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와 예수
“나,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마라.”
어떻게 신이 질투를 다 할까?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나는 관대하다.’라고 외쳤다는데.
무굴제국의 이슬람교도 왕들을 제외하고 힌두교도 왕들도 대체로 ‘나는 관대하다.’라고 외쳤다는데.
가끔 불교를 탄압한 힌두교도 왕들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튼 야훼는 이런 인간의 왕들보다 옹졸하다.
그리고 야훼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로 심판하고 불로 심판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무자비한 신을 믿을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한다고?
그 정도를 가지고 타락이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한 놈도 살아남을 자가 없겠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는 법이다.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부모가 자식을 창조했어도 자식을 죽이면 감옥에 가는데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자식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는 법이다.
요즘은 하나님이 코로나19로 심판한다고 어떤 목사들이 말하던데 그 목사들은 제정신일까?
그들의 하나님은 어찌 그리 무자비하실까?
그들에 의하면 신 야훼는 자신에게 아부하는 놈들만 빼고 모두에게 종말을 내릴 모양이다.
그런 배타적이고 무자비하고 질투와 증오와 저주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을 왜 믿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해서는 안 되고, 질투와 증오와 저주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해로운 마음이라고 가르친다.
사실 민중은 무자비한 신을 좋아한다.
삶이 힘들수록 세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
인도의 힌두교도들도 그 많은 신 중에서 파괴의 신 시바를 제일 좋아하고, 조선의 백성들이 천지개벽을 해줄 정도령을 기다리고, 티벳 민중들이 분노명왕을 추종하는 것이 그렇다.
“빌어먹을 세상, 다 때려 부수고 신천지를 건설하자!”
핍박받는 민중은 파괴와 분노를 좋아한다.
불교는 삶의 괴로움을 명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기독교는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신이 정말로 있다면 그렇게 무자비하고 파괴적이고 옹졸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교의 토라(율법서), 구약성경, 이슬람교의 코란을 읽어보면 이것은 통치자들의 고도의 통치전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문서들을 보면 먹는 음식, 성관계, 치료, 결혼, 예배의식까지 민중의 일상생활을 세세하게 규정해 놓았다.
이것은 숫제 진리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민중 통제법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배자가 자신의 권위로는 민중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신의 권위를 빌려 통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어리석은 민중은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에 세뇌되어 정신적 자유를 잃어버렸다.
예수는 무자비한 야훼에 비하면 성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신발도 못 신게 했다.
거의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한 자였다.
옛날 붓다시대에 스님들은 산문 밖을 나서면 맨발로 다녀야 했고, 지금도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부채와 물주전자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맨발로 다닌다.
그리고 예수는 야훼의 배타적 사랑이 아니고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 희생, 봉사를 실천했다.
그는 민중들에게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고 민중들을 섬기는 자였다.
이것은 헌신 사랑 봉사를 실천하는 힌두교의 박티 요가나 불교의 자애 바라밀과 비슷해 보인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사도 바울이 새로 창조한 예수라고 한다.
그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죽은 예수를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종말론과 구원론, 재림 예수, 메시아 사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계략이 보기 좋게 통해서 세상을 기독교화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후대의 종교인들은 이 교리를 이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부수면서 극도로 혐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는 그런 허황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눈곱만큼의 에고도 없이 타인을 위한 무한한 사랑, 희생과 봉사를 실천한 성인이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민중들에게 희생 봉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에 무소유와 타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가 보기에 옹졸한 야훼보다 예수가 훨씬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다.
기독교인들이여, 야훼를 믿지 말고 예수만 믿어라.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라고?
거 참!
“나,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마라.”
어떻게 신이 질투를 다 할까?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나는 관대하다.’라고 외쳤다는데.
무굴제국의 이슬람교도 왕들을 제외하고 힌두교도 왕들도 대체로 ‘나는 관대하다.’라고 외쳤다는데.
가끔 불교를 탄압한 힌두교도 왕들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튼 야훼는 이런 인간의 왕들보다 옹졸하다.
그리고 야훼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로 심판하고 불로 심판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무자비한 신을 믿을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한다고?
그 정도를 가지고 타락이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한 놈도 살아남을 자가 없겠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는 법이다.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부모가 자식을 창조했어도 자식을 죽이면 감옥에 가는데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자식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는 법이다.
요즘은 하나님이 코로나19로 심판한다고 어떤 목사들이 말하던데 그 목사들은 제정신일까?
그들의 하나님은 어찌 그리 무자비하실까?
그들에 의하면 신 야훼는 자신에게 아부하는 놈들만 빼고 모두에게 종말을 내릴 모양이다.
그런 배타적이고 무자비하고 질투와 증오와 저주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을 왜 믿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해서는 안 되고, 질투와 증오와 저주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해로운 마음이라고 가르친다.
사실 민중은 무자비한 신을 좋아한다.
삶이 힘들수록 세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
인도의 힌두교도들도 그 많은 신 중에서 파괴의 신 시바를 제일 좋아하고, 조선의 백성들이 천지개벽을 해줄 정도령을 기다리고, 티벳 민중들이 분노명왕을 추종하는 것이 그렇다.
“빌어먹을 세상, 다 때려 부수고 신천지를 건설하자!”
핍박받는 민중은 파괴와 분노를 좋아한다.
불교는 삶의 괴로움을 명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기독교는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신이 정말로 있다면 그렇게 무자비하고 파괴적이고 옹졸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교의 토라(율법서), 구약성경, 이슬람교의 코란을 읽어보면 이것은 통치자들의 고도의 통치전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문서들을 보면 먹는 음식, 성관계, 치료, 결혼, 예배의식까지 민중의 일상생활을 세세하게 규정해 놓았다.
이것은 숫제 진리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민중 통제법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배자가 자신의 권위로는 민중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신의 권위를 빌려 통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어리석은 민중은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에 세뇌되어 정신적 자유를 잃어버렸다.
예수는 무자비한 야훼에 비하면 성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신발도 못 신게 했다.
거의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한 자였다.
옛날 붓다시대에 스님들은 산문 밖을 나서면 맨발로 다녀야 했고, 지금도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부채와 물주전자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맨발로 다닌다.
그리고 예수는 야훼의 배타적 사랑이 아니고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 희생, 봉사를 실천했다.
그는 민중들에게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고 민중들을 섬기는 자였다.
이것은 헌신 사랑 봉사를 실천하는 힌두교의 박티 요가나 불교의 자애 바라밀과 비슷해 보인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사도 바울이 새로 창조한 예수라고 한다.
그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죽은 예수를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종말론과 구원론, 재림 예수, 메시아 사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계략이 보기 좋게 통해서 세상을 기독교화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후대의 종교인들은 이 교리를 이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부수면서 극도로 혐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는 그런 허황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눈곱만큼의 에고도 없이 타인을 위한 무한한 사랑, 희생과 봉사를 실천한 성인이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민중들에게 희생 봉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에 무소유와 타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가 보기에 옹졸한 야훼보다 예수가 훨씬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다.
기독교인들이여, 야훼를 믿지 말고 예수만 믿어라.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라고?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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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xianxuan 작성시간 20.03.14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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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위 작성시간 23.08.19 구약성경은 율법서, 선지자들, 시문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기득권, 지배층의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수모를 겪고나서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백성들이 야웨 하느님의 율법을 제대로 안 지켰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600여개의 세부 실천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종교 기득권층은 그걸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남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걸 바로잡아주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미움을 사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