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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였네라

작성자산여울|작성시간20.08.11|조회수1,812 목록 댓글 6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1947년도였다.


경남 통영여자중학교에

여선생 한 분이 부임해 왔다.


1916년생인

정운(丁芸) 이영도(李永道)였다.


이선생은

우리 나이로 32살


해방되던 해 남편과 사별하고

9살난 딸이 하나 있는 몸이었다.


당시 통영여중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예술가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시인으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음악으로 윤이상(尹伊桑)

미술에 전혁림(全赫林)었다.


여기에 시조시인

이영도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남선생들로 주축이 된 학교에

여선생이 들어왔으니

선망의 눈길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변수가 생겼다.

청마 유치환이었다.


청마는 1908년생으로

정운 이영도보다 8살 위였다.


그는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조용하고 단아한 정운에게

청마는 마음을 잃었다.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입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여기에

무슨 군말이 필요하랴.


그리움이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입이 열리지 않은다니


난감하고

난감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었을가?


청마는

편지란 걸로 다리를 놓았다. 


통영우체국을

찾아가 편지를 쓰게 되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은

1947년부터 20년간 편지를 썼다.

1967년 작고할 때까지.


이영도는

그 편지들을 모아놓았다.


6,25때 소실되고

남은 것이 5천여통이었다 한다.


6,25후 유치환과 이영도는

부산에서 살며 교편생활을 해왔다.


유치환이 작고한지 한 달도 못되어

이영도는 2백통의 편지를 출판했다.


「사랑했음으로

행복했네라」란 서명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청마 유치환.

정운 이영도.


두 사람의 사랑은

여건상 이룰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정작 정운의 마음은 어떠했을가?



 

그리움 /  이영도


생각을 멀리 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무제 / 이영도


      Ⅰ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Ⅱ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가슴

먼 창만 바라보다가


그래도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리라



이러기를

3년간 보냈다고 한다.


석류알 터지는 어느 가을날

정운 이영도는 가슴을 열었다


 


석류 /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속을


밀알 고독

기어히 터지는 秋晴(추청)


한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秋晴 : 맑게 갠 가을 날



/ 이영도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마음을 나누며

보내는 세월이 17년


1967. 02. 13일

뜻하지않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유치환이 학교에서 퇴근 길에

시내버스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나이가 60이었다.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청천병력의 비보였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가?


마음이 사리로

굳어 돌이 되리라 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업보를 구제하기 위한

수행의 고뇌가 사리일 것이다.


그런데 정운은

애모가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하고 있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펐던」


연인의 타게!


비보는 숨이 멈춘 듯

기가 막혔으리라.


고뇌가

비통이

푸른 돌로 굳어라.


 

무제 / 황진이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여성 시조 문학하면
황진이를 든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현대까지 내려오면
정운 이영도도 그에 못지 않다.


 


황혼에 서서 /  이 영도


       Ⅰ


산(山)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Ⅱ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입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마치면서


이영도는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교사의 지도로

학문을 닦았다.


이호우 시조시인의

동생이기도 하다.


1976년도에 작고했는데

청마와 같이 60세였다.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에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시조를 정갈하게 써 온

정운 이영도는

누가 보더라도 청초한 아름 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평생 한복을 입었다.

계절에 맞춰 하늘하늘한

옥색 모시적삼이나

하얀 모시 옷을,


진보라나

검정 한복을 즐겨 입었다.


머리 매무새는

조선조의 여인처럼

동백기름을 발라

뒤로 땋아서 말아 올렸다. 


그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재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으로부터

손가락질은 젖혀두고라도

더 불행해졌거나

가여움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과 재혼을 주선했던 상대들이

모두 저명한 인사들이었는데

자신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란다.


그 가운데는

영문학자이며 시인 수필가인

이양하 교수가 있었다.


이를 두고

일찍이 타계한 예로 삼았다.


딸 하나 있는 청상으로서

불행한 재혼보다

청마와의 염결한 사랑의 지속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



유치환의 편지 하나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 길입니까?
끝내 만리 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 값으로

사망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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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03
    운장님
    명절 잘 보내셨지요?

    10월도
    힌가위 마냥
    넉넉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 작성자팔영산인 | 작성시간 20.10.03 감사하고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03
    팔영산인님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이제는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지내기가
    한결 상큼해지리라 봅니다.

    시월은
    마음과 기력이
    다 함께 보완되는 달로 여겨집니다.

    올 가을에는
    더욱 건강하시기를

  • 작성자덕암 | 작성시간 20.10.04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산여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04 명절 잘 보내셨지요?

    10월달로 접어들고 보니
    금년도 기우는 것 샅습니다.

    하루하루가 값진 나날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뜻있는 한해가 될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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