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감사의 정원,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다.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잊는다는 뜻이다.
개인에게도 무거운 말이지만,
국가에게는 더욱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한 개인이 은혜를 잊는다면
인격의 문제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가 은혜를 잊는다면
역사 인식이 흔들리고
공동체의 품격이 훼손된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둘러싼 논쟁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바로 배은망덕이다.
물론 조형물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광장과의 조화, 도시 미관, 예산 집행의 적절성,
절차의 타당성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
공공공간에 설치되는 시설물이라면
시민의 비판과 검증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논의가 어느 순간
"왜 하필 광화문에 6·25 참전국을 기리는
공간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디자인 논쟁이 아니다.
기억의 문제이며, 감사의 대상과 이유를
잊어버린 사회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고,
자유롭게 말하고 투표하며 이동하고 창업하고
세계를 향해 도전할 수 있는 나라 또한 아니었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국가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그때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름도 생소했던 이 나라를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그들은 관광객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외교적 수사를 위해 온 것도 아니었다.
총을 들고 왔고, 의료 장비를 들고 왔으며,
때로는 물자를 들고 왔다.
어떤 이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갔다.
그들이 지킨 것은
단지 한반도 남쪽의 영토만이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더구나 광화문은 상징의 공간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
켜켜이 쌓인 장소다.
왕조의 문이자 시민의 광장이며
국가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런 곳에 '감사의 정원'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광화문광장은
분노만 모이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요구만 외치는 공간이 되어서도 안 된다.
때로는 기억하고, 고개 숙여 감사하며,
우리가 받은 도움과 희생을 되새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감사는 과거를 향한
예의가 아니라 미래를 지키는 힘이다.
은혜를 기억하는 국민만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역사를 기억하는 나라만이
품격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제목은 원문의
'감사의 정원을 둘러싼 논쟁 앞에서'도 좋지만,
"감사의 정원,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광화문에 필요한 것은 기억과 감사다.
감사의 정원과 국가의 품격
배은망덕을 경계하며 감사는 국가의 품격이다
감사합니다.
- 박용후(관점 디자이너)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