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른 됨의 의미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유가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군자(君子)'는 유가에서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인격적
으로 성숙하고, 자신의 말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의 오덕(五德)이라 하여
사회 각 부문의 리더자가 갖춰야 할 군자오미
(君子五美)의 행실과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유가오덕(仁義禮智信)의 각각 다섯 가지 덕목을
얘기했습니다.
한자어이긴 하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들은 바가
있는 용어이기에 여기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군자오미>
•혜이불비(惠而不費):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음
(부담 없는 배려)
•노이불원(勞而不怨):일을 시키되 원망받지 않음
(명확한 임무와 지시)
•욕이불탐(欲而不貪):하고자 하되 탐내지 않음
(절제된 욕심)
•태이불교(泰而不驕):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음
(자유로움 속의 위엄)
•위이불맹(威而不猛):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음
<유가오덕(仁義禮智信)>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신은 약속을 지키고 속이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공감하지만 휘둘리지 않고
정의롭지만 독선적이지 않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으며
판단력 있지만 차갑지 않고
모든 걸 행함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모든 생각과 마음이 선을 넘지 않고 균형이
잡힌 사람은 분명 성숙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처럼 안팎을 두루 챙기며 군자 되기란 결코
쉽지 않으니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사람은 그
몸가짐의 무거움을 더욱 마음에 새기고 간직해야
할 터입니다.
공자는 이 중에서 인과 의를 특히 중시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강조하는데, 남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 누구나 안타까워하는 측은지심은
소통과 공감 능력이 커지는 오늘날은 그나마
실천하는 이가 많지만 옳지 못함을 돌아보며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는 수오지심은 예나
지금이나 실행에 옮기기가 힘든 덕목입니다.
의로움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흔히 역사에
나오는 의인 안중근같은 의사(義士)를 연상하는데
자기 목숨을 버리는 정도의 큰 용기는 보통의
각오로 되는 일이 아니며,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만한 상황과 여건이 펼쳐져야 위인이
나올 수 있기에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의리를 외친다고 해서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곳에서 잘못된 의리를 지키다가 나락으로
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특히 범죄조직이나
정치 세계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모두를 암울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정말로 의로운 사람일까?
「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에서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수오지심, 즉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부끄러움이란
정직하지 않아 남을 속이거나, 아는 바대로
실천하지 않거나, 베풀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색할 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길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부끄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부와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랑보다 증오에 빠진 종교인과
지식인, 공동체 의식이 결여돼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소위 귀족 노조, 악플을 달며 숨어서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어둠의 뒤에서 빛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기웃거리다 마는 인생은 결코 문밖 참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은 맞는 말이다.
혼자인 경우는 더더욱 큰길로 가야 된다.
큰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되고 만다.”(1-294)
자기 생각에 취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면수심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부끄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왕위찬탈과 같은 계유정난의 야심과
무도함은 과거 역사가 아니라 얼마든지 현재
진행형의 역사가 되겠지만 다행히 2년 전
계엄령이 뜬금없이 선포되었을 때 보여준,
바르지 않은 일에 맨몸으로 저항한 시민들의
정신이 살아있는 한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담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처럼 일상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실천한 평범한 시민이자
백성들이라 할 것입니다.
(*끝부분에 김정탁씨의 칼럼 일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