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揣而銳之 不可長保 취이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이교 자유기구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의역: 가득 채우려하지 말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날카로움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금은보화는 절대로 지켜내지 못하며 부귀하고 교만하면 허물만 남길 뿐이다. 공을 이루면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리다. |
生氣를 머금은 생명체들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기심이다. 그렇다고 육체를 갖기 이전의 본성도 이기심이라는 것은 아니다. 빅뱅의 순간에 결정된 본성은 丁壬癸로 利己와 利他가 회오리치면서 이기에서 이타로, 이타에서 이기로 변화한다. 성선도, 성악도 아니며 선악이 한 몸통으로 회오리친다. 분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兩分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노력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이 老子가 주장하는 有爲다.
인간은 어쩌다가 이기적이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중력 때문이다. 지구가 생성되고 경계가 정해지면 텅 빈 공간에는 없었던 利己가 생겨난다. 내편과 네편을 가르고 분별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많은 것을 내 쪽으로 끌어오려는 본능을 가졌다. 老子는 이런 인간의 행위는 죽음을 재촉한다고 보았다. 중력으로 재물을 축적할수록 인체는 딱딱해진다. 죽음을 재촉하는 재물을 탐하다 죽는다. 老子는 9章에서 이런 행위를 경계하고 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지이영지 불여기이 취이예지 불가장보)
가득 채우기보다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날카로움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老子의 주장은 “自然循環圖”(마지막 章에서 다룰 것이다)로 이해하면 이치가 명확해진다. 영원한 시간을 흐르는 과정에 물질계를 상징하는 삼각형 두 개 중에서 하나의 꼭짓점은 위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아래를 향한다. 위를 향한 꼭짓점은 물질의 극점을 상징한다.
色界의 상징인 권력, 재물, 명예, 화려함 등 욕망의 극점이다. 아래를 향한 꼭지 점은 영혼의 세계요 물질계의 가장 밑바닥이다. 老子의 辱스러움이자 樸으로 본질이다. 9章에서 주장하는 의미는 위를 향한 꼭지, 인간욕망의 극점에 이르기 전에 내려오라는 것이다. 老子는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움직임과 변화는 만물을 수시로 변하게 만들어버린다. 하늘도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는데 인간의 욕망, 재물과 권력인들 유지되는가? 모두 한순간의 꿈이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금은보화는 절대로 지켜내지 못하며 부귀하고 교만하면 허물만 남길 뿐이라. 분수에 넘치는 금은보화를 지니면 악살 맞는다. 물질을 가득 채우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중 하나가 육체가 상하는 것이다. 사실 富貴 자체는 교만한 것이 아니다. 남의 것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질병이 교만이다.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그 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기에 교만해져 결과적으로 허물을 남긴다. 쉬운 예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이루면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리다. 이 章의 핵심이자 無爲의 다른 표현이다. 이 표현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무엇이 功이고 왜 몸을 뒤로 물러야 하며 그런 행위가 왜 하늘의 도리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時間의 특징을 이해하면 老子의 주장이 명확해진다. 시간(聖人)은 절대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주, 지구 어디에도 이런 이치를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이유로 우주본성은 움직임과 변화다.
권력의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추락하게 만들어버리는 주체가 時間이다. 時間이 동하고 시간이 원하는 것을 無爲로 이루고 극점에 다다르면 늙어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功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것이다. 공을 이룬 時間은 스스로 물러나 인간의 교만함을 다스린다. 중력에 휘둘린 인간은 功을 집착하고 버리지 못하기에 고통 받지만 시간은 집착하지 않는다. 하늘의 法道가 그러하다. 공을 이루면 몸을 무른다. 소유하려는 집착은 부질없다.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