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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명분이 바로 서야 한다

작성자산여울|작성시간20.07.28|조회수587 목록 댓글 6



 

 







必也正名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正名


명분

바로 서야 한다.


必也正名 필야정명


반드시

의 명분이 바르게 서야 한다.


虎豹留皮 人死遺名

호표유피  인사유명


표범이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이때 이름(名)이 正名

바로 바른 이름이다.


正名의 원 뜻은
「이름이 바르다」 인데

공자가 명분(名分)론 들고 나오면서
명분이 바르다로 사용되고 있다.

위나라 출공(出公)이 조부 사당을
아비 사당으로 부른 데서 기인 된다.

오늘날 우리가
「내로남불 내로남불」 했안데

이 말이 바로
정명론에 위배되어서 그런다.

출전 문헌

가 : 공자세가(사마천 사기)
나 : 논어집주 자로편 3장

다 : 논어집주 술이편 14장
다 : 중니제자열전(사마천 사기)








史記 > 世家  > 孔子世家
사기    세가     공자세가

於是孔子自楚反乎衛。

공자가
초나라에서 위나라로 되돌아 왔다.

是歲也, 孔子年六十三

이 때 나이가
63세였고

而魯哀公六年也。

노나라
애공 6(BC: 489)년이었다.

지금부터
2천 5백 9년전 일이다.

其明年,吳與魯會繒,徵百牢。

다음 해였다.

오나라와 노나라가
증땅이란 곳에서 회동하였고

오나라가 노나라에게
백뢰땅을 요구하였다.
徵(징) : 부르다. 요구하다.


太宰嚭召季康子。

노나라 태재인 비(嚭)
대부 계강자를 소환하였다.

康子使子貢往,然後得已。

계강자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을 오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런 다음에
외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노나라가 위나라와 외교 문제를
제자인 자공이 해결시킨 것을 보고
공자가 논평을 했다.

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魯衛之政,兄弟也。」

「노나라와 위나라 정부는
형제간이다.」

이 말의 역사적 배경

(주)나라 시조인
문왕에게는 아들이 10 명이었다.
장남은 殷(은)나라에 죽임을 당했다.

은나라를 무찌르고 주나라를 세운
둘째가 무왕으로 등극했다.

무왕은 논공행상을 시행하여
네째인 周公(주공)을 노나라 제후로
일곱째인 康叔(강숙)을 위나라 제후에 봉했다.

이런 고로 노나라와 위나라는
문왕을 아들들이요
무왕의 형제들이었다.



是時,衛君輒父不得立,在外,

이 때였다.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지간이라 말한 때)


위나라 군주인 첩(輒)

아버지는 등극하지 못하고


헤외에서
떠돌아 다닌 신세였다.

諸侯數以為讓。
  
제후들이
그걸  두고

 
수차에 걸처

꾸짖고 있었다.


數(삭) : 자주. 수차.
讓(양) : 꾸짖다. 사양하다.


而孔子弟子多仕於衛,

이 무렵에
공자의 많은 제자들이
위나라에 벼슬을 하고 있었다.

衛君欲得孔子為政。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모셔다가 정사를 위임고자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 모두가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공자는

당시 주유천하중이었다.


자신의 명분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주유천하 13년 중
8년쩨 나고 있었다.

(登庸) 주는 나라가 없어
제자들이 많이 등용되어 있는

위나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생각지도 않은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모시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 14장이다.

冉有曰:

염유(冉有)
말하였다.

「夫子為衛君乎?」

「스승님께서
(衛)나라 임금을 도우실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공자가 위나라 군주의 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공자는 사실
거처할 곳도 마땅지 않는 형편이었다.


오라고 하는데
가지 않은다?

여기서 잠간
논어는 뒤로 미루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으로 들어가 본다.







史記 > 列傳  > 仲尼弟子列傳
사기    열전     중니제자열전


본문 들어가기 앞서


위나라 영공(靈公)은 제(齊)나라 공주인

남자를 부인으로 삼았다.


남자(男子)

오빠와 성관계를 맺었던 여인이었다. 


풍문으로는

공자와도 염문설도 있었던 여인이다.. 


위영공에게는

태자 과외(蕢聵)가 있었다.


과외는

남자의 문란한 성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녀를

내쫓코자 했으나


도리어

자신이 판정패 당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타국으로 도주해버렸다.


영공이 죽자 남자는

과외의 아들 첩(輒)을 등극시키었다.


이 사람이

바로 출공(出公)이다.


출공이

12년간 집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자 신분인

아버지 과외가 처들어 와


아들 출공을

내쫓고 등극을 하였다.


그가

바로 장공(莊公)이다.


부자지간  끊임 없는

암투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와중에서

자로가 제발로 찾아와 죽게 된다.


장공은

3년간 집정하다가


다시

쫓겨나고


출공이

재집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고사

(논어 술이편 14장과

중니제자열전)의 시기는

출공때 기록이다.


BC 490년

공자 나이 64세 때이다.


 영공

 출공

 장공

 출공

BC534-493

BC492-481

BC480-478

BC477년복귀

 42년간

 12년간

 3년간

재집정 



(중니제자열전 시작)


初,衛靈公有寵姬曰南子。
 

일찌기
    
위나라 영공은  남자(男子)라 불리운

부인을 총애하고 있었다.

靈公太子蕢聵得過南子,懼誅出奔。

영공의 태자 과외는
남자에게 죄를 범하고

죽임을 당할가 봐 두려워
나라 밖으로 달아나 있었다.

誅(주) :베다. 죄. 볼.

及靈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
及(급) : 접속시 및.


영공이 죽자 부인인 남자(南子)
공자 영(郢)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했다.

郢不肯,曰:

(郢)
듣지 않고

말했다.

「亡人太子之子輒在。」

「망명한
태자의 아들 첩(輒)이 있습니다.」

於是衛立輒為君,是為出公。

이에 위나라에서는
(輒)을 임금으로 세우니

그가

출공(出公)이었다.

出公立十二年,其父蕢聵居外,不得入。

출공이
즉위한 지 12년이 되도록

그의 아버지인 괴외는
망명지에서

위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를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조선말기 안동김씨 세도가들이


강화도령 땔나무꾼을 모셔다가

철종으로 봉한 것과 같다고나 할가.


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

이 무렵  

자로(子路)는 

 
위나라 대부 공회(孔悝)
읍재(邑宰)로 있었다. 


 (자로는 공회의 家臣.

공회가 임명한 신하.

지금 같으면 지방공무원)


蕢聵乃與孔悝作亂,謀入孔悝家,

괴외(蕢聵)
공회(孔悝)를 협박하여
반란을 일으킬 생각으로

몰래
공회의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遂與其徒襲攻出公。

마침내
그 무리들과 함께 출공(出公)을 습격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공격한 것이다.


出公奔魯,而蕢聵入立,是為莊公。

출공은
노나라로 달아나고

괴외가
임금 자리에 오르니

그가
장공(莊公)이다.

方孔悝作亂,子路在外,聞之而馳往。

공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자로는
(城) 안에 없었는데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遇子羔出衛城門,謂子路曰:

위나라 성문으로부터 나오는
자고(子羔)와 마주치자

자고가

자로에게 말했다.

「出公去矣,而門已閉,

「출공은 
달아났고 


성문도

이미 닫혔으니

子可還矣,毋空受其禍。」

그냥
돌아가는 편이 좋겠소, 

공연히
화를 당하게 되오.」

子路曰:

자로가

대답했다.


「食其食者不避其難。」
 
「녹봉을 받는 자로서
난리를 피할 수는 없다.」

子羔卒去。

자고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有使者入城,城門開,子路隨而入。

마침 성 안으로 들어가는
심부름꾼이 있어

성문이
열렸다.  

자로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造蕢聵,蕢聵與孔悝登臺。

괴외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괴외는 공회와 함께
누대에 올라가 있었다.

子路曰:

자로가
말하였다.

「君焉用孔悝?請得而殺之。」

「태자(과외)께서는 어찌하여
공회를 이용하려 하십니까?

청컨대
그를 죽이도록 해주십시오.」

蕢聵弗聽。

그러나
괴외가 듣지 않았다.

於是子路欲燔臺,


이에
자로는 누대를 불태우려 했다. 


蕢聵懼, 乃下石乞、

괴외는
겁이 나서  


이에
석기(石乞)를 아래로 내려보냈다.

乞(걸) : 주다.  (기) : 주다.


壺黶攻子路,擊斷子路之纓。

호염(壺黶)이 자로를
공격하였다. 

그들의 칼이
자로의 갓 끈을 잘랐다.

子路曰:

그러자
자로가 말하였다.

「君子死而冠不免。」

「군자는 죽을지라도
관은 벗지 않는다.」  

遂結纓而死。

마침내
갓끈을 매고 죽었다.






다시

논어 술이(述而)편으로 되돌아 온다.

冉有曰:

염유(冉有)
말하였다.

「夫子為衛君乎?」

「선생님께서
위나라 임금을 도우실까?」

子貢曰:

자공(子貢)
말하였다.

「諾。吾將問之。」

「그래!
내가  여쭈어 보겠네.」

入,曰:

자공이
공자가 계신 곳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伯夷、叔齊何人也?」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어떠한 사람입니까?」


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古之賢人也。」

「옛날의
현인(賢人)이시다.」

曰:

「怨乎?」

「후회하였습니까?」

曰: 


공자께서

말씀하었다.


「求仁而得仁,又何怨。」

「인(仁)을 구하여
(仁)을 얻었으니,

어찌
후회하였겠는가.」

出,曰:

자공이 나와서
말하였다.

「夫子不為也。」

「선생님께서는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으실 것이다.」


자공은

공자의 명분론을 엿봤다.


부자지간의 왕권 다툼을

정명 사상에 위배로 본 것이었다.



자공은 백이 숙제 고사를 가지고

공자의 마음을  떠 봤다.


백이외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이란

나라의 왕자들이었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숙제(叔齊)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형인 백이(伯夷)에게 양보했다.


백이 역시 

유언이라며 거절하고

외국으로 따나버렸다.


슥제도 백이를 따라 가버리자

둘째가 승계되었다.


이와 같은

고사로 미루어 볼 때


선생님께서는

위나라 군주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자로는

못믿어웠던지

공자에게 직접 물어 봤다.


다시

맨처음의 공자세가로 원위치한다.


이 부분부터는

논어 자로(子路)편 3장과

내용이 같다.







공자세가

子路曰: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衛君待子而為政,子將奚先?」

 「위(衛)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待(시) : 모시다. 기다리다.


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必也正名乎!」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겠다.」
  
子路曰:

자로(子路)
말하였다.

「有是哉,子之迂也!奚其正?」 
  
「이러시다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세상의 물정을 너무 모르십니다.


어떻게

바로 잡으시겠습니까?」
迂(우) : 멀다. 현실에 어둡다.

            물정에 어둡다. 잘못하다. 실수하다.


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野哉由也!君子於其所不知,蓋闕如也。 
 
 「야비하구나,
유(由)야!  
野(야) : 거칠다. 야비하다. 촌스럽다.

(공자가 자로룰 꾸짖는 말)


군자(君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제쳐놓고  
 
무엇이든

관여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유명한 正名 사상이

펼처진다.


[논어집주]의 풀이다.


하여

라.


이때에 출공 첩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않고

(父 : 홍길동전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와 같은 문맥)

도리어 할아버지를 사당에 모시었다.

(아버지를 제치고 임금 노릇을 했음으로)

명분으로 보나 사실로 보나 문란했다.


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정명(正名)을 앞세운 것이다.



名不正,則言不順; 

이름(명칭)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言不順,則事不成;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事不成,則禮樂不興;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
일어나지 못하고,

禮樂不興,則刑罰不中;

예악(禮樂)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刑罰)
알맞지 못하고,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형벌(刑罰)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措(조) : 두다.


君子名之必可言也,言之必可行也。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이름(명칭)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으니, .

君子於其言,無所苟而已矣。

군자(君子)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

而已矣(이이의) : 한정종결사. 뿐



공자는 正名을

구차함이 없는 것으로 글을 맺고 있다.


無所苟而 무소구이

구차한 바가 없다.


줄이면 無苟이다.

구차함이 없다


無 대신

不자를 쓰기도 한다.


不苟이다.


말과 행동에

구차함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정명이다.


不苟와 正名은

같은 말이다.


앞뒤의 말과

앞뒤의 행동이


서로 다른 것

곧 같이 않은 것.


그것은

구차함(苟)이다.


구차함이 없는 것을

공자는 정명이라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네 정치가 분들이

앞뒤말이 달라


지탄을 받는 경우를

흔이 보게 된다.


이런 분들은

백성을 속이는 사람들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백성에 대한

일말의 도리가 아닐가 싶다.


불구! 정명!

한번 더 뇌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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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04
    운장님
    고맙습니자.

    사내란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하고 살아야 한다는데

    말한 것을
    모두 실천하고 살아랴 한다는데

    사담이
    어디 그렇게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말을 조심하고
    살아란 이미갰지요?

    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 작성자팔영산인 | 작성시간 20.09.04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04

    태풍이
    두 차례지나고 보니

    아침 저녇으로는
    제법 서늘해젔습니다.

    가을도
    성큼 다가온 느낌입니다.

    청명한
    오늘 하루도
    즐거운시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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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덕암 | 작성시간 20.09.04 정치가들이 하는 말들 입니다.
    명분있는 말들인가 ㅎㅎㅎ
    언쟁은 했지만 싸우지는 않았다.
    식사는 했지만 밥은 안 먹었다.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05 듣고보니 그렇습니다.

    상대편 약점은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격하면서

    자신의 약점이 들어날 때는
    괴변으로 얼버부리는 것이
    정치가들의 속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정명의 논리라 하겠습니다.

    必也正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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