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언(諫言)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이다.보통은 諫(간할 간)으로 쓴다.
諫 : 윗사람에게 직언(直言)하여 잘못을 고치게 하다.
공자(孔子)는 간언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에 대해서는 공손을 특히 강조하고있다. 논어 이인편(里人篇) 18장에서다.
「事父母①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부모를 섬김에 간언은 신중히 해야 한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또한 공손히 하고 어기지 않아야 하며 힘이 들어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①幾諫에서 幾는 微와 같은 자다. -논어집주(論語集註)- 幾는 「기미 기, 몇 기」이지만 여기서는 「살피다」 뜻이다. 微는 「작을 미」자이나 여기서는 「자세하다. 정묘하다」로 쓰인다.
幾諫이란 부모의 안색을 실피면서 조용조용 말하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편에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기색을 낮추어 온화한 안색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언해야 한다. 간언을 들어주지 않으면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하여 부모가 기뻐할 때 다시 간언해야 한다. 기뻐하지 않더라도 마을에서 부모가 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어찌 누군들 간언하지 않겠는가.』
「父母有過 下氣怡色 柔聲以諫 諫若不入 起敬起孝 說則復諫 不悅 與其得罪於鄕黨州閭 寧孰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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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 > 辯政공자가어 > 변정
孔子曰: 「忠臣之諫君,有五義焉。 一曰譎諫,二曰戇諫,三曰降諫,四曰直諫,五曰風諫。 唯度主而行之,吾從其諷諫乎。」
공자가 말했다. 「충신이 임금에게 간언히는 데에 다섯가지가 있다.
첫째는 휼간(譎諫)이다. -자신을 선의로 속어서 하는 말- 둘째는 당간(戇諫)이다. -강직하면서 어리석은 듯 하는 말- 戇 : 어리석을 당, 본음은 어리석을 장. 세째는 강간(降諫)이다. -자신을 낮추고 애걸하듯 - 네째는 직간(直諫)이다. -직설적 정면적으러 하는 말- 다섯째 풍간(風諫)이다. -비유를 들어 하는 말 -
이를 행하는 데에는 임금의 법도가 있어야 한다. 나 같으면 풍간을 따를 것이다.」
간언을 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안 됩니다」가 아니라 상황을 잘 살펴 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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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 > 辯政 공자가어 > 변정
楚王將遊荊臺,
초나라 왕이 형대에 놀이를 가고자 하였다.
司馬子祺諫,王怒之。 사마자기가 간하자 (사마자기가 '안 됩니다' 하자) 왕은 성을 냈다.
令尹子西賀於殿下,諫曰: 이에 영윤 자서가 궁전 아래서 임금께 치하하면서 간하였다.
「今荊臺之觀,不可失也。」 "지금 형대놀이는 때를 놓칠 수 없습니다."
王喜,拊子西之背曰: 초왕은 기뻐하였다. 자서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與子共樂之矣。」 "그대와 함께 가서 즐기리라."

子西步馬十里,引轡而止曰: (轡 : 고삐 비) 자서가 말을 타고 십리쯤 가다가 말고삐를 잡고 밀을 멈추며 말했다,
「臣願言有道,王肯聽之乎?」 "신이 도리로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들어주시겠습니까?"
王曰 왕이 말했다.:
「子其言之。」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子西曰: 자서가 말했다.
「臣聞 為人臣而忠其君者,爵祿不足以賞也;諛其君者,刑罰不足以誅也。 夫子祺者忠臣也,而臣者諛臣也,願主賞忠而誅諛焉。」
제가 듣건데 신하가 되어서 그 임금께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는 벼슬과 녹으로써 상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임금에게 아첨하는 자는 형벌로써 주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더이다.
무릇 저 사마자기는 충신요, 저와 같은 경우는 아첨하는 신하입니다. 원컨데 충신에게는 상을 주시고 아첨하는 신하에게는 벌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王曰:그러자 초왕이 말했다.
「今我聽司馬之諫,是獨能禁我耳,若後世遊之可也?」 지금 내가 사마자기 말을 들어주면 이것은 유독 나만 가지 못할 뿐아오. 만약에 후세 군주가 놀이를 간다면 어따 하겠오?"

子西曰: 자서가 대답했다.
「禁後世易耳。大王萬歲之後,起山陵於荊臺之上,則子孫必不忍遊於父祖之墓以為歡樂也。」 후세에 금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대왕께서 승하하신 후 형대 위에 산릉을 만들어 놓으면 자손들은 반드시 조상의 묘에서 차마 환락의 놀이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王曰:「善。」 왕이 말했다. "좋소."
乃還。 이에 초왕은 되돌아 갔다.
孔子聞之,曰: 공자가 그 소문을 듣고 말했다.
「至哉!子西之諫也, 入之於千里之上,抑之於百世之後者也。」
" 지극하구나! 자서의 간언이. 십리 밖에까지 가서 백세 후를 억제하다니."
참고 入之於千里之上에서 之는 '子西步馬十里'를 지칭하는 대명사. 於千里之上은 천리에 있는 上으로 상은 세상의 의미. 천리밖의 세상 곧 먼 데까지 의미. '자서의 보마십리의 諫이 세상에 소문이 났다는 의미.
고대에 千里는 멀다란 말로 두루 쓰임. 맹자에도 그 예가 보임 訑訑之聲音顔色 距人於千里之外 [孟子>告子章句 下] 잘난척하는 목소리와 얼굴빛은 천리밖에서 사람들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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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윤 자서의 이와 간언은
강간(降諫)이나 풍간(風諫)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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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언중에 대표적인 글로 이사(李斯)의 축객서를 꼽는다.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上은 상소(上疏)이고 秦皇은 진시황제다. 「외국에서 들어와 벼슬하고 있는 관리를 추방한다」 는 문서가 逐客書이다.
이사(李斯)가 시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문으로 객경(客卿)의 축출은 부담함을 간(諫)라는 글이다.
이사(李斯)는 초(超)나라 사람으로 순자(荀子)에게 제왕술(制王術)을 사사받고 진(秦)나라로 갔다.
이사(李斯)는
진시황제가 중부(仲父)라 칭했던 불세출 여불위(呂不韋)의 ①사인(舍人)으로 지내다가 진왕(秦王)의 ②객경(客卿)이 되었던 인물이다. 후에 시황제가 된 진왕 책사로 두각을 들어냈다. ※ ①사인(舍人) : 집안 일을 맡아 하는 사람. 집사
②객경(客卿) :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경대부 벼슬자리에 있는 고급 관리.
이를 시기한 국내파 관리들과 외국관리들 간의 알력이 발생되었다.
진나라 종신들이 상소를 올렸다. 일체의 외국관리들을 추방하라는 상소였다.
이사는 그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렸다. 이를 일러 이사의 상진황축객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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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발췌문

태산은 흙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도 가리지 아니한다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 옳고 그름을 물어보지도 않고 품성의 선악을 논하지도 않은 채,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배척하고, 타국 출신으로 관리가 된 사람을 추방하려고 합니다.
此非所以跨海內, 制諸侯之術也. 이는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를 통제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臣聞 地廣者粟多, 國大者人衆, 兵强則士勇. 신이 듣기에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감하다” 하였습니다.
是以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却衆庶, 故能明其德.
그래서 태산은 흙을 마다하지 않아야, 비로소 그 높이를 이룰 수 있고,
강과 바다는 작은 개울을 가리지 않아야, 비로소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으며,
임금은 민중을 물리치지 않아야,
비로소 그 덕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간언으로 이사는 원상이 회복된다.-
秦王乃除逐客之令,復李斯官,卒用其計謀。卒 : 마침내 진왕은 이에 축객령을 취소하고 이사의 관직을 돌려주며 마침내 그의 계책을 사용했다.
官至廷尉。 관직이 정위(廷尉)에 이르렀다.
二十餘年,竟并天下,尊主為皇帝,以斯為丞相。 20여 년 만에 마침내 천하를 병합하고 군주를 높여 황제(皇帝)라고 했으며, 이사를 승상으로 삼았다
- 이사의 계책에 의거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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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바다는 세류를 가리지 않으며 치자는 민중을 물리치지 않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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