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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곡(哭)하지 마라

작성시간18.08.22|조회수744 목록 댓글 2

 



곡하지
마라라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1587)

그는 누구인가?

빽호 임제하면 딱히 잘 떠오르지 않은다.

아는 것 같은데 기억이 되살아 나지 않은다.

황진이 하면

음 그 사람!

매듭이 지어진다.


보통 임백호라 부른다.
황진이 무덤을 찾아 제사를 지내주고

시를 지었던 장본인이다.


본관이 나주다.

8대조가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탁(卓)의 후손이다.


이때부터

그의 집안은 나주 다시면 회진에서 은거해 왔다.

증조 대(代)부터 벼슬길에 나아가기 시작했다.

임제와 5형제는 모두 당대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임제는 경주 김씨와 결혼하여 4남 3녀를 두었다.

셋째 딸이 낳은 외손이 바로 훗날 남인의 영수인

미수 허목(許穆)이다.

우암 송시열과 예송논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황진이 무덤에서 지은 시조다.

백호 나이 35세 1583년 때였다.
평안도 도사(平安道都事)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개성을 지날 때였다.
황진이 무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묘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시를 읊었다.

명색이 사대부 출신이었다.
벼슬길에 올라 부임하는 길이었다.
천한 기생의 무덤에 찾아가 제사를 지낸 것이다.

당시로는 큰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시까지 읊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젔다.
벼슬아치와 선비들로부터 숱한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은 얼마 못 가서 삭탈 관직을 당하고 말았다.

백호는 성격이 강했다.
타협하기 싫어했고 자유분방했다.

어찌보면 기인이요 천재였다.
현실에 잘 적응 못했다.
벼슬도 늦게 시작햇지만 오래하지 않았다.
하기사 오래할 시간도 없었다.
불과 39세란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서른 아홉살에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곡하지 마라.」

한자로는 勿哭이다.
글로 남겼기 때문에 물곡사(勿哭辭)라 한다.



                                          
물곡비(勿哭碑)


비문에 보인 글이다.



四夷八蠻 皆呼稱帝 

사이팔만 계호칭제
唯獨朝鮮入主中國 

유독조선입주중국
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

생하위 아사하위 물곡

(중국) 사방의 오랑캐와
남쪽의 여덟 야만족들이
제각기 황제라 칭하고 있다.


(그런데)유독 우리 조선만이

중국을 주인으로 받든다.


이러한 나라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곡(哭)하지 말라.

 


유언으로는 대다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자주 독립사상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들어나 있다.

기념비에는 노산 이은상의 글이 있다.



「조선 왕조 5백년에
가장 뛰어난 천재 시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백호 임제 선생으로써 대답할 것이요.

그보다도 언제나 초탈한 천성을 지켜
당쟁의 탁류 속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자주독립사상을 견지하여
사대부유(事大腐儒)들과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던
높은 인간성의 소유자를 찾는 다면
선생을 손꼽을 것이다. 」





황매천(黃梅泉 1885 - 1910)은

백호의 고향인 회진을 지나면서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九泉莫抱英雄恨 그천막포영웅한
今日朝廷帝座高 금일조정제좌고

저승에 계신 영웅이시여,
한을 풀으소서.


지금은 독립국가로
황제가 높이 계십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실린 글이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했다.

종놈이 나서며 말하였다.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林白湖將乘馬。僕夫進曰。夫子醉矣。隻履鞾鞋。


백호가 꾸짖으며 말했다.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白湖叱曰。由道而右者。謂我履鞾。

由道而左者。謂我履鞋。我何病哉。


이로 말미암아 논할 것 같으면,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짚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由是論之。天下之易見者莫如足。而所見者不同。

則鞾鞋難辨矣。故眞正之見。固在於是非之中。

 




錦城曲 금성



錦城兒女鶴橋畔 금성아녀학교반
流枝折贈金羈郞 유지절증금기
年年春草傷離別 연년춘초상이별
月井峯高錦水長 월정봉고금수장

 


금성의 노래



금성의 아녀자들이
학다리 물가에서
버들가질 손수 꺽어
임에게 드린다네.

해마다 봄풀은
이별의 상처인데
월정봉(月井峯)은 높고
금수(錦水)의 물길은 기나기네.

영산강물줄기는 길다.

 


錦城은 나주이고 鶴橋는 현재 학교(학다리)면이다.

羈는 '굴레 기'자다. 말 굴레다.

金羈郞에서 金羈는 황금 굴레다.

金羈郞은 지체 높은 낭군이다.

錦水는 목포까지 흘러가는 지금 영산강이다.

그러니 長하다고 했다.  장장하다.  길고 길다.

월봉산은 높고 영산강은 길다.



無語別 무어별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 읍향이화월


수줍어 말 못하고



십오세

아리따운 소녀가


수줍어

말없이 이별하고

돌아와

덧문 닫고


흐느낀다

배꽃 사이 달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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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溪女: 아름다운 여인,

중국 4대 미인의 하나인

월나라의 서시(西施)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지칭함.


서시는 중국 춘추시대 여인.

월계에서 빨래하던 중. 

월왕(越王)의 신하에게 눈에 뜨임.

그녀는 월왕에개 바처진다. 

월왕은 다시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친다.

부차는 서시  미모에 빠저  나라를 잃고 만다.


羞人: 님을 부끄러워 하다.

掩    : 가리다. 닫다.
重文 : 덧문.



소설가 이명한은 [달뜨면 가오리다]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임제가 6살부터 10년간 외가인 곡성 옥과에서 외가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회진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에 지어진 시라 했다.


당시 옥과의 합강 모래밭에서

첫정을 나눈 '아지'란 소녀를 애달아 잊지 못해

지은 시(詩)란 것이다.

 




임백호는  기녀들과 잘 어울렸다.

평양에서 도사직에 있을 때였다

잔치 마당에서 한우(寒雨)란 기녀와 자리를 함께 했다.

寒雨는 우리말로 [찬 비]다



북창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가 하노라.

(寒雨)



찬비는 한우(寒雨)를 상징한다.

「찬비(寒雨), 얼어(男女交合)」 는

중의법을 쓰고 있다.


우리말 '어른'은 '어루다'에서 왔고

'얼우'는 남녀교합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결혼하면 어른이라고 했다.

성관계를 맺었다는 말이다.


시의  요지는 얼우고 싶단 뜻이다.

너와 자고 싶은데 어떤가?

한우가  화답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가 하노라.



한우도 승낙이 떨어졌다.

「녹아 잘가하노라」

너의 꽁꽁 언 몸을 내가 품어 녹역주겠단다.



겨울날이었다.

월선(月仙)이라는 동기(童妓)에게 부채를 선물했다.

한겨울에 부채를 받아든 기녀가 의아했다.


임제가 월선부채에 시를 적어주었다.



엄동에 부채를 준다고 괴상타 생각 마라
아직 나이 어린 네가 어찌 알랴마는
임그려 밤새 타는 가슴의 불길은
유월 염천 무더위에 비할 바가 아니니라




莫怪隆冬贈扇枝
막괴융동증선지
겨울에 부채 준다고

괴상타 생각 말라.

爾今年少豈能知
이금연소기능지
너 지금 어리니

어찌 능히 알겠냐만


相思半夜胸生火
상사반야흉생화
임그려 야밤에 타는

가슴속 불길은

獨勝炎烝六月時
독승염증육월시
유월의 무더위보다

더하단다.



상사병(相思病)애 걸려 보면

그 때 가서 알  것이란 시(詩)다.


莫怪 :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隆冬 : 한겨울. 엄동설한(嚴冬雪寒)
贈扇枝 : 기녀에게 부채를 선물하다.
爾今 : 너는 지금.
豈能知 : 어찌 능히 그 뜻을 알랴.
相思 : 임을 그리워 하다. 상사병
半夜 : 깊은 밤. 야밤에.
胸生火 : 가슴이 불이 나다.
獨勝 : 오히려 더 성(盛)하다
炎烝 : 찌는 여름. 삼복더위





28세 때 였다고 한다.


수원 한 주막에서 술 먹다 주모와 눈이 맞았다.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동침을 하게 되었다.

이럴 때 호사마마란 말을 써야 될 지 모르겟다.

남편에게 들통이 나버렸다.

남편이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이왕지사 죽을 몸이면 시나 한수 짓겠다 했다.

남편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시를 지었다.



昨夜長安醉酒來
작야장안취주래
어제밤 장안에서

취해 여기에 왔더니.

桃花一枝爛漫開
도화일지난만개
복승아꽃 한 가지가

아름답게 피어었네.


君何種樹繁華地
군하종수번화지
그대 어찌 이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나.


種者非也折者非
종자비야절자비
심은 자가 그른가

꺾은 자가 그른가.



백호는 시를 호탕하게 읊으고선 목을 내밀었다.

그 남편도 듣고보니 잘못은 자기 한테도 있는 것 같았다.

꽃처럼 예쁜 여인을 술집에 두었으니

벌 나비가 날아드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남편은 칼자루를 내동댕이 처버렸다.




낙서장


백호 임제


백호는 어려서부터 자유분방해

스승이 따로 없이 자유롭게 지냈다.


22세 때 대곡 성운(成運1497~1579)의 수행 제자가 된다.

속리산 법주사 경내의 한 암자에서

6년동안 중용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다.


28새 때 의마부(意馬賦)를 지어

스승 대곡에게 올리고 속리산을 떠난다.

道不遠人 도불운인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건만
人遠道인원도 사람이 도를 멀리 하네
山不離俗 산불이속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건만
俗離山 속이산 속세는 산을 멀리 하네


속리산을 떠나온 해에 생원·진사에 합격했다.

이듬 해(29세) 알성시에 급제하여

흥양현감, 서북도병마평사(평안도 도사), 관서도사,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지제교를 지냈다.


작품개괄



시 : 1천여 수


한문소설 :

제주도 여행기‘남명소승(南溟小乘)

당대를 풍자한‘수성지(愁城誌)’‘화사(花史)’‘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은 조선기행문학의 최고봉.


전집 :

임백호집(林白湖集) 4집과

부벽루상영록(浮碧樓觴詠錄)


백호집은 그의 사후 31년 뒤 4촌 동생인 임서가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목판 4권 2책을 발간해 오늘에 전한다


백호문학관 :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백호 생가)

월요일과 명절에는 개관지 않음

주변에 영산강 죽산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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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덕암 | 작성시간 18.11.03 감사합니다.
    그런 분이 계셨군요.
    가까우니 다시면에 한 번 가봐야 겠습니다.
  •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1.03 잘 지내시요?
    한번 뵌다하년서도
    그게 그리 안 되내요.

    11월입니다
    환절기이니
    건강 잘 추스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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