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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화제인물

존 메릭 - 엘리펀트 맨 - 기형적인 체구 - 무덤 발견

작성자도무사|작성시간19.05.07|조회수73 목록 댓글 1

존 메릭 - 엘리펀트 맨

조지프 케리 메릭(영어: Joseph Carey Merrick, 1862년 8월 5일 ~ 1890년 4월 11일)은 본명이 아닌 존 메릭(John Merrick)으로 알려졌고, 심각한 기형적인 체구를 가져서 엘리펀트 맨(Elephant Man)라고 불려 인간의 호기심으로 전시된 영국인이다.


양 력: 1862년 08월 05일

음/평: 1862년 07월 10일 남자


시 일 월 년

@ 辛 丁 壬

@ 卯 未 戌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戊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酉 申

91 81 71 61 51 41 31 21 11 1.12


사망일자: 1890년(29세, 庚戌대운 庚寅년) 4월 11일 사망함. 질식사로 추정함.


흉측한 외모에도 빼어난 지성 '엘리펀트 맨' 무덤 "129년 만에 확인"

[서울신문] 임병선 기자 입력 2019.05.06.


1980년 영화 ‘엘리펀트 맨’의 한 장면.

영화 ‘엘리펀트 맨’을 기억하는지?


1980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연출하고 앤소니 홉킨스, 존 허트, 앤 밴크로프트, 존 길거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연기한 작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뼈와 피부 세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측한 외모를 지녔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지성과 감성을 겸비해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조셉 메릭을 다뤘다.


그런데 메릭이 1890년 세상을 떠난 지 129년 만에 묘비명도 없었던 그의 무덤이 확인됐다고 영국 BBC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실 그의 유골은 런던왕립병원에 해부 교육용으로 보존돼 있다. 그의 전기를 집필했던 작가 조 비고르먼고빈은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에 그의 피부를 묻은 무덤이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기구한 일생이었다. 1862년 8월 레스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정상적인 발육을 하지 못했다. 레스터에서 품팔이로 살다 1884년 돈을 받고 기이한 외모를 갖춘 이들을 보여주는 프릭(freak)쇼 극단을 따라 유랑했다.


번 돈을 모두 빼앗기고 극단에서 쫓겨난 뒤 1886년 6월 런던에 도착, 프레드릭 트레베스 박사를 만나 런던 동부 화이트채플에 있는 런던병원에 방 하나를 얻어 박사의 관찰 대상이 됐다.


머리는 91㎝나 됐으며 오른 손목이 30㎝, 손가락 하나의 길이가 13㎝였다. 병원 직원들은 그의 지성과 감성에 깜짝 놀랐다.


1887년 5월 웨일스 공주 알렉산드라가 병원을 찾아 그를 만난 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기도 해 일약 비주류(마이너리티) 유명인사가 됐다.


1890년 4월 11일에 짧은 생을 마쳤는데 잠자리에 누우려다 머리 무게에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많은 연구자들은 희귀 유전질환인 프로테우스 신드롬이 이런 신체 기형을 낳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비고먼고빈은 그의 피부가 어딘가에 묻혔다는 얘기를 듣고 여러 공동묘지들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다 포기할까 싶었던 순간,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았던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에게 당한 희생자들과 같은 묘지로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리퍼 희생자 둘이 묻힌 에핑 포레스트 근처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의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 앞뒤로 8주 정도를 뒤지기로 했는데 두 번째 쪽에 조셉 메릭의 이름이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꼼꼼한 기록은 이 무덤이 엘리펀트 맨의 것임을 “99% 확신”하게 해줬다고 그녀는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1890년 4월 24일 안장됐다. 사망 장소는 런던병원, 나이는 28세. 부검 의사는 윈 백스터로 메릭의 주검을 조사했던 의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엘리펀트 맨’ 조셉 메릭의 전기를 썼으며 그의 피부가 묻힌 무덤을 찾아낸 조 비고먼고빈이 헌화하고 있다.조 비고먼고빈 제공


공동묘지는 이제 공용 추모정원으로 작게 만들어졌는데 비고먼고빈은 당국이 조그만 명패를 세워 그가 묻혔음을 알리고 있다며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나아가 “고향인 레스터에서 그를 추모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는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조지프 케리 메릭(영어: Joseph Carey Merrick, 1862년 8월 5일 ~ 1890년 4월 11일)은 본명이 아닌 존 메릭(John Merrick)으로 알려졌고, 심각한 기형적인 체구를 가져서 엘리펀트 맨(Elephant Man)라고 불려 인간의 호기심으로 전시된 영국인이다. 그는 그가 왕립 런던 병원에 살게 된 이후에 영국 사회에 잘 알려지게 되었다.


메릭은 레스터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삶의 처음 몇 년간 비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피부는 딱딱하고 혹투성이가 나타났고, 그의 입술의 확대는 발전되었고, 그의 이마에 뼈 같은 혹이 자랐다.


그의 팔 한쪽과 양쪽 발은 확대되었고 그의 어린 시절동안의 어떤 시점에 그는 그의 엉덩이가 아프는 것을 느끼고, 다리를 절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그가 11살일 때, 그의 어머니는 죽었고 그의 아버지는 곧 재혼했다. 메릭은 12살에 학교를 떠났고, 직장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거부로, 그는 집을 떠났다. 1879년 말, 17살의 나이에, 메릭은 레스터 연합 구빈원에 들어갔다.


1884년, 구빈원에서의 4년 이후에, 메릭은 샘 토르라는 이름을 가진 쇼맨과 접촉하고 토르가 그를 전시하는 걸 제안했다. 토르는 동의했고, '디 엘리펀드 맨'이라는 이름의 메릭을 감독할 집단이 준비되었다.


미들렌드 동부지역의 순회 이후에, 메릭은 쇼맨 톰 노르만이 빌린 화이트채플 가의 싸구려 극장 가게에서 전시되기 위해 런던을 순회했다. 왕립 런던 병원으로부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노르만의 가게에 외과의사 프레데릭 트레베스가 방문했고, 조사하고 사진 찍기 위해 메릭을 초대했다.


곧 메릭의 병원 방문으로, 톰 노르만의 가게는 경찰에 의해 닫혔고, 메릭의 담당자들은 그를 유럽 순회를 위해 보냈다.


벨기에에서, 메릭은 그의 로드 매니저에게 털렸고 브뤼셀에서 버려졌다. 그는 결국 런던에 되돌아가기 위한 그의 길을 만들었다. 대화가 불가능해서, 그는 그에게 있던 프레데릭 트레베스의 카드를 가짐으로 인해 경찰이 찾았다. 트레베스는 왔고 메릭을 런던 병원에 가도록 했다.


그의 상태는 치료할 수 없었지만, 메릭의 나머지 삶을 위해서 병원에서 머무는 것이 허용되었다. 트레베스는 매일 그를 방문했고 바르게 발전된 상당한 우정을 가졌다. 메릭은 또한 알렉산드라를 포함한 런던의 부유층으로부터의 방문을 받았다.


메릭은 1890년 4월 11일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공식 사망 원인은 질식사였고, 트레베스는 메릭은 목 탈구의 인한 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믿었다 메릭을—그의 머리 무게 때문에 앉아서 자야 했다고—'다른 사람들 처럼' 자려고 눕기 위해 시도해야 했다.


메릭의 기형의 정확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20세기 동안의 우세한 의견은 메릭은 신경섬유종증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1986년, 프로테우스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의견이 나타났다. 2001년 메릭은 신경섬유종증과 프로테우스 증후군이 동시에 발생한 것이 제시되었다. DNA 검사를 그의 머리와 뼈에서 했고 입증에 이르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1979년, 메릭에 관한 베르나드 포메런스의 희곡의 이름은 '디 엘리펀트 맨'이었고, 다음 해 발표된 데이빗 린치의 영화 또한 '디 엘리펀트 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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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무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09 미월 더운 계절에 태어난 신금일주로..뿌리가 미술토인데...전부 화기를 품은 토인지라... 일간이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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