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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공자의 외도설

작성자산여울|작성시간14.08.13|조회수334 목록 댓글 0


공자의 외도설

공자같은 성인도 남녀의 불륜을 저질렀을까?
어찌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논어에는 의심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옹야편 26절입니다.

"子見南子하신대 子路不說이어늘"
공자께서 위나라 영공 부인 남자를 만나는데
제자인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은
싫어했다는 것으로
왜 그랬을까?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

子는 공자이고 南子는 위나라 영공의 후처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위나라 영공 부인을 만났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子路不說은 子路不說之의 之가 생략된 문장입니다. 여기서 之는 대명사로 子見南子를 지칭합니다. 자로는 공자가 왕부인을 만나는 그것을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자로는 공자보다 몇 살 아래인 제자로 14년간 천라유세를 같이 했으며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 가신으로 있었던 친구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스승께서는 맹세코 말씀하셨다. (矢는 맹세하다)


내가 그릇된 행동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아!

▽ 雍也篇26 토를 단 전문

子見南子하신대 子路不說이어늘
夫子矢之曰 予所否者인댄
天厭之,天厭之시리라.



공자와 자로는 사제지간이지만 나이는 불과 9세 차이 밖에 나지 않으며
죽기는 공자보다 1 년 앞선걸로 연대는 기록되고 있습니다.
공자는 79세요 자로는 62세를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공자가 위 영공 부인과 만나는 시기가 56세 때라고 합니다.

공자가 南子와 만나고 다니는 것을 자로는 삻어하면서도 그래도 불륜은 하지 않았으리고 믿고 싶은 심정이 들어난 글이 옹야 26절입니다.

자로는 공자와 14 년의 천하주유,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위영공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荂聵 -영공의 아들)의 난 때 전사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로는 어찌하여 공자와 남자의 만남을 불륜으로 의심하고 있을가?
여기에는 하나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宋나라 朱子가 엮은 論語集註입니다.
(주자 즉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공자보다 1700여 후대 사람으로 자로가 의심했던 마음은 잘못 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자는 論語集註에서 南子를 음녀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 南子를 淫女(음녀)라고 기술한 부문의 논어집주 이미지

▽ 論語集註 雍也篇26 본문


論語集註 雍也篇26 해석

남자는 위나라 영공의 부인이니 음란한 행위가 있었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자, 남자가 만나기를 요청하니, 공자께서 사절하다가 부득이 만나신 것이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임금의 부인(小君)을 뵙는 예가 있었다. 그러나 자로는 부자께서 이 음란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으므로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矢는 맹세요, 所는 맹세하는 말이니, 예컨대 "맹세코 崔慶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한 따위와 같은 것이다.
否는 禮에 합당하지 않음을 말하니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厭은 버리고 끊는 것이다.
성인은 道가 크고 德이 완전하여 可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으니,
악한 사람을 만나볼 적에 진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있어 만나볼 만한 禮가 있다면
저 사람의 악행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을 어찌 자로가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고 맹세한 것이니,
그가 우선 이 말을 믿고 깊이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논어집주 옹야편26절 이미지)


당시 배경 개요

영공(靈公 : ? ∼ BC493)
아들 과외(荂聵)와 손자 첩(輒)을 가진 위(衛)나라 군주로 송(宋)나라 여인 南子를 후처로 두고 정사를 살폈으나 우둔했던 것으로 기록됨.
남자가 오빠와 함께 정사를 보살피자 과외가 반기를 들어 세력 다툼이 일어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짐.
이무렴 공자가 위나라에 들어와 벼슬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남자와 만나는 계기가 이루어지게 됨.

과외가 남자를 음탕녀로 소문을 내면서 제거하려하자 그녀는 남편인 영공을 이용해 반격에 나서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과외가 송나라로 피신을 가게 됨
공자가 정사를 뒷받침하면서 나라는 안정을 되찾는 듯 했으나 영공의 사망으로 다시 소용돌이가 일게 됨.

남자는 자기 자식이 있었지만 과외(荂聵)의 아들인 첩(輒)을 왕으로 옹립했으나
나라를 쫓겨났던 첩의 아버지 과외가 막강한 진(晉)의 군사를 지원받아 쳐들어 오는 부자지간의 난이 일어남.

위나라 가신이었던 자로는 첩을 도와 전쟁에 참여하여 전사를 하게 되지만 공자는 참여하지 않음.
과외가 아들 첩을 무찌르고 왕에 등극하게 됨.

이렇게 되면 정권을 잡은 과외가 서모인 남자를 좋게 평했으라고 사료되지 않음


외도설은?

공자가 위영공의 후처인 남자와 사적인 만남을 行했을까?
공자가 남자를 만남에 있어
사적 만남과 공적 만남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공자가 설령 사적으로 만남을 가져 제자인 자로의 눈에 거슬렸다 해도
공자를 흠모했던 사람들은 그걸 긍정하지는 않았으리라 봐집니다.

공자가 어떤 분이신데? 공자가 20대도 아닌 50중반을 넘어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로 사리에 어긋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2500여년전 춘추시대
당시의 문헌이 없어 기록이 전무한 상태인데
공자를 따르는 사람들 즉 주자같은 이들은 공자의 탈선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걸 뒷받침하기 위한 남자의 현명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사실인지는 몰라도?)

투철하지 못했던 남편을 돕고 위나라를 번성키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이사람 저사람을만나다보니 그녀를 좋게 보지 않았던 쪽에서는 험담이 난무했으리란 것도 추측됩니다.

어찌했든 공자와 같은 성인도 남녀문제에 있어서마는 옥에 티가 남은 걸 보면 아이러니한 생각이 듭니다.


▽ 論語集註 雍也篇26의 행별 해석 첨가 부문

南子는 衛靈公之夫人이니 有淫行이라
남자는 위나라 영공의 부인으로 음란한 행위가 있었다.

孔子至衛에 南子請見한대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자, 남자가 만나기를 요청하니,

孔子辭謝라가 不得已而見之라
공자께서 사절하다가 부득이 만나신 것이다.

蓋古者에 仕於其國이면 有見其小君之禮어늘
옛날에는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임금의 부인(小君)을 뵙는 예가 있었다.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이라
그러나 자로는 선생께서 이 음란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故로 不悅이라
그럼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矢는 誓也요 所는 誓辭也니
矢는 맹세요, 所는 맹세하는 말이니,

如云所不與崔慶者之類라
예컨대 "맹세코 崔慶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한 따위와 같은 것이다.

否는 謂不合於禮니 不由其道也라
否는 禮에 합당하지 않음을 말하니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厭은 棄絶也라
厭은 버리고 끊는 것이다.

聖人道大德全하여 無可不可하니
성인은 道가 크고 德이 완전하여 可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으니,

其見惡人에 固謂在我有可見之禮면
악한 사람을 만나볼 적에 진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있어 만나볼 만한 禮가 있다면

則彼之不善이 我何與焉이리오
저 사람의 악행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然이나 此豈子路所能測哉리오
그러나 이것을 어찌 자로가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故로 重言以誓之하시니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고 맹세한 것이니,

欲其姑信此而深思以得之也시니라』 (☞姑 :여기서는 어조사 고)
그가 우선 이 말을 믿고 깊이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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