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 (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 Lady GaGa) 가수
출생 1986년 3월 28일 (만 25세), 미국 | 호랑이띠, 양자리
데뷔 2008년 싱글 앨범 'Just Dance'
사이트 트위터
생일은 자서전에서 2009년 4월 3일에 확인.
양 력: 1986년 3월 28일
음/평: 1986년 2월 19일 여자
시 일 월 년
@ 辛 辛 丙
@ 未 卯 寅
壬 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대운: 역행
午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87 77 67 57 47 37 27 17 7.7
대운 시작: 7세 7월 7일
현재 나이: 26 세
현재 대운: 丑
"레이디 가가, 美 여가수 중 최고 수입" 2011/12/15
연간 1천억 원 이상 벌어.. 포브스닷컴 조사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미국 여가수 중 연간 최고 수입을 올렸다고 경제전문사이트 포브스닷컴이 14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레이디 가가는 앨범 판매와 광고, 월드 투어 등으로 총 9천만 달러(한화 약 1천4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가의 수입은 2-3위인 테일러 스위프트(4천500만 달러), 케이티 페리(4천400만 달러)의 수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포브스닷컴은 이들의 변호사와 매니저, 공연기획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가수들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올린 수입을 세전(稅前)으로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비욘세는 올해 공연을 적게 했지만 앨범 판매와 향수 제품 판매 등으로 3천500만 달러를 벌어 4위, 리아나가 2천900만 달러를 벌어 5위에 올랐다.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저머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 1986년 3월 28일[8] ~ )는 예명인 레이디 가가(Lady Gaga)로 활동하는 미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행위예술가이다. 가가는 퍼기, 푸시캣 돌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뉴 키즈 온 더 블록와 같은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 가수이자 제작자인 에이콘의 노래 또한 가가가 작곡한 적이 있는데, 에이콘은 가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녀의 가창력이 매우 뛰어난 것을 알고 자신의 레이블인 콘 라이브 배급사를 통해 그녀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가가는 첫 데뷔 음반에 자신만의 새로운 곡을 담아 정식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가가는 2008년, 데뷔 음반 The Fame을 발매하고, "누구나 유명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앨범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음반에 포함된 싱글 곡 "Just Dance"와 "Poker Face"가 세계적인 각종 음악 차트에서 1위를 달성했다. 이후 리패키지 형식의 EP 음반 The Fame Monster를 발매해 데뷔 음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는데, 싱글이였던 "Bad Romance", "Telephone", "Alejandro"는 여러 나라에서 1위를 했다. EP 앨범의 홍보를 위해 가가는 1년이 넘도록 The Monster Ball Tour를 진행 해왔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률을 거둔 투어 중 하나로 남았다. 가가의 두 번째 정규 음반 Born This Way는 2011년 5월 발매되었고, 음반의 싱글인 "Born This Way", "Judas", "The Edge of Glory"는 세계 여러 주요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가가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신디 로퍼와 같은 팝 가수뿐만 아니라 데이빗 보위와 엘튼 존, 퀸과 같은 글램 락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9][1] 가가는 세계적으로 2,300만 장의 음반 판매고와 6,400만의 싱글 판매고를 올리고있다.[10] 가가는 그래미 상,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그리고 빌보드가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에 올랐으며,[11] 이외에 각종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수상했다. 또한 《포브스》가 선정하는 순위에서 가가는 매년 상위권에 오르고 있으며,[12] 《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순위에도 매년 상위권에 오르고있다.
[편집] 생애
[편집] 1986–2004: 어린 시절
레이디 가가는 뉴욕 용커스에서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저머노타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모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13] 그녀의 아버지 조지프 저머노타는 인터넷 기업가였으며, 어머니인 신시아는 그의 전자 통신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13][14][15] 가가는 일곱 살이 되어 맨해튼의 줄리아드 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16] 뉴욕에 위치한 사립 가톨릭 학교인 콘벤트 오브 더 세크레드 하트 고등학교(CSH)에 다니게 되었다.[17] 가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음악에 대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핑크 플로이드나 비틀즈, 빌리 조엘, 엘튼 존 등의 음악을 가가에게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예절 교육 차원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하면서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가가는 열세 살에 첫 번째 피아노 발라드를 작곡하였고, 열네 살 때는 오픈 믹 나이트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18][6] 열일곱 살 때는 뉴욕 대학의 티시 예술학부에 조기 지원 입학하여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6] 그곳에서 가가는 예술, 종교, 정치에 관한 주제를 담은 분석 논문과 작곡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음악 실력을 연마하였으나,[19] 1년 동안 재학하다 중퇴하였다.[18][4] 스무 살이 되어 그녀는 인터스코프 레코드에서 작곡가로 일하기 시작하였고 푸시캣 돌스와 같은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썼다. 이후 부모의 집에서 독립한 후,[20] 가가는 맥킨 펄시퍼, SG밴드와 함께 뉴욕 라워 에스트 사이드 클럽 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무대의 전형적인 로큰롤과 차별화된 음악을 원했던 가가는 대중 음악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하고 벌레스크 쇼를 시작하였다.[21] 마약을 하고 벌레스크 쇼에서 공연을 하던 그녀를 보는 아버지에 대해 훗날 가가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아버지는 몇 달간 나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끈이 달린 가죽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단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17]
가가는 함께 녹음 작업을 했던 음악 제작자 롭 후사리가 그녀의 보컬 스타일이 프레디 머큐리와 비슷한 것을 보고 1984년 퀸의 싱글 "라디오 가가"를 따서 지은 "가가" (Gaga)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다.[9] 후사리는 가가의 초기 히트곡인 "Disco Heaven", "Dirty Ice Cream", "Beautiful, Dirty, Rich"와 같은 작곡하는데 도움을 주었다.[21]
[편집] 2005–07: 활동 초기
애틀랜타의 바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가가가가는 원래 열아홉 살 때 데프 잼과 계약을 한 적이 있는데, 경영진이었던 L.A.레이드 사무실 복도에서 가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22] 그러나 가가는 레이드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22] "난 그가 내 노래에 대해 미팅을 가져 줄 것을 기대하면서 한 시간 동안 그의 사무실 밖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22] 레이드는 석 달 뒤 그녀와의 계약을 해지하였다.[22]
가가는 2년 후인 2008년 1월 음반 회사 경영진 빈센트 허버트를 통해 인터스코프와 계약을 하였다. 이것에는 음악에 대한 탁월한 재능과 회사에서 작곡가로 고용되었을 때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했던 다양한 경력 (퍼기, 푸시캣 돌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뉴 키즈 온 더 블록 및 에이콘의 콘빅트 레이블)을 인정 받은 것이 작용했다.[17] 2007년 초부터 인터스코프의 의장 지미 아이오빈은 가가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22] 그녀가 스트림라인/인터스코프를 통한 레이블 계약과 싱어송라이터인 에이콘과 곡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22] 에이콘은 자신의 트랙을 위한 그녀의 참고용 노래를 듣고 가가의 가창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3] 이에 따라 에이콘은 지미 아이오빈을 확신시켜 자신의 레이블인 콘 라이브 배급사와 그녀의 계약을 체결하였다.[22]
계약을 맺지 않은 공백 기간인 2007년 동안 레이디 가가는 자신과 비슷한 예명을 가진 라워 에스트 사이드의 락 DJ, 고고 댄서이자 행위 예술가인 레이디 스타라이트와 공동으로 작업하였다.[18] 레이디 스타라이트는 가가의 무대 의상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24] 둘은 머큐리 라운지, 비터 엔드, 록우드 뮤직 홀과 같은 도심의 클럽에서 연주 공연을 시작하였으며, 행위 예술 공연인 "레이디 가가와 스타라이트 리뷰" (Lady GaGa and the Starlight Revue)를 선보이기도 했다.[25]. "The Ultimate Pop Burlesque RockShow"라는 표현이 달린[26] 이들의 공연은 1970년대 다양하게 행해졌던 로우 파이 경향의 공연에 대한 찬사였다.[27] 2007년 8월, 레이디 가가와 스타라이트 리뷰는 미국 뮤직 페스티벌인 롤라팔루자[28] 에 초청작이 되었고, 거침없는 공연으로 관객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29] 쇼는 극찬을 받았고, 그들의 공연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6]
2008년 The Fame Ball Tour에서 "Poker Face"를 부르고있는 가가.팝 멜로디와 데이빗 보위, 퀸의 빈티지 글램 락을 믹스하는 것으로 가가는 아방가르드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 바탕을 둔 자신의 음악적 터전을 찾게 된다.[2] 레이디 가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퀸과 데이빗 보위는 나에게 열쇠였다... 그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뉴욕의 록 클럽에서 활동할 때에 많은 음반 제작사들이 나를 너무 연극적이라고 생각했고, 뮤지컬 공연을 위해 오디션을 볼 때에는 감독으로 부터 너무 팝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2] 에이콘의 협력 아래 가가는 제작자 레드원과 함께 데뷔 앨범을 위한 새로운 곡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존의 데이빗 보위와 퀸에게 영감을 받은 곡들과 일렉트로 글램을 바탕으로 가가는 그녀의 레트로 댄스 비트와 어반 멜로디, 팝 코러스, 약간의 로큰롤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이 때, 처음으로 제작한 "Boys, Boys, Boys"는 머틀리 크루의 히트곡 "Girls, Girls, Girls"와 AC/DC의 "T.N.T."의 영향을 받았다.[21]
[편집] 2008–10: The Fame과 The Fame Monster
영국에서 열린 The Monster Ball Tour 중 "Speechless"의 피아노 연주 모습.2008년 가가는 로스앤젤레스로 자리를 옮겨 레코드 레이블과 데뷔 음반 The Fame의 세밀한 마무리 작업을 마쳤다.[21] 가가는 자신의 음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The Fame은 어떻게 누구나 유명해진 것처럼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앨범이다. 팝 문화는 예술이다. 팝 문화를 혐오한다는 것이 당신을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팝을 감싸 안았고, 여러분은 The Fame을 들으며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The Fame의 유명세는 공유할 수 있는 유명세이다. 나는 여러분 모두를 파티로 초대한다. 나는 사람들이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를 느끼길 원한다."[6] 또한, 이 음반에서 "데프 레퍼드 드럼과 박수에서 어반 트랙의 메탈 드럼까지"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22] 가가는 의상과 무대 세트, 음향을 담당하는 집단인 "Haus of GaGa"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가요 업계에서는 많은 스타일리스트와 제작자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Haus of GaGa는 나만의 창작 팀이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이 26세 이하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한다."[17] The Fame은 비평가들에게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메타크리틱의 음악 평가단은 이 음반에 100점 만점에 평균 71점을 주었다.[30] 〈타임 온라인〉은 "보위풍의 발라드, 드라마틱, 퀸의 영향을 받은 미드템포 노래와 신시사이저 바탕의 댄스 트랙은 신선한 재미를 준다."고 설명하였다.[17] 음반의 대표 싱글인 "Just Dance"는 2008년 4월 8일 발매되었으며, 일곱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31] 그중 하나인 미국에서는 10월부터 라디오 방송 차트에 오르기 시작하였고, 2009년에 "Just Dance"가 1위로 등극하면서 가가의 첫 번째 미국 1위 싱글이 되었다.[32] 두 번째 싱글인 "Poker Face"는 2008년 9월 29일 발매되어 세계 주요 음악 시장을 모두 포함하여 열두 국가에서 1위를 달성했다. "Poker Face"를 통해 가가는 2009년 4월 빌보드 핫 100에 이전 싱글에 이어 1위에 올랐다.[33]
2010년 The Monster Ball Tour "Eh, Eh" 공연 중.The Fame은 오스트리아,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에서 음반 차트 1위를 기록하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34][35] 이후에 Haus of GaGa가 미국 시장에 더욱 중점을 두면서 가가는 당시 컴백한 인터스코프 소속의 팝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과 함께 첫 콘서트 투어를 가졌다. 2008년 10월 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뉴 키즈 온 더 블록과 공연을 시작하였으며, 11월 말까지 계속되었다.[36] 그녀는 그룹의 새 음반 The Block의 수록곡 Big Girl Now의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37] 2008년 10월 말에 가가는 미국에서 The Fame을 발매하였고, 빌보드 200에서 17위로 데뷔하였다. 음반은 첫 주에 24,000장이 팔렸으며,[38] 순위에서는 최고 2위까지 올라간 바 있다.[39] 당시 전 세계에서는 약 230만 장이 판매되었다.[40] 이러한 인기 속에 2008년 12월 5일, 가가는 최고의 떠오르는 가수를 소개하는 BBC 2009년의 사운드 목록에 올랐다.[41] 2009년 1월부터 5월까지 가가는 푸시캣 돌스의 유럽과 오세아니아 지역 투어의 서포트 공연을 해왔다. 투어는 1월 18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을 시작으로 5월 30일 오스트레일리아 퍼스를 마지막으로 종료하였다.[42] 가가의 "Just Dance"는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댄스 레코딩 부문의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다프트 펑크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가 받았다.[43] 2009년 2월 18일 가가는 록 밴드 더 킬러스의 브랜든 플라워즈와 함께 2009년 BRIR 어워즈에서 전자 댄스 듀오 펫 샵 보이즈의 무대에 참여했다. 펫 샵 보이즈는 가가와 플라워즈가 그들의 마지막 순서인 1985년 싱글 "West End Girls"에 참여하였을 때 인기를 끌었던 노래의 메들리를 공연하였다.[44] 가가의 첫 북아메리카 투어 공연인 The Fame Ball Tour는 2009년 3월 12일 시작하였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45][46] 사전에 가가는 팬들에게 다가올 공연에서는 높은 수준의 극적인 요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팝 엔터테인먼트 예술, 멀티미디어, 패션, 기술, 영상, 영화와 같은 앤디 워홀 컨셉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공연에서는 이러한 영역들을 모두 보여줄 것이며, 박물관 쇼를 보는 체험이 될 것이다."[47] 5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푸시캣 돌스를 위한 합동 공연을 하면서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푸시캣 돌스보다 그녀의 공연이 주목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었다.[48][49] 북 아메리카 공연이 끝나자 2009년 8월 9일에는 대한민국 서울의 올림픽공원 올림픽 홀에서 공연을 하였다. 또한 공연 중 입은 의상은 〈롤링 스톤〉지의 2009년 5월 표지에서 플라스틱 비누 거품 의상을 입은 세미누드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40][50]
이후 리패키지 형식의 EP 음반 The Fame Monster를 준비하게 되고 첫 싱글 "Bad Romance"를 발표하는데, 미국에서는 안타깝게 2위를 차지했지만, 영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등 약 18개 나라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인기를 이어갔다.[51][52] 연이어 세 번째 싱글 "Telephone"을 발매한다. 이 곡은 미국의 알앤비 가수 비욘세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으로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그외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독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도 탑 3위권안에 드는 매우 성공적인 성적을 기록하였다.[53] 또한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가 함께 출연한 "Telephone"의 뮤직비디오는 공개된지 12시간만에 50만건이 넘는 인터넷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54] 그리고 2010년 열린 영국의 음악시상식인 브릿 어워드에서 3개 부문에서 후보로 올랐는데, 3개 부문 모두 수상을 하여 브릿 어워드를 휩쓸었다.[55]레이디 가가는 현재 The Monster Ball Tour를 진행하는 중으로 2011년 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편집] 2011–현재: Born This Way
2011년 GMA 콘서트에서 "The Edge of Glory" 공연중의 가가.
레이디 가가는 2010년 3월 MTV 영국의 인터뷰에서,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음반을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미 핵심작업은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3개월 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규 음반 작업은 모두 마쳤지만, 2011년 초에 발매된다고 밝혔고 새 음반의 제목은 새해 자정에 발표한다고 말했다.[56] 이후 앨범의 첫 싱글이자 리드 싱글인 "Born This Way"는 2011년 2월 11일 공개할 예정으로 하루 전 날, 싱글의 커버 사진을 공개했다.[57] 2월 12일 가가의 새로운 싱글 "Born This Way"가 발매되었고, 2월 13일 제53회 그래미 상에서 첫 공연 무대를 펼쳤다. 이날 공연은 거대한 알속에서 레이디 가가가 등장해 노란색 란제리 룩을 입고 공연을 펼쳤고,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Born This Way"는 빌보드 핫 100의 19번째 1위 데뷔 싱글이 되었고, 빌보드 핫 100 차트 1000번째 1위 노래라는 기록을 세웠다.[58] 또한 발매되자마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위권에 진입했고, 아이튠즈에서 5일동안 100만 건을 판매하여 아이튠즈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싱글로 기록되었다.[59] 또한 가가는 엘튼 존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 《노미오 앤 줄리엣》의 OST "Hello Hello"를 녹음했고, 2011년 2월 11일에 발매되었다.[60][61]
2011년 4월에는 두 번째 싱글 "Judas"를 발매했다.[62] 세 번째 싱글은 "The Edge of Glory"로 2011년 5월 발매되었고, 빌보드 핫 100 3위로 데뷔했다.[63] 뿐만아니라 프로모션 싱글인 "Hair"도 발매했다.[64] 같은 시기 가가의 두 번째 정규 음반 Born This Way가 발매되었고 미국에서 발매 첫 주 1,108,000만 장을 팔아치워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다.[65] 뿐만아니라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정상으로 데뷔했다. 음반은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보컬 범위로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66][67] 2011년 6월 13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시드니 타운 홀에서 Born This Way 홍보를 위해 콘서트를 했다.[68] 이후 2011년 8월, 네 번째 싱글 "You and I"를 발매해 빌보드 핫 100 6위까지 진입했다.[69] 또한 가가는 1,3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고, 2008년 싱글인 "Poker Face"가 빌보드 핫 디지털 송에서 83주째 존재하고있어 2012년 판 기네스 북에 등재 되었다.[70] 가가는 미국이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 65세 생일파티이자 "윌리엄 J 클린턴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했다.[71] 2011년 11월에 열린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가가는 "Born This Way"로 최우수 노래, 최우수 비디오 부문에서 수상을 했고, 이외에 최우수 여성 아티스트, 최다 팬을 수상해 4관왕을 하며 최다 수상을 했다.[72] 같은 시기, 다섯 번째 싱글 "Marry the Night"을 발매했다.
[편집] 예술가적 기교[편집] 음악 스타일 및 영향
가가는 데이빗 보위와 엘튼 존, 퀸과 같은 가수 뿐만 아니라 주로 대중 음악 가수와 매혹적인 행위 예술가들인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브리트니 스피어스, 마이클 잭슨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9][1][73] 한편, 레이디 가가의 본명은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제르마노타'지만 퀸의 노래중 "Radio Ga Ga"에서 영감을얻어 '레이디 가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한다.[74] 가가는 마돈나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지만, 팝 음악에 대변혁을 일으키는게 내 목표였다. 마돈나는 이미 25년 전 혁명을 일으켰다"라고 말했다.[73] 이 외에 배우이자 가수인 그레이스 존스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고, 밴드 블론디의 맴버 데비 헤리도 함께 언급했다.[75][76][77]
레이디 가가는 콘트랄토 보컬 범위를 가지고있다.[78] 가가의 음악 구조는 유럽의 고전적인 1980년대와 1990년대 에코 클래식에 기반을 두었으며 가가의 보컬 성향은 가끔 마돈나 및 그웬 스테퍼니와 함께 비교됐다.[79] 《더 선데이 타임즈》에서 가가의 데뷔 앨범 The Fame에 대해 "이 앨범은 패션, 예술, 음악을 모두 결합한 앨범으로 마치 한참 전성기 시절의 마돈나와 "Hollaback Girl" 때의 그웬 스테퍼니, 2001년도의 카일리 미노그, 그리고 지금의 그레이스 존스를 연상케 한다"라고 리뷰했다.[80]
[편집] 패션과 성과
The Fame Ball Tour에서 플라스틱 거품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가가.가가의 독특한 패션과 퍼포먼스는 많은 화제가 되었다. 음악 못지 않게 비주얼적인 측면을 강조하는[9] 그녀는 스스로 "패션에 빠져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였다.[17][81]
“ 나는 '의상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 곡을 다 쓴 후 어떤 비디오를 만들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곡을 쓰면서 비주얼 요소를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와 사람에게 보이는 비주얼은 하나의 완성된 세트이며, 의상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말은 모든 것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일종의 나만의 은유인 셈이다.[82] ”
《타임즈 온라인》에서는 자신의 패션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고 한결 같이 멋졌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15] 가가는 또한 베르사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자신의 많은 영역에 영감을 준다고 설명하였다.[17] "베르사체는 상징적이고 강렬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지지만, 그녀는 분명히 도발적인 매력이 있다."[17]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멜리사 막사사이는 가가의 패션을 예로 들면서, 그녀가 도나텔라의 도플갱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하였다.[83] 막사이사이는 "그녀가 상하의를 동시에 입기를 싫어한다거나…샴페인을 마구 들이키고 수영복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도나텔라스럽다."고 평가하였다.[83] 가가는 그녀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창작 집단 "Haus of Gaga"을 통해서 패셔너블한 옷과 무대 소도구, 가발 등을 준비한다.[84]
화제가 되었던 투명한 수녀 복장을 입은 가가.
2008년 말 경에는 가가와 미국의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스타일과 머리 모양, 메이크업이 유사한 것을 들어 패션 감각의 비교가 화제가 되었다.[17] 아길레라는 후에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주장하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다"고까지 말하였다.[17] 가가는 언론이 이러한 비교에 관심을 가져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며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85] "그녀와 같은 대스타라면 나는 꽃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까지 내가 누군지 알지 못했으니까. 이것은 정말 나를 지도에 있는 길에 세워준 것과 같다."[86][85] 그러나, 나중에 가가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스캔들"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며, "누구도 나를 베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베껴질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17][85] 가가는 원래 갈색 머리를 가진 브루넷으로, 2008년부터 머리를 염색하였다. 《타임즈 온라인》에 따르면 가가는 같은 싱어송라이터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였다고 한다.[15]
그녀의 이미지와 패션 감각은 패리스 힐튼과 니콜 리치와 같은 명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87] 최근의 연구에서는 가가의 영향으로 영국의 니커스 소비가 25% 증가하였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란제리 전문가 아네트 워버튼에 따르면, 16세 이하의 여성 청소년들이 검은 속옷을 구입하여 핫 팬츠처럼 입는 것은 가가의 스타일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88] 2009년 5월 《롤링 스톤》 지에서는 가가가 자신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영향을 받은 바이섹슈얼 성향임을 밝힌 것이 이슈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성적 취향에 다른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게 되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말하였으며, " 단지 물리적으로 타인에게 끌리는 것일 뿐, 한번도 여성과 사랑에 빠진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89] 한편, 2010년 9월 열린 2010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생고기 드레스를 입고 나와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90] 이 생고기 드레스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0년 올해의 아이디어로 선정되었고,[91]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박제를 거쳐 가가의 어린 시절 피아노와 함께 "Women Who Rock: Vision, Passion, Power"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있다.[92]
2010년 5월 미국의 시사 잡지인 타임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온라인 투표로 진행한 결과 레이디 가가는 5위에 선정돼 그 영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였다.[93] 또한 가가는 페이스북 팬 수가 1000만명에 거의 도달하였고,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도 1천만명이 넘는 정도로 살아있는 인물 중 가장 유명함을 확인시켜주었다.[94] 2010년 10월에는 유튜브사상 조회수가 10억을 돌파해 아티스트로서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는 하루 평균 180만명의 사람들이 동영상을 관람한 결과이다.[95] 또한 가가는 2010년 빌보드가 발표한 연말 차트 중 최고의 가수로 선정되었고, The Fame과 The Fame Monster는 각각 4위와 13위에 올랐다.[96] 한편, 미국의 사우스 캐롤리나 대학에서는 레이디 가가의 인기를 사회학으로 다루는 강의가 2011년 1월 개강할 예정이다.[97]
[편집] 자선 활동
연설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 (2009년 10월 11일)레이디 가가는 음악 활동뿐만아니라 여러 곳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티 지진 참사를 돕기 위해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5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이 금액은 가가의 콘서트와 쇼핑몰의 수익이였다.[98]
가가는 에이즈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많은 활동도 해오고 있는데, 세계 에이즈 날을 맞아 앨리샤 키스를 비롯해 유명 팝 가수들과 함께 '어 차일드 얼라이브'의 자선기금모금 활동을 돕기위해 디지털 생명의 희생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때문에 100만 달러를 모을때까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디지털 생활을 끊었었다.[99] 또한 신디 로퍼와 함께 '맥 비바글램 캠페인의 2010 홍보대사'로 선정 돼 "이제는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은 여성들을 위해 변화를 가져올 때"라며 에이즈에 대한 예방과 퇴치 활동을 했다.[100] 《에스티로더》는 맥 비바 글램 캠페인으로 레이디 가가 립스틱을 출시했고, 50여억 원을 벌어들여 모든 수익금은 맥 에이즈 펀드에 기탁했다.[101] 이러한 동성의 인권 보호, 에이즈에 대한 활동 등으로 2010년 자선 활동을 가장 많이 펼친 사람 1위로 뽑혔다.[102]
2011년에는 일본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우리는 일본을 위해 기도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팔찌를 직접 디자인해 판매수익금 전액을 지진피해 복구에 기부할 예정이다.[103] 이 구호 팔찌는 하나에 5달러 가격으로, 판매한지 3일만에 약 3억 원을 벌어들였다.[104]
[편집] LGBT 옹호
레이디 가가가 초기 활동때에 게이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가가는 게이 아이콘으로써 자리를 잡았다.[105] 또한 초기 활동때,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 "나는 게이 커뮤니티를 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렇게 많은 게이 팬들이 나를 위해 충성을 하고있다. 그들은 나를 진짜로 좋아한다. 나도 항상 그들의 편이 될것이다."라고 말했다.[106] 가가는 이미 양성애자임을 밝혔고, 게이 커뮤니티에서 팬들을 '아웃사이더의 군대'라고 표현했다.[107] 미국의 TV 앵커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심지어 남자 친구와 같이 있을 때도 여성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여성과 함께 자봤으면한다고 밝혔다.[108] 이때문에 게이들을 지지하는 많은 활동을 펼쳤는데, 2009년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게이와 레즈비언 시민들의 동등한 인권을 위한 행사에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109] 미국에서 게이들은 군대에 지원을 하지 못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평등은 미국을 상징하는 가치다. 하지만 게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가진 가장 값진 가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폐지 의사를 밝혔다.[110] 또한 동성간의 결혼 허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동성 커플 주례를 보기도 했었다.[102] 동성애 옹호 단체 《오렌지 카운티 이퀄러티 프로젝트》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펼친 인기 투표에서 22%의 투표를 받아 3위로 선정되었다.[111]
한편, 군대 관련 정책을 반대하는 포틀랜드 집회에 참여해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군의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섰다. 만약, 국회와 대통령이 이 정책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우리 군이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지를 명확해 해줘야 할 것이다."라며 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했다.[110] 또한 가가의 많은 노래와 뮤직비디오에는 동성애에 관한 코드가 많이 나오는데, "Telephone"의 뮤직비디오에 여자 죄수들끼리 동성애, 살인 등으로 방영 금지를 당하기도했다.[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