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놓는 수행의 관점에서 본 대승불교」
Q. 연기적으로 관찰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무엇이 인이고 무엇이 과인지, 어떤 씨앗을 심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대승불교 경전이나 그 우수성을 보면 내용은 매우 훌륭한데, 한편으로는 “아라한은 왜 이렇게 비중이 적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스님이 입적하시면 속환사바를 기원하고, 중생 구제와 불성, 성불을 강조하며 “부처가 되라”고 인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기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수행의 출발은 ‘존재를 붙잡지 않는 것’인데,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불성이나 성불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존재를 만들어 가는 수행이 아닌가, 방향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A. 대승불교라고 해서 잡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스님들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많죠. 하여튼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존재를 잡고 한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어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생 구제의 의미」
Q. 대승불교에서는 중생 구제를 가장 크게 내세우지 않습니까?
A. 물론 그거는 그렇지만 그거는 이제 이념적으로 표방하는 것이고, 그 러니까 대중불교가 생긴 이념적인 배경이. 그럼 아라한이 돼 가지고 한 사람 이 해탈한들 그게 다른 중생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그게 가치 있는 일이냐 차라리 중생들을 깨칠 수 있도록 많이 인도해야 한다라고 하고. 아라한이 되 면 왜 그러냐 하면 아라한이 되면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없어져야 된다고 하 는 거거든요.
물론 중생 제도를 할 수 있겠지만 아라한이 되면 또 태어나지 않 는다는 거 아닙니까? 네 태어나지 않으니까 한 사람이 해탈해가지고 태어나 지 않으면 남아 있는 다른 중생들은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차라리 아라한이 되지 말고 자기가 배운 거 가지고 살아 있는 중생들을 많이 인도하는 게, 이게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겠느냐. 하는 게 대승불교죠. 이타 사상이고 예를 들면 일부러 번뇌를 남겨 가지고 해탈 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 는 번뇌만을 남겨가지고 다시 태어나서 중생을 구제하고, 이렇게 한다는 뭐 좀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뭘 대승불교가 잡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대승불교의 이념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이론을 펴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해야 될 거 아닐까 싶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계가 형성된 배경에 대해」
Q. 보살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입니까?
A. 대승불교에 있습니다.
Q. 대승불교에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처럼 대중을 아우르는 보살 사상이 형성된 것은 이해가 됩니다.그런데 어떤 배경에서 보살계를 주고, 출리를 전제로 하기보다 중생을 보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의문이 듭니다. 출리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A. 일부에서 표방하는 내용 중에 그런 게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말씀하신 그런 걸 표방하는 경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모든 대승이 일반적으로 그러냐 하면, 그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