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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목회

편지를 쓰세요, 376번째 - 나는 지금 누구로 있나?

작성자바람|작성시간26.06.13|조회수38 목록 댓글 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드디어 능소화가 핍니다.

서재에서도 보입니다.

골목 옆집 능소화는 꽃 색이나 꽃과 줄기 모양이 다릅니다.

꽃도 일찍 피고요.

집 앞 버스 정류장, 벽화 그린 기와집 담장에 눌어진 능소화가 교회 능소화와 비숫합니다.

 

능소화를 반기며 편지를 쓰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지금 누구로 있나?

“진정한 자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삶을 살고 말하는 때가 언제인가?”

90% 이상 에고로 있고, 가끔 참자아로 있는 게 아닐까,

언젠가 그렇게 나눈 적이 있습니다.

엊그제 영적 동반 공부 모임에서, 거꾸로랍니다.

보통 참자아로 있고 분리된 자아 감각은 착각이라, 그래서 거짓 자아?

그런가, 아직도 갸우뚱~

 

<향심기도 심화의 길>을 읽고 토론하다 생긴 일입니다.

저는 향심기도에 거룩한 단어만 쓰고 있는데,

거룩한 호흡도 있고 거룩한 바라봄(glance, 힐끗 봄)도 있습니다.

거기다 거룩한 무(無)까지, 모두 거룩한 상징입니다.

거룩한 상징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신비 앞에 현존하기 위한 구명조끼!

사람은 각기 다른 감각을 바탕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고유한 방식(학습 유형)이 있으니,

3가지 주요 감각 기관인 청각, 운동감각, 시각 중 어느 것을 통해 가장 잘 학습하는지?

저는 시각, 여러분은?

거룩한 단어는 청각적 학습자,

거룩한 호흡은 운동감각 학습자,

거룩한 바라봄은 시각 학습자에게 자연스러운 상징~

거룩한 상징의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누구신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는 점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물론 향심기도의 요점은 ‘거룩한 상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 신비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96쪽)

향심기도는 모든 체험을 내버려 두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과 타인‧모든 생명과 분리된 제한된 자기감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거룩한 상징으로 수행하든, 깊은 자기 비움(케노시스)이 요구됩니다.

자기 포기를 통해 그리스도와 합일하라!

자기 죽음 속에서 하나님과 합일한다!

 

골 3:3-4)

“사실 여러분은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내 생명인 그리스도, 지금 나는 그리스도로 있나요?

샬롬~

202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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