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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작성자紫雲|작성시간26.06.07|조회수31 목록 댓글 0

內面에서 들려주는 소리에 충실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나를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內面에서 들려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모른 척 다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로 철학과나 국문학과를 선택하여 교육자의 길을 갔어야 했음에도 무역학과를 택하고 20년을 낭비한 후에서야 비로소 10대에 들려주었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예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돈을 벌어야만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반대하여 포기하였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좀 더 나쁜 경우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어느 방향인가를 모르는 것이다. 다소 높은 비율이 여기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것은 내가 나이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 이 문제는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천천히 살펴보겠지만, 근본적인 답은 인간은 하나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0개의 상이한 에너지로 구성되어 마구 섞여 회오리치며 에너지 덩어리들이 수시로 변하면서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제는 분명하게 법대를 지원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국문학과를 가고 싶거나 내일은 기계공학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도 모두 동일한 이유다. 이런 각도에서 살피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에너지들의 반란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며 나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주된 원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생의 업보가 끼어들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버린다.

어쩌면 내가 나이면서도 나를 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떻게 내가 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불행하게도 그렇다. 내 삶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대를 넘나들어도 철학책이 넘쳐나는 이유다. 나를 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 원인을 정리해보면 나의 존재는 10개의 상이한 에너지로 구성되어 수시로 변하기에 정체성이 수시로 달라지고 전생의 에너지까지 개입되어 시공간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더욱 복잡하게도,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식구들과 주위사람들 그리고 사회규정에 얽히고설킨다.

바로 이런 경우다.

대학을 선택할 시점에 부친이 말씀하시기를 “옆집 철수아빠는 사업을 경영하시기에 철수에게 사업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경영학과에 보낸다고 하더라. 너도 경영학을 전공하여 사업하거나, 법학을 전공하여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집안을 좀 일으켜다오.” 이런 설명은 부모가 자식의 삶을 살거나, 자식이 부모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부모는 뒷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철수는 경영에 전혀 소질이 없는데 부친의 욕망으로 적성에 맞지않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았으나 부도내고 말았다. 혹은 부모의 뜻에 따라 법대에 들어갔으나 사법고시 공부 12년 했지만 끝내 합격하지도 못하고 결혼도 못했으며 폐인처럼 살아간다. 이런 문제를 보면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 분석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내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인생을 살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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