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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화제인물

안토니오 가우디

작성자夏河|작성시간06.06.07|조회수265 목록 댓글 0
안토니오 가우디 1852년 양력 6월25일 오전 9시30분. 스페인 출생.

1874년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 입학. 재학 때부터 비라르와 폰트스레같은 유명한 건축가의 일을 거들면서 실무를 배웠다.
78년 졸업 후 마타로의 《노동자협동조합기계공장(1882)》의 설계를 비롯해 활발한 설계활동을 시작하였다.
《비센스 저택(1885)》 《엘카프리초 별장(1885)》 《핑카그엘(1888)》 《그엘저택(1889)》 등이 그의 초기 작품이며, 모두 에스파냐 특유의 이슬람계 디자인이 투영되어 아름다운 장식적 세부를 지니고 있다.
83년에는 비라르에 이어 인수받아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 설계 책임자가 되고 이 일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90년대에는 《산타테레사 여자수도원학교(1894)》와 《아스토르가의 감독교회 주교관(1893)》 《레온의 보티네스저택(1894)》 등을 건축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고딕계의 디자인이 자주 도입되었다.
1900년을 경계로 그의 설계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즉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건축양식 제약에서 벗어나 대담한 구조에 의한 공간과, 분방한 의장·장식을 지닌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엘 공원(1900∼14)》 《콜로니아그엘성당(1908∼14;지하제실의 실현》이 여기에 속하는데, 특히 넓은 공간을 덮어씌우는 건물 설계에서 독창적인 구조적 처리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1883년 이래 착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은 필생의 역작으로, 최초로 지하제실을 완성시킨 후 앱스(apse)의 외벽면, 부속유치원, 그리스도의 강림을 상징하고 있는 동쪽 트란셉트(transept)의 파사드(facade;집의 정면)와 4개의 탑 등을 완성시켰다.
1926년 6월7일 전차에 받혀(병인년 갑오월 정묘일) 10일(경오일) 사망.

세상이 가우디를 처음 주목하게 된 건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가우디가 출품한 독특한 디자인의 진열장이 사람들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발견한 에우세비 구엘은 최대의 스폰서가 된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31살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설에 참여한 이후, 생의 만년엔 기독교도로 살면서 성당에서 먹고 자며 일에 빠져 살았다. 가끔 시내로 나갈때면 그의 부랑자같은 행색 때문에 행인들이 푼돈을 적선해 줬다는 일화도 있다.


丁 戊 丙 壬 男
巳 午 午 子

74 64 54 44 34 24 14 4
갑 계 임 신 경 기 무 정
인 축 자 해 술 유 신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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