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는 한때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렸고, 사이암 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다. 첫 번째 수도 롭부리(Lop Buri)에 천연두가 창궐하자 아유타야로 천도했다. 아유타야는 바다로 연결되는 3 개의 강에 에워싸인 육지의 섬으로 외적의 침입이나 홍수 등의 자연 재해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다. 도시는 14세기 중엽 건립됐고, 18세기 후반에 미얀마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이후 도시는 재건되지 않은 채 고고학 유적지로 남았다. 곳곳에 불탄 흔적이나 부서진 채 몸만 남은 불상 등 유적이 즐비하다.
아유타야 역사도시(Historic City of Ayutthaya)에는 유적이 수도 없이 많은 태국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왓 야이 차이 몽콘 Wat Yai Chaimongk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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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야이 차이 몽콘
강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육지 섬 아유타야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사원이다.
현지인이 자주 찾는 사원이라 참배객들로 항시 북쩍댄다.
1357년 초대 우통 왕이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명상 수업을 돕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사원에는 거대한 와불(臥佛)과 좌불(坐佛)들이 있는 비하라 유적과 체디(Chedi)라고 하는 대규모 불탑 등이 있다.
불탑인 "프라 체디 차이몽콘(Phra Chedi Chaimongkhon)"은 아유타야 왕조 20대 왕인 나레수언 왕이 1592년 미얀마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맨손으로 미얀마의 왕자를 죽여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원은 ‘승리의 대사원(Great Monastery of Auspicious Victory)’이라 한다.
주 불탑의 높이는 72m로 아유타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불탑은 가파른 경사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는 유물을 보관해 놓은 공간이 있다.

불탑인 프라 체디 차이몽콘(Phra Chedi Chaimongkhon)
중앙의 체디(Chedi)인 주 불탑과 그 둘레에 4 개의 보조 체디가 있다.
양 옆에 와불이 자립 잡은 대규모의 불탑이 웅장하다. 주 불탑의 높이는 72m나 된다.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야 불탑 안을 들어 갈 수 가 있다.
층계 오른편에 보이는 입간판 모습은 아래 이미지다.

태국은 어디를 가나 이런 안내가 눈길을 끈다. 가방을 앞으로 메라는 표지다. 소메치기가 많은 모양이다. 윗쪽에 보이는 베레모 남자는 안내 대로 잘 따르고 있다. 가방을 앞에 메고 있다.

지상에서 본 층계 모습이다.층계가 가파라 오른 사람이나 내려 온 사람들의 발길이 조심스럽다.

불탑인 체디에서 본 모습이다. 층계 아래 평지의 반쯤 보이는 건물은 아래 사원이다.

사원의 불상 모습이다.



메인 스투파 , 왓 야이 차이몽콘(Main Stupa, Wat Yai Chai Mongkhon, Ayutthaya. )
앞에서 언급했던 높이가 72m라고 한 그 탑이다.

그림 중앙의 불탑이위에 있는 체디인 메인 스투파다. (왓 야이 차이몽콘 전경)



메인 체디 주변 좌불상(Buddha Images in the Gallery around the main Chedi)


왼쪽 불상의 가부좌 손은 우리 나라 불상과 같다. 헌데 오른 부처는 왼손 위에 오른 손을 올려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돈이 얹어져 있다. 부처님도 돈을 좋아하실가?

비하라 와불(Vihara of the Reclining Buddha Image)



옛날 찬란했던 흔적만 이곳 저곳에 남아 있다.


세계의 관광객들은 이 허물어진 모습을 보기 위해 끊임 없이 찾아들고 있다.

사원에 접해 있는 호수다. 가는 곳마다 물이 흐른다. 그래서 동양의 베니스라 한 모양이다.


산소 공급 시설이 갖추어진 것으로 봐 양식도 한 모양이다 우리 나라도 새우 양식장에 이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지역 시장에는 새우가 많은 것을 봐도 그렇다. 이 근방 음식점에는 새우 요리가 많다. 왕새우를 비롯해 크기가 여러 갈래가 있다. 값도 물론 저렴하다.

아유타에서 가장 유명한 왓 프라 마하탓 사원 Wat Phra Maha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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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한 체디와 쁘랑
14세기 아유타야 2 대 왕인 라마쑤언(Ramesuan) 왕 때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원 구조는 동서로 직사각형의 불당인 '위한'이 있고 중간에 크메르 양식의 쁘랑이 세워져 있다.
'위한' 좌쪽에 쁘랑이 있고 사방에 불탑인 쩨디가 늘어서 있다.
현재는 버마의 공격으로 쁘랑과 위한, 쩨디 등 상당 부분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그럼에도 왓 프라 마하탓이 아유타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으로 손꼽힌다.
보리수 나무 뿌리에 휘감겨 있는 부처의 머리 때문이다.

입장료는 외국인만 받는 모양이다. 내국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50바트면 17백원 정도다.

기념물들에 올라 가지 말란다. (Plese DO NoT climb up monuments)
스투빠나 체디. 부처상. 쁘랑. 부처좌대. 벽 등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머리가 없는 부처 상들이다.
미얀마(버마)가 침공하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부처 머리를 자르고 궁궐이나 탑을 부수거나 불질러 파괴를 하여버렸다.
온전한 것이 거의 없다.
몇 백년 전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노출 되고 있는 것이 아유타야 유산이다.
1950년대 미얀마가 보상금으로 주어 일부는 복구되었지만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거기다가 남아 았는 유물마저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놓아 볼상 사납다.
아예 그대로 둔 것만도 못한 것 같다.
아유타야 유적은 지금도 풍화 작용으로 훼손되어 가고 있어 보인다.


이런 불상이 부지기 수다. 전쟁에서 참패한 교훈이다.







돌 무더기는 부처상이나 사리탑 등의 파손된 잔재들이 모아져 있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 군중들이 모여 있다.
특이한 현상을 보기 위해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 뿌리에 부처의 머리가 끼어 있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이란다. 전쟁으로 목이 잘려진 불상 머리 하나가 보리수 나무 뿌리에 쌓여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와 같은 기이한 현상을 이룬 것이다.


왓 프라 시 산펫 Wat Phra Sisan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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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 보이는 3개의 커다란 쩨디가 인상적인 곳으로 왓 프라 마하탓의 보리수 불상과 더불어 아유타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사원은 1448년 아유타야 8 대 왕인 보롬마뜨라이로까낫(Borommatrailokanat)에 의해 왕실 사원으로 세워졌다.
1503년 16m 높이로 세워진 쩨디는 원래 금으로 칠해졌으나 아유타야의 숙적인 버마의 침입으로 모두 사라지고 없다.
사원의 위쪽에는 '보롬마뜨라이로까낫' 왕에 의해 건설된 아유타야 왕궁이 있었으나 1767년 아유타야의 33대 마지막 왕인 보롬마라차(Borommaracha) 9세 때 버마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왓 로카야 수타 Wat Lokaya su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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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왕궁 뒤편에 있는 사원. 길이 37m, 높이 8m의 동쪽을 향한 와불(Phra Bhuddhasaiyart)로 유명하다. 아유타야에는 커다란 와불이 많이 있지만, 이 와불상의 규모가 가장 크다. 와불의 머리는 연꽃 위에 놓여 있고, 다리는 포개어 발가락을 가지런히 하고 있다. 불상 뒤 쪽으로 사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방콕에서 70여km 정도 떨어진 곳에 아유타야가 있다.
싸얌(태국)의 두 번째 왕조로 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번성했던 나라였다고 한다.
우텅 왕( King U-Thong)이 아유타야를 건국한 1350년부터 1767년까지 34명의 왕을 배출하며 400년 동안 동남아시아의 절대 패권을 누렸다.
버마(미얀마)의 공격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고 수도가 약탈당하는 수모를 겼었고, 3년이 지나 세력을 재정비해 버마를 몰아냈지만 재공격을 대비해 짜오프라야 강 남쪽인 방콕으로 수도를 이전하며 폐허 속에 방치됐다
아유타야 흥망 송쇠를 보면서 미안마의 침공을 받지 않았거나 받았드래도 막아냈었다면 지금의 아유타야는 더욱 빛을 발하고 았을 것이다.
태국도 어찌 보면 우리 나라 역사와 어비슷한 것 같다 .
아유타야가 우리네 고려와 같다고나 할가?
고려가 몽고군의 침략을 받자 대항하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신을 간 기득권 세력들은 목숨을 부지했고 애꾸진 백성들은 적군의 무기 앞에 속수무책 그대로였다. 죽이든 샇리든 말 한 마디 못하고 개 돼지 같은 짐승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아유타야도 미얀마 침략으로 나라가 패망하자 백성들의 핍박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수 많은 부처상의 목을 자르고 사원이나 탑은 불살라 파괴를 했는데 사람들를 그대로 두었으리란 만무했을 것이다.
무주공산이 된 고려나 아유타는 다 마찬가지었을 것이다.

지키지 못하면 망한다는 역사를 보면서 문득 길재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오백년 도읍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