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니바사 라마누잔 [Srinivasa Ramanujan, 1887.12.22 ~ 1920.4.26]
양력: 1887년 12월 22일 18시 08분
음력: 1887년 11월 08일 18시 08분
|
| |||||||||||||||||||||||||
|
|
|
76 |
66 |
56 |
46 |
36 |
26 |
16 |
6 |
運路 |
|
|
甲辰 |
乙巳 |
丙午 |
丁未 |
戊申 |
己酉 |
庚戌 |
辛亥 |
|
사망일시: 기유대운 34세, 1920년(경신년) 4월 26일, 결핵병으로 사망함.
1909년 7월 14일 10세 신부와 결혼 후 고환수술을 받음, 완쾌 후 서기로 근무.
1910년 말에 다시 병이 재발 함.
1913년 1월 16일 유명한 수학자 하디에게 편지 보냄. 2월 8일 하디가 영국으로 초청함.
1914년 4월 14일 런던에 도착함.
1918년 2월 극심한 병으로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실을 기도함. 체포되었으나 하디가 백방으로 구해 줌. 의사는 그가 채식주의자로 결핵과 심각한 비타민 부족을 진단함.
1919년 인도로 돌아 옴.
1920년 결핵으로 사망함.
수학사에서 가장 신비한 인물을 한 명만 꼽으라면 바로 인도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일 것이다.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가난한 서기로 근무하던 라마누잔은 자기가 발견한 몇 개의 공식들을 유명 수학자들에게 보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식들을 죽 나열해 놓은 그의 편지를 무시해 버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라마누잔이 발견하였다고 주장하는 수식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이었고, 그것이 제대로 증명도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아마추어들의 엉터리 수학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하디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라마누잔이 1913년 1월 16일에 쓴 편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디 정도 되는 대수학자에게 그런 엉터리 수학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디는 다른 수학자와 달리 라마누잔의 편지를 버리지 않고 티타임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심심풀이삼아 읽기 시작하였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하디는 점점 당혹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공식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공식들마다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증명하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디는 동료 수학자이며 그의 학문적 파트너였던 리틑우드에게 도움을 청해 라마누잔의 편지를 진지하고 세심하게 연구하였다.
그러고는 자신들과 전혀 차원이 다른 엄청난 재능을 가진 라마누잔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디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라마누잔의) 정리들은 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약 이것들이 참이 아니라면 이런 것을 생각해 낼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정규 수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 없이 완전히 수학책 몇 권으로 독학해서 자신의 이론과 정리들을 증명 없이 일련의 정리만 나열해 보낸 논문을 케임브리지의 대수학가 하디에서 보냈던 라마누잔. 라마누잔은 상상을 초월하는 직관의 소유자로서 수를 다루는 데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무한급수와 무한 연분수에 관한 한 당대 아니 수학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라마누잔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석에 누워있을 때의 일화이다. 하디가 병문안을 갔을 때 타고온 택시의 번호 1729 였다.
하디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미가 없는 수 같아요."
하디는 말을 하면서 1729라는 숫자가 133 X 13 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13이라는 숫자는 서양에서는 기분 나쁜 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라마누잔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아픈 와중에도 라마누잔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아닙니다. 1729는 아주 특별한 수입니다. 1729는 9와 10을 각각 세 번씩 곱한 수(세제곱)의 합입니다."
그리고 1과 12를 세 번씩 곱한 수의 합이기도 합니다. 즉, 두 가지 다른 세제곱의 합으로 나눌 수 있는 최초의 수입니다."
이 말은 들은 하디는 놀랄 뿐이었다.
스리니바사 아이양가르 라마누잔(타밀어: ஸ்ரீனிவாஸ ஐயங்கார் ராமானுஜன், Srinivāsa Aiyangar Rāmānujan, 1887년 12월 22일 ~ 1920년 4월 26일)은 인도출신의 수학자다.
[편집] 업적
정수론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원주율을 비롯한 수학 상수, 소수, 분할함수(partition function) 등을 응용한 합 공식(summation)을 많이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발견한 공식과 정리는 대부분 증명 없이 노트에 기록된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의 사후 다른 수학자들이 그가 발견한 수많은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수학 기법이 고안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끔 그의 주장은 틀린 것을 포함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소수계량함수의 정확한 공식을 찾아냈다는 주장이 있다.[1]
[편집] 생애
비교적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브라만 출신이다. 덕분에 강한 종교적 신념과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어 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체격은 뚱뚱한 편이었지만, 죽기 수년 전부터 건강이 크게 나빠져서 살이 많이 빠졌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라마누잔은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천재성을 나타냈으며 고교까지는 성적이 우수했으나, 대학에 입학한 이후 수학 이외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하여 중퇴하였다. 당시 유명한 수학자인 베이커(H. F. Baker)와 홉슨(W. E. Hobson)에게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1913년 1월 16일에 그가 발견한 복잡한 수학 정리 몇 개를 나열한 편지를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에게 보냈는데, 하디는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주목하고 그를 영국으로 초청했다. 브라만은 바다를 건너면 안 되기 때문에 크게 고민했으나, 결국 그는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한다.
영국에서 하디와 라마누잔은 공동 연구를 하였는데, 후에 하디는 자신의 최대 수학 업적을 라마누잔을 발굴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영국과 인도의 문화적 차이로 여러가지 고생을 하였고, 자살 시도도 있었다. 투철한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적절한 종류의 음식 조달을 하기 어려웠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음식의 조달이 매우 어려워서 건강을 크게 해쳤다. 전쟁이 끝나고 인도로 돌아갔으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1]
[편집] 하디-라마누잔 수
1729를 가리키며,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도 한다. 이는 하디가 라마누잔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1918년 2월 경에 입원 중이던 라마누잔을 하디가 문병했을 때의 일이다.
"타고 온 택시의 번호는 1729였어. 딱히 특징도 없는 평범한 숫자이지."
하디가 말하자 라마누잔은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매우 흥미로운 수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두 양수의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 중 가장 작은 수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1729는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1729 = 123 + 13 = 103 + 93
이는 1729가 A=B3+C3=D3+E3라는 형태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임을 라마누잔이 그 자리에서 지적한 것이다.
[편집] 자살 시도
라마누잔은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신념으로 크게 고생하였다.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1918년 겨울, 라마누잔은 런던의 어느 역에서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철로에 뛰어들었다. 기차는 급정거를 했고 그는 크게 다쳤지만, 목숨을 건졌다. 그는 체포를 면하기 어려웠으나, 하디는 자신의 지위를 총동원하여 체포된 라마누잔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1968년 11월,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찬드라세카르는 인도 국립과학원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메달을 수상하면서 그의 자살 시도를 언급하였는데, 이것이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 몇몇 사람은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한다.[1]
[편집] 잃어버린 노트
1976년 미국 수학자 조지 앤드류스(George Andrews)는 오랫동안 라마누잔을 연구해온 영국 수학자 왓슨(G. N. Watson)의 자료를 정리하던 도중, 며칠 후 폐기될 논문들 중에서 하나를 우연히 집어들었는데, 이것이 이전까지 한 번도 발표되지 않았던 라마누잔의 결과물이었다. 이것이 유명해져서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Ramanujan's lost notebook)라고 부른다. 별도의 책으로도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