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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논어 계씨 이야기

작성시간16.07.27|조회수384 목록 댓글 1





논어
季氏
이야기








논어(論語) 계씨( 季氏)  이야기


논어 20편중 16번째가 季氏篇이 있고
그 외 八佾篇을 필두로
孔子가 계씨를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노나라 15대 환공(桓公)은 아들이 넷 있었는데
둘째가 장공으로 봉해지고
첫째 맹손씨, 세째, 숙손씨 끝이 계손씨로

대부가 되었습니다.

이 삼형제를 합쳐 부를 때

桓公의 '桓'자를 붙여 '三桓氏'라 합나다.

후손들도 역시 삼환씨로 호칭됩니다.


삼환씨 후손들이  공자시대까지 이어 오면서

세도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삼환씨에서 환자를 빼어

맹씨 숙씨 계씨라고 칭합니다.


공자 때는 맹씨와 숙씨는 유야무야 했지만
계씨 세력은 막강하여그 전횡을 임금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25대 소공은 그와 대적하다 패하여 薺나로 피신을 갑니다.
이 때가 공자 나이 35살 때였습니다.

공자도 왕을 따라 제나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태산에서 한 여인이 무덤 앞에서 우는 것을 보고
연유를 알아 봤습니다.
"예전에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이제는 남편까지 또 희생되었습니다."
라는 여인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사를 가지 않습니까?"
공자가 묻자 여인의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마을로 내려가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당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 곳이 편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한테 유명한 명언을 남깁니다.


"가정어맹호(苛政於猛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孔子는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으로서

周나라 禮樂을 仁이란 명제를 가지고

세상을 법도를 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魯나라는 周에서 分封된 諸侯國으로

周가 大宗이고 魯가 小宗 관계)


그련데 계씨가 사사건건 예악법도를 위배하고 있어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八佾篇 1 장입니다.



공자가 계씨를 말했다.
『팔일을 뜰에서 추게하다니 
  이런 짓을 용인한다면
  장차 무슨 짓을 못하랴?』

공자가 매우 흥분하고 있습니다.
계씨가 제 집에서 팔일무를 춘다는 말을 듣고

분기탱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팔알무는 천자가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연주하는 무악인데
제후도 아닌 일개 대부가 천자 흉내를 내니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팔일무는 천자가 64명 대부는 16명이 추는 종묘악. △위 이미지 참조)


당시 법도가 섰다면 천자는 제후로 하여금
계씨를 잡아드려 주리를 틀어 기강을 보였을 턴데
천자나 제후 모두가 힘이 빠저 대부들 눈치나 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었을 것입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의 
 단면상을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계씨의 무도자행 

하나 더 볼렵니다.
팔일편 6 장입니다.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를 지내려 했다.
공자가 염유에게 물렀다.
『네가 막을 수 없곘는냐?』
염유가 대답했다.
『막을 수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아, 태산의 신을 임방만큼도 높이지 않은구나.』

旅는  旅祭라 하는데 태산에서 천자가 지내는 제사 이름.
천자는 오악의 산신제를 올리는데 태산은 오악중의 하나.


염유: 공자의 제자.

성이 염(冉) 이름이 求, 자는 子有. 당시 계씨의 가신으로 총집사.
임방(林放)은 禮를 중시하는 사람. 女: 2인칭 대명사.


천자만이 할 수 있는 禮를 대부인 계씨가 무엄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태산에 제를 올리고 천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태산의 정기


일전에 유엔의 수장인 반기문 총장이 태산을 다녀 왔다고 해서 언론이 시클벅적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신호라고 했습니다. 반총장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도 다녀와 대통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계씨도 태산의 정기를 받아 천자나 제후가 되고 싶었을가?

당시로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삼족을 멸하고도 모자랄 일이었습니다.

천자를 넘겨다 봤으니 그 이상 대죄가 또 있겠습니까?


이러한 계씨를 보면서 공자도 그를 제거하고 싶은 의도가 들어납니다.계씨편 3 장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작록(爵祿)을 주는 권한이 왕실에서 떠난 지 5세대가 되었으며.
   정령(政領)이 대부에게 넘어간 지가 4세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삼환씨 자손이 미약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녹봉을 주는 왈실 권한의 위계질서가 무녀져
혼란스러워진 지 5세대 즉 150년 정도 되었으며
정치 명령이 대부에게 넘어간 지가 4세대 120년 정도 되었다.
고로 난다 긴다하는 삼환씨 권력도
세월따라 쇠약해지는 것은 당연다고
공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노나라 대부 벼슬에 있는
삼환씨 권력이 쇠약해졌을 터이니
그들을 제거하여 魯의 王權을 되찾야겠다는
복심이 깔린 공자의 말이라 하겠습니다.

공자가 삼환씨 몰락을 예단하는 것은

2 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의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의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10대 망하지 않음이 드믈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5대에 망하지 않음이 없고
   가신이 국권을 잡으면 3대 망하지 않음이 드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사가 대부의 손에 있을 리 없고
   백성들이 논의하지도 않은다.』

무슨 말일까?

나라에 질서가 정립되면 법령이 국가로부터 나오고

그렇지 못하면 신하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질서가 천자의 신하인 제후로부터 나오면

천자 신하인 제후한테 나오면 길어봤자 3백년 안에 무너지고
제후 신하인 대부한테 나오면 150년을 못 가며
대부 신하인 배신한테 나오면 90년 가기가 힘들다.

(代를 30년으로 보고)


질서가 있으면 법망이 대부 손에 있을 리가 만무하고
백성들도 왈가왈부 떠들지 않은다.


계씨의 권세도 세월을 따라 기울어지고 있으니

그를 제거하여 노라라 법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공자가 공자의 심중을 들어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첨언

제나라로 간 소공이 귀국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계씨가 소공의 아들 후계를 반대하여

동생을 26대 定公으로 봉합니다.
천자와 제후 令이 서지 못하고

대부 전횡에 의해 나라가 놀아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공자의 나이가 43세였습니다.

정공이 제후가 된 뒤 나라가 극도로 혼란스러집니다.

계씨의 가신인 양호(陽虎)가 반란을 일으켜 계씨를 무찌르고

정권을 잡았으나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공 9년 공자 나이 51세 때 계씨 신하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반란을 일으키는 등 나라 소요 사태가 지속됩니다.


공자 나이 51세때 정공의 부름을 받아 정치에 직접 참여합니다.


처음에는 중도재(中都宰)로 들어가 육경(六卿)의 하나인 사공(司空)이 된 뒤 사법을 총괄하는 대사구(大司寇)까지 되어 공자의 결단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공자 일생중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하여 여러 업적을 이룬 것이 처음이요 마지막이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제자 중유(仲由)를  계씨의 가신으로 시켜 삼환씨 군대 무장을 해제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공자가 국정에 참여하자 나라가 잘 다스려졌습니다.


이에 제나라가 불안을 느끼고 자기 나라 女樂을 보내옵니다.

공자는 이를  반대했으나 계씨가 여악을 받아들이여 그와 갈등이 첨예하게 됩니다.

이 일로 공자는 벼슬을 내놓고 위나라로 떠납니다. 56세때였습니다.


삼환을 제합하지  못한 결과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주유천하를 하게 됩니다. 10여년이 넘는 긴 여정의 길이었습니다.



정공이 죽고 哀公이 후계가 되어 11년 되던 해인

공자 나이 68세때 계씨가 불러  귀국하게 됩니다.

그 때가 68세 였습니다.


공자는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집필로 세월을 보내다가

향년 73세로 서거하게 됩니다.

'주자집주서설'에는

공자 역시 벼슬을 바라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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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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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간 16.08.07 공자도 어쩌지 못한 계씨라는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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