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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화제인물

시라소니 (이성순) - 전설의 협객

작성자도무사|작성시간08.10.21|조회수2,913 목록 댓글 2

시라소니 (이성순) - 전설의 협객

 

 

출생 1916년 2월 29일

사망 1983년 2월 25일

신체 키174cm

직업 국내 역사인물

경력 1953년 이정재와의 사건(린치)

1948년 서북 청년단 감찰부장

 

양 력: 1916년 2월 29일

음/평: 1916년 1월 26일 남자

 

시 일 월 년

@ 丙 庚 丙

@ 申 寅 辰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辛 대운: 순행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卯

81 71 61 51 41 31 21 11 1.1

 

대운 시작: 1세 1월 8일

 

 

 

 

양 력: 1916년 4월 1일

음/평: 1916년 2월 29일 남자

 

시 일 월 년

@ 戊 辛 丙

@ 辰 卯 辰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대운: 순행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81 71 61 51 41 31 21 11 1.6

 

대운 시작: 1세 6월 5일

 

1945년(30세, 을유년) 815 해방

1949년(34세, 기축년) 결혼

1950년(35세, 경인년) 625 전쟁

1953년(38세, 계사년) 이정재 부하들에게 린치 당함, 이후 은퇴

1960년(45세, 경자년) 7월 21일 아들 이의현(목사) 출생,

1983년(68세, 계해년) 2월 25일 사망.

 

 

아래의 연표는 이성순의 아들인 이의현 목사가 만든 아버지 시라소니의 연표입니다.

 

 

1916년 2월 29일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에서 출생,

어린 이성순 미륵동 동네 신의주 정복기,

보통학교 때부터 유난히도 일본 애들을 팼다, 어린 나이에도 왜경의 감시를 받았다.

1929년

 

불곰(친일파 긴상)과의 대결 승리

1932년

 

밀무역에 뛰어 듦, 시라소니라는 이름 얻음, 기차 - 밀수, 배 - 거룻배 밀수

중국인 강도들과의 싸움, 헌병대와의 싸움, 명견 도비와의 싸움.

1933년

 

정경봉(독종 꽈리주둥이)과의 결투 승리

1934년

 

누님이 계신 상해를 다녀오다 - 술집 용심봉과의 싸움 승리,

친구를 때린 진남포 깡패들과의 싸움 승리

백두산 훈련

호랑이와의 결투

1935년

 

도박장 습격

1936년

 

평양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찾아가 결투, 승리,

평양의 이화룡, 용강의 아오끼

1937년

 

신의주 청송회관 용심봉 장손과의 대결

신의주 도피생활

신의주 헌병대장

기차도주 때 일본 헌병 때려뉘다

7월7일 대동아 전쟁

군부반장 하야시(검도3단)와의 대결 - 결투의 의미

4개월 후 신의주 일시귀국 어련 공판장 중개인 보스와 시비, 항복 받아 냄

1938년

 

외환 관리법 사건(돈배)

6월 천진 도박장 도미나 까페에서 일본헌병 3명을 때려뉘다

8월 신마적과의 대결 승리

마약장사 야마모토 사건과 18기의 명인 북경의 마오와 대결 승리

중국의 천하장사 무송과 대결 승리

1939년

 

상하이 까페에서 헌병대장과 대결 승리

새끼 손가락 사건

이상대와의 대결 승리

시라소니의 박치기에 하얼빈의 주먹짱 만가희의 얼굴전체가 함몰되다

상해 헌병대장 요시무라가 박치기를 맞고 병원에 실려가 3일 만에 겨우 깨어남

중국 거지패 오야붕 마차오

일조삼, 모일화, 고여장

1940년

 

국제 도박장사건

상해 프랑스 조계지 미국인 탈영병과의 격투

러시아 조계지 소련인 두목과 결투 승리

영국 조계지

11개 조계지 정복사

("영국/러시아 - 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 - 오스티라아/일본"을 포함한 8개국에 "벨기에/스페인/네덜란드"를 더한 11개국)

11개국 28개 조계지 최고 주먹들 장악사.

1941년

 

북경 일번지 까페에서 일본여인 지혜꼬에 관한 사건

마적단 소굴로 들어가 마적단 초토화

1942년

 

개봉 용정유원지에서 일본 특무 대원과의 결투

1943년

 

친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

일본 꼬구라 형무소수감 중 일본 최고의 주먹 이즈마 누임

1945년

 

7월 해방 15일전 천지외교 공장에서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대결 승리

8월 15일 해방

이북생활

권총을 든 러시아 대장 총성과 박치기의 대결

1946년

 

1월 남하 개성당도

2월 종로 우미관에서 최고의 주먹 김두한과 만남

    명동파 행동대장 무억을 누름

3월 인천행 인천주먹들 정복사 - 지금도 "시라소니 떴다"라는 소문에 우는 아이 들도 조용

11월 서북청년단이 조직 됨

1948년

 

봄 인천 떠나 서울도착 서북 청년단 감찰부장이 되다

10월 동국대부근 일본인 아파트

 

1949년

 

이진옥과의 결혼

백범김구 당시 국군 장교이던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

1950년

 

6월 25일 전쟁(아내 임신4개월)

호림부대(비 정규부대)창설

9월 대원활약 15일 인천 상륙 작전

HID 대원, 북상하는 아군부대의 최 선방에서 활약

10월 묵호산간 대관령 적군 30명 기습섬멸 함흥까지 북진

11월 26일 중공군 대공세

1951년

 

1.4후퇴

봄 부산에서 10명패거리에 매맞는 이정재 구해줌

이정재가 이권 도움을 청하고 도와줌으로 린치사건 전까지 생활비를 댐

1952년

 

김일환과 만나 제주도로 장도영 만남

조봉암 선거 개입 땃벌 때 물리 침

아내와의 재회

1952년

 

8월 4일 오후 조봉암 김성주와 헤어짐

황병관 살해한 마사이찌 혼냄

3.1부대창설(현공수부대) 부부대장으로 활약 미군장교와의 대결

1953년

 

이정재와의 사건(린치)

종로5가 보령약국자리 반도병원-필동단칸 집-백병원 입원

1954년

 

초봄 백병원 나섬

북쪽으로 발길 옮김 팔당 산기슭에서 복수를 준비(칼쓰기, 사격연습, 무술연마)

몇번이나 저격권안에 들어온 이정재, 하나님이 살려 줌

(HID 김일환, 내무부장관 한신)

1955년

 

인천행 질서 부두를 바로잡다

1956년

 

신익희 선거운동 / 장면 박사로부터 편지 옛 소공동에서 자리잡은 경향신문 사옥에서 만남 선거운동

4월 인천유세 3트럭의 인천 정야원(상이군인들)

당선 후 헤어짐

1958년

 

조병옥 선거운동

1960년

 

2월2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 서거

이승만 3월의 대통령과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대통령 입후보자인 조병옥이 병으로 죽음으로써 쉽게 당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데모

4월 19일 4.19의거

4월 21일 전 국무위원 사표 제출

4월 25일 대학 교수단 데모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발표

4월 27일 이승만대통령 국회에 사표 제출

4월 28일 과도 내각 수립, 4월 28일 이기붕 일가 자살

5월 29일 이승만 대통령 망명으로 끝나게 된다.

1960년

 

7월 21일 아들 이의현 태어나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한 군인들이 반공과 부패, 부정의 일소 및 국가 재건을 내세우며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혁명

이정재와의 만남 - 무릎꿇고 빎과 용서

5월 21일 이정재 등 깡패 200여명, 서울 시내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명현 교회 나가 이장수 목사님에게 권총과 칼을 바침

5월 22일 최고회의, 용공분자 2천여명, 깡패 4천2백여명 검거 발표

6월 4일 깡패 965명, 국토개발사업장에 작업 동원

8월 17일 이정재(李丁載)에게 사형이 선고되다.

사형은 9월 19일 집행되었다

 

 

3.시라소니의 본관은 무엇이며 파가 무엇인지 정확이 알려 주세요!!

 

본관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4.마지막으로 왜 유명해 졌으며 존경 받는 인물인지 알려 주세요.

 

 일제 강점기 말에 소리없이 등장하여 날쌘 몸놀림과 천부적인 싸움 감각으로 한반도의 모든 야인을 무릎 꿇린 사내가 있었다.조직없이 홀홀단신으로 무패의 행진을 이어가며 주먹계의 '황제'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었던 사내.

 

각 지역을 대표하던 야인들도 수순을 두어 형님으로 모신 사내 그가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후일 이정재의 부하들에게 집단 리치를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무패신화를 자랑하던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정재를 용서한다.

 

광활한 중국대륙과 한반도 전역을 주름잡으면서도 단 한건의 전과 기록조차 없었던 그는 이른바 "협객"으로 불리기에 이르렀으나 시간의 흐름 안에 시라소니 역시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는 아시아의 최고의 싸움꾼이었다. 3m를 도약해서 그대로 이마를 들이박는 놀라운 민첩함과 그의 당구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하체의 제공시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의연함과 태연함, 그리고 깡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할만 하다. 자신의 허벅지에 태연하게 타오르는 석탄을 잡아다 담배를 붙이고, 40:1의 싸움이라는 놀라운 전설을 남겼다.

 

 또한 그의 의리와 '협객'이라고 부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을 탓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자신을 배신하였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대범함이라 할 수있겠다.

 

 

 

 

참고로 이성순씨가 시라소니 라고 불린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못난 호랑이 새끼

어미에게 버림받은 못난 호랑이 새끼.그러나 버림받은 탓인지 그만큼 강해서 시라소니에게 붙혀진 이름.

 

2.고양이과 동물

시라소리라는 빠른 고양이과 동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성순(시라소니의 본명)이 그만큼 빠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3.살아남은 호랑이 새끼

호랑이는 고의적으로 새끼를 벼랑으로 떨어트려 살아남은 강한 새끼만을 키운다고 합니다.

이성순이 그만큼 강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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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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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무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21 음력 같기도하고....양력 같기도 하고...어느 것이 싸움꾼 사주같습니까??
  • 작성자내사랑진돗개. | 작성시간 08.10.29 서북청년단 감찰부장이라 . . 협객이란 칭호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서북청년단의 공작으로 제주도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빨갱이란 이름으로 학살당했는지를 안다면 협객이라니요? 아들되는 자가 목사라니 . . 지금의 개독교의 원류중 한지류가 서북청년단이었다는 말이 낭설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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