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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화제인물

정수라 (정은숙) - 가수 - 전 남편 사업으로 전 재산 날려

작성자도무사|작성시간19.11.27|조회수320 목록 댓글 2

정수라 (정은숙) 가수

출생음력 1963년 10월 28일, 서울

소속사제이뮤직컴퍼니

학력진선여자고등학교 졸업

사이트팬카페

 

양 력: 1963년 12월 13일

음/평: 1963년 10월 28일 여자

 

시 일 월 년

@ 庚 甲 癸

@ 寅 子 卯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乙

戌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丑

98 88 78 68 58 48 38 28 18 8.4

 

현재 나이: 57 세 (2019년 기해년)

대운 시작: 8 세 4 월 21 일

현재 대운: 巳  

 

정수라 고백 "前 남편 사업자금 지원으로 20억 날려"

다자털타임스 디지털뉴스부 입력: 2019-11-26

 

'밥은 먹고 다니니' 가수 정수라가 2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날렸다고 고백했다.

 

정수라는 지난 25일 방송된 SBS플러스 예능프로그램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해 "잘 되길 바라며 남편의 사업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며 이같이 고백했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하나의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했었다"며 "결혼이 실패로 돌아갔다."난 사랑이었는데 그쪽은 아니었더라"라고 말했다.

 

정수라는 남편의 사업자금으로 6년간 20억 원을 지원했다며 "2011년부터 별거 생활을 했지만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 그동안의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엄마 집이 걸려 있는 문제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지만 경매로 넘어가 해결 방법이 없었다"고 한 정수라는 "한 달 반 동안 소주와 라면만 먹었다. 도저히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수라는 "매일 술을 마시며 정리했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몸도 망가졌다"며 "하지만 엄마랑 언니 때문에 결국 못 했다"고 했다. 정수라는 이어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렸는데 그 돈으로 엄마가 적금을 부었더라. 적금을 빼서 5000만원을 내 손에 쥐여주더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정수라는 2005년 지인의 소개로 사업가를 만나 2006년 결혼했다 .하지만 2012년 자격이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음 배서란에 대표이사 서명을 해 5억5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듬해인 2013년 결혼 7년 만에 결국 이혼했다.

 

정수라는 "작년에 빚을 청산했다"며 웃어보였다. "다시 사랑하고 싶냐"는 김수미의 질문에는 "아직은 남자가 무섭다"고 답했다.

 

정수라

 

본명 정은숙

출생 1963년 12월 13일 (55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 가수, 작사가

장르 록, 발라드

활동 시기 1974년 ~ 현재

가족 오빠 정태식

종교 불교

소속사 제이뮤직컴퍼니

 

정수라(丁秀羅, 본명: 정은숙, 1963년 12월 13일(음력 10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라이브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한 그녀는 1974년 당시 12세 나이로 CM송 《종소리》를 발표하여 첫 데뷔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에는 남성 가수 김현준의 오리지널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 대한민국》, 가수 싸이가 리메이크한 《환희》 등이 있다. 2010년 이후 산림청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생애[편집]

 

정수라는 서울에서 1963년 12월 13일(음력 10월 28일)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1974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함중아 작곡의 《종소리》를 불러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데뷔하고 난 뒤 주로 광고노래(CM송)과 만화영화 주제가등을 부르면서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였다. 이후 서울 한양여자중학교와 진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정수라는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3년에 전두환 정권 시절 국내 가수들의 음반에는 무조건 건전가요를 녹음하여 수록하게 하였는데 정수라는 그 때 발표한 음반의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스타덤에 올라 전성기를 누렸다. 그 해에는 정수라 이외에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이동기의 《논개》도 건전가요로서 성공한 곡들이 있었다. 1984년에도 노래 《풀잎 이슬》로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85년에 구창모와 함께 제 1회 아시아 방송연맹 가요제에 듀엣곡 《아름다운 세상》으로 참가하여 대상을 차지하였고 나미, 이선희 등 80년대 가요계에 여성 트로이카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정수라는 1986년에 영화 《외인구단》의 주제가로 삽입된 노래 《난 너에게》를 부르면서 영화삽입곡으로는 두 번째로 빅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 곡으로 한국 여자 톱가수 대열에 올랐으며 10번째 MBC 10대 가수상 후보로 올랐던 이은하를 제치고 데뷔 이래 최초로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그 해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988년 기성가수들이 많은 히트곡을 낳아 가요계의 호황기를 이루었는데 정수라도 《환희》라는 신나는 곡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 작업을 하였으며 세계적인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형 저메인 잭슨과 듀엣으로 팝송을 불러 세계시장에 진출하였다. 정수라는 다른 가수와 달리 힘있는 목소리가 특징으로 여러 히트곡을 노래하며 1980년대를 풍미하였다.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을 해오다 2008년에는 3년만에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우리둘이》의 트로트곡으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트로트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9년에는 정수라밴드를 결성해 신나는 모던 록인 《Beautiful Day》음반을 발표하여 많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 새롭게 편곡을 한 《난 너에게》, 《도시의 거리》등을 내놓았다. 2012년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사랑을 다시 한 번..》음반을 발표하였다. 《사랑을 다시 한 번..》은 유명한 작곡가 조영수가 작곡하였으며, 이별의 아픔을 표현한 곡으로 정수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력[편집]

서울장충초등학교

한양여자중학교

진선여자고등학교

 

사건[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3년 7월 29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1984년 4월 28일, 당시 한국연예인협회의 회장 이상우는 정수라를 협회에서 제명처분을 논의하였다. 그 이유는 정수라가 4월 26일에 구로공단의 공설운동장에서 가난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노인들의 합동결혼식의 축가를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민정당의 국회의원이 주관한 이 결혼식에 정수라가 불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정수라는 미국에서 음악작업을 하던 시기에 "재벌의 아들을 몰래 낳아 500억 원을 받고 쫓겨났다"는 소문과 동시에 "김완선과 동서 지간이다", "재벌의 장례식에 정수라가 선글라스를 쓰고 왔었다"는 등 각종 악성 루머로 한동안 화제를 모았으며, 언론과 방송을 통해 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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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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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무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27 금수식상격에...관성은 희신인데... 이 분 사주는 관성이 기신이네요.....
  • 작성자chfhrdl | 작성시간 19.11.27 여자 연예인분들...호갱님으로 남자들에게 걸려들어
    안했으면 좋았을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남자들 대부분 연예인이라 잘벌어들이는 돈에 목적을 두고 여자를 털어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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