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시간은 다소 지루하실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산조가 무엇인지는 아셔할것 같아서요....^^
그냥 대충 읽어보세요.
산조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의 선율악기를 장구 반주를 곁들여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악독주곡의 한 형태이다. 1890년경 판소리의 음악적 영향으로 산조가 가야금에 제일 처음 형성된 뒤, 20세기에 들어서서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 피리 등의 악기를 사용하는 기악 독주곡으로 정착되었으며, 민간에서 발전시킨 음악장르로서 매우 높은 경지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이밖에 칠현금이나 양금으로도 산조를 연주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또 단소나 퉁소, 새납(태평소) 등의 악기에는 아직 산조의 음악 형식이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듯해서 산조 또는 시나위로 혼용되어 불려진다.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한다고는 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즉흥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음악 특유의 즉흥 연주 전통에 의해 연주자가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산조라는 음악장르 자체의 일정한 형식이 있어서 그 안에서 연주자가 자유롭게 곡을 구성하는 것이다. 산조(散調)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흩어 놓는 가락'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산조는 그렇게 자유롭게 흩뜨려놓은 듯한 속에서도 높은 품격을 지닌 가락 자체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일한 것의 순환이나 반복을 일체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 진보적, 역동적인 음악논리는 바로 민중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산조의 음악적 바탕
산조는 같은 민속 음악인 시나위와 판소리에 그 음악적 바탕을 두고 있다. 시나위와 산조는 민속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나고 발전된 기악곡 형태라는 점에서, 또한 육자배기토리라는 선율이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시나위는 무속음악에서 발전된 음악형태인 반면 산조는 종교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민가의 음악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시나위는 주로 관악기 위주의 합주형태인 데 반해서 산조는 장구로 반주하는 독주형태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산조는 시나위에서 태어나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선율과 고도의 기교들을 기악화하여 기악곡 나름의 고유한 선율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 아니라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민중의식을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시켜 갔다. 판소리가 음악양식의 틀을 확립한 것은 18세기 말 이었고 산조가 하나의 음악양식으로서 완성된 것은 19세기 말 이었다.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산조는 한국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 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2.산조의 미학
산조는 화음이나 다른 선율악기와의 협력을 일체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선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한 음 한 음마다 독자적인 생명력을 중요시한다. 또한 가락을 죄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대비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한국음악의 전통적인 형식에 입각한 역동성은 듣는 사람을 산조 가락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산조의 또 하나의 매력은 무한히 이어지는 변화에 있다. 산조는 재현이나 반복이 거의 없이 끝까지 새로운 변화로 이어진다.
3.산조의 진보성과 변혁의지
산조는 조선 후기 사회 변혁기에 생성된 음악으로서 이 음악을 만들고 즐겼던 계층, 즉 민중의 사회의식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산조가 반영하고 있는 의식은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성, 개방성, 역동성으로 요약된다. 산조는 '진양―중모리―자진모리', 즉 '느린 속도―보통 속도―빠른 속도'의 기본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음악 형태의 공통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조에서의 이 구조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영산회상과 같은 정악 기악곡을 보면 산조와 마찬가지로 한 악장에서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수록 느린 속도에서 점차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지만 속도만 빨라질 뿐 장단에는 변함이 없다. 같은 장단을 가지고
속도에서만 변화를 줄뿐이다. 그러나 산조에서 한 악장에서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 때는 장단 자체가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향해서 치닫고 있는 듯한 속도감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또한 산조에서는 반복이나 순환을 찾아볼 수 없다. 정악에는 도드리 형식이 많지만 산조에는 중모리, 중중모리 등 '몰이'만이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돌아드는' 도드리는 순환의 논리,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논리이지만 '몰아가는' 몰이는 미래지향의 논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변혁의 논리인 것이다.
4.산조의 장단
판소리에서는 북으로 장단을 잡는 데 반해서 산조에서는 장구로 장단을 잡는다. 산조에서 쓰는 장단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으로 판소리에서 쓰는 장단과 명칭이 같다. 셋 이상의 악장이 모여서 하나의 산조 악곡을 구성하며 진양, 중모리, 자진모리 세 장단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특히 첫 악장은 반드시 진양 장단이어야 한다. 진양 장단은 가장 산조에 어울리는 장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기악곡에서는 진양 장단을 잘 쓰지 않는 데 반해서 산조에서는 매우 중요한 장단이다. 또한 이 진양 장단은 산조 연주자의 기량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장단이다.
5.산조의 농현
산조에 짜이는 다양한 조는 각 조마다의 독특한 농현으로 인해서 각각의 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평탄한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평조에서는 줄을 누르거나 흔드는 정도가 약하고 애절한 감정을 드러내는 계면조에서는 농현의 정도가 심한 편이다. 산조에서는 여러 가지 농현 기법을 사용해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한다. '떠는 농현'은 한 음을 물결 일듯이 흔들어주는 것이고 '미는 농현'은 한 음을 내고 나서 그 여음(餘音)을 한 음 정 도 높이 눌러주는 것이다. 소리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기법이기 때문에 주로 우조의 연주에 많이 쓴다. '꺾는 농현'은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급하게 미끄러져 내리는 것으로서 급하면 서도 부드럽게 흘러
내리도록 해야 한다.
6.산조와 판소리와의 관계
산조의 원형과 판소리가 관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까닭에서이다. 하나는 산조가락의 특성을 나타내는 조와 장단이 판소리의 것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장단을 실례로 들자면 판소리에서 쓰인 진양,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들이 산조에서 악장과 장단의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무부로서의 광대들이 판소리와 시나위의 형성과정에 모두 관련되었기 때문에, 시나위와 관련됐을 산조도 판소리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민속악의 성악곡의 가락을 모방하여 악기로 연주한 것을 봉장취라고 했는데, 이 봉장취가 산조의 원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추정이 성립될 수 있다면, 산조의 원형은 판소리와도 역사적으로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보아서 마땅하다. 판소리의 가락을 체계 없이 단편적으로 흉내내어 연주하던 허튼가락들이 후에 음악적으로 체계화되어 기악독주곡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산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산조의 원형이 후에 음악적으로 체계화되어 하나의 독립된 기악독주곡으로 발전된 것이 바로 산조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따라서 19세기말 ?br> ±薩部阮떳?처음으로 창시했다고 알려진 김창조(金昌祖)는 그의 생전부터 체계 없이 단편적으로 연주되었던 산조의 원형이랄 수 있는 봉장취 같은 허튼가락을 잘 짜여진 틀에 넣어서 체계화시켜 오늘의 산조형태를 만든 사람으로 보아야 합리적이다. 전라도지방에서 김창조가 19세기말 가야금산조를 체계화했을 무렵에, 이어서 백낙준은 거문고산조를 체계화하였고, 박종기는 대금산조를 체계화하였던 것이다.
7.가야금산조
산조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산조가 가야금산조이며 산조 중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도 가야금산조이다. 가야금은 음색이 밝고 경쾌한 데다가 다양한 기교를 부릴 수 있어서 산조 음악에 적합한 악기이다. 가야금산조의 대표적인 유파로는 '김죽파류'와 '최옥산류'를 들 수 있다. 김죽파류의 창시자는 김죽파의 조부인 김창조로 그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김창조가 작고한 뒤, 그의 제자가 김죽파에게 김창조의 가야금산조를 전수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최옥산류의 창시자 최옥산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의관을 정제하고 가야금을 탔다고 한다. 농사일로 단련된 굵은 손마디에 나오는 가야금 소리
는 매우 우렁차고 힘이 넘쳤으며 줄을 대단히 팽팽히 조이고 연주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의 가야금으로는 도저히 농현을 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8. 거문고산조
거문고는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 하여 정악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악기이며 선비들에게는 거문고를 익히는 것이 필수덕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문고로 민중의 음악인 산조를 연주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거문고 산조를 연주하는 선비는 선비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신분질서가 와해되고 또한 산조라는 음악의 높은 예술성이 인정받으면서 거문고 산조도 정착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거문고 산조의 대표적인 유파는 '신쾌동류', '한갑득류'이다.
9.대금산조
대금 산조는 대금시나위에서 발전하여 완성된 것과 판소리의 선율을 기악화해서 만든 것 두 종류가 있다. 원래 산조라는 음악장르가 시나위와 판소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각각 악기별 산조가 이러한 발전과정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10.해금산조
해금은 원래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악기로서 해금산조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듯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유파로는 '지영희류'와 '한범수류'가 있는데 한범수류 해금산조는 전라도 지방의 무속음악을 근간으로 한 것이며, 경기 지방의 무속음악 가락이 바탕이 된 지영희류 해금산조에서는 발랄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진다.
11.아쟁산조
성량이 크고 낮은 소리를 내는 아쟁은 정악에서 연주될 때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지만 산조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한(恨)을 느끼게 한다.
12. 산조의 발전
시나위가 제자리에 머무는 반면 산조는 유파(流派)가 생길 만큼 발전하였다. 시나위는 장단 수가 적으며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연주기회가 없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산조는 1910년 이후 완전히 형식을 갖추고 틀을 만들었으며 가야금 산조를 비롯한 여러 산조들이 모두 산조로서의 내용과 형식이 완비되었다. 산조는 계보에 따라 유파가 형성되지만 유파의 산조를 전수받아 연주활동을 계속하는 중에 자신의 가락을 추가하여 전수받은 산조를 변형시킨다. 이런 방법으로 산조는 발전하였으며, 작곡가의 작곡이 아닌 연주자의 형성에 의해 악곡이 만들어졌던 것이 우리 전통 음악의 역사이며 특수한 발전 방법이다. 판소리는 스승의 소리를 흉내낼 만큼 가깝게 노래하는 것을 사진(寫眞)소리라 하여 이를 금하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 있는 소리로 노래하고 표현하되 자신의 가락은 첨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산조의 형성과는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