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而無教友則失聽
설헌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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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죽을 지라도 갓은 벗지 않은다.
君子死而冠不免 군자사이관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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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에 대한 이야기다.
논어는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13번째가 자로(子路)편이다.
자로(子路) : 이름이 중유(仲由), 유(由) 자(字)가 계로(季路) 공자보다 9세 적다.
史記 〉 列傳 〉 仲尼弟子列傳
[중니제자열전]을 보면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평이 나온다. (논어 선진편에도 나옴)
「나에게 수업 받은 자가 77인인데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비들이다.」 「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皆異能之士也。」
정사를 잘 돌보는 자는 계로였다. 유(자로)는 성격이 거칠었다. 政事 季路. 由也喭 。喭 : 거칠 안 -해당 부문만 발췌-
자로는 힘깨나 쓰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성도 부리고 의리도 있고 촌스럽기도 하고
요즘으로 보면 조폭 같다고나 할가.
[중니제자열전]의 기록이다.
子路性鄙,好勇力,志伉直, 鄙 : 촌스러울 비. 완고하고 고집이 세다. 伉 : 짝 항, 정직하다. 겨루다. 伉直(항직) : 성격이 꼿꼿하고 곧다. 자로는 천성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했으며 자존심이 강했다.
冠雄雞,佩豭豚,陵暴孔子。 雄雞(웅계) :수탉. 佩 : 찰패 . 豭豚(가돈) :수퇘지. 豭: 수퇘지 가 관(冠)은 수탉의 꼬리로 만들어 쓰고 수퇘지의 가죽 장식의 검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공자를 업신여기며 난폭하게 굴었다.
孔子設禮稍誘子路, 稍: 벼줄기 초. 점점의 뚯 그러나 공자는 항상 예로서 대하며 자로를 조금씩 (바르게)이끌었다.
子路後儒服委質,因門人請為弟子。 委 : 맞길 위 質: 폐백(幣帛) 얼마 후엔 자로가 유자(孺子)의 옷을 입고 (유자의 복장을 갖추고) 제자의 예물을 올린 다음 문인(門人)을 통해 門人 : 문하생, 공자의 제자 공자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아래 글은 공자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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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 〉 子路初見 [공자가어]의 [자로초견]편 내용
子路見孔子,
자로가 공자를 만났다.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汝何好樂?」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가?」
對曰: 자로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好長劍.」 「나는 장검(긴 칼)을 좋아한다.」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吾非此之問也. 「나는 그것을 물어본 것이 아니네.
徒謂以子之所能, 단지(徒) 『그대가 잘하는 것에
而加之以學問, 학문을 더하게 된다면
豈可及乎?」 (무엇인들) 어찌 아루지 못하겠는가?』 를 말한 것이네(謂).」
子路曰: 자로가 말하였다.
「學豈益哉也?」 「배운다면 무엇을 더 얻을 수 있는가?」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夫人君而無諫臣則失正, 「대저 임금이란 간언해주는 신하가 없으면 바름(正)을 잃어버리고,
士而無教友則失聽. 선비란 가르처주는 벗이 없으면 들음(廳)을 잃게 된다네.
御狂馬者不釋策, 狂馬(미친 말, 난폭한 말) 사나운 말을 제어하려면 채찍을 쓰지 않을 수 없고, 御 : 막다. 길들이다 
操弓不反檠, 檠 : 도지개 경 활을 조절하려면 도지개를 반대로 해서는 안 되네.

木受繩則直,人受諫則聖, 나무는 먹줄을 맞아야 곧아지고 사람은 간언하는 말을 들어야 성인이 되네. 諫(간) : 잘못을 지적하는 말.
受學重問 孰不順哉? 배움을 전수받을 때 질문을 정중히 하면 어느 누가 가르처 주지 않겠는가?
毀仁惡仕,必近於刑, 어진 이를 헐뜯거나 벼슬한 사람을 미워한다면 반드시 형벌에 이르게 되네. 近: 가깝다. 꼭 들어 맞다.
君子不可不學.」 (그래서) 군자는 배우지 않을 수가 없다네.」
子路曰: 자로가 말하였다.
「南山有竹,不柔自直 「남산에 있는 대나무는, 굽어지지 않고 저절로 반듯하지.
斬而用之,達于犀革. 犀 : 무소 서 잘라서 그것을 사용하면 무소의 가죽을 뚫을 수 있어.
以此言之,何學之有?」 이 것으로 말한다면 어찌 배움이 필요하겠는가?」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括而羽之,鏃而礪之,其入之不亦深乎.」 括 : 묶을 괄. 鏃 : 화살 촉. 礪 : 술돌 려, 갈다 「화살(뒷부분)에 깃털을 붙이고 화살촉을 갈아서 박는다면 화살이 또한 깊게 박히지 않겠는가?」
子路再拜曰 자로가 절을 하며 말하였다.
「敬而受教.」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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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자로는 순망지탄(脣亡之歎) 관계였다.
공자가 이빨이라면
자로는 입술인 셈이었다.
자로는 공자의 절대적인 바람막이었다.
나이도 비교적 많았고 무인 기백으로써 성격이 호탕했다.
공자의 수레를 몰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자로가 공자를 수행하게 되면 아무도 일행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디.
불행히도 자로가 면저 죽게 되자 공자가 탄식을 했다.
위나라 영공이 죽은 뒤 손자 첩(輒)이 왕에 오르고 아들 과외(蕢聵)는 망명하였다. 부자지간 왕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자로가 이 변란에 휩쓸리게 되었다.
[중니제자열전]의 기록이다.
공자가 위나라 변란 소식을 듣고 말했다. 孔子聞衛亂,曰:
「아하! 유가 죽겠구나!」 「嗟乎,由死矣!」
결과적으로 죽었다. 已而果死。
그래서 공자가 말했다. 故孔子曰:
나는 유를 얻은 때부터 (세상 사람들의) 험담을 듲지 못했다.」 「自吾得由,惡言不聞於耳。」
자로는 공자의 바람막이가 되었던 것은 분명했다.
자로는 죽으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앞에서 언급된 위영공의 손자인 첩(輒)이 왕권을 계승했었다. 그가 출공(出公)이다.
당시 대부는 공리란 사람인데 자로는 그의 읍재였다. (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 자로는 위나라 대부 공리의 읍재였다.)
[출공]의 大夫가 [공리]이고 [공리)의 邑宰가 [자로]였음
아버지 괴외(蕢聵)가 대부 공리(孔悝)를 매수하여 아들을 축출하고 왕권을 장악하려 했을 때였다.
자로는 궁궐 밖에 있다가 홀로 찾아 가 그들(과외와 공리)과 맞섰다.
그들의 칼이 자로의 갓 끈을 잘랐다.
擊斷子路之纓 纓 : 갓끈 영
그러자 자로가 말하였다.
子路曰:
「군자는 죽을지라도 관은 벗지 않은다.」 「君子死而冠不免。」
갓끈을 매고 죽었다. 遂結纓而死。
자로는 어찌보면 우직했고 죽을 때와 살 때를 아는 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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