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세종어제훈민정음

작성자산여울|작성시간14.09.21|조회수578 목록 댓글 0

世宗御製訓民正音
솅쫑엉젱훈민졍음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여
여문자로 불상유통할세
고로 우민이 유소욕언하여도
이종부득신기정가 다의라
여 위차민연하여
신제28자하노니
욕사인인으로 이습하여
편어일용이니라





훈민정음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1943년에 창제된 글과
그후 발간된 책을
아울러 훈민정음이라 합니다.

훈민정음은 한문본과 국역본(언해본)으로 구분됩니다,
(실록본 해례본은 한문, 번역본인 월인석보본은 한글)


 

실록본
세종장헌대왕실록 권113 36장
기록일자
世宗 28年 9月 29日(甲午) (1446 丙寅 / 明 正統 11年)
4번째 글
기록내용
어제(御製) : 세종서문
예의(例義) : 본문
정인지     : 서문
세종서문, 본문
정인지 서문을
예의편이라 함


△실록본 전재(全載)

癸險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

이 문장은 바로 위 이미지(37장) 7행 하단부터 8행 중간 부분까지 들어 있는 정인지 서문 일부입니다.

계해년 겨울(세종 25년[1943] 12월)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한 보기와 뜻을 들어 보이시니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세종실록본에는 창제 연대와 글의 명칭이 훈민정음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지만 반포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 더 살펴보면
본 실록 처음(36장) 이미지 1행 하단부터 2행 중간부에 제작자와 명칭이 나와 있습니다.

是月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異乎中國...

이달에 훈민정음을 이루었다. 임금께서 창제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해례본
명칭 : 원본 해례본 안동본
발견 : 1940년 경북 안동
내용 : 예의편(例義篇)
       해례편(解例篇)
특징 : 실록본에 없는
       해례편 첨가
       정인지 서문에
       반포일 기재
   
참고 : 국보 70 호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지정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은 예의편과 해례편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예의편은 실록본과 같고 해례편은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해로 편성되었습니다.
용자해에 말미에 정인지 서문이 있는데 여기에 반포연대가 기록되었습니다

正統十一年九月上澣(正統 :明년호,上澣: 상순)
1446년 10월 9일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가(李漢杰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李蕆)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金台俊)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落張)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安平大君體)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鮮展)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된 이유는 연산군의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두산백과에서 옮김-

낙장부문의 인모(人模) 과정에서 오자가 한 자가 발생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서문 맨끝자 "便於日用耳"를 "便於日用矣"로 오기(誤記)한 것입니다.(이미지 上, 下 참조)



     서강대학본
        명칭 : 세종어제훈                민정음
연대 : 세조 원년(1459)간
내용 : 예의편(例義篇) 번역
특징 : 예의부분에
       치두음(齒頭音 )과
       정치음(正齒音 ) 첨가
참고 :역자와 간행 연대 미상
      단종조나 세조 초기로       추정



훈민정음 번역본은 월인석보에 있는데 저자와 연대는 미상입니다.
월안석보본에서 출간된 서강대본과 고려대에 소장된 희방사본이 작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월인석보본을 그대로 출간했기 때문에 두 대학의 내용이 모두 동일합니다.

이미지 첫행의 '세종어제훈민정음'이란 기록을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별칭으로 언해본 훈민정음, 주역본 훈민정음으로 불립니다.
이책은 훈민정음 예의(본문)를 역해(譯解)한 것으로 체제는 15 장 30 편 매행 16 자입니다.

훈민정음 언해(訓民正音諺解)는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에서 어제(御製) 서문과 예의(例義) 부분만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 된 것입니다. 이는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 자료입니다


 

희방사본
고려대학교 소장
간행일자
宣祖 5年(1572)
기록내용
서강대학본과 동일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안동본은 우라나라 유일본이었는데

2008년 8월 상주에 사는 배모씨가 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공개하여 한 부가 더 늘어났습니다.

이 책은 세 장이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골동품상을 하는 조모씨가 도난당한 것이라며 주장하여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상주본은 조씨 것으로 판결이 내려지자
조씨는 문화재청에 기증을 했습니다.
상주군청은 상주박물관에 유치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에 들어갔지만 상주본을 소유하고 있는 배씨가 내놓지를 않아 아타까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