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지났을가.
5번째 글
麻田浦에서 淸의 皇帝에게 항복하는 의식을 거행함
마전포 :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마을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上)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없세고 시종(侍從) 50여 명만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다. 왕세자가 따랐다.
뒤쳐진 백관들은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왕은 붉은 용골포를 입어야 하는데 藍染衣라는 쪽빛 색갈의 옷을 입어야 하는 제약을 받음)

상이 산에서 내려가 형초자리를 펴고 앉았다.
얼마 뒤에 갑옷을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 기(騎)가 달려 왔다.
상이 일렀다.
"이들은 뭐하는 자들인가?"
도승지 이경직이 대답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말하는 영접하는 자들인 듯합니다."
한참 뒤에 용골대 무리가 왔다. 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아 두 번 읍(揖)하는 예를 행하고 동서(東西)로 나누어 앉았다.

용골대 무리가 위로했다. 상이 대답했다.
"오늘의 일은 오로지 황제의 말과 두 대인이 힘써 준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
용골대가 말했다.
"지금 이후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시간이 이미 늦었으니 속히 갔으면 합니다."
마침내 말을 달려 앞에서 인도하였다.

상이 단지 삼공 및 판서·승지 각 5인, 한림(翰林)·주서(注書) 각 1인을 거느렸으며, 세자는 시강원(侍講院)·익위사(翊衛司)의 제관(諸官)을 거느리고 삼전도(三田渡)에 따라 나아갔다.
멀리 바라보니 한(汗)이 황옥(黃屋)을 펼치고 앉아 있었다. 갑옷과 투구 차림에 활과 칼을 휴대한 자가 방진(方陣)을 치고 좌우에 옹립(擁立)하였다. 악기를 진열하여 연주했는데, 대략 중국 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汗: 청 태종

상이 걸어서 진영(陣) 앞에 이르고, 용골대 무리가 상을 진문(陣門) 동쪽에 머물게 하였다. 용골대가 들어가 보고하고 나와 한의 말을 전했다.
"지난날의 일을 말하려 하면 길다. 이제 용단을 내려 왔으니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
상이 대답했다.
"천은(天恩)이 망극합니다."

용골대 무리가 인도하여 들어갔다. 단상(壇)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했다. 상에게 자리로 나가기를 청했다. 청나라 사람을 시켜 여창(臚唱)하게 하였다. 여창:조선 시대, 의식의 순서를 적은 것을 차례에 따라 소리 높여 [던 일

상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였다.
[三拜九叩頭禮(삼배구고두례)로 인조는 항복의 예를 시행함]
용골대 무리가 상을 인도하여 진영의 동문을 통해 나왔다가 다시 동북쪽에 앉게 하였다.
대군(大君) 이하 강도(江都)에서 잡혀왔는데, 단 아래 약간 서쪽에 늘어섰다.

용골대가 한의 말을 빌어 상에게 단에 오르기를 청하였다.
한은 남쪽을 향해 앉고 상은 동북 모퉁이에 서쪽을 향해 앉았다.
(왕은 남쪽을 향해 산하는 북쪽을 향해 않는 것이 봉건주의 법도인데 우리 왕에 대해서는 서쪽을 보게 함)
청나라 왕자 3인이 차례로 나란히 앉고 왕세자가 또 그 아래에 앉았다. 모두 서쪽을 향하였다. 또 청나라 왕자 4인이 서북 모퉁이에서 동쪽을 향해 앉고
봉림 인평 두 대군이 그 아래에 잇따라 앉았다.
우리 나라 시신(侍臣)에게는 단 아래 동쪽 모퉁이에 자리를 내주었다. 강도에서 잡혀 온 제신(諸臣)은 단 아래 서쪽 모퉁이에 들어가 앉게 하였다. 차 한잔을 주었을 뿐이다.

한이 용골대를 시켜 우리 나라의 여러 시신(侍臣)에게 고하여 일렀다.
"이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다. 활쏘는 솜씨를 보고 싶으니 각기 재주를 다하도록 하라."
종관(從官)들이 대답하였다,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문관이기 때문에 잘 쏘지 못합니다."

용골대가 억지로 쏘게 하자 드디어 위솔(衛率) 정이중(鄭以重)으로 하여금 나가서 쏘도록 하였다. 활과 화살이 본국의 제도와 같지 않았다. 다섯 번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청나라 왕자 및 제장(諸將)이 떠들썩하게 어울려 쏘면서 놀았다.

조금 있다가 진찬(進饌)하고 행주(行酒)하게 하였다. 술잔을 세 차례 돌린 뒤 술잔과 그릇을 치우도록 명하였는데, 치울 무렵에 종호(從胡) 두 사람이 각기 개를 끌고 한의 앞에 이르자 한이 직접 고기를 베어 던져주었다.

상이 하직하고 나오니, 빈궁(嬪宮) 이하 사대부 가속으로 잡힌 자들을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다.
용골대가 한을 대행해 말했다. 빈궁과 대군 부인에게 나와 절하도록 청하였다. 보는 자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사실은 내인(內人)이 대신하였다고 한다.

용골대 무리가 한이 준 백마에 영롱한 안장을 갖추어 끌고 오자 상이 친히 고삐를 잡고 종신(從臣)이 받았다. 용골대 무리가 또 초구를 가지고 와서 한의 말을 전하였다. 貂裘(초구): 담비 모피로 만든 가죽 옷.
"이 물건은 당초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는데, 이제 본국의 의복 제도를 보니 같지 않다. 따라서 감히 억지로 착용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情意)를 표할 뿐이다."
상이 받아서 입고 뜰에 들어가 사례하였다.

도승지 이경직으로 하여금 국보(國寶)를 받들어 올리게 하니, 용골대가 받아서 갔다. 조금 있다가 와서 힐책하기를,
"고명과 옥책(玉冊)은 어찌하여 바치지 않습니까?" 誥命: 왕위를 승인하는 문서
☆玉冊(옥책):국왕·왕비·대비·왕대비·대왕대비의 존호를 옥으로 만들어 올리는 문서
상이 말했다.,
"옥책은 일찍이 변란으로 인하여 잃어버렸고, 고명은 강화도에 보냈는데 전쟁으로 어수선한 때에 온전하게 되었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렵소. 그러나 혹시 그대로 있으면 나중에 바치는 것이 뭐가 어렵겠소."
용골대가 알았다고 하고 갔다.

또 초구 3령(領)은 삼공(三公)을 불러 입게 하고, 5령은 오경(五卿)을 불러 입게 하였다. 【 형조 판서 심집(沈諿)은 대죄(待罪)하고 오지 않았다.】 5령은 다섯 승지를 불러 입게 하고, 【 좌부승지 한흥일(韓興一)은 강도(江都)에 들어갔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다.】 말하였다.
"주상을 모시고 산성에서 수고했기 때문에 이것을 주는 것이다."
하사(下賜)를 받은 이들이 모두 뜰에 엎드려 사례하였다.

홍서봉(洪瑞鳳)과 장유(張維)가 뜰에 들어가 엎드려 노모(老母)를 찾아 보도록 해 줄 것을 청하니, 【 그들의 어미가 강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석을시(金石乙屎: 김돌쇠)가 화를 내며 꾸짖었다. 상이 밭 가운데 앉아 진퇴(進退)를 기다렸는데 해질 무렵이 된 뒤에야 비로소 도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왕세자와 빈궁 및 두 대군과 부인은 모두 머물러 두도록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장차 북쪽으로 데리고 가려는 목적에서였다.

상이 물러나 막차(幕次)에 들어가 빈궁을 보고, 최명길을 머물도록 해서 우선 배종(陪從)하고 호위하게 하였다. 상이 소파진(所波津)을 경유하여 배를 타고 건넜다. 당시 진졸(津卒)은 거의 모두 죽고 빈 배 두 척만이 있었는데, 백관들이 다투어 건너려고 어의(御衣)를 잡아당기기까지 하면서 배에 오르기도 하였다. 상이 건넌 뒤에, 한(汗)이 뒤따라 말을 타고 달려와 얕은 여울로 군사들을 건너게 하고, 상전(桑田)에 나아가 진(陣)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용골대로 하여금 군병을 이끌고 행차를 호위하게 하였다.
길의 좌우를 끼고 상을 인도하여 갔다.
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인정(人定)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서울에 도달하여 창경궁(昌慶宮) 양화당(養和堂)으로 나아갔다.
人定 : 조선시대, 밤에 다니는 것을 금하기 위하여 종을 치던 일

여섯번째 글
이때 蒙兵이 都城에서 虜掠질을 했으나 闕門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음
○于時, 蒙兵尙滿都城, 虜掠如前, 而但不入闕門內,
故百官扈來者, 皆處於闕內 扈 : 뒤따를 호
이때, 도성에는 몽고 병사가 만원로 넘쳐났다. 노략질은 여전했다. 다만 궐내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백관들이 뒤따라 왔다. 모두 궐내에서 머물렀다.
일곱번째 글
承政院 등에서 안부를 물음
○ 政院·玉堂, 問安。答曰, 知道。王世子·嬪宮及鳳林大君, 皆留陣中, 故侍講院·翊衛司諸官, 皆留侍。吏曹判書崔鳴吉, 亦落後留侍。
정원 옥당에서 안부를 물어왔다. 답변으로 알려주었다.
왕세자 빈궁 및 봉림대군 모두 몽골 진중에 머물렀다. 그래서 시강원 익위사 모든 관리들이 잔류하여 모시었다. 이조판서 최명길 또한 뒤따라 모시는데 함께 했다.
[이렇게 하여 지루했던 하루가 끝이 납니다만
궐 밖에서는 노략질은 자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