶아 소금간을 하여 식혀두고 파는 잘게 썬 다.

3) 돼지고기와 부추는 잘게 다지고 여기에 볶아서 간을 해놓은 표고 버섯과 파를 합쳐 재료 전체를 잘 섞어 소금, 후추, 설탕,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을 쳐서 소를 준비한다.

4) 1의 두부를 완자크기로 떼내어 송편 빚듯이 만들어 준비한 속을 넣고 달걀모양으로 빚는 다.

5) 김이 오른 찜통에 가지런히 넣어 진다.

6) 익은 만두를 접시에 담아 초간장을 따로 담아 곁들여 낸다

(초간장 : 간장 2큰술, 식초 1큰술, 잣가루 1/2작은술)

▶ 차강정

재료 : 말린 밀감껄질(채친 것), 차, 물엿, 튀긴쌀, 진 찹쌀.

만드는 방법 :


① 물엿을 끓여서 바로 쌀(튀긴 것) 에 차잎을 넣어 버무린다.

② 끓인 물엿에 쌀 튀긴것과 밀감 껍질을 버무린다. (밀감 껍질은 밀가루로 씻는다.)

③ 찹쌀은 뜨거운 모래에 일구어 내어 물엿과 차로 버무린다.

④ 10분 정도 식혀서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는다.

▶ 삼색 매작과

매작과는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매화「梅(매)」, 참새「雀(작)」 을 써서 매작과(梅雀菓)라고 하며, 매엽과(梅葉菓)라고도 부른다.

고소한 기름맛과 단맛이 나며 생강향과 계피맛이 나는 바삭바삭한 과자로서, 만들기가 쉬워 아무때나 손쉽게 할 수 있다.

재료 : 말차가루, 치자, 오미자국 약간, 밀가루500g, 식용유2∼3큰술, 계란2개(횐자만 이용), 소금, 소주약간

(시럽 : 물엿 4컵, 물 1컵(통계피 삶은물), 유자청, 생강즙)

만드는 방법 :

① 밀가루에 식용유를 넣은 다음 소주, 소금, 계란흰자를 넣고 반죽한다.

② 반죽할 때 말차가루, 치자, 오미자국을 약간씩 넣고 색반죽을 만든다.

③ 반죽을 밀대로 두께를 가능한 한 얇게 밀어 가로 2cm × 세로 5cm, 두께 2mm정도로 자른 다음, 세군데에 칼집을 넣고 가운데 칼집 사이로 한쪽 귀를 집어 넣어 뒤집는다.


④ 기름을 센불(140℃ 정도)로 해서, 튀겨 올라오면 저어주고 노릇노릇하게 튀겨 건져서 식 힌후 기름을 빼고 식혀서 시럽에 담갔다가 바로 꺼낸다.

3) 침출액

차를 우려 낸 다음 여기에 다른 식품 소재를 첨가하여 만드는 제품.

차의 추출액에 넣고 가열하여 차의 색이 배도록 한 차 두부, 차즙에 밥을 넣어서 만든 차 밥, 홍차 침출액과 과즙이나 술을 혼합시켜 만드는 티 펀치, 녹차나 우룽차 또는 흥차를 우려낸 다음 큰컵에 1/3 가량 넣고 얼음과 소주를 각각 1/3씩 첨가하여 만드는 소주 칵테일도

맛이 부드럽다.

녹차 100g에 설탕 400g을 과실주용 광구병에 넣고 술 1.8ℓ 정도를 부은 후 4∼5일 지나서 차잎을 꺼내고 마시면 스테미너 증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

4) 차종자

차 종자는 차 생산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산물의 하나로서, 과거에는 종자 번식 이외에 다른 용도로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이용 가능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중국 명대의 이시진도 『본초강목』 중에 차의 종자는 처음에는 맛이 달고 뒷맛이 쓰며, 복건성 사람들이 식용유로서 널리 이용한다고 하였고, 종자박은 옷을 빨거나 머리를 감을 때 사용한다고 기술하였다..

차 종자유를 추출하고 남은 종자박에는 다량의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으며 차의 사포닌은 천연의 표면활성제로서 뿐만 아니라 소염, 진통, 거담, 항균작용 등과 같은 약리적인 작용도 나타낸다.

이 외에도 특정 어류나 해충에 대해 살충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새우 양식장에서는 새우를 잡아먹는 고기를 없애기 위해 종자박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차 종자박의 사포닌 성분이 습윤성, 거품발생 능력, 분산성 등이 뛰어나 샴푸 제조에 널리 이용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차 사포닌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부드러워지고 광택이 나며 비듬 제거와 가려움증 등이 없어진다.

2. 건강과 미용을 위한 녹차의 응용

가. 녹차버섯

1) 만드는 방법 :

먼저 물 3.5ℓ에 백설탕과 흑설탕의 중간인 중백당 5백g을 넣고 끓인 다음, 불을 끄고 티백 5개를 넣어 3분 정도 우려낸 뒤 완전히 식힌 다음, 버섯종균을 넣고 깨끗한 찬으로 위를 덮어 따뜻하고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며 위에 피막이 형성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15일 뒤에는 낡은 버섯을 버리고, 새로 자란 버섯을 4등분하여 마르지 않도록 물 속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하면 되고, 배양액은 냉장고에 넣어 두고 하루 300㎖씩 복용하면 된다.

2) 효능 :

기미, 주근깨와 주름살 제거, 지방질 감소, 고혈압 등의 여러 질병에 매우 좋다.

나. 녹차베개

1) 만드는 방법 :

우리가 매일 마시고 난 차 찌꺼기를 말린 다음, 약 2kg 정도 모아서 여기에 메밀 껍질 800g, 천궁 100g을 혼합하여 베개 속 원료로 하여 차 베개를 만든다.

2) 효능 :

차의 풋풋한 향기에 의해 숙면을 취하는데 효과.

냄새 제거 효과도 뛰어나기 때문에 실내의 악취 제거에도 좋은 작용.

다. 녹차 목욕·세안

1) 만드는 방법 :

녹차 찌꺼기나 녹차 티백을 모아 가제 주머니에 넣고 욕조에 담가두어 찻물이 우러나게 한 뒤 사용하면 된다. 찻물은 손으로 꼭꼭 주물러 주면 더 쉽게 우러난다.

2) 효능 :

차는 피부에 대한 수렴 작용과 살균 작용 그리고 항산화 작용에 의해 피부의 혈액 순환 이 좋아지게 되고, 피부가 부드러워지며 노폐물도 잘 빠지게 된다. 몸 냄새의 제거 효 과가 강하고 냉증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도 차목욕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라. 녹차 냉찜질

1) 만드는 방법 :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든 녹차 티백이나 주머니를 2∼3분 정도 부은 부위에 댄다.

2) 효능 :

부기가 쉽게 내린다.

마. 녹차가글

감기로 목이 아프거나 목안이 간질거릴 때 찻물로 가글하면 목이 한결 부드러워 진다.

바. 녹차 에센스오일

1) 만드는 방법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없앤 빈 병에 찻잎을 담고 올리브 오일을 부은 뒤 밀봉한다. 일 주일이 지난 뒤 이것을 채에 걸르고 새 녹차 잎과 함께 병에 담아 다시 밀봉한다. 이 방법을 3∼4회 정도 반복하면 보습 효과가 뛰어난 녹차 에센스 오일이 완성된다.

2) 효능

잔주름 예방, 미백, 보습 효과가 있다.

목욕 후 입술이 트거나 발뒤꿈치가 갈라졌을 때 발라도 좋다.

사. 무 좀

1) 차 찌꺼기를 주전자에 넣고 아주 진하게 끓인다.

2) 물에 발을 담그면 가벼운 무좀은 어렵지 않게 가라앉는다.

아. 귀저기 발진

1) 가제에 녹차 졸인 물을 묻혀 엉덩이를 살 살 닦아주면 된다.

2) 엉덩이가 심하게 짓물렀을 때는 찻잎을 잘게 갈아 발라도 좋다.

자. 녹차 린스

비듬의 원인은 건성 피부, 스트레스, 변비, 지방질 많은 음식의 과다 섭취 등 다양하다. 심각한 비듬은 원인에 따른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단순한 비듬이라면 녹차만으로도 해 결할 수 있다. 녹차 속에 들어있는 탄닌 산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두피에 있는 모공을 조여주고 불순물을 제거해 비듬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차. 차가 첨가된 플라보노 껌, 치약

항산화 비누나 샴푸, 목욕용품으로서의 이용, 여드름 제거용으로서의 세안용 제품 등이 있 다.




제 6 장 행 다 법

제 1 절 차생활과 예의

茶라고 하는 것은 차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수양을 쌓는 것이다. 즉, 차는 목의 갈증을 없애줌과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의 갈등과 괴롭고 슬픈일 들을 잊게 해주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조선초의 의인(義人) 이목(李穆)이 「차가 사람으로 하여금 예(禮)를 갖추게 한다.」 고 하였듯이 차생활에 있어서 기본은 여유로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敬)과 정성 담긴 예(禮)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육우도 「다경」에서 「차는 지극히 맛이 차서 행실인 한결같고 정성되며 검소하고 덕이 있는 사람 [精行儉德之人]이 마시기에 가장 알맞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차를 다룰 때는 자연히 정성을 들이게 되고 또 자신이 처한 환경과 위치(주인, 손님, 봉차자)를 정확히 알므로써 자연인으로서의 분수를 알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됨으로 겸손해져 예의를 갖추게 된다.

사람은 예의를 지킴으로써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또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의를 간단 명확하고 정확하게 순서를 몸에 익히는 것이 다례이다.

다례는 예의를 기본으로 하므로 사람들이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될 規律를 편안하고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 다례를 할 때의 손님맞이 모습



제 2 절 절하는 법

1. 절의 의미

절이란 몸을 굽혀 공경(恭敬)을 표시하는 인사방법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켜야할 많은 예절 가운데서도 상대편에 패한 공경과 반가움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예절이다.

절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예로써 행하여지며 공경해 할 대상을 상징하는 표상에 대해서도 하고 의식행사에서도 한다.

이 율곡 선생은 절을 올려야 할 대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무릇 절하는 예(禮)는 가히 미리 정할 수는 없으나 모름지기 아버지뻘 되는 어른은 당연히 절(拜)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15세 위가 되면 당연히 절(拜)하고, 관작(官爵)의 지위가 당상관(堂上官)이며 나보다 연세가 10살 이상이면 절(拜)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사람의 지위와 덕망과 인격이 연세로만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다만 이것에 구애받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자의 높고 낮음과 존귀하고 천함과의 인격을 판단해서 예의에 위배되지 않도록 정당히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니라".

절을 올리는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신불(神佛)과 같은 신앙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례는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인 절로 시작해서 절로 끝난다. 우리들의 생활 중에 여러 가지의 절이 필요하지만 다례에서는 대개 진례(큰절), 행례(보통절). 초례(작은절)로 구분하여 한다.

2. 절하는 법

절에 대한 원형은 선조 32년(1599년)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 ∼ 1963)선생이 저술한 가례집람(家禮輯覽)에 그림까지 곁들여 설명을 해 놓았다.

가. 공손한 자세(拱手法)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잡는 것을 공수라 하는데 이는 공손한 자세를 타내며, 모든 행동의 시작의 의미이다. 공손한 자세는 어른에게는 공손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에게도 편안한가 되어야 한다.

1) 공수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잡는 것을 말한다.

2) 공수는 남자와 여자의 손 위치가 다르다.

3) 공수는 평상시(平常時)와 흉사시(凶事時)가 다르다.

4) 공수는 의식행사에 참석했을 때나 어른을 뵐 때 반드시 한다.

5) 공수는 배례(拜禮, 절)의 기본동작(基本東作)이다.

■ 평상시 남자와 여자의 공수 동작 :

① 남자의 공수는 왼손을 위로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하여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서 포갠다.

② 흉사시 에는 남녀 모두 평상시와 반대로 한다.


나. 간단한 예의 표시(揖禮法)

1) 장소관계나 기타 사정으로 절을 해야 할 대상에게 절을 할 수 없을 때에 간단하게 공 경을 나타내는 동작이다.

2) 간단한 예의 표시일 뿐 절은 아니다.

다. 절의 종류와 대상

1) 작은절(초례, 반절) : 웃어른이 아랫사람의 절에 대한 답배時에 한다.

2) 보통절(행례, 평절) : 항렬이 같은 사람, 관직의 품계가 같을 경우에 한다.

3) 큰 절(진례) : 자기가 절을 해도 답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어른에게나 의식행사에 서 한다.

4) 매우큰절(배례) : 관, 혼, 상, 제, 수연, 고희 時에 한다.

라. 절하는 횟수

1) 기본횟수

가) 남자는 양이기 때문에 최소양수인 한번을 한다.

나) 여자는 음이기 때문에 최소음수인 두번을 한다.

2) 생사의 구별

가) 산사람에게는 기본횟수만 한다

나) 죽은 사람이나, 의식행사에서는 기본횟수의 배를 한다.

3) 맞절의 요령

정중하게 맞절을 할 경우 아랫사람이 하석(下席)에서 먼저 시작해 늦게 일어나고 웃어 른이 상석(上席)에서 늦게 시작해 먼저 일어난다.

4) 답배의 요령

아랫사람이 절을 시작해 무릎을 꿇는 것을 본 다음에 시작해서 아랫사람이 일어나기 전 에 끝낸다.

5) 절하는 위치

혼인례에서의 현구고례 때를 제외하고는 공간이 허용하면 같은 방에서 상하석에 위치해 절한다.

6) 절의 재량

절의 종류와 횟수는 절을 받을 어른이 시키는 데로 변경하거나 줄일 수 있다.

마. 절하는 방법

지역과 가문에 따라 절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한국 다도 협회에서는 여러 지 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절을 종합하여 가장 아름답고 다례에 적합한 절을 하고 있다.

1) 절의 기본 5가지

㉠ 양손을 맞잡는다. (오른손이 위로 가게 해서 왼손을 가볍게 잡는다.)

㉡ 양손을 모아 배 중심에 놓고 바로 모았던 손을 풀어 동작을 취한다.

㉢ 절의 형태가 다르더라도 팔굽이 구부러지지 않게 한다.

㉣ 등, 어깨, 고개를 숙일 때 뒷고대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가 들리지 않게 안정감 있게 절을 한다.

가) 남자의 절

(1) 남자가 한복(또는 양복)을 입었을 경우의 작은절(拜禮)의 경우


(가)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발 위로 오게 한다.

(다) 두 손을 사진 위치에 왼손이 위에, 오른손이 밑에 오도록 가지런히 놓는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숙인다. (15도 정도)

(2) 남자가 평절(行禮)의 경우


(가)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발 위로 오게 한다.

(다) 두 손바닥에 닿는 자세에서 공손히 절을 한다. (30도 정도)

(3) 남자의 큰절(眞禮)의 경우


(가)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발 위로 오게 한다.

(다) 두 손바닥이 완전히 바닥에 닿도록 깊이 숙여서 정중히 절을 한다. (45도 정도)

(4) 남자의 매우 큰절(拜禮)의 경우


(가)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발 위로 오게 한다.

(다) 두 손을 큰절과 같이하나 몸자세(상체)를 가장 깊게 굽혀서 하는 절.

나) 여자의 절

(1) 한복

(가) 여자가 한복을 입었을 경우의 작은절(草隷)


① 오른쪽 무릎을 세워서 앉는다.

②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옆에 놓으며 머리를 조금 숙인다. (15도 정도)

(나) 여자가 한복을 입었을 경우의 평절(行禮)


① 오른쪽 무릎을 세워서 앉는다.

②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옆에 놓으며 머리를 좀더 깊이 숙이고 절을 한다. (30도 정도)

(다) 여자가 한복을 입었을 경우의 큰절(眞禮)


① 오른쪽 무릎을 세워서 앉는다.

②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옆에 놓으며 머리를 깊이 숙이고 정중히 절을 한다. (45 도 정도)

(라) 여자가 한복을 입었을 경우의 매우 큰절(拜禮)


① 평자세에서 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고 두 발바닥을 모으고 매우 깊게 절을 한 다. (단, 상례 때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얹고 매우 깊게 절을 한다.)

(2) 양장

(가) 여자가 한복이외의 옷을 입었을 경우의 작은절(草隷)


①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②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 발 위로 오게 한다.

③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쪽에 모으고 가볍게 머리를 숙인다. (15도 정도)

(나) 여자가 한복이외의 옷을 집었을 경우의 평절(行禮)



①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②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 발위로 오게 한다.

③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쪽에 모으고 머리를 좀더 깊숙이 숙여 절한다.

(30도 정도)

(다) 여자가 한복이외의 옷을 입었을 경우의 큰절(眞禮)

①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②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 발위로 오게 한다.

③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옆에 놓으며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정중한 절을 한 다.

(45도 정도)

(라) 여자가 한복이외의 옷을 입었을 경우의 큰절(拜禮)

① 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② 앉았을 때는 오른쪽 발이 왼쪽 발위로 오게 한다.

③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쪽에 모으고 머리를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의 깊숙한 절을 한다.

(마)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행례(평절)및 진례(큰절)의 형태 4가지

① 一膝屈而拜(일슬굴이배) : 女人의 경우 한쪽 무릎을 굽히고(꿇고) 절함.

② 兩膝皆屈而拜(양슬개굴이배) . 두 무릎을 다 꿇고 절함.

③ 二膝皆屈疊而半坐向拜(이슬개굴첩이반좌향배) : 女人의 경우 한쪽 다리를 겹 쳐서 반쯤 坐向 하여 꿇어 앉아서 하는 절.

④ 平坐開兩脚而拜(평좌개양각이배) : 平坐하면서 두 무릎을 벌려 공수(公水)하는 절.

제 3 절 차생활과 한복

우리나라 옷은 직선과 약간의 곡선이 기본이 되고 있으며 옷선 자체가 아름다우며 동양적인 윤리가 내재되어 있어 초연하고 한가로운 의복 분위기가 조성되므로 한복을 입을때는 마음과 몸가짐을 정하게 하여야 한다.

한복을 예쁘게, 개성있게 입으려면 때와 장소와 옷의 형태를 고려하여 입어야 하며 특히, 다회(茶會)에 초대받았을 때, 또는 다례를 할 경우에는 자의 직분에 맞는 옷차림을 하면 한복이 표현해 내는 아름다움과 고상한 분위기를 더욱 살릴 수 있다.

1. 한복 입는법

가. 남자 한복

1) 남자 한복 입는 순서

가) 내의나 속고의를 입는다.

나) 바지를 입는데, 앞중심에서 왼쪽으로 주름이 가도록 접어 허리 둘레를 조절한 다.

다) 버선이나 양말을 신고 대님을 친다.

라) 바지끝을 내려 정리한다.

마) 저고리를 동정니가 잘 맞게 입는다.

바) 조끼를 입는다 이때 조끼 밑으로 저고리가 빠지지 않도록 한다.

사) 두루마기를 입는다.


2) 대님 매는 법

가) 바지의 사폭 솔기가 안쪽 복사뼈에 놓이도록 해야 한다.

나) 마루폭의 솔기를 잡아 왼손으로 바지 위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바지 솔기를 잡는 다.

다) 밑 폭선에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넣고 오른쪽으로 돌려 바깥 복사뼈까지 돌린다.

라) 대님을 두 번 돌려서 한 번 맨 후 나머지 고를 맞서게 내어 고를 맨다.

마) 매듭은 안쪽 복사뼈 위에 오도록 한다.

바) 바지 끝을 내려 정리한다.


나. 여자 한복

1) 여자의 한복으로 갖추어야할 옷

가) 기본 : 저고리, 치마, 속치마, 속적삼, 속바지, 속솟곳, 버선.

나) 방한용 : 배자, 마고자, 두루마기.

2) 입는 법

가) 짧은 속바지를 입은 다음 긴 속바지를 입는다.

나) 속치마를 입는다.

다) 버선은 수눅이 마주보게 신는다.

라) 치마를 입는다. 겉자락을 왼쪽으로 여미고 뒤 중심에서 7∼10cm 정도는 포개지 게 입어야 한다. 만들 때 주름이 다 잡혀 있는 자락이 겉자락이다.

마) 속적삼을 입는다.

바) 고름은 저고리를 입고 동정니를 맞추어 고름을 맨다.

사) 진동선의 구김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3) 저고리 고름 매는 법

가) 오른쪽 고름을 왼손으로 잡고 왼쪽 고름을 오른손으로 잡은 뒤 왼손을 위로 가 게 한다.

나) 왼손으로 잡고 있는 고름을 다른 쪽 고름 밑으로 집어넣는다.

다) 위로 잡아뺀다.

라) 위로 나와 있는 고름의 안쪽에 왼손을 댄다.

마) 한 바퀴 돌려 동그란 안쪽에 왼손을 댄다.

바) 밑으로 늘어져 있는 다른쪽 고름을 오른손으로 집어들고 다른쪽 고름의 동그라 미 속으로 밀어넣어 왼손에 쥐어준다.

사) 왼손으로 쥐어진 고름을 잡아 당겨 적당한 크기의 고름을 만든 다음 고름의 모 양을 바로 잡는다.

아) 고름 맨 끝을 잘 정리한다음 끝자락 두 개를 가지런히 밑으로 늘어뜨린다.


2. 한복 개는 법

평상시에 자주 입지 않는 한복을 구겨진다고 옷걸이에 오래 걸어두면 색깍이 바래고 거추자으러 우며, 옷모양도 변형되기 쉬우니 잘 개어서 장롱에 보관하였다가 입을 때에 손질해 입어야 옷의 수명이 길어진다.

장롱에 넣어 두는 옷은 구김이 덜 가도록 큼직큼직하게 개어야 한다.

가. 남자 한복

1) 바지: 두 가랑이의 밑 위선을 꺾어 포개고, 밑 아래의 반과 밑 위의 반을 마주 접어 중앙으로 포갠다.

2) 저고리: 곱게 펴놓고 양소매를 진동에서 접어 포갠 다음, 고름 2짝을 나란히 병풍 접기로 접어서 아랫길을 ⅔쯤 소매 위로 깃이 접히지 않도록 접어 올린다.

3) 조끼: 등의 중심선을 접어 4겹이 되도록 개킨다.

4) 두루마기: 저고리와 같이 펼쳐 놓고 고름을 2짝 가지런히 하여 옆으로 놓는다. 진 동선을 접어 두 소매를 마주 포개 놓고, 위에서 전체 길이의 ⅓선을 양손으로 쥐고 접어 3층이 되게 하여 소매 접은 것이 제일 위에 오도록 개어 놓는다.

5) 대님·허리띠 : 따로따로 캐어서 바지 갈피나 조끼주머니에 넣어 둔다.


나. 여자한복

1) 치마: 폭을 4겹으로 접고 길이를 반 접어 둔다. 많은 옷을 눌러 넣으면 모양이 변 할 우려가 있으니, 되도록 많이 눌리지 않게 한다.

2) 저고리 : 펼쳐놓고 고름을 2짝 가지런히 하여 깃위에 옆으로 포개고, 양쪽 소매를 길 쪽으로 진동선을 꺾어 접는다.


3. 한복 입을 때 유의점

가. 우리의 옷은 상복을 제외하고는 상·하를 같은 색으로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 하를 같은 색으로 하는 것이 예복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나. 다례복에 어울리는 화장은 피부색을 약간 밝게 표현하고 전체적으로 은은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좋다.

다. 장신구는 다례의 분위기에 맞는 단순한 것을 달도록 한다.

제 4 절 설송다례칠칙

행다법이란 차를 마실 때 행하는 차 다루는 법과 관계되는 제반 다사법 (茶事法) 및 이에 수반되는 예의범절과 그 분위기까지를 포함한 것을 말함이다.

이 행다법은 크게 나누어 불교식 행다법과 유교식 행다법으로 나눌 수 있고, 또 그 내용의 질에 따라 실용다법(實用茶法) 및 생활다례(生活茶禮), 의식다례(儀式茶禮)로 나눌 수 있으며, 의식다례는 이를 또, 두 가지로 나누어 기본의식단례와 구상의식다례(具象衣食茶禮)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또 추모헌다례, 접빈다례, 경축 다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설송다례법은 다음의 다례칠칙(茶禮七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1. 다도정신존중(茶道精神尊重)

행다법에 있어 차행주로 솥뚜껑 중심부를 제일 먼저 누르는데 이는 다경(茶經) 四의 기(器)의 복( ) 부분의 이수중야(以守中也)의 중화(中和) 또는 중용(中庸)의 육우의 다도정신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뇌이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의 행다법이다. 그리고 나서, 차 행주로 차 솥을 정성 들여 4번 닦는 것은 초의선사의 동다송 제 29송에 나타나는 초의의 다도정신인 신(채)과 체(렬)가 하나가 되며 또 건(建)과 영(靈)이 하나가 되는 즉, 상화(相和)하는 초의의 다도정신을 먼저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게 아로새기는 정신을 상징하는 행다법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말차(沫茶)의 행다법에 있어 주인이 탕관의 탕수를 차 사발에 부어 [차선으로 세 번 두드리는데, 이것 역시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이를 정상구 박사는 [녹수삼음지의(水三音之義)]라고 한다. 그 뜻은 물과 더불어 다음의 삼음(三音)을 그른다는 뜻이다. 즉, 그 일음(一音)은 육근청정지의(六根淸淨之義)로서 우리들의 육근(六根)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體), 생각(意) 등 여섯 가지를 맑게 하라고 기원하는 뜻이며, 이음(二音)은 수화불산지의(水火不散之義)로서 물과 불이 흩어지지 않고 가장 알맞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며, 제삼음(第三音)은 풍화소진지의(風火掃塵之意)로서 바람과 불은 추악한 모든 것을 깨끗이 없애버리라는 뜻이다.

2. 전통존중(傳統尊重) ....온고지신(溫故知新)

설송다례법에서 존중하는 것은 전통다례정신의 존중이다. 하여, 예를들면 이 다례법은 육우의 다경에 나타나는 다법, 초의선사의 동다송, 다신전에서 나타나는 초의의 다법, 고리고 백장회해(白丈懷海)의 백장청규(百丈淸規) 그리고 그 후의 선원청규(禪院淸規) 또, 예컨데 고려사연등의조(高麗史燃燈儀條), 고려사팔관의조(高麗史八關儀條), 국조옥례의안(國租玉禮儀晏),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주자가례(朱子家禮) 그리고, 범음집다례(梵音集茶禮), 구감서(鑑書), 불교의식집(佛敎衣食集) 등의 문헌을 중심으로 하여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다.

3. 예절존중(禮節尊重)

설송행다법은 예절로부터 시작하여 예절로 끝나는 다례라 할 정도로 예절을 존중한다. 때문에, 본 다례법에 있어서는 크게 4가지 절차는 법부터 시작하여 습득하며 행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4가지 절하는 법은 ① 초례(草禮) - 작은 절 ② 행례(行禮) - 평절 ③ 진례(眞禮) - 큰절 ④ 배례(拜禮) - 매우 큰절, 4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절하는 법은 남녀에 따라 다소 다르다. 이와같은 절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행다법은 남을 공경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을 기르는 마음자리를 예로서 시작한다는 행다법이 설송다례법이다.

4. 과학존중(科學尊重)

설송다례법은 과학존중의 다례법이다. 행다를 함에 있어 다도정신을 존중하고 아무리 전통을 존중하고 예절을 소중히 여기더라도 현대과학을 존중하는 다법이 아니면 다의 효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때문에, 설송행다법에 있어서는 과학을 존중한다. 예를 들면, ① 차의 분량은 1인분이 2g 정도가 알맞으며 3인분의 경우에는 5g, 또는 5.5g 정도가 알맞은 분량이라든가 또, 그 투다법(投茶法)에 있어서는 여름에는 상투법(上投法) 봄, 가을에는 중투법(中投法), 겨울에는 하투법(下投法)을 사용한다. 이는 과학적일 뿐 아니라 이미 초의선사(草意禪師)등 우리 조상들이 써왔던 투다법이기도 했다. ② 차를 넣고 차가 우러날 때까지의 소요되는 과학적인 시간은 1분 40초 ∼ 2분이 가장 알맞으며 ③ 차의 알맞은 물의 온도는 차의 등급에 따라 다소 다르다.

최상품은 60도 상품은 70도 중품은 75도 하품은 85도간 과학적인 온도라 하겠다. 단, 중국차는 다소 그 온도를 높여야 한다. ④ 차따는 날씨, 그리고 차저장법 등을 습득하여 과학을 존중하는 제다법(製茶法), 투다법(投茶法), 체차법(체茶法) 그리고 변차법(辯茶法), 장차법(藏茶法), 화후법(火候法), 포법(泡法) 등등도 과학적으로 숙달되어야 한다.

5. 법도존중(法度尊重)

설송다례법에 있어 이상의 것 외에 존중해야될 법도는 ① 편의주의(便宜主義)에 의거해야 하며 ② 자연스럽게 해야하며 ③ 질서를 차림 해야하는 법도를 존중하는 다법이다.

6. 청결존중(淸潔尊重)

청결존중사상은 다도 정신과도 상관되는 소중한 다례법의 하나이다. 제일 먼저 청결하게 해야할 것은 자기 마음자리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몸가짐 그리고, 장소, 다구, 청수통 그 분위기까지 청결하게 해야한다.

7. 조화미존중(調和美尊重)

다례는 인간의 정신과 몸과 다의 도구가 하나가 되는 소중한 행위이다. 때문에, 먼저 행다인의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로부터 시작하여 차, 물, 다구, 손님, 분위기까지가 조화를 이룩하는 종합 예술적 행위라야만 한다.

제 5 절 보리공 화랑다례

이 다례는 花郞世紀(菩利槓篇 : 花郞徒와 花郞別傳) 海東高僧法典二(圓光法師)를 참고 자료로 하여 정상구 박사가 작품화한 것이다.

花郞茶禮 山腹信仰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花郞들이 山川을 周遊하며 活然之氣를 기루었을 뿐 아니라, 圓光法師의 花郞五戒 精神을 연마하는 동시에 나아가 彌勒神仰과 더불어 布施思想을 실천하는 우리민족의 숭고한 고유정신의 정수라는 것을 花郞들의 茶禮行事와 더불어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구성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花郞들이 新羅統一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감안하는 동시에 어진 재상과 충성된 臣下, 그리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졸들이 花郞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作品은 圓光法師의 아우이며 후세에 성인으로까지 추앙 받았던 菩利花浪이 自己 財産을 花郞들에게 나누어 준 布施思想을 중시하여 이를 核으로 하여 花郞思想을 綜合的으로 表現한 作品이다. (임금 섬기기를 忠으로써 다하고, 어버이 섬기기를 孝로써 다하고, 친구 사귀기를 信義로써 다하며, 戰爭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고, 生命있는 것은 죽이되 가려서 한다는 花郞五戒의 깃발과 忠談의 詞腦歌=讚耆婆郞歌와 花郞舞등이 함께 어울러진다.) 또 安軸과 利穀의 시를 창으로 불러 선가의 다풍을 더욱더 격조높게 하였다.

제 6 절 사신다례

(1) 장 소 - 행사대회장 본부 운동장

(2) 참고문헌 - 삼국지위지동위전, 성호사설등의 제천의식

(3) 참가인원 - 팽주, 봉차자, 헌향자, 헌화자, 한다자, 무용수등

(4) 해설자가 등장하여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한다.

사신 다례는 천신(天神), 토속신(土俗神), 조상신(祖上神),에 대한 제례의식 중 동, 서, 남, 북 四神 즉 地(西), 水(北), 火(南), 風(東)에 대한 헌차의례(獻茶義례)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영적 교감으로 천지만물의 화합과 번영을 위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안녕을 기구하는 다례이다. 사신다례의 기윈은 우리민족이 본격적인 농경생할로 들어간 후 고대사회로부터 행하여진 추수감사제인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동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十月절祭, 8월에 행해진 추석절, 그리고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에는 어떤 행사의 첫머리에 사신다례를 행함으로써 이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四神에게 행사를 보다 빛나게, 무사히 마치기를 동참하여 기원하며 여기에 신을 찬탄하는 찬탄무(讚歎舞)를 곁들여 다례의 예술성을 승화시키게 한다. 이 다례의식은 「삼국지위지동위전」「성호사설」 등에 나오는 제천의례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



제 7 절 대관전연 궁중다례

고려에서 궁중행사 중에 연등회, 팔관회의식과 더불어 큰 의식 중에 하나는 대관전에서 왕이 군신과 더불어 연회하는 대관전연의식이다.

이 의식은 왕이 명절때나 태후책봉 또는 태자책봉후에 신하들의 하례를 받고 또 신하들이 올리는 차와 술을 받고 그후 차와 술을 태자,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의식으로서 왕이 왕자 및 신하들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누리는 행사이다.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해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게 되며 왕위를 더욱 굳건히 하는 다짐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 이 행사를 대관전연 궁중다례의식으로 표현하여 그 시대의 궁중풍습과 다례법도 등을 음미함으로 하여 溫故知新하는 전통을 되살리며 여기에 萬壽舞등을 곁들여 다례의 예술성을 승화시키게 한다.

이 다례의식은 고려사 68, 지권 22, 예10대관전 군신 연회의식조를 중심으로 하여 정상구 박사가 다례작품화 한 것이다.

< 행다 순서 >

① 주악을 하면 태지, 공후백 제신, 추밀, 문무관들은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② 면편하고 향로에 향을 올린다.

③ 궁중음악이 흐르면 왕이 입장하여 왕좌에 앉으면 대신들이 재배한다.

④ 집례관이 왕으로부터 차올릴 것을 윤허를 받으면 근시관이 차를 올리고 집례관은 국궁 하여 차를 태자에게 전한다.

⑤ 태자와 상공을 왕좌의 동남에 나아가 태자는 잔을 받들고 상공을 注子를 받들어 茶를 붓는다

⑥ 왕이 진을 들면 음악이 시작되고 차 마시기를 마치면 음악은 끝난다.

⑦ 태자가 빈잔을 왕으로부터 받으면 전중감과 근시관이 잔과 주자를 이어 받고 물러난 다.

⑧ 찬자의 괄로 모두 재배한다

⑨ 왕이 차를 하사하면 모두 재배하고 집례관의 찬음으로 모두 차를 마신다.

이때 풍악이 울리며 무용이 시작된다.

⑩ 풍악소리와 더불어 萬壽舞가 시작된다.

⑪ 만수무가 끝나고 나면 자리를 정돈하고 모두 인사한다



제 8 절 일속암 선비다례

일속암 선비 다례는 「草衣」「一粟庵歌」「草衣神師 외 金正喜」등의 서적등을 근거로하여 정상구 박사가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조의 석학이요, 유명한 묵객이며 또 茶人이신 원당 김정희(金正喜)가 귀향실이에서 풀려난 직후, 초의선사와 유명한 명기 옥화(玉花)와 더불어 강진(康津) 도암(道岩)에 있는 백적산(白炏山) 일속산방(一粟山房)의 황치원(黃梔園)을 찾아가 여기에서 대자연의 품에 안겨 차를 마시며 詩를 짓는 등 竹林七賢이 부럽지 않는 생활의 한토막을 엮어 선비들의 고고하고 풍류적인 茶 생활을 엿보고저 이 선비茶禮를 만든 것이다.

茶禮의 예술성을 가미하기 위하여 초의선사가 기록한 일속암가(一粟庵歌)한 구절을 창한후 이어 천하 명기 玉花가 귀향살이에서 돌아온 김정희의 살풀이를 위한 살풀이 춤을 춘다. 다음에는 완당의 화두를 시작으로 황치원이 이어 받고 또 草衣가 이어받고 玉花가 이어 받는 詩를 짓는 풍류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선비의 상징적인 춤인 학춤을 추어 이조 선비들의 고고함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제 9 절 가회규수다례

가회(佳會)란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멋진 모임이란 뜻이다. 이는 「초의선집」에 추사를 포함한 다섯사람이 학과 대나무와 향기로운 난초가 있는 별장에서 글을 짓고 휘호를 쓴 茶會를 佳會라고 지칭한데서 연유되었다.

가회규수다례는 조선시대 茶와 풍류를 즐기는 규수들이 모여서 詩와 書畵를 논하고 서로의 정감을 나누는 다례이다.

< 행다 순서 >

① 시녀가 정성들여 다화를 꽂아놓고 방문록과 먹, 벼루 등을 가져와 먹을 갈아 놓는다.

② 주인이 손님을 맞이한다. 주인과 손님은 서로 절한 후 손님이 방문하는 차례대로 방 명록에 기명한 후 정한 자리에 좌정한다.

③ 주인은 차상보를 벗긴 다음 이를 접어서 오른쪽 정위치에 놓는다. 차행 주로 차솥을 닦아 솥뚜껑 받침 위에 놓아둔다.

④ 표주박으로 탕수를 떠서 물식힘 사발에 부은후 물식힘 사발의 탕수를 다관에 붓고 찻 잔마다 옮겨가며 따른다. 두 번 정도 돌려 가신다.

⑤ 주인은 다시 차솥의 탕수를 물식힘 사발에 떠놓고 적당한 온도로 식히며 찻잔을 3∼4 회 정도 돌려가며 깨끗이 닦아 놓는다.

⑥ 물식힘 사발의 탕수가 적당히 식었을 때 주인은 다관에 차를 넣고물 부어 차를 우려 찻잔마다 옮겨가며 나누어 따른다.

⑦ 봉차자는 찻잔을 받아서 차쟁반에 올려서 손님 앞에 나아가 초례한 후 손님에 다식, 수저, 물수건 과 함께 차를 올린다.

⑧ 손님과 봉차자는 行禮를 하고 손님은 차를 마시고 다식을 먹는다.

⑨ 차를 마신 손님은 四佳 서거정의 전다(煎茶) 시를 읊는다.

⑩ 다른 손님이 난을 쳐서 보여준다. 봉차자는 빈 찻잔을 들고 행례한후 제자리로 돌아 간다.



제 10 절 설송의식다례

설송의식다례는 차를 즐기는 사람을 초청하여 차실이나 혹은 누각에서 예의를 갖추어 다담을 나누면서 차생활의 맛을 즐기고 차의 풍미를 감상하기도 하는 다례이다.

이 다례는 규범단도와 같이 구도적(求道的)인 성격의 다례보다는 가벼운 것이나 실용다례보다는 정중한 다례이다.

< 행다 순서 >

① 표주박으로 탕수를 떠서 물식힘 사발엔 붓고 사발의 탕수를 다관에 붓는다.

② 주인은 다관의 탕수를 찻잔마다 옳겨가며 따루어서 두 번 정도 돌려가시어 물버림 사 발에 버린다.

③ 주인은 다시 차솥의 탕수를 물식힘 사발에 떠놓고 적당한 온도로 식힌다.

④ 주인은 차행주를 왼손에 펴고 찻잔을 올린 후 오른손으로 3∼4회 정도 돌려가며 깨끗 이 닦아 놓는다.

⑤ 주인은 다관뚜껑을 열어 뚜껑받침 위에 올려둔다.

⑥ 물식힘 사발의 탕수가 적당히 식었을 때 주인은 차통을 열어 차를 다관에 넣고 물을 부어 차를 우려 낸다.

⑦ 차가 알맞게 우러나면 다관을 들어 찾잔마다 옮겨가며 나누어 따른다.

⑧ 봉차자가 차반의 차보를 벗겨 접어서 공손하게 주인에게 넘겨준후 찻잔을 받아 차반에 올려서 손님 앞에 나아가 초례한 후 손님상에 차와 다식을 올린다.

⑨ 손님과 봉차자는 행례를 한 후 봉차자가 물러나 않으면 손님은 차를 마시고 다식을 먹 는다.

⑩ 봉차자는 빈찻잔을 거두어 차반에 담고 행례한 후 제자리로 돌아간다.

제 11 절 성년의식다례

옛날에는 여자 15세, 남자 20세에 이르면 그들에게 어른의 복식을 입히고 남자에게는 관(冠, 모자)를 씌우고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아주는 성년례의식이 있었다. 이 성년례(관·계례)는그들이 성년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예 [責成人之?]로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관례와 계례의 참 뜻은 머리모양을 바꾸는 외형적인데에 있지 않고 어른으로서의 책무(責務)를 일깨우는데 있다.

그러므로 생활방식이 바뀐 현대라 하더라도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우는 의식은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성년례를 만 19세가 되는 해의 생일날이나 성년의 날 (5월 셋째 월요일)에 행한다.

< 행다 순서>

① 계례자 모두 예복(한복위에 당의를 입음)을 입고 번이 들어오는 대문을 향하여 선다.

② 번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뜰 아래서 부모님이 맞이해서 안으로 들게 한다.

③ 번과 부모님은 상견례를 한다.

④ 계례자는 빈께 절하고 (2배) 하고 빈은 답배(1배) 한다.

⑤ 시자가 계례자의 머리를 빗긴 후 빈은 계례자에게 비녀를 꽂아 준다.

⑥ 빈이 시가 축문을 읽은 후 계례자는 4배한다.

⑦ 팽주가 차를 달여 시자에게 준면 시자는 빈께 올려 계례자에게 하사케 하는 차 마시는 의례(초례)를 한다.

⑧ 초례 축문후 계례자 차를 마시고 4배한다.

⑨ 빈이 계례자에게 字를 내리면 계례자는 감사의 절(4배)를 한다.

⑩ 계례자는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년으로서의 책무(責務)를 다할 것을 맹세하며 절(2배)한다.

⑪ 빈과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제 성년이 된 계례자에게 성인으로서의 예우로써 답배 한다.



제 12 절 실용다례(중, 고, 대학생, 일반)

실용다례는 중, 고, 대학생들이 다례를 통해 심신을 수련하며 차 마시는행위와 더불어 禮를 익힐 수 있는 다례이다.

일반인들은 3∼4인 이상의 손님, 또는 그 이상의 손님이 모였을 때, 행하는 다례인데 이는 어떤 격식이나 번거로운 절차를 필요치 않으므로 찻자리의 아취는 적으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례를 할 수 있다.

< 행다 순서 >

① 주인과 봉차자 손님은 정위치에 서서 조용히 앉으며 예(행례)를 올린 후 편안한 자세 를 가진다.

② 주인은 찻상보를 접어서 오른쪽 정위치에 놓은 후 준비된 백탕을 물식 힘 사발에 따루 어 다관에 옳겨 따른다.

③ 다관의 탕수를 찻잔마다 나누어 따루어 가셔낸다.

④ 적당한 온도로 식힌 탕구를 다관에 붓고 차를 넣는다. (상투법)

⑤ 잘 달여진 차를 물식힘사발에 따른 후 찻잔마다 옮겨 따른다.

⑥ 먼저 왼쪽 봉차자가 찻상보를 접어 주인에게 전하면 주인은 찻상보를 오른쪽 정위치에 놓는다. 다음 오른쪽 봉차자도 그렇게 한다.

⑦ 주인은 왼쪽 봉차자에게 찻잔을 건네고, 오른쪽 봉차자에게도 찻잔을 전한다.

⑧ 봉차자는 차반을 들고 조용히 일어서서 손님에게 나아가 가벼운 초례를 한다.

⑨ 봉차자는 찻잔은 손님의 왼쪽, 다식은 손님의 오른쪽에 놓고 정중한예(行禮)를 드린후 다음 손님에게도 그렇게한 후 손님옆에 나란히 앉는다.

⑩ 손님이 차를 마신후 다식을 먹으면 차와 다식을 먹은후 봉차자는 손님앞에 나아가 찻 잔과 다식접시를 걷어들인 후 행례를 한다.

⑪ 봉차자는 정위치로 돌아와서 찻잔을 주인에게 전하면 주인은 찻상보를 먼저 오른쪽 봉 차자에게 다음 왼쪽 봉차자에게 건네준 후 주인도 같이 찻상보를 나린히 덮는다.

⑫ 조용히 일어서서 정중한 예(行禮)를 올린 후 오른쪽 손님이 먼저, 다음 왼쪽 손님, 봉 차자, 주인, 봉차자 순으로 물러난다.



제 13 절 어린이 다례(초등학교)

어린이 다례는 다례의 기본이 되는 다례로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다례를 익히는 과정에서 화합과 일치감을 맛보며 서로를 공경하고 예의롭게 되도록하는 다례이다.

< 행다 순서 >

① 물식힘사발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② 차통의 차를 다관에 넣는다.

③ 물식힘사발의 물을 다관에 붓고 차가 우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차우리는 시간 1분 3 0∼40초)

④ 재탕 삼탕인 경우에는 약 40초∼1분 정도가 적당하다.

⑤ 다관의 물을 찻잔에 따른다.

⑥ 주인은 찻잔의 차를 봉차자에게 준다.

⑦ 봉차자가 가져다준 차를 손님이 받아서 차의 색을 보고 향기를 맡은후 천천히 마신다. ⑧ 봉차자가 거두어 온 찻잔을 주인은 정리한다.

⑨ 차를 마신후 주인과 손님은 감사의 인사를 한다. (行禮)



제 14 절 유아다례(유치원)

유아들이 다례를 통하여 집중력과 예절을 익혀 원우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어른을 공경하고 물건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게 하여 올바른 인성교육의 지름이 되게 하는 다례이다

< 행다 순서 >

① 보온병의 물을 물식힘 사발에 붓는다.

② 다관을 따뜻하게 데우고, 또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물식힘 사발의 물을 다관에 따른다.

③ 다관의 물을 찻잔에 따른다.

④ 차통의 차를 다관에 넣는다. (1人分 : 2g, 2人分 : 3g, 3人分 : 5g)

⑤ 물식힘 사발의 물을 다관에 붓고 차가 우러나도록 기다린다. (1分 30∼40초)

⑥ 차가 알맞게 우러나면 정성들여 따른다



제 15 절 헌공다례

헌공다례는 聖人이나 돌아가신 어떤 분의 위업을 기리거나 그 정신을 본받고자 생일이나 기일(忌日)에 차를 올리는 의례이다.

현충사에서는 오랫동안 충무공 탄신 헌다례제가 거행되어 왔으며, 남해 산청의 덕천서원에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위업을 기리어 남명제다례(南冥祭茶禮) 매년 거행되고 있다.

한국 다도 협회에서는 매년 부산시 안락동 충렬사에서 햇차 헌공다례를 하고 있으며 불국사, 범어사, 금어암 등에서도 부처님께 茶를 올리고 있다.

1. 충렬사 헌공다례 순서

가. 사당 앞에서 합장하고 절을 한다.

나. 세사람의 헌화자가 정성스럽게 꽃을 올린다.

다. 향을 피어 하늘신과 팽의신에게 고한다.

라. 팽주는 사당에 올릴 차를 다린다.

마. 봉차자는 차반을 높이 받들고 제단으로 향한다.

바. 사당안의 봉차자에게 차를 건네준다.

사. 사당안의 봉차자는 제주에게 차를 건네준다.

아. 제주는 위패에 앞에 차를 올린다.

자. 합장하고 절을 한다.


2. 부처님 前 헌공다례

가. 香·花·燈·燭 茶果를 올리는데 향로는 향을 태워야 하므로 고통을 참고 견디는 극 기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콜을 부처님전에 올리고 3拜한다.

나. 불상이나 불단주변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서 부처님께서 즐거운 마음이 생기도록 꽃을 올린후 3拜한다.

다. 낮에는 촛불이나 등불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등·촉 은 생략하고 茶를정 성껏 다려 올린다.

라. 법당아래에 부처님을 마주하지 않는 곳에 찻자리를 마련하다.

마. 팽주가 정성껏 차를 다리기 시작한다.

찻잔은 의식용기로 많이 쓰이는 高杯가 적당하다.

바. 먼저 차상보를 접어 오른쪽 정위치에 둔다.

표주박으로 차솥의 탕수를 떠서 물식힘 사발에 붓고 다관, 찻잔 순으로 청결하게 가셔 낸다.

아. 물식힘사발에 다시 탕수를 부은후 탕수가 적당히 식기를 기다리며 찻잔을 닦아 놓는 다.

사. 다관에 햇차를 넣은 후 적당히 식은 탕수를 붓고 정성껏 다려낸다.

아. 高杯에 부은후 봉차자에게 건네면 봉차자가 눈높이로 정중히 받들고 불전에 이르러면 제관(주지스님)이 받아 부처님전에 찻잔을 을 올린후 세 번 합장배례 한다.

자. 행사를 마친후 불단의 차와 음식은 봉차자의 도움으로 대중에게 고루 나누어 드린다. 이것을 다담공양이라 한다.



제 16 절 선비다례

선비다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서 그들이 갖춘 학문을 토로하고 詩, 書畵를 교류하며, 고고한 선비정신과 茶의 정감을 나타내는 다례이다.

< 행다 순서 >

① 주인, 봉차자, 손님이 제자리에 앉으면 주인은 차상보를 벗겨 접어서 오른쪽 정위치에 놓는다.

② 차 행주로 차솥뚜껑 중심부를 정성모아 누른 후 체(體), 신(神), 건 (建), 영(靈) 順으로 정성들여 닦는다.

③ 표주박으로 탕수를 떠서 다관에 붓고 다관뚜껑을 닫은후 다관의 탕수를 찻사발의 가장 자리를 두르듯이 부어 처음 부은 위치에 와서 멈춘다.

④ 찻사발을 왼쪽으로 천천히 돌려서 가셔낸 후 물버림 사발에 버린후 표주박으로 다시 탕수를 떠서 찻사발에 붓는다.

⑤ 차선으로 찻사발을 가볍게 3번(약, 강, 약) 두드린 후 앞으로 굴려서 찻사발의 중창에 세우고 왼쪽, 앞쪽, 오른쪽 반대쪽으로 하여 사방으로 씻은 다음 차선의 물을 떨구고 정위치에 놓는다.

⑥ 찻사발의 탕수를 물버림 사발에 버리고 행주를 찻사발에 걸쳐놀고 찻사발을 왼쪽으로 돌려가며 3, 4회 가볍게 닦은 후 찻산발의 안쪽다 小字 형태로 닦는다.

⑦ 다관에 탕순를 부은후 차통의 차를 차숟가락으로 적당량 떠서 찻사발에 넣고, 다관의 탕수를 찻사발의 가장자리를 두르듯이 부어 차가 아래로 모이도록 하여 차를 일군다.

⑧ 차선의 차물을 떨군 후 차선을 왼쪽손으로 바르게 세워서 차선의 정위치에 놓는다.




제 7 장 한국의 다구

제 1 절 우리 토기 도자기의 역사

도자기는 6000여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만들어진 우리 문화 유산의 하나로서 각시대 사람들의 삶과 꿈, 아름다움을 담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도자기에는 한국인의 특질이 솔직하고 꾸밈없이 나타나 있어 주목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토기·자기라고 불렀던 그릇들은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의 질그릇,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질그릇, 삼국시대의 고문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형의 질그릇 들이며 또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분청자와 백자가 있다.

먼저 우리 그릇의 기원이 되며 인류와 더불어 같이한 토기, 도자기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여 보자. 토기의 시초는 선사시대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용구를 갖기 위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토기는 흙으로 빚어 유약(잿물)을 바르지 않고 700℃에서 1000℃까지의 온도로 구워 만든다.

흙(태토)은 철분이 함유된 사토 점토를 가지고 만들었으며 굽는 방법은 처음에는 가마 없이 평평한 땅위에서 만들다가 차츰 발전하여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굽게 되었다.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양도 많아지지만 그룻의 종류도 많아 접시 단지(항아리)잔, 시루, 고배, 이형토기(인형, 동물형 토우, 집, 벼루, 방울잔, 가배 등) 등이 눈에 띈다. 모양은 물레를 사용하여 이 시대의 그릇은 세련되고 솜씨가 매우 우수하였음을 보이고 정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고구려 토기는 점점 소성온도가 높아져 1000"C이상의 고화도로 구워 졌으며 태토는 극히 치밀하여 느낌으로 볼 때 우직하고 소박한 맛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고구려 토기를 많이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백제토기는 모습으로 볼 때 연질성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이 많으며 화도는 1000℃이상 높여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그 종류로는 원저장 경호, 편저장 경호, 기대(받침대) 떡시루, 고배, 벼루 등이 있고, 문양은 연꽃무늬, 승석무늬, 입체줄무늬, 기하학적무늬 등이 눈에 띈다. 극소수이지만는 유약(잿물)이 발려진 그릇도 있다.

신라토기는 경상도 지방에서 김해식토기가 잘 발전하여 만들어진 회청색 경질 토기를 주로하고 1000℃이상 고온에서 소성되었으며 등요를 이용하였다. 태토는 풍질이 좋은 점토를 사용하였고 색조는 갈색이 가장 많고 회색계 통도 다수 있으며 연질성과 경질성 두 가지 모두 볼 수 있다. 그 종류(형태)는 다양하여 토우장식장경호, 무개(뚜껑없는)고배, 유개고배, 파수부잔, 토기주전자, 기대(받침), 단경호, 장경호, 대호(큰<토기 토우 장식 장깅호> 항아리), 이형토기[기마형토기 배 수레(차) 가형토기(집) 토우(인물상, 통물상이 있음) 토제증잔] 등 많은 형태의 토기가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태토는 거의 같으나 형태면에서 달라진다. 토기의 전부가 굽이 달리고 이형토기가 줄어들고 실용적인 그릇으로 변화하고 불교의 영향으로 골호를 많이 만들었다 유약이 자연스럽게 발라진 토기가 눈에 자주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삼채고배는 연유(연단과석영+잿물)를 발라 만들었으며 당나라의 삼채와는 색조가 다르다. 화려하지 않고 전체적으로는 황색을 띄고 일부 녹색이 보인 이러한 토기가 장차 도자기에 튼 영향을 주게된다.

도자기는 도기, 석기, 자기의 합성어로 되었으며 이것은 굽는 온도에 따라서 구분된다. 도기는 1270℃ 이상에서 소성되고 자기는 1300℃ 이상에서 성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들의 구분은 전문가라도 잘 구분하기 어려워 도자기라고 명칭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 수천년에 걸쳐 구워오던 토기가 유약을 발견하게 되어 도자기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음을 볼 수 있다. 우선 태토가 점토에서 자질태토(백토)와 잘 수비된 고령토, 이차점토 등으로 바뀌어 졌으며 기초유약(잿물)과 장석계의 고급유약을 사용하게 되었다. 화도는 1300℃까지 구워 자기의 성질을 완벽하게 갖추게 된다.

청자란 푸른색의 자기를 말하는 것으로 몸체를 이루는 회색의 태토 위에 씌워진 푸른색의 유리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청자의 유약에는 실리카 (SiO2)와 알루미나(A1203)가 주로 포함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칼률·칼슘·나트륨 등의 성분이 미량 포함되어 반짝이는 유리질의 성분을 이루고 있고 그 안에 푸른색의 빛깔을 내는 산화철(Fe2O3)미량 포함되어 있다.

청자는 보통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는 가마의 분위기 속에서 구워지는 경우를 산화염이라 하며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가마의 분위기 속에서 가마 안의 나무가 탈 때 나무가 산소를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도자기의 몸체인 태토나 유약 속에 있는 산소를 빼앗아가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제2산화철(Fe2O3)의 산소를 빼앗겨 원래의 제1산화철(FeO)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러한 가마의 분위기를 환원염이라고 한다.

이러한 환원염으로 구워질 때 유약 속에 포함된 미량의 철분이 작용해서 푸른색을 띄게 된다. 즉 유리질의 성분과 색깔을 내는 철분의 미묘한 조화 그리고 그것이 태토의 바탕 위에서 마치 비취옥과 같은 푸른색을 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철분은 유약에 3%정도가 포함되어 있을 때 가장 비취색에 가까운 청자색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만일 철분이 5%정도이며 암흑색을 띄게 되고 8∼9%가 되면 흑갈색을 띄게 되어 유약 속에 포함된 철분의 미묘한 변화가 청자의 색깔을 가름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제1기 순청자시대(1050 - 1150)

순수한 청자색을 지녔으며 이것은 유약과 태토와의 결집력에서 생겨난 비색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나무재로 유약을 만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제조된 청자가 그 당시 중국에서 천하제일인 월주 찻잔을 낳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자의 시초는 10세기말이라고도 하고 11세기초라고도 한다. 그것은 더 연구 조사가 필요하며 비색청자는 그 색깔이 은은하고 아름답고 고운 빛을 띄우고 있으며 지금도 그 색조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양은 당초문, 보상화문, 연판문(연꽃문), 초화문 그 이외에도 동물로 조각한 것도 있고 과일모양으로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기법은 음각과 양각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 시대의 작품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인종(1123∼1146)의 장능에서 출토된 국보 94호 청자소문과형병과 청자유개합청자연적이 있고 청자연판문대접, 청자과형병, 청자무문유개합, 청자유기사발, 청자음각국확문합, 청자접시 등 다양하다

2. 제2기 상강청자시대(1150 - l250)

상감기법은 도가기를 성형하여 그것을 약간 마르게 한 다음 문양을 음각하고 그 음각한 부분에 다른 태토를 메꾸어 다른색의 문양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다. 색깔은 흑상감, 백상감 두가지가 있다. 흑상감은 음각부분에 산화철을 메워 넣고 백상감인 경우에는 백토를 메꾸어 넣는다. 이 상감법은 아마도 다른 예술품 목기나 금속기의 상감법을 응용하던 것을 인용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문양으로는 운학문, 보상화문, 국화문, 당초문, 석류문, 양유문, 문자문, 극소수이지만 화금청자가 있다.

대표적인 상감청자는 상감청자보상화문사발, 이화여대 소장품인 상감청자 죽문병, 상감청자무란문매병, 상감청자 '상약국' 명유개합, 상감청자운학문합, 상감청자 '기사' 명대접, 상감청자국화문대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3. 제3기 쇠퇴기(1250 - 1400)

이 시대는 국론이 어지럽고 전국이 몽고의 침입에 의하여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던 시대이다. 따라서 모든 문화면에서도 침체하게 마련이었으며 고려뿐 아니라 중국에도 송에서 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 분야가 쇠퇴하고 있었다. 청자의 기술이 퇴보하면서 청자의 전통 소성방법인 환원염이 산화염으로 바꾸어지고 그 색깔이 누런 황색을 띄우게 되며, 그 면은 거칠고 그릇은 투박하여지고 문양도 섬세함에서 기계적으로 도안한 상감문양이 많아지게 되었다.

후일 이러한 과정이 조선조의 대표적 작품인 분청사기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상감기법을 사용한 인화문 기법을 많이 써왔고 표면은 거칠어졌으며 기계적 감각을 느끼게 하여준다. 청자사발, 청자대접, 청자접시, 청자매병 등 다수가 있다. 이들 이외에도 진사를 입힌 청자가 있고 연리문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색깔을 띄운 것도 있으며 철화문을 도식없이 간결하고 순수하게 처리한 청자철화문병 같은 것이 많이 있다. 절대년대 를 측정할 수 있는 청자는 청자 '경인' 명당초 문병 제 18대 의종때 문공유의 묘에서 출토된 칭자상감보상화당초문사발, 제 19대 명종의 지능에서 출토된 청자음각연꽃문사발, 청자상감국화문사발 등 다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청자의 뒤를 이어온 분청사기와 이조백자로나누어 보기로 한다. 분청사기는 태토는 청자 것보다 약간의 철분이 더 함유되고 유약은 여러 종류의 나무재를 사용하고 나무재와 장석의 비율을 4 : 6으로 하였고 유약에는 거의 철분이 없고 소성은 청자와 마찬가지로 주로 환원염을 이용하였다. 또 백토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백토를 태워 그것을 물에 녹힌다음 그릇에 바르기도 하고 그릇전체에 입히기도 하였다. 태토는 금토, 고령토 등을 사용하였으며 백토를 분장처리하여 여러 가지 문양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풍부한 원료수급으로 질좋고 당당한 작품을 양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청사기의 종류로는 인화문이 도안된 분청사기, 인화문대접, 분청사기귀얄 <분청사기인화문 [진해] 명완> 문완, 분청사기당초문호, 분청사기덤벙문접시, 분청사기음각당초문장군(호), 분청사기철화문호, 분청사기박지국화문병 등 이루 헤 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조선이 개발한 분청사기가 임진왜란(1592)을 계기로 하여 그 맥이 끝나고 말았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가장 많이 쓰여진 백자는 은은하고 안정되고 우아하며 보수적인 색감을 띄우고 있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였음을 느낄 수 있다.

백자는 순백자, 청화백자, 진사백자, 철화백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순백자는 철분을 7H7낸 백로, 고령토 등을 가지고 투명유약을 입힌 다음 1250℃ 이상 고온에서 소성하여 만든다. 종류로는 백자접시, 백자호, 백자사발, 백자제기(제사용구), 백자명기(부장품)등 다수가 있다.

청화백자는 코발트색이 나는 회회청(산화토발트)을 가지고 백자에 그림을 그려넣은 도자기를 말한다. 이 산화코발트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나 멀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임하여 사용하였으므로 제한적으로 사용하였다. 청화백자에 나오는 그림은 궁중의 우수한 화원(화가)들이 그렸고 이러한 까닭에 조선조 초기 작품들은 그 수량도 적었고 획귀성도 대단하다. 오늘날 조선초기의 청화백자가 보물급에 해당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조선초 후기에 '분원'에서 궁중사용품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제작된 청화백자의 질은 매우 좋았다. 주로 문방구(청화백자연적, 청화백자필통, 청화백자필세, 청화백자쟁반)류와 청화백자용항아리, 청화백자완구 등 다수가 있다.

진사백자는 백자의 표면에 붉은색을 띄우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진사는 산화동을 바르고 소성하여 만드는 백자를 말한다.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행치는 않았고 관료계통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자표면에 붉고 선명한 무늬가 조화를 이를 때 그 느낌은 매우 인상깊게 배려되어도 좋다고 생각된다. 작품의 수는 매우 적고 광주요에서 제작된 것과 개성에서 제작된 것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진사연적, 진사별, 진사완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백자철화문자기는 백자에 산화철로 그림을그려 넣은 것을 말한다. 대부분 용그림에 많이 이용되었고 당초나 꽃문 <백자철화매죽문호>양같은 도안에도 이용하였다.

우리의 도자기는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더 가치가 크며 매우 독창적이다. 인간의 모습이 다르듯 그 도자기 색깔 모두가 다르며 그것만의 특색을 지니고 있음으로 더욱 그 빛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도자기를 보고 그 그릇에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한 층 더 품격을 높일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제 2 절 한국다구의 종류와 용도

1. 문헌에 나타난 다구

신라시대 : 충담사(忠談師)가 다구함인 앵통(櫻筒)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찻잔(구)을 꺼내 사용하였다. 안압지 복원 공사 중에 정언다(貞言茶)라 는 명문(銘文)이 있는 토기잔이 나왔고,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은 우통수에서 물을 길어다가 1만의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니까 표주박·물병·물통을 사용했을 것이다. 원효가 거처했던 방에는 병(甁)과 자구(瓷구)가 있었다고 하며, 진감국사는 한명(漢茗)을 돌솥(石釜)에서 삶았다고 한다.

또 강릉의 경포대와 한송정에서는 네 화랑의 야외용 대형다구인 석지(石地)·석정(石井·석조(石조)가 있었다. 이밖에 왕릉에서 출토된 금완(金완)·은완(銀완) 따위도 찻잔으로 분류해야 옳지 않을까? (술잔이거나 차·술 공용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

고려시대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은 고려인들이 금화오잔(金花烏盞)·비색소구(翡色小구) ·청자다완(靑磁茶碗) 등의 잔과 탕호(湯壺)·화로(화爐)·솥, 그리고 잔뚜껑을 사용하더라고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흥조(紅俎) 위에 다구를 진열한 다음 붉은 색의 비단 상보를 덮었으며, 연회시에는 뜰에서도 차를 달이고 주인이 권해야 들더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고려인들이 사용한 다구는 차맷돌(茶磨)·다병(촌빈)·철병(鐵甁 : 무쇠 주전자?), 차시(茶匙)·차선(茶선) 등이 있으며 찻잔은 구(구)의 형태가 대부분이나 찻종(茶種)도 있었으며 자기 외에 금·은·유기도 많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 금·은·동·도제(陶製)의 다관(茶罐)·다정(茶亭)·다병·은·옥 자기의 찻종, 보시기·차수건(茶巾)·차옷(茶衣)·쟁반(茶盤)·찻종쟁반(茶鐘盤)·다시·다완, 그리고 솥, 다로(茶爐), 다조(茶조) 차궤 등이 있었다. 특례겠지만 정희량(鄭希良)은 바가지에 마시기도 하였다.

2. 차문화의 바탕인 찻잔

그릇은 사람만이 만들고 누리는 일거리의 하나다. 사람은 그릇으로 하여 딴 짐승과는 다른 살이를 이루게 되어 먹거리를 언제나 간수케(깨끗하게도)되고, 더 맛나게(감각적으로) 장만하게 하여 어수선하지 않고 깔끔한 살림살이를 하게 하였다.

더욱이 물로 된 술이나 차는 아무래도 기호품이므로 이것을 더 즐기고, 좋아함을 곱으로 돋보이게 위해서는 이를 담는 그릇에 애쓰지 않을 수 없다. 茶를 담는 그릇, 그것은 茶와 그릇의 어울림으로 그 격을 한층 더 살릴 수 있다.

한국의 음다속(飮茶俗)에서 茶를 마친 茶그릇들을 살펴볼 때 푼 한가지에만 한정시키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은 차만을 마신 경우보다 음주 전후에 茶를 마신 경우가 더 많으며 비록 차만 대접한다고 하더라도 차 한 가지만이 아니라 반드시 다담상을 갖추었다.

따라서 다구의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또 찻그릇의 재질도 토기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금·은·옥·유기 등을 다양하게 사용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시는 차그릇에는 구(구)와 완(碗, 완, 완) 및 잔(盞, 盃) 이 있다. 여기서 잔은 구와 완까지 다 말하는 큰뜻과, 조금더 작아진 곧 작은구, 작은완과 종(種)을 모두 일컫는 작은 말로도 쓰인다. 구는 속이 깊고 운두가 거의 선 선 U꼴이고, 완은 운두가 벌어진 V꼴이며, 종은 이 둘보다 지름이 더 작고 운두가 곧추선 원통꼴로, 이들 모두의 높이는 거의 같다(7∼8센티 안팎) 요즈음 가루차는 거의 완으로 마시는가본데 완, 구 모두 가루차 그릇이다. 이밖에 이들보다 훨씬 더 작은 '깍정이'가 있는데 이는 철관음 같은 반뜸차그릇이다.


다구의 종류와 형태는 시대에 따라서, 또 사용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나 진화되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은 다구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차를 마시는 그릇 즉 찻잔이다.


(사진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약 3∼4천년 전에 만들어진 홍토기 및 연질토기 잔·잔대(사진 2)는 신라시대에 (사진 3)처럼 제작되다가 고려시대에 (사진4) 처럼 이어지고 조선시대에는 (사진 5)처럼 변형되있음을 알 수 있다. 잔대가 높은 것은 의식용이고, 낮은 것은 일상용이다. 또 잔대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잔·잔대가 의식용이건 일상용이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다구(찻잔)였음을 알게된다. 또 잔·잔받침은 동재질(同材質)이어야 제격이다. (1999.전완길)

3. 다도구의 종류와 용도

차를 맛있고 향기롭게 마시려면 각종 차그릇이 필요하다. 이를 통틀어 다도구라 한다.

이러한 다도구는 지극히 예술성이 높고 또한 아취적이라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나 가능한 한 사치스러운 것은 피하고 소박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가. 다관

탕관에서 끓인 물과 잎차를 함께 넣고 우려내는 주전자를 말한다. 철제, 동제, 은제, 등이 있으나 철제는 녹이 슬기 싶고 은제는 사치스러워서 피하는 것이 좋고 도자기로 된 것이 가장 차의 격조에 알맞다.

다관은 모양과 손잡이가 달린 위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횡파형의 다관을 많이 쓰고 있다. 좋은 다관의 요건은 빛깔, 몸통, 뚜껑, 주둥이, 거르는 거물, 손잡이가 잘 된것이라야 한다. 손잡이를 잡았을 때 편안한것과 주둥이가 잘 만들어져서 차를 따를 때 찻 물이 잘 멈추어지고 줄줄 흘러 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관의 뚜껑이 안정된 것이라야 다관을 기울였을 때 뚜껑이 벗겨지지가 않으며, 다관 내부의 거르는 거물이 가늘고 섬세하게 구명이 고르게 만들어져서 차찌꺼기가 새어 나오지 않아야 좋은 다관이라 할 수 있다.

다관의종류

·상파형 (일본)

·후파형(중국)

·정파형 또는 횡파형(한국)

·보병형 (손잡이가 없는것)

나. 찻잔


찻잔의 모양에는 잔(盞, 杯, 盃) 주발, 구, 술잔형 등이 있다.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며 몸통이 낮은 것을 盞이라 하며,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면서 굽이 높게 받쳐져 있는 것을 杯,盃라 하고, 잔의 입과 아래의 넓이가 비슷하고 몸통이 높으며 수직으로 생긴 (구), 술잔 형태의 (種)으로 구별해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찻잔들은 대체로 투박하지만 뜨거운 열이 겉으로 베어 나오지 않는 것이 좋은 찻잔이다. 소형의 찻잔은 최상품의 喫茶用, 중형의 찻잔은 중등품 이상의 飮茶用, 대형의 찻잔은 하등품의 철茶用에 적합하다.

초보자에게는 잘 우려진 차의 빛깔인 연녹색을 감상할 수 있는 산뜻한 백자잔이 알맞다.

다. 물식힘사발


탕관의 끓인 물을 식히는 그릇으로 잎차에는 필요하지만 말차에서는 필요치 않으며 도자기 로만 든 것이 좋다. 탕수를 다관에 부을 때 바깥으로 흐르지 않도록 입부분이 잘 만들어져야 하며 크기는 다관의 크기에 어울리는 알맞은 것이면 된다.

라. 찻잔받침


찻잔받침은 은, 동, 철, 자기, 목제 등이 있으나 사용할 때 소리가 나지 않고 잘 깨어지지 않는 목제나 죽제로 만든 것이 편리하다. 형태는 배모양과 꽃잎모양, 원형, 타원형, 다각형이 있는데 그 크기는 찻잔의 지름에 비해서 찻잔받침의 지름이 좀 넉넉한 것이 안정감이 있어 좋다.

마. 차통


은, 주석, 양철 등으로 만든 것에서부터 나무, 대나무로 만든 것도 있다.

공기나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밀폐된 용기라야 차가 변질되지 않는다. 모양은 통형, 기등형, 단지형이 많다.

바. 차숟가락


차를 뜨는 숟가락을 말하며 은, 동, 철, 나무, 대나무 등으로 만들어 썼는데 전차용으로는 대나무 토막을 절반으로 쪼갠것, 또는 오동나무 등의 목재류가 많이 사 용되고 말차용은 대나무의 끝을 구부려 만들어 쓰며 윤기가 나며 가볍고 매끄러운 것이 좋고 향을 헤치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좋은 차 숟가락이다.

사. 차솥


찻물을 끓이는 솥으로 무쇠솥, 곱돌솥, 약탕관, 등 이 사용되나 곱돌솥이 제일 좋다. 무쇠솥은 녹이나고 냄새가 나기 쉬우나 돌솥은 돌속에 천지의 수기가 엉겨 있다가 탕을 끓일 때 녹아 나와 차와 함께 어울려 맛을 싱그럽게 한다. 그 다음이 약탕관의 순서이다.

차솥 대신에 보온병을 쓸 경우도 있다.

아. 화로

차를 달이는 첫째 요령은 불을 잘 다루는 일이다. 화로의 불이 벌겋게 단 후 차 주전자를 얹고 부채를 부쳐 물이 끓도록 한다.

이때 문무를 조절하여 중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화로의 불은 백탄이 으뜸인데 백탄의 독특한 담향이 차의 격조에 어울릴 뿐 아니라 열 조정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자. 찻수건


찻수건은 다관과 찻잔 등 다구를 사용 할 때마다 깨끗하게 닦는 차행주이며 물기가 잘 스며들고 잘 마르는 마포를 쓰는것이 좋다.

차. 물버림사발

찻잔을 씻거나 예온한 물을 버리거나 차찌꺼기를 버리는 그릇이다. 자기류나 목기류를 쓰는데 그 모양은 원통형, 사방형, 항아리형 등이 있다.

카. 차반

다구를 정돈해 주는 도구용의 다반과 찻잔을 나르기 위한 다반이 있다.

재료는 죽제, 목재류가 많고 모양은 원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타원형, 팔각형 등이 있다.

타. 찻상

찻상은 둥글거나 네모진 것이 대부분인데 너무 커도 불편하고 너무 작아도 볼 품이 없다.

찻상의 다리가 통반으로 되어 있고, 찻상 둘레에 외고가 있는 것이 찻상으로 제격이다.

파. 표주박


청수통의 생수를 차솥에 붓거나 차솥에서 끓인 물을 떠서 물식힘 사발에 옮겨담는데 사용

하. 물항아리와 찻상보


차 끓일 생수를 담아두는 항아리다. 도기제품을 주로 사용하지만 옹기항아리를 써도 무방하다. 찻물은 차의 몸이라서 물 선택이 매우 중요하며 청수통에 하루정도 재워서 쓰면 더욱 차맛이 좋아진다.

찻상보는 예로부터 빨강색과 남색으로 안팎을 삼아서 만들어 졌다 한다. 굳이 붉은 찻상보로 하는 것은 송나라 서긍의「선화봉사고려도경」에 붉은 보자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깔이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겨울에는 무명, 여름에는 모시나 삼베를 만들어 쓰떤 좋고 찻상과 차반을 덮을 정도의 크기면 적당하다.

아. 찻사발

보통 사발정도(입지름 3cm적당)의 큰그릇 모양의 찻사발을 사용한다.

큰 찻사발은 두 사람 이상의 순배용으로 사용하며 작은 찻사발은 각자 잔으로 쓰인다. 청자 혹은 흑유류의 찻사발이나 회백, 회청색의 분청다완이 말차용 찻사발로서 품위 있으며 적당하다.


이. 차선


대나무 껍질을 아주 가늘게 일으켜서 만든 것으로 찻사발에 가루차와 끓인 물을 붓고 후저어서 융합시키는 기구이다. 차선은 대개 80본, 100본, 120본의 세 종류가 있으며 차의 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보통 차선(80본)으로 100회 정도 젓는다.

차선의 손잡이 부분을 수절이라 하고 젓는 부분을 수선이라 한다. 차선의 중앙부분(모여진 부분)은 차덩어리를 부수는 역할을 하고 통발형의 수선은 거품을 일구는 역할을 한다.

제 3 절 다구 감상

1. 가야, 고구려, 백제의 다구

가. 토기 기대 화형잔


이 꽃모양의 잔은 잔입술을 눌러 만들어 웃 사람이 마신 잔 입술자리에 다음의 아랫사람의 입이 닿지 않도록 배려하여 만들어진 찻잔으로 짐작된다.

나. 청동 초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三神사상이 있어 이 초두의 三足도 三神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삼족 초두는 산이나 야외에서 찻물을 끓이거나 茶湯을 끓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 고구려의 간이화덕


굴뚝이 달린 이동식 화덕은 산이나 들에서 차를 끓였거나 음식을 데우는데 사용되었을 것 이다.

라. 은제 유개잔, 잔탁

일본의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 에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行基, 668∼749)가 말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백제의 승려들은 7세기 이전에 이미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지리나 기후로 보아 차문 화도 일찍부터 발달하였으리라는 추측이 가나, 신라와의 전쟁에 져서 멸망했으므로 사료가 드물어 몹시 아쉽다.


2. 신라시대의 다구

가. 묘련사 석지조 (妙蓮寺 石地조)


돌 화덕과 돌 못(石地)이 동시에 있는 석지조기의 화덕은 깊이가 11cm로 얕아서 숯으로 불을 때게 되어 있다. 위쪽에 걸개발이 세 개 있어 작은 탕관도 올려놓게 되어 있다. 돌못에는 먼 곳의 물을 길어다가 가득 담아 놓고 찻그릇을 씻었고 자연상태로 내버려져 있을 때는 빗물 등이 고여 있게 되므로 돌못을 가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토기 언정형완

* 토기 언정영 찻그룻, 통일신라, 8세기 이전, 입지름 16.8, 높이 6.1∼6.5, 안압지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그룻 바깥에 묵으로 그린 풀꽃과 구름이 있으며 「言貞榮」이 쓰여 있는데 「貞」과 「榮」사이에 작은 글씨로 「茶」자가 씌여 있다. 이것은 일반 토기보다 고온에 구운것으로 특별한 의례때 사용되었으며, 굽이 없는 뒷바닥의 모양으로 볼 때 굽이 있는 받침이 따로있었던 것 같다. 잔입술 바깥에 오목선이 둘러져 있고 전체적으로 횐 회색을 띠고 있으며 매우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다. 석굴암의 문수 보살상

경주 석굴암의 보존불을 향하여 우측벽의 두 번째 상은 문수보살로서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있다. 이 잔은 바라진 듯한 반원형의 잔몸에 굽이 뚜렷하다.


『삼국유사」 에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상원사(上院寺)에서 매일 새벽에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바쳤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신라인들은 지혜의 표상인 문수보살이 차를 좋아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라. 토기 돗자리문사발

신라문화의 전성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사발은 식사用 외에 茶을 위시한 여러 가지 음료를 마시는데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3. 고려시대의 다구

가. 청자 운학문 통잔

고려 말기의 통잔으로 표면이 거친편이나 학이 이상히 돋보이는 잔이다.


나. 청자 흑백 상감운학 잔, 잔대

고려시대의 의식용 탁잔으로 그 선이 유연하고, 잔의 입술이 꽃잎형으로서 잔의 우 아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다. 청자철사불노초문차병

고려시대인들은 부귀장수를 염원하여 창자 도자기에 불로초를 새겼다. 손잡이와 수 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물통을 높게 고안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라. 석제 차맷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의 차맷돌은 중국이나 일본의 뒷면이 납작한 원통형과는 달 리 동그스름한 외(瓜)모양이다.

마. 은, 동제 찻숟가락

청동과 은으로 만든 말차뜨는 찻숟가락이다 손잡이 뒤쪽에 고리가 달려 있어 차유 (茶乳)를 휘저음으로써 차거품(乳花)이 일어나게 만든 것이 오늘날의 거품기와 비슷 하다.


4. 조선시대의 다구

가. 분청인화문완

구연부 외반에 백상감 인화가 조화를 이루어 그릇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꾸며준다.

내부 저부에는 국화문이 모여서 한 송이의 국화꽃으로 피어나게 하여 아름다움을 더 하여 준다.


나. 분청귀얄문완

그룻 외부의 경치(유약이 시유되지 않은 부분)가 특색 있게 나타나있고 내부의 귀얄 은 독수리의 날개짓 같이 매우 활달하게 보이며 그릇 바닥에 6개의 굽받침이 자연스 러운 문양처럼 보인다. 남성의 혼이 보이는 수작이다.


다. 분청덤벙문완

무작위로 백토를 분장시켰지마는 잘 조화 연결되어 그릇의 외면을 분리하여 준다. 질서감과 아름다움을 주며 말차 한잔으로 색감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조선초기의 다 완이다.


라. 백자 던덩이 사발

균열과 빙열이 불규칙속에 규칙적인 미를 보이고 저부의 더덩이 애써 촌티를 더욱 부 채질하여 주고 내부의 井은 거울 같이 보이는 우리 사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 백자양이 소문(素紋)잔·잔탁

하얀 소복한 여인의 날개를 보는 듯한 손잡이의 아름다움과 가냘프다 싶을 정도의 형 태감이 그릇의 미를 더욱 크게 늘려주고 안전감을 주는 받침이 포근하게 잔을 감싸주 는 수작이다.


바. 청화백자 매화·조(鳥)

경기도 광주 분원작품으로 백자에서 옥색빛을 발하고 일필휘지의 조화가 매우 윤택한 분위기를 일깨워 주고, 굽은 안정감을 주도록 청화원권문을 두른 수작이다.


사. 동제 국자 은제 숟가락

가냘픈 손잡이에 끝부분을 접어 마감하고 여자의 유방처럼 아름다움으로 국자 부분을 만들어 신용적이며 미적감을 준다.

은제 차 숟가락 역시 손잡이 끝을 접었고 숟가락의 형태를 타원형 잎사귀 모양을 하 여 보기가 지루하지 않고 실용성도 가미하여 준다.




제 8 장 다도관련단체

가 예 원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1343호 신돌마을 403호 1501호

0344-905-2443

석 정 원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8-26 (한국 불교 전통 문화원)

문 향 원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9 (다암)

소선차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9-16

02-334-0787

다 로 원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5-66

02-372-3558

설애문화원

서울 마포구 연남동 504-42

02-336-1755

차벗동아리

서울 도봉구 창동 38번지 주공아파트 1707동 704호

명 진 희

서울 도봉구 미아 3동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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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차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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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차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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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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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 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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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54-9403

■ 죽로차우회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죽로다원내

051-246-7279

■ 운상차회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2가 171 4/1

051-246-2355

수은예다회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489-5

051-807-1399

■ 마산차인회

경남 마산시 교방동 주동아파트 관리소 소장 홍기영

0551-46-6737

■ 마산무악예다회

경남 진해시 여좌동 120-38 1/11

0553-42-3815

■ 진주차인회

경남 진주시 본성동 8-l2

0591-741-1141

■ 진주여성차인회

경남 진주시 계동 152

0591-746-1193

■ 정우차회

경남 삼천포시 선구동 58-5

0593-33-6744

■ 울산차인회

경남 울산시 중구 성남동 255-3 코리아나호텔 토산품점

0522-44-1800

■ 청백다례원

대구시 수성동 상동 53-1

053-768-2516

■ 동다회

대구시 중구 포정동 16 무궁화백화정 3층

053-252-6989

■ 초암다회

대구시 중구 동성로3가 83-1 14층

053-426-2468

대구차인회

대구시 중구 봉산동 217-8 (주) 대원건재내

053-423-9678

■ 종정차회

대구시 남구 대명 8동 2002-2

053-474-3366

■ 연정차회

대구시 중구 대봉 1동 28-3

053-424-1217

■ 하정차회

대구시 남산 1동 698-22 남문아파트 1지 320동

053-253-7468

■ 상주차인회

대구시 서구 내당동 삼익뉴타운 301-207호

053-552-5801

■ 혜정한다문화회

대구시 남구 대명동 1663-23

053-655-1368

세명차회

대구시 남구 대명 5동 181-1 백작맨션 203호

053-628-5688

■ 절정재차회

대구시 수성구 중동 492-11

053-763-4775

■ 은정차회

대구시 수성구 중동 478

053-762-9944

■ 남정차회

대구시 수성구 사월동 464 사월 보성타운 101동 1605호

053-455-3947

■ 구미다례원

경북 구미시 송정동 40번지 로얄아파트 105호 603호

0581-53-9876

■ 안동다례원

경북 안동시 성곡동 822 안동 민속촌내 다례원

0571-821-4079

■ 경주차인회

경북 경주시 마동 328-1사등이요

0561-745-6473

■ 포항차인회

경북 포항시 사원동 448-5

0562-47-3457

향원파회

서울 중랑구 묵동 240-2 향원다회

02-973-8860

명덕학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89 한양아파트 32동 1002호

02-760-1472

설향파회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 2리 78-3 삼강의원

039-671-2370

향민차회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산 60-6 방배럭스 B동 202호

02-582-9952

영남차회

경북 경산시 하양읍 금락동 330 대구효성카톨릭 대학교

053-850-3314

청류다회

경북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16-2 세광빌라 302호

0584-654-3673


제 9 장 외국의 다도

제 1 절 일본의 음다 풍습

일본은 영서선사가 중국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와 함께 차 문화를 일본에 전래한 이래 일본 고유의 독특한 음다풍습을 형성하였다. 특히 풍신수길 시대의 고숭인 센리큐가 다도를 집대성하여 다도의 보급과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일본의 다도는 전통적으로 환경이 좋은 정원에 다실 두고 '화·경·청·적'의 다도정신으로 보다 엄격한 규율과 정신으로 다도를 행하고 있다. 보통 주인이 문앞에 꿇어 않아 손님을 맞이하는데, 손님이 무사나 군인일 경우에는 반드시 무기를 다실 밖에 설치한 시렁에 걸어두고 다실로 들어오게 하여 다실 내에서는 평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어떤 다실에서는 문 밖에 손님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에 물을 준비해 두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다실에 들어온 뒤에는 주인은 손님과 서로 절을 하면서 주인은 손님의 왕림에 감사를 하고 손님은 주인의 초청에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리고 나서 손님은 다실 벽에 걸어둔 그림이나 글씨, 꽃꽂이 등을 감상하고 주인은 차를 다릴 물을 끓이고, 차완에 말차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다선으로 잘 교반하여 손님에게 차를 대접한다.

제 2 절 대만의 다도

대만은 땔감,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와 차가 생활필수품이라 할 정도로 차는 대만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주요 음료이다.

주로 반 발효차인 오룡차, 포종차를 즐겨마시고 자스민차를 들기도 한다. 식당이나 호텔에는 주로 자스민차를 많이 내놓고, 가정에서 또는 차모임에서는 고급의 고산운무차를 즐겨마신다. 거리곳곳에 전통다관이 있어 손님을 만 날 때 또는 여가가 있을 때 다관에 와서 차의 향기와 맛을 음미한다.

제 3 절 중국

1. 중국 한족의 음다 생활

중국은 한족을 포함하여 54개의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이 중 한족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어 각 지역마다 고유의 음다 풍속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주로 마시는 차가 달라 양자강 이남 지역은 녹차나 홍차를 마시고, 산동성이북의 북방인은 자스민차, 복건성과 광동성은 우롱차, 티벳등의 서쪽지역은 떡차나 벽돌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

그러나 한족들은 차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소수 민족과 같이 차에다 버터나 소금과 같은 재료를 넣지 않고 차만 우려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음차 방법에 있어서도 차와 물의 등급에 대해 세분화되어 있으며 우롱차의 경우에는 의홍에서 생산되는 소형의 자사다구를 사용하여 차를 우려 마시며, 광동지역에서는 얌차라 하며 차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만두나 튀김 요리를 먹는 음다풍습이 보편화 되어 있다.

이들 광동 요리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차를 마시지 않고는 요리를 많이 먹을 수가 없기에 먼저 무슨 차를 마실 것인지 주문을 받은 뒤 차를 마시면서 종업원이 끌고 다니는 요리 운반 차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 저력으로 다관이나 호텔에서 얌차를 먹으러 오는 사람이 적지않다.

호남 지역에서 마시는 뢰차는 차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마시는 방법으로 사계절 손님 접대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차를 만드는 방법은 볶은 쌀, 볶은 땅콩, 참깨, 콩, 옥수수, 녹두. 설탕 등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재료를 차와 함께 맷돌에 갈아서 여기에 끊여서 식힌 물을 적당량 부어 만든다.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하여 마시는데, 피로할 경우 영향 보충에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2. 위그르족의 밀크티와 향차(香茶)

중국 신강의 위구르족은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음차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남쪽지역에서는 향차를 주로 마시고 밀크티를 마시지 않으나 북쪽지역은 이와 반대로 밀크티를 마시고 향차를 마시지 않는다.

위그르족의 밀크티는 몽고족의 밀크티와 비슷한데, 먼저 벽돌차를 파쇄한뒤 차 덩어리를 철제 주전자나 알루미늄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붓고 끓인다. 차가 우러나면 신선한 우유 혹은 양젓을 넣고 다시 소량의 소금을 넣은 뒤 더 끓인다. 몇분 뒤에 찻잔에 따루어 식사와 함께 차를 마신다.

향차는 남쪽지역에서 구리주전자를 사용하여 차를 끓이거나 구리주전자가 없을 때는 목이 긴 도자기를 이용하여, 먼저 차와 함께 후추나 계피, 정향 등의 향료가루를 주전자에 넣고 서서히 물을 부은 뒤 불위에 얹어 4-5분 끓인다. 차 찌꺼기나 향료가루가 찻잔에 함께 나오지 않도록 주전자에 거름망을 붙여 걸러서 마시며 보통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더불어 차를 마신다.

3. 운남의 염파차와 용호투차

운남지방은 차나무의 원산지로서 열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운남성에는 8개의 민족 자치주가 있으며 15개의 자치현이 있다. 이들 민족중 한족의 음차 방법이외에 염파차, 수유차, 고차, 소차, 뢰향차, 유차, 용호투차 등 비교적 특이한 음용 방법이 많이 있다. 염파차는 먼저 차 덩어리를 부수어 작은 토기 그릇에 넣은 뒤 토관을 불위에 얹어 차잎이 '퍽퍽'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구운 다음, 토기관에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5분정도 더 끓인다.

소금 덩어리를 차탕 중에 넣고 끓여서 짠 맛이 나면 화로에서 꺼내어 찻잔에 따른 뒤 개인의 기호에 따라 끓인 물을 더 부어서 마시면 된다. 염파차를 마실때는 보통 옥수수떡을 함께 먹는 습관이 있다.

또 현지에서 전해오는 노래 중에서 다음과 같은 다가가 있다.

" 아침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하루가 위풍당당해 지고,

오후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일하는 것이 가벼워지며,

저녁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정신을 일깨워주고 고통을 없애주며,

하루에 3잔을 마시며 벼락이 쳐도 움직이지 않는다."

용호투차는 밀림 속에 사는 사람들이 감기 치료에 이용하는 비방으로서, 만드는 방법은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차를 알콜도수가 높은 술이 담긴 술잔에 부으면 마치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은 형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용호투차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때 이 용호투차를 마시면 땀이나고 잠을 잘 자게 되어 몸이 가벼워지고 감기가 떨어지게 되므로, 현지인들은 감기 치료의 민간요법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제 4 절 티벳 지역의 수요차(수油茶, 버터차)

티벳 지역은 고원 지대로서 기후가 한냉하고 건조하며, 음식은 육식위주로 과일이나 채소가 적어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같은 영양 성분을 주로 차잎으로부터 보충하고 있다. 따라서 티벳 민족의 차 소비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며, '하루 양식이 없어도 되지만 차 없이는 못산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이 연간 1인당 소비하는 양은 15kg으로 차 소비량이 많은 영국보다 무려 5배나 많다.

티벳 지역의 음다 풍습은 밀크티와 수유차(수油茶), 그리고 차 그대로 우려마시는 방법이 있으며, 이중 수유차(수油茶)는 티벳 지방의 독특한 음다 방법으로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가 티벳 왕에.게 시집온 후 차 마시기를 제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수유차(수油茶)를 만들어 대신들에게 제공하여 점차 손님 접대의 예절로 자리잡게 되었다.

수유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나무통과 다구가 필요하며, 다구는 대부분 금이나 은제의 금속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수유차 제조방법은 먼저 차잎(주로 緊壓茶)을 주전자에 넣고 끓인 뒤 버터와 소금 그리고 참깨, 땅콩, 수박씨, 잣, 호두 등의 재료를 넣은 나무통에 파를 부은 뒤, 나무로 만든 봉(棒)으로 아래 위로 왕복하면서 차와 기름 및 각종 재료가 잘 혼합되도록 한다. 수유차를 마실 때에는 인정한 예절이 있어 주부가 먼저 쌀보리 가루나 차즙으로 만든 가루떡을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식탁 중간에 놓고 주인이 손님의 찻잔에 차례로 수유차를 따르고 "짜퉁 짜퉁"(차 드십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손님에게 차 마실 것을 권한다.

손님은 한편으로 수유차를 마시면서 보리 가루 떡을 먹는데, 차를 마실 때 주의할 점은 찻잔의 차를 모두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티벳 풍습에 차를 모두 마셔버리면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주인의 입장에서는 손님 접대를 잘못한 경우가 되어 본의 아니게 결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첫째 잔을 조금 남겨주면 주인이 만든 차가 마시기 좋다는 의미가 되므로 주인이 다시 차를 따라주게 되고 둘째, 셋째 잔도 마찬가지이며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바로 차를 마셔버리면 주인도 더 이상 차를 권하지 않게 된다.

일반적으로 티벳인들은 매일 20잔 정도의 차를 마시며, 이것은 4ℓ정도의 양으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는 아예 주전자를 화로위에 두고 종일 차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라마교 사원에서는 직경이 1.5m이상 되는 대형 주전자에 종일 차를 끓이면서 참배객에게 차를 제공하고 있다

제 5 절 몽고족의 밀크티

몽고는 유목 민족으로 생활 습관상 하루 3번은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의 차를 마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과 함께 한번의 식사를 하는 삼차일반의 습관이 있다. 만약 저녁에 소나 양고기를 먹을 경우에도 식사 후 다시 차를 마시고 잠을 자게 된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차 소비량은 매우 많은 편이어서 1인당 연간 약 9kg 의 차를 소비하고 있다. 몽고족이 하루 세 번의 차와 한끼의 식사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이들은 차를 마실 때 볶은 쌀이나 치즈, 밀가루, 튀김 등과 같은 밀크티를 마시기 때문이다.

제 6 절 영국인의 음다풍습

영국인의 음다는 17세기에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궁중의 구족층에서 시작되는 점차 서민에게 까지 널리 확대되었다. 18세기 중엽, 영국인들의 아침식사는 매우 풍성한데 비해 점심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 사이의 시간이 비교적 긴 편이었다.

따라서 베드포드공작 부인인 안나가 고안해 낸 방법은 오후 5시에 여러 사람을 초청하여 차와 과자 등을 제공하면 배고픈 것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찬성하게 되었고, 점차 귀부인들이 경쟁적으로 차회를 개최함에 따라 첨차 일종의 예의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커피 하우스나 레스토랑, 여관, 극장, 티 하우스 등에서도 오후 차를 제공하게 되었다.

오후 차는 '5시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 4시-5시 사이에 마시기 때문에 기차에서도 오후 차용으로 물과 우유, 설탕, 빵, 크래커,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매일 약 1.59ℓ의 음료를 마시는데, 이중 차가 약 37%, 커피 10%, 기타 우유, 과즙, 자극성 음료나 광천수가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1인당 약 4.5kg 까지 소비된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약 2.5kg 정도를 소비하고 있다.

제 7 절 미국인의 아이스 티

차의 소비 형태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뜨거운 물로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니 미국인들은 아이스 티의 소비가 많은 편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들 중 차를 뜨거운 형태로 마시는 사람이 30%-35% 인데 비해 차갑게 마시는 사람은 65%-70%이다.

아이스 티의 유래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에서 리차드라는 영국의 차 업자가 차의 선전을 위해 박람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마침 7월경이어서 무척 더운 날씨였다. '차는 건강에 좋다' 라는 표시판을 걸고 뜨거운 홍차를 끓여 시음 활동을 하였으나 무더운 여름날씨 때문에 누구도 차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홍차에 얼음을 넣고 '차가운 흥차'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권유하게 되자 더운 여름 날씨로 목이 마른 손님들이 대거 모여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리챠드는 영국인이었지만 미국에서 아이스티를 만든 이래 미국 과일의 대표격인 레몬을 차에 넣어 상쾌함을 강화시킨 아이스 레몬티에 의해 미국 레몬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제 8 절 모로코의 박하차

모로코는 아프리카 사막지대의 기후 영향으로 비가 적으며 소나 양고기가 주식이기 때문에 과일이나 채소의 섭취가 부족되기 쉬워 차를 많이 마시고 있다. 이들이 마시는 차는 녹차 위주로서 중국 절강성에서 생산된 주차(誅茶)나 미(眉茶)차를 주로 마시며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kg을 넘어서고 있다. 모로코의 음차 역사는 200년이 넘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관계로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차를 많이 마시고 있다.

차를 마시는 방법은 차탕 중에 설탕과 함께 박하잎을 넣어 차와 설탕, 박하 맛이 서로 조화 되어 마신 뒤 입안의 상쾌함을 더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박하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




제 10 장 결 론

사이버 전통 다도(茶道) 박물관 홈페이지를 인터넷을 통하여 전세계 곳곳에 전달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기대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인의 전통문화의 저변확대를 기할 수 있으며, 둘째,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으며, 셋째 전통문화를 통한 우리고유의 예절교육을 널리 홍보할 수 있으며, 넷째, IMF 시대에 자국의 민족문화 창출이라는 개념하에 다(茶)에 대한 국민들의 홍보와 전통적으로 내려온 우리 차(茶)의 우수한 점을 널리 홍보할 수 있다.

사이버 전통 다도(茶道) 박물관의 홈페이지가 극박한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소외시 되고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일대 혁신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도만이 아닌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인 제품인 "김치에 관한 홈페이지", "된장에 관한 홈페이지", "죽염에 관한 홈페이지" 등 우리고유의 전통적인 홈페이지의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제일 먼저 부산여자대학 산학협동연구소와 사무자동화과에서는 우리의 전통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전통 다도(茶道) 박물관 사이트를 개발하고자 하였으며 기술개발 성공시 조치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 중. 고. 대학의 예절 교육 활용할 수 있으며,

둘째, 평생 및 사회교육원, 직장예절교육으로서의 활용할 수 있으며,

셋째, 외국인에 대한 한국 전통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으며,

넷째, 전통 문화의 대한 표준화 작업을 통한 다른 전통 사이트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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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지(육수연) | 작성시간 09.02.09 몇일을 두고 천천히 일거 가야 겠어요..좋은 공부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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