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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맹자 성선설 이아기 (2)

작성시간17.12.24|조회수26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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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集註 告子章句 上 3장


人性之善也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 맹자 -


논점

性을 맹자는 人性으로 봤고 告子는 人物의 性으로 봤다

人物이란 사람과 동물의 性이 같다는 것이다.

맹자는 性을 사람으로 국한했다.  

성을 善한 것으로 본 데 비해

고자는 人과 物의 지각 운동으로 봤다.

여기서 맹자는 품성이 동물과 다르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자는 名家계의 口才인 달변가로 봐지고 있다.

명가란 궤변학파를 말한다. 




孟子集註> 告子章句 上>  제3장


告子曰

生之謂性


고자가 말하였다.

「생리적인 본능을 성(性)이라고 합니다.」


中庸에는 [天命之謂性]이라 했는데

告子가    [生之謂性]이라 하니

맹자가 반론을 편다.



[朱子集註]


指人物之所以知覺運動者而言이라

生은 인간이나 만물이 지각하고 운동하는 바탕을 생이라고 말한 것이다.


告子論性前後四章

고자가 성을 논한 것은 전후 4장이다.


語雖不同이나이나 其大指 不外乎此

비록 말은 같지 않지만, 그러나 대체의 요지는 이 장과 다르지 않다.


與近世佛氏所謂作用是性者 略相似니라.

근래에 佛교에서 말하는 작용 혹은 기능이란 말과 대략 비슷하다


 子曰

孟子曰

맹자가 (告子에게)말했다.

生之謂性也 猶白之謂白與

「생리적인 본능을 성이라고 하는 것은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曰 : 

「그렇습니다.」


: 맹자가 말했다.

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

白雪之白 猶白玉之白與

「(그렇다면) 흰 깃털의 흰 것이 흰 눈(雪)의 흰 것과 같고

흰 눈의 흰 것이 흰 옥(玉)의 흰 것과 같다는 말인가요?”」


曰 :

「그렇습니다.」



[朱子集註]


白之謂白은

猶言凡物之白者를 同謂之白이요 更無差別也라


白之謂白(흰 색을 희다 말한 것)은

모든 물건의 백색을 동일하게 백색이라 말하는 것이요 

전연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白羽以下는 孟子再問에 而告子曰然이라하니

則是謂凡有生者는 同是一性矣니라 .


白羽(흰 깃털)이하는

맹자가 다시 묻고, 고자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니,

이는 곧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본성이 다 같이 하나라고 말한 것이다.



12

然則犬之性 猶牛之性

      牛之性 猶人之性與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단 말입니까?」



[朱子集註]

孟子又言 若果如此면 則犬牛與人이 皆有知覺고 皆能運動니 其性이 皆無以異矣라하시니 於是에 告子自知其說之非고 而不能對也니라


맹자가 다시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즉 개와 소 및 사람이 다 지각하고 또 다 운동을 할 수 있으니,

그들의 본성이 모두 다르지 않단 말이냐?

이에 고자가 스스로 자기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대답하지 못햇던 것이다.


♧ 愚按

性者는 人之所得於天之理也요

生者는 人之所得於天之氣也니

性은 形而上者也요 氣는 形而下者也라

人物之生이 莫不有是性고 亦莫不有是氣언마는

然이나 以氣言之면 則知覺運動은 人與物이 若不異也로되 以理言之면 則仁義禮智之稟이 豈物之所得而全哉아 此는 人之性이 所以無不善而爲萬物之靈也라


나는 생각한다.

(按 : 愚는 주자가 자신을 낮추어 표현한 겸사)

성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의 理(이)요,

생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 氣(기)이다.

성은 形而上이고, 기는 形而下이다.

인간 만물살아있는 은 

성이 있지 것이 없고

있지 것이 없다.

그러나 氣  말하자면 지각 운동 인간이나 물이 다르지 않는 것과 같다.

 理로써  말하자면  인의예지의

어찌 물이 받은  완전하다고 하겠는가?

이는사람의 性(성)하지 않은 것이 없는 바

따라서 만물의 영장이 된다.


告子不知性之爲理고 而以所謂氣者로 當之라 是以로

杞柳湍水之喩와 食色無善無不善之說이 縱橫繆戾고 紛紜舛錯이로되 而此章之誤가 乃其本根이니 所以然者는 蓋徒知知覺運動之蠢然者人與物同고 而不知仁義禮智之粹然者 人與物異也라 孟子以是折之시니 其義精矣로다.

 

고자는 성이 곧 이라는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른바 기를 가지고 성이라 한 것이다.

또 (그는 앞에서와 같이 성을) 杞柳다, 湍水로 비유했으며,

食色에는 선도 불선도 없다는 말을 하고,

종횡으로 모순되고 엇갈리고 또 복잡하게 엉키고 잘못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고자가 말한 바 성에 대한 오류는 바로 근본적인 중대한 것이다.

고자가 그와 같이 오류를 범한 이유는 바로 다음 같은 데 기인한다.

그는 원래 인간과 만물을 지각하고 운동하는 생물적 존재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과 물이 같다고 잘못 알았으며,

사람에게 인,의,예,지의 순수한 본연의 도덕성이 있고

따라서 인간과 돈식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존엄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 것을 맹자가 고자의 잘못된 생각을 꺾었으니,

그 뜻이나 이론이 참으로 정밀한 것이라 하겠다.

繆 : 얽을 무 紜 : 어지러울 운 蠢 : 꿈틀거릴 준




12



1

孟子集註 告子章句 上 4장


논점

고자의 유명한 인내의외설(仁內義外說)과  맹자의 비판 내용이다.  (仁內義外說 :仁은 안에서 나오고 義는 밖에서 나온다는 설)

맹자는 ‘仁義’가 인간 본성에 갖추어져 있다는 성선설의 입장인데 반해 고자는 仁義가 內外 구분을 한다에 서로의 입장을 표명한다


주역 계사전 제5장에 ‘顯諸仁 諸藏用’이란 내용이 있다.

여기서 仁은 씨앗을 말하는데 씨앗인 [인이 세상에 드러나고

用은 감추어진 것]이라 했다

고자는 반대로 仁이 드러나고 用이 감추어져 있다고 했다.





孟子集註> 告子章句 上>  제4장


告子曰

고자가 (맹자에게) 말했다.


食色性也

음식이나 이성(異性)을 좋아하는 것이 성(性)입니다.」

「식욕이나 성욕은 성(本性)입니다. 」

仁內也 非外也 義外也 非內也

「인(仁)은 내적인 것이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의(義)는 외적인 것이지 내적인  것이 아닙니다.」


 

[朱子集註]


告子 以人之知覺運動者爲性

故言人之甘食悅色者 卽其性

故仁愛之心 生於內

而事物之宜 由乎外

學者 但當用力於仁

而不必求合於義也


고자는 인간의 육체적 지각과 운동하는 기능만을 바탕으로 하고 본성의 정의를 내렸다.

고로 사람이 먹기를 좋아하고 또 이성(色)을 좋아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 말했다.

그러므로 인애는 마음 속에서 나오고,

사물을 의리에 맞게 제도하는 것은 외재적 조건에 의하는 것이므로

배우는 자 마땅히 오직 인(仁)에만 힘을 써야 하며,

반드시 의(義)에 맞기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孟子曰

맹자가 (고자에게) 말했다.


何以謂仁內義外也

「어찌해서 인은 내적이고, 의는 외적이라 이릅니까?」



彼長而我長之

非有長於我也

猶彼白而我白之

從其白於外也

故謂之外也

 

고자가 대답했다.

어른을 공경할 경우에 그가 어른이어서 내가 그를 어른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彼長而我長之 (長은 어른 연장자 어른답다 공경하다)

(그가 어른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어른답게 여긴다)

나에게  어른을 공경하는 존경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非有長於我也  (본구 長은 존경심,有長 : 존경심이 있다 )


(흰 물건을 희다고 할 경우에)

그것이 희어서 내가 그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외면에서 그 흰 것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猶彼白而我白之 從其白於外也

그러므로 외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故謂之外也」


 

[朱子集註]

我長之 我以彼爲長也 我白之 我以彼爲白也

我長之는 내가 상대방을 연장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我白之는 내가 그것을 희다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異於 白馬之白也 以異於白人之白也

不識 長馬之長也 無以異於長人之長與

且謂長者義乎

長之者義乎


   

 참고  


  본문 처음 [異於]는 아래 [집주]에서

  宜衍(의연)이나 闕文(궐문)이라 하고 있다.

  宜衍은 연문(衍文)과 같은 말어다.

  宜衍은 '의당 군더기다'의 뜻을 담고 있다.

  衍은 군더더기 연자다.

  衍文 : 잘못하여 글 속에 들어간 쓸데없는 글귀 

  (필사·판각·조판이 잘못되어) 더 들어간 글자나 글귀 

  闕文:글자나 글귀가 빠진 문장 

  異於는 출판이나 필사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들아갔거나

  그 속에 어떤 말이 빠저있다 뜻이다. 

  그래서 본문 해석은  異於를 생략했다.



맹자가 말했다.

「말[馬]이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異於 白馬之白也

사람이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거니와,

無以異於白人之白也

모르겠습니다만 늙은 말을 늙었다고 여기는 것과

不識 長馬之長也

사람이 나이가 많은 것을 늙었다고 여기는 것과

차이가  없겠습니까?

無以異於長人之長與


  여기서  잠간

  馬(말)과 사람이 흰 것은 색깔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말과 사람이 늙었다는 것은 차이가 있디.

  말은 늙어 가면 쓸모가 없어지고

  사람이 늙어가면 경륜이 쌓여긴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의로운 것이지

  나이가 많은 어른 자채가  義는 아니란 맹자의 지적이다.


또한 나이 많은 어른을 의(義)라 이릅니까?

且謂長者義乎

나이가  많은 자가 의(義)롭습니까?”

長之者義乎」


 

[朱子集註]

張氏曰 上[異於]二字는 宜衍이라하고
李氏曰 或有闕文焉이라하니라
愚按 白馬, 白人은 所謂彼白而我白之也요
長馬, 長人은 所謂彼長而我長之也라
白馬, 白人은 不異나 而長馬, 長人은 不同니
是乃所謂義也라
義不在彼之長이요 而在我長之之心니
則義之非外가 明矣니라

장씨가 말했다.

앞의 異於 두자 연문이다.

이씨가 말했다.

혹 빠진 글이 있을 것이다.

나(주자)는 생각한다.

白馬,白人은 이른바 남의 흰 것이 나를 맞춘 것이다.

長馬,長人은 이른바 남이 말을 늙었다고하자,

나는 늙은이를 공경한다고 받은 것이다.

白馬나 白人의 흰빛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늙은 말을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의다.

의는 다른 사람의 늙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연장자를 공경하겠다는 마음에 있다.

그러므로 의가 외적인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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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弟則愛之 秦人之弟則不愛也

是以我爲悅者也

故謂之內

長楚人之長 亦長吾之長

是以長爲悅者也

故謂之外也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사랑하고,  吾弟則愛之

(나와 상관없는)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秦人之弟則不愛也

이는 나를 위주로 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是以我爲悅者也

그러므로 인을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故謂之內

초(楚)나라 사람 중에서 나이 많은 이도 어른 대접하고,

長楚人之長

또한 내 어른도 어른 대접하니,

亦長吾之長

이는 나이가 많은 것을 위주로 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是以長爲悅者也

그러므로 의는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故謂之外也


 

[朱子集註]
愛主於我라 故로 仁在內요
敬主於長이라 故로 義在外라

다음 같은 뜻을 말한 것이다.

사랑은 나 자신을 주체로 한다.

고로 인은 내젹인 것이다.

공경은 연장자를 주체로 한다.

고로 의는 외적인 것이다.






88


耆秦人之炙 無以異於耆吾炙

夫物則亦有然者也

然則耆炙亦有外與


맹자가 말했다.

 「진(秦)나라 사람이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이

耆秦人之炙  耆 : 즐길 기, 늙은이 기. 炙: 고기구을 적

내가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無以異於耆吾炙

물건의 경우에도 그러한 점이 있습니다.

夫物則亦有然者也

렇다면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 또한 밖에 있단 말입니까?」

然則耆炙亦有外與


 - 고자는 여기서 답변을 못하고 대화가 끊긴다

이 뒤로도 맹자의 제자를 통해 논쟁은 계속 이어간다.-


 

[朱子集註]
長之, 耆之 皆出於心也
林氏曰
告子以食色爲性이라
故로 因其所明者而通之시니라

다음과 같은 뜻을 말한 것이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과 불고기를 좋아하며 먹는 것이 다 마음 속에서 나온다.

임씨가 말했다.

고자가 식색을 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맹자는 고자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바를 바탕으로 하고 그를 깨닫게 한 것이다.


○ 自篇首로 至此四章히
告子之辯이 屢屈而屢變其說여 以求勝고
所以卒不聞其能自反而有所疑也니
 此正其所謂不得於言勿求於心者니
所以卒於鹵莽而不得其正也니라
屢 : 여러 루 鹵 : 소금 로, 거칠 로 莽 : 우거질 망, 거칠
鹵莽(노망)하고 경계 소홀, 하게
장에서 4장에 이르기까지
고자는 자기의 변론을 자주 굴절하고

또 여러차레 변경하면서, 억지로 이기려 했다.

그래서 고자는 끝까지 스스로 반성하지 못했으며,

 의문점을 바로 듣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곧 "납득되지않는 말을 마음에 두고 바른 도리를 찾지 말라(不得於言 勿求於心者)"이다

그래서 고자는 끝내 조잡한 생각이나 말만 하고 끝내 바른 도리를 터득하지 못햇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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