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의 의미
얼마전 우연히 보게된 TV 독서 프로그램에서 신영복 교수가 자신의 신작인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책을 두고 사회자와 몇 명의 방청객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래저래 신영복 교수에 대해서는 심심찮게 얘기를 들어오던 바, 그 분의 차분하고 조용한 어투의 얘기가 진솔하게 다가왔다고 기억된다. 자신의 지식에 대해 겸손하게 그리고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쉽게 얘기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조선시대의 선비적 기풍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만의 생각은 아닐듯 싶다.
우선 책을 펼쳐보게 되면 이 책이 나오게 된 경위와 연유에 대해 세 편에 달하는 서문이 있었다. 그 심상치 않은 서문을 통해서, 신영복 교수의 평탄치 않은 삶의 모습과 거기에 대한 어떠한 아픔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겉지에 씌여진 저자의 간단한 약력에서도 이 책이 씌여지는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았음과 20 여년간에 걸친 긴 집필기간을 통해 완성한 옥중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신영복 교수에게 무기 징역형을 내린 ‘통혁당 사건’은 서슬퍼런 군부독재하에서의 좌파 진보 지식인이 겪은 시대적 고초였다고 이제는 쉽게 한 줄의 글로써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정작 온 몸으로 겪은 저자가 출옥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덤덤히 밝히는 그 사건의 진실과 감옥에서의 소회는 한 인간의 인생임을 떠나 60,70년대의 시대사를 관통하는 진한 감동이 있었다.
“질문: 감옥 안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무기수가 되어 감옥 안의 한계상황에 던져짐으로써 부딪치게 되는 느낌은 무엇이었습니까?
신영복: 감옥 바깥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이랄까 역사적 전개와 그 현실에 대해 이론적으로 해석해보려고 추구하던 중에 감옥에 들어갔지요. 들어가기 전에도 민중들의 문제는 민중들의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그 이론과 사상의 틀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내가 교도소에 들어옴으로써 민중의 맨 하층부분인 룸펜프롤레타리아인 범죄자라든가 실패자라든가 하는, 어쩌면 민중들의 가장 처절한 현장에 서게 되는 것이었지요. “아,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만나고자 했던 민중의 실체를 여기서 직접 만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 하층의 민중들을 범죄 또는 사건과 연관시켜 봅니다. 이들과 긴밀한 공동생활을 통해, 이들도 당초에는 농촌이나 공장에서 몸부림치다가 이러저러한 우연적·필연적 이유로 떨어져 나와 교도소까지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들도 튼튼하게 삶의 현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사회와 사상 (한길사) 1989년 11월 통권15호 인터뷰 중에서>
어찌되었든, 이 범상치 않은 책을 보게 되면서 줄곧 하게 된 생각은 저자가 보여준 삶의 성찰의 모습이었기에 <삶의 통찰>에 관한 몇 편의 글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해 보기로 하겠다. 또한, 내가 신영복 교수의 <삶의 통찰>에 관한 글 중에서도 꼭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생각하고 얘기하는 <관계: 인간, 기억 혹은 물질과의 >에 대한 부분이었다. 관계가 차단된 감옥에서 더욱 냉철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은 무거운 사색으로 때론 가벼운 시선으로 삶을 응시하게 한다.
우선, 신영복 교수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인 ‘청구회의 추억’을 보게 되면 그가 갖게되는 단순한 치기어린 관계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국가기관에 의해 취조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우연한 관계의 시작-> 관계의 심층화 -> 관계의 확대 -> 관계의 재정립 -> 국가기관의 개입’ 까지 그 ‘관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며 결국 국가기관의 호령아래 의도와는 다르게 그 의미가 곡해되어지게 되는 과정에서의 주인공의 심경을 볼 수 있다. 자신의 경험과 순수한 마음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주도하는 국가권력이라는 폭력을 통해서 재구성되어지게 되는 순간에도 그는 그들과의 순수했던 관계를 떠올린다.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의 일이다.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상같은 호령 앞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떠한 과정으로 누구의 입을 통하여 여기 이처럼 준열하게 그것이 추궁되고 있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는 8월의 뜨거운 폭양 속에서 아우성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나는 내 어릴 적 기억속의 아득한 그리움처럼 손때 묻은 팽이 한 개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답변해 주었다.” - <청구회의 추억> 중에서
묵도하게 되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눈을 감는 일 밖에 없어 보인다. 준엄한 호령 속에서도 작가의 머릿속에서 돌고 있을 그 아련한 팽이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은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무기력한 소회만은 아니다. 그는 명확한 기억력을 통해 과거를 객관화한 후, 자신의 현실에서의 한계점을 인지하여 감상적인 기억과의 냉철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속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그의 삶에 대한 깊이는 물질을 통한 사고의 대입 그리고 현실을 규정하는 행위의 일탈로부터 오는 깊이있는 사색이 동반되어져 있다. 특히, <서도의 관계론>을 보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저자의 서도(書道)를 통한 깨우침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획이 다른 획을 만나지 않고 어찌 제 혼자 ‘자’(字)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획도 흡사 사람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 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또 한 ‘행’(行)의 잘못은 다른 행의 배려로써, 한 연(聯)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 <서도의 관계> 중에서
이렇듯 서도를 통한 통찰은 단순한 자구(字句)의 완성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증폭되어지며 그 파장은 사회와 인간과의 관계를 넘어서 이질적인 것과 부조화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조화와 통일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한 폭의 글은, 획, 자, 행, 연 들이 대소, 강약, 태세(太細), 지속(遲速), 농담(濃淡)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며 간신히 이룩한 성취입니다. 그중 한 자, 한 획이라도 그 생김생김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와르르 얼개가 전부 무너질 뻔한, 심지어 낙관(落款)까지도 전체 속에 융화되어 균형에 한 몫 참여하고 있을 정도의, 그 피가 통할 듯 농밀한 ‘상호연계’와 ‘통일’속에는 이윽고 묵과 여백, 흑과 백이 이루는 대립과 조화, 그 ‘대립과 조화’ 그것의 통일이 창출해 내는 드높은 질(質)이 가능할 것입니다.” -<서도의 관계> 중에서
이렇듯 드높은 의미와 높은 깨달음을 통하여 얘기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만큼의 수고를 동반하지 않는 것은 여타의 고상한 책들이 쉬이 범할 수 있는 현학적 오류에서 벗어나 그의 솔직한 삶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진정성과 거기에 동반하는 냉철한 현실에 대한 고찰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징역살이’ 편에서 보여준 그의 인간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여름징역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본능에 대한 기술을 통해 단순한 인간현상 이상의 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가장 낮은 곳에 속한 저자의 특수한 상황이 인간의 가장 깊은 심연을 관통하여 그 특유의 밑바닥 시선으로 본질을 꿰뚫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 <여름징역살이> 중에서
여름의 찜통같은 더위로 인해 옆 사람의 몸 온도가 그를 증오하게 만든다는 여름징역은 우리사회의 온도를 징역의 수준으로 맞추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그러나, 여름징역속의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존재자체가 주는 괴로움과 고통이 단순히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보듬고 넘어가야할 ‘관계’임을 설파함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을 얘기하고 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涼)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 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 <여름징역살이>중에서
신영복 교수의 글 중에서 <관계>에 관한 삶의 통찰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가 표출해내는 관계에 관한 다양한 의미와 고찰들이 결코 가벼이 볼 수도 혹은 간과해서도 안되는 중요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별탈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가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던 저자가 군부독재하의 국가기관 통제하에 강제로 <관계>를 정리당하고, 그 <관계>로부터 격리당한 채 보내는 삶 속에서 그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본질, 인간적 본질에 보다 근접할 수 있도록 ‘룸펜 프롤레타리아’ 와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동거를 통해 형성해 나간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그러한 저자의 경험은 격리된 공간에서의 사색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덧붙여 네트워크화된 사회- Stand Alone 방식에 반하는- 를 살아가는 요즈음, 가장 고전적인 통신방식(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이메일이 아니라 전통적인 의미의 편지를 통해 왕래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지는 옥중서신이 주는 감동은 그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넘어서 이를 통해 표현되는 그 통신 대상과의 관계와 인간 그리고 고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수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존재하나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단순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시공-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의 시공간적 거리만큼의-에 존재하지만 보다 깊은 성찰과 격조있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관계>는 단순한 물질적 통신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이면에는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주는 제한적인 상황의 결과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관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on Dollar Baby, 2004년 미국> 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비평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의미는 바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단순한 피를 물려받은 가족이라는 고전적 형태가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붕괴되어 버리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재구성되어진다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 단지 차이라면 영화상에서의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관계>를 형성해 가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영복 교수는 ‘타의’에 의해 의지가 제어당한 채, 기존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빈약한 동거의 어느 어중간한 중도막에서, 바깥 사람이라면 별리(別離)의 정한(情恨)이 자리했을 빈터에,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서로 어떠한 ‘관계’를 뜨개질해왔던가? 하는 담담한 자성(自省)의 물음을 간추리게 됩니다. 슬픔에 커진 눈으로, 궁핍에 솟은 어깨로, 때로는 욕탕의 적나라함으로, 때로는 멀쩡하게 발톱숨긴 저의(底意)로, 한 몸 인생이 무거워 짐 추스르며, 몸 부대끼며 살아온 이 팔레트 위에 우연같은 혼거(混居)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 헤어지는지......” - <떠남과 보냄> 중에서
그리고, 신영복 교수의 글들은 새로운 관계의 성립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은 떨어져 있지만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있을 자리를 끊임없이 모색하며 편지라는 의사소통방식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의미를 끈끈하게 만들어 간다.
“저는 다시 한번 영원한 탯줄의 끝에 달린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영원한 탯줄의 끈> 중에서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 관계 속에 피어나는 새로운 존재감을 인지한다.
“ 사람들은 누구나 거미줄같이 수많은 관계 속에 서지 않을 수 없고 보면 ‘관계는 존재’라는 명제의 적실(適實)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영원한 탯줄의 끈> 중에서
신영복 교수의 글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하나는, <관계>의 끈을 이어나가기 위한 의사소통 방식의 진솔한 감동이었다. 감옥에서 씌여진 편지나 엽서의 영인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검열>자가 선명한 편지지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매번 자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망의 공간에서 저렇듯 간절하면서도 꼼꼼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그 소중함과 함께 오늘날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고나 할까?
전통적인 가족상의 균열, 네트워크화된 사회, 온라인상의 다양한 아이디로 존재하는 멀티적 삶이 가능한 다중적 사회, KTX 로 비유되는 지리, 시간의 축소. 이 모든 사회적, 물질적 풍요와 변화 속에서도 가슴에 바람이 불 듯 궹한 것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주는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은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자리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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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쿠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5.15 2005년에야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정말로 오랜만에 써 본 독서 감상문이었습니다. 오늘 받은 이메일중에 신영복 교수에 대한 얘기가 있길래 문득 생각나 파일을 찾아서 옮겨봅니다. 2년이 지난 지금에야 다시 읽어보니 좀 장황하고 치졸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신영복 교수의 원본은 색깔이 달리해 표시했으니 그 부분만 읽으셔도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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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한 작성시간 07.05.16 단어는 관계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언어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신영복님은 말만 많이 들었지 실제 그이의 책을 한권도 읽지 못해서.....언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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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남박사 작성시간 07.05.16 이 책은 내가 빌려 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