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2. 목요일 - 어죽 한그릇 먹으려 광천으로. 광천어죽. 면천읍성. 骨井池. 乾坤一艸亭. 白羊寺古佛梅.
오늘은 옛 직장 후배가 토요타 하이브리드SUV를 뽑았으니 그 기념으로 모시고 싶으니 어죽이나 먹으려 가자면서 "광천에 어죽 잘하는 집이 있다"고 가자해서 같이 근무했던 지인과 셋이서 한 차로 광천으로 어죽을 먹으려 갔다.
1, 骨井池. 乾坤一艸亭.
가는 도중에 면천읍성을 둘러보면서 그 옆에 새로 조성한 아름드리 노거수(老巨樹)가 만드는 벚꽃터널로 유명한 옛 벽골지, 현 골정지(骨井池)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시절 정조24년(1800년) 조성했다는 골정지 한가운데 조성해놓은 초가 정자인 건곤일초정(乾坤一艸亭)을 둘러보았다.
건곤일초정이란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초가정자란 뜻으로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
골정지 주변 뚝방에는 흰 백목련과 노오란 산수유 및 진달래는 만개했으나 정작 보고자하는 벚꽃은 날씨탓인지 꽃몽우리만 맺혔을뿐 아직은 피지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5일후쯤 찾아간다면 호수 둘레를 감싸고 비워있는 멋진 벚꽃의 향연을 즐길수있을것으로 보여진다.
주변 정황상 농업용수용으로 조성된 골정지는 옛날엔 벽골지라고 했던 것으로 박연암(朴燕岩)이 조성했다는 乾坤一艸亭은 벚꽃이 만개하면 멋진 풍광으로 돋보일듯해 보인다.
2, 광천어죽집
광천시내에 있는 단층짜리 아주 오래된 허름한 집에서 끓여내는 어죽탕은 미꾸라지에게 늙은 호박 큰 것을 먹인 후(3 ~ 4일이면 다 먹는다고 함) 파.양파. 부추를 넣어서 찐득하게 끓어내는데. 미꾸라지에게 늙은 호박을 먹이면 미꾸라지 속에 있는 불순물을 없애고 비린내도 없애준다고 한다. 해서 모방송국 생생정보에도 소개되었다고 했는데, 어죽에 국수를 넣어서 끓여낸 후에 다시 밥을 볶아주는데 국수도 맛있고 볶아주는 밥도 맛있다. 특히 생고추가 맵지않고 아삭하니 맛있다.
찾아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는 길에 한번쯤은 먹어볼만하다.
3. 스님은 양처럼 몰려오고 꽃은 부처님으로 변신한 장성 백양사 고불매.
(1) 스님은 양처럼 몰려오고 꽃은 부처님으로 변신한 장성 백양사
오늘 갔드니 백양사로 들어가는 입구 사하촌(寺下村) 하천변으로는 벚꽃이 만개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으면서 마치 우리를 쌍수로 환영하는듯했는데, 의외로 경내는 보수공사로 어지럽다.
여기에 더하여 아쉽게도 조금 늦어서 202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불매의 매화는 반 이상 졌고 고목이 된 나무상태도 다소 비실거리는게 오래가지 못할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그 대신 그 담벼락을 따라서 새롭게 조성된 靑.紅.白梅.垂楊梅는 만발했는데 아직 어리다보니 제역할(役割)을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쉽다.
대한불교조계종제18교구본사인 백양사는 1996년 '고불총림(古佛叢林)'이란 이름으로 '총림'으로 지정되었으나, 2019년 11월 11일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총림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스님이 흰 바위산의 형상을 보고 ‘백암사(白巖寺)’로 창건하고, 이후 고려 덕종3년(1034) 중연선사가 크게 중창하여 ‘정토사’로 고쳤다. 고려 충정왕 2년(1350) 고려 제13대국사인 각진국사가 사세를 확장시켰고, 1355년 무렵부터 다시 ‘백암사’로 고쳤던 것 같다. 이후 백암사는 조선 선조7년(1574) 환양선사(喚羊禪師)가 '백양사(白羊寺)'로 바뀌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주지 팔원(八元)스님이 절에 머물면서 영천굴에서 법회를 열어 금강경을 설법했다고 한다. 법회를 열고 사흘째 되는 날, 흰 양이 나타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레째에 법회가 끝나고 환양선사가 꿈을 꾸었는데, 흰 양이 나타나 "자기가 원래는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이었다가 죄를 지어 흰양으로 되었는데, 선사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천인으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환양선사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암자 앞으로 나가보니, 흰 양 한 마리가 죽어 있었으므로, 절의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이야기에는, 환양선사가 대웅전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니 산에서 산양들이 많이 내려와 경청하였으므로 백양사라 개칭했다고도 하며 '양을 부르는 스님'이라 하여 ‘환양(喚羊)선사’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꿰어맞추기의 억지춘양식의 주먹구구설화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맞는 설화라야 하므로 내가 이를 추측해보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흰 승복(회색이지만 언듯보면 흰색처럼 보임)을 입고 백암사로 몰려든 스님들을 비유하여 백양이라 했을 것이고, <법화경> ‘비유품’에 아들이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불타는 집을 무사히 빠져나오는 내용이 있는데 환양선사가 스님들을 깨닫게 하려는 ‘성문승교(聲聞乘敎)’ 이야기가 ‘백양’이고 ‘환양’이 된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백양사가 되었다고 봄이 이치에 맞지않을까 생각된다.
환양선사 다음 주지를 한 소요태능(逍遙太能)선사는 태어날 때 어머니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큰 수레를 끌고 갈 사람을 잉태했다고 축하하여, 선사의 이름을 ‘대승(大乘)’이라 지었다고 한다.
<법화경> ‘비유품’에 양거, 녹거, 우거를 뛰어 넘는 큰 수레(大白牛車)를 ‘대승’이라 하는데, 그래서 13세때 백양사 출가는 <법화경>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선사는 부휴선사에게 경전을 배우고 서산대사에게서 선지(禪旨)를 깨우쳐 임제의 26세 적손으로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그래서일까?
선사의 열반게는 선기(禪氣)로 가득 차 있다.
解脫非解脫 해탈이 해탈 아니나니
涅槃豈故鄕 열반이 어찌 고향이랴
吹毛光爍爍 취모검 광채 번뜩이면
口舌犯鋒鋩 입속 혀 칼날 범하리
선사의 부도는 백양사 성보박물관에 있는데, 조선시대 범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 용뉴는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받들어 선사의 깨달음을 나타내고, 네 면에는 각각 아홉 개의 연꽃봉오리와 가운데 위패형 액에는 ‘소요당’이란 당호가 있다. 두 마리의 용은 뿔을 세우고 힘찬 모습으로 위패를 지키고, 아래 물결 속에는 게, 거북이가 기어 다닌다. 부도를 범종형으로 만든 의미는 범종은 부처님을, 소리는 부처님의 음성을 상징하여 선사를 부처님처럼 모시고자 했다.
백양사는 이후 여려 차례 훼손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으며, 현재 남은 건물들의 대부분은 1917년 만암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주요 건물들 중에는 환양선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극락보전이 가장 오래되었는데 극락보전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극락보전 옆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이 외에 소요대사탑, 사천왕문, 각진국사 진영, 아미타회상도 등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더불어 백양사를 비롯한 백암산 일대는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바, 백양사와 백학봉 일대는 백양사의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 암벽과 숲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으로 손꼽혀왔다.
백암산은 내장산과 함께 가을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 숲과 고불매를 비롯하여 1,500여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명승이며, 특히 지금도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 그리고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이며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백양사 입구에 위치한 쌍계루는 뒤에 있는 흰화강암 바위인 백학봉과 기암절벽 등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며 앞에는 연못이 있어 누각과 뒤의 배경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광경은 백양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실제로 백양사를 찾는 관광객들 상당수는 쌍계루를 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전문가처럼 프로용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가을 단풍철에는 내장산 단풍과 절 앞의 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해서 내장산 계곡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환양선사 이후 수행체계로 간화선 중심의 선종(禪宗)을 표방하고 있는 백양선문(白羊禪門)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시심마(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是甚磨: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註1)?'라는 뜻의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육체적 탄생 이전의 근원적 성품(眞我)을 참구하여 생사 해탈과 견성을 이루는 것으로, 보통은 줄여서 '이 뭣고(시심마, 是甚磨)'라는 의문을 통해 일체의 분별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하여 내가 우스개 소리로 "이 뮛꼬?" 다음에 "밥먹고"라 해서 진중하고 긴장된 선방에서 한바탕 웃게 만들기도 했다.
* 註1, 父母未生前 (부모미생전):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즉 육신이 만들어지기 전의 상태.
本來面目 (본래면목): 태어나기 전의 본래 모습, 참된 나(진我), 근원적 성품(불성).
是甚磨 (시심마): "이것이 무엇인가?", "이 뭣고".
이같은 참구의 목적은 육신과 마음(생각)은 태어나고 사라지지만, 그 이전의 본래 모습은 불생불멸함을 깨닫는 것으로, '이 뭣고?'라는 화두를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여 의심(疑情)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이 화두는 임제종중의 제8대조사인 마조도일(馬祖導一)의 제자로 위앙종과 임제종의 제9대 조사인 百丈淸規로 유명한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선사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성철 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강조한 임제종을 계승한 조계종의 핵심 화두이기도 하다.
이 화두는 겉모습이나 분별심을 넘어, 본질을 향한 내면의 의문을 지속함으로써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선(禪) 수행의 하나다.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가끔 바위에 이런 글귀들이 보인다. 즉
『父母未生前本來面目(부모미생전본래면목) 이 뭣꼬?』
선가(禪家)에서는 이를 약(略)하여 한자로
「是什麽(시십마)」또는 「是甚麽(시심마)」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말로「이 뭣꼬?」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나의 본래진면목이 무엇인가? 하는 의미가 된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본래(本來)는 처음부터,
원래, 근본 등의 의미로서 천성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을 지닌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본래면목은 인위적인 행위가 가해지지 않은 것으로
시비(是非)가 없고 분별(分別)이 없으며
조작(造作)이 없고 생멸(生滅)이 없이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본분사(本分事),
본분전지(本分田地),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은
이치적으로 처음부터 부처와 중생이 하등의 차이도 없이 완전하게 동일한 모습으로 설정된 것으로
본래청정자심(本來淸淨自心)을 의미하고,
어떤 작위(作爲)나 부작위(不作爲) 이전에 발생해 있는 그 모습인 본래심(本來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심(心)'은 심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활동 그 자체를 가리키는 자기의 본래적인 생명 활동이며,
자성 청정한 진실의 사람을 가리키는 본래인(本來人)이고, 본래의 모습은 맑고 적정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본래담적(本來澹寂)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써 제법(諸法)이 본래부터 청정하다는
자성에 대한 속성을 표현한 말이다.
본래면목을 지닌 이 몸, 곧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교학(敎學)에서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四大(사대)는 空(공)하고, 色受想行識(색수상행식)의 집합체인 五蘊(오온)은 주인이 없다고 말한다. 즉
<나>라고 하는 주인공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의미에서, 다시 말해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나>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나>라는 존재는 저 하늘의, 저 무한의 우주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작은 존재다. 무한대(無限大)에 비교하면 무한소(無限小)의 극미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나>의 육체는 수천만 개의 세포로 구성되고, 그 세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수천만 개의 극미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인체는
7,000만 개의 세포로 되어 있다고 하는 바,
7000만게의 세포란 곧 7000만개의 영혼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 극미한 세포보다 더 작은 박테리아들이
그 속에 기생하고 있다. 찰나에 번식하는 그 박테리아는 하루 동안에도 수천억 만개의 박테리아로 증가한다. 해서 그들의 눈에는 극미한 <나>라는 존자가 무한대의 우주와 같다.
큰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고, 작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큰 존재, 그것이 바로 <나>라는 위치다.
3조 승찬이 지은 불교의 가장 위대한 저술인 <信心銘(신심명)>의 말로 표현하면「지극히 작은 것은 큰 것과 같아서 그 상대적인 경계가 끊어지고(極小同大 忘絶境界),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끝을 볼 수 없다(極大同小 不見邊表)」
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無限大와 無限小에 자리한 영혼들이
까르마의 힘에 의하여 만들어 진 그것이 지금의 <나>라는 존재다.
그 세포, 그 극미세포, 그 박테리아와 연관되어 있고,
이 지구와 우주와 삼천대천세계, 그것들 모두가 까르마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된다.
영혼을 지닌 것들이 까르마의 업력에 의해
상호 작용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화엄이나 법화경의 말을 빌리면 나라는 존재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에 존재할 뿐이며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 속에 존재하는, 머무는 것일 뿐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이는 고정된 어떤 실체가 아니라
무상(無相)이며, 무아(無我)인 실체가
곧 <나>라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是甚麽」란
어떤 실체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곧 본래 청정심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된다.
그 청정심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은 물론
그 이전의 시공간도 벗어나 있기에 본래 청정심이란 말은 부동(不動)의 존재 곧 여래를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그 청정심이란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시공간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한정된 시공간의 경계 속에서만 통하는
언어 문자로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情識難測」이요 「言語道斷」이라고
禪家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是甚麽'란 곧 「本來淸淨自心」이 무엇인가?
「여래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된다.
이는 곧 「너의 본래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라.」
라고 하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수보리는 바위에 앉아 공(空)을 생각지 않았는데 깨달은 야차는 땅을 움직여 하늘 꽃비 뿌리네” 팔원스님 ‘법화경’ 독송하면 흰 양들이 무수히 몰려와서 ‘백양사’ ‘환양선사’로 불려 나래 펼친 대웅전 팔작지붕 당당한 모습과 우뚝 선 백학봉 한 눈에 들어와 탄성 저절로 나온다.
(2) 시들어가는 백양사 고불매 - 고불매 보면 日日是好日(나날이 좋은 날)
“고불매를 보고도 마음을 열지 못하면 법신불(法身佛)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눈길을 끈다는 고불매(古佛梅).
그런데, 아쉽게도 그 고불매가 시들어가는게 눈에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백양사에 꽃으로 변한 부처님은 우화루(雨花樓) 옆 담 벽에 있는 고불매(古佛梅)를 법신불로 본 것이다. 법신불은 중생구제를 위해 두루 나타나는 자연으로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 고불매를 보고도 마음을 열지 못하면 법신불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황벽선사는 “한 번의 추위가 뼈 속까지 사무치는 것이 아니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겠는가?(註2)” 했다. 매화도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뼛속 추위를 견디는 인욕바라밀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랴.
* 註2, 배휴가 묻고 황벽이 답하다.
배휴거사 묻고 황벽선사 답한 돈수의 길
〈전심법요(傳心法要)〉는 배휴(797~870)거사가 황벽희운(?~850)선사에게 법을 묻고 이에 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황벽스님의 어록은 보리달마의 ‘일심법’과 육조혜능의 ‘돈교법문’을 투철하게 설파했다고 평가될 만큼 선문의 귀한 자료이다.
황벽스님은 육조-남악-마조-백장-황벽-임제로 이어지는 당대(唐代) 조사선의 황금기에 선풍을 크게 드날렸던 분이다. 이들은 ‘평상심이 곧 도’라고 하여 일상생활 가운데서 간단명료하게 불법을 실천해 보임으로써, 선의 대중화에 크게 성공했다.
당대 일류의 지식인이었던 배휴는 842년 강서의 종릉에서 관찰사로 재임할 때, 스승인 황벽스님을 가까운 용흥사에 모시고 시간 날 때마다 참배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6년 후 안휘의 완릉에서 관찰사로 재임할 때도, 스님을 개원사에 모시고 법을 물었다. 거사는 스승의 소중한 어록을 기록해두었다가, 선사께서 돌아가시자 그 제자들에게 증명을 얻어서 세상에 공개했다.
종릉에서의 어록을 ‘전심법요’라 하고 완릉에서의 어록을 ‘완릉록’이라고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둘을 통칭하여 〈전심법요〉라고 부른다. 오늘날까지 많은 선수행자들이 이 책을 통해 중도정견을 확립하였는바, 황벽스님의 심요를 세상에 전한 배휴 거사의 공이 크다 하겠다.
이 책은 원래, 임제종에서 종지종통을 확고히 하기 위해 마조-백장-황벽-임제선사의 어록을 모아 펴낸 〈4가어록〉에 실려 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허스님이 편집하여 1908년 범어사에서 간행된 〈선문촬요〉에 포함되어 있다. 서양에는 1958년 영국인 존 블로펠드의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배휴가 황벽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기연은 〈완릉록〉에 전해오고 있다. 스님께서 회창법난을 만나 홍주 땅의 개원사에 은거하고 있을 때였다.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에 들어오다가 벽화를 보고, 안내 하던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이곳에 선승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배상공은 마침내 황벽선사를 청하여 뵙고,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선사께 여쭈었다. 그러자 황벽선사가 불렀다.
“배휴!”
“예!”
“어디에 있는고?”
배휴는 이 말 끝에 깨치고 선사를 청하여 개당설법을 하시게 하였다.
배휴는 이전에 규봉종밀의 여러 책에 서문을 쓸 정도로 도연이 깊었지만 깨닫지 못하다가, 황벽스님과의 첫 만남에서 바로 깨달음의 기연을 얻게 되었다고 〈완릉록〉은 전한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일은, 배휴거사와 황벽선사의 문답이 갖는 의미다.
비록 배휴가 황벽선사의 말끝에 대의를 알아챘지만, 그 후 스승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그가 아직 상을 여윈 입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돈오’를 체험했지만 아직도 ‘점수’의 입장에 있는 수행자에게 선지식께서 ‘돈수’의 길을 제시하는 대목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고위관료인 배휴가 정중하게 여쭤본 덕분인지 몰라도, 황벽스님은 이 책에서 격외의 게송이나 선문답을 제시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간명 직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조계 정전(正傳)의 정통 선사상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황벽스님의 ‘박비향’ 게송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절창이다.
번뇌를 벗어나는 일은 예삿일 아니니[塵勞逈脫事非常] 고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緊把繩頭做一場].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여기서 황벽은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눈속에서 피어나야만 고혹적이면서 진한 감향을 피우듯이 선승들도 매화처럼 혹독하고 고된 참구를 해야만 깨달음을 얻을수있다고 했다.
고불매의 수령은 약 400여 년 되었다고 한다. 소요태능선사가 처음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1918년 만암선사가 우화루를 짓고 옛 백양사 대웅전 앞뜰에 있었던 매화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초봄에 활짝 피는 고불매는 참으로 두 선사의 그윽한 향기를 전해준다.
또한 고불매와 우화루는 곁에서 서로 윈윈(win win)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화는 불보살님의 공덕을 기리는 하늘의 공양으로, <법화의기>에서는 “여래의 신통력으로 꽃비를 내린 것”이라 했다.
<법화통략>에서는 “꽃비가 내리는 상서로움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기 직전, 삼매에 들어 계실 때 하늘에서 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서로움이 있는 것을 우화서(雨華瑞)라 하는데, 이때 대지가 진동하는 것은 사찰을 지키는 도량신이 법의 눈으로 꽃을 피워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환양선사든, 소요선사든, 고불매든, 우화루든 이래저래 백양사와 <법화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여기에 우화루 주련은 금상첨화로 고불매와 딱 맞아 떨어지는 <벽암록> ‘제6칙 운문선사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 나오는 공안(公案)이다.
"雨過雲凝曉半開 數峰如畫碧崔嵬
空生不解巖中坐 惹得天花動地來
(비 지나가고 구름 엉켜 새벽은 반쯤 열렸는데/ 여러 봉우리들은 그림 같이 드높게 푸르렀네// 수보리는 바위에 앉아 공을 생각지 않았는데/ 깨달은 야차는 땅을 움직여 하늘 꽃비 뿌리네)"
금년에 내가 탐매(探梅)한 통도사 자장매와 화엄사 화엄매는 기운을 한껏 뽐내는데 반해서 고불매는 옛고(古)字가 들어가서인지 삶을 버거워하는게 한 눈에 보인다.
경내 엄청난 공사로 인해서 기운이 바뀐탓이리라.
본래 백양사의 가장 큰 문제는 대웅전 뒤 흰 바위산인 白巖山에서 흘러내린 물이 거두어지지 못하고(이 물을 가두고자 대웅전. 극락전 앞 등 전각 곳곳에 큰 연못을 조성해 두었으나 이것으로는 역부족임) 절앞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직출수가 문제였는데 이번 공사를 하면서 이같은 설기(洩氣)가 더 심해지다보니 절 기운도 쇠락해가는게 눈에 보인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들도 고사되고 기운도 예전같지 못해서 고불총림이란 허명(虛名)도 2019년 11월 11일 해제되었나보다. 세상이치가 다 그렇듯이 한때의 옛 영화는 이렇게 사라지나보다.
지난 2월에 덕숭총림수덕사를 찾았을때는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꼈었는데 그것과 대비되어 아쉽게 생각된다.
(3) 상제봉조형(上帝奉朝形)의 대명당에 깃던 운문암(雲門庵)
오래전 명당 찾아 전국을 간산(看山) 다닐때 너무나 좋은 기운이 느껴져서 기운 쫓아서 들렸던 운문암.
대웅전 위 아름다운 백학봉 아래 약사암이 있고 그 위 上帝奉朝形의 천하대명당에 백양사의 祖室을 역임하고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고승으로 사망 당시 좌탈입망을 한 것으로 유명한 西翁
(1912~2003, 본명은 이상순)스님이 주석했던 雲門岩이 있다.
풍수를 보고자 무턱대고 찾아갔던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11시 도착했는데 서옹 종정을 봅고자 찾았드니 출타 중이시라 뵙지못하고 나올려고 하는데 서옹스님의 맞상좌이신 암주스님이 한사코 붙잡으시드니 5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대봉감 홍시를 한 접시 내어주시면서 "잠시 드시고 계시면 공양을 지어올리겠다"고 해서 극구사양 했으나 워낙 완고 하신지라 "그럼 스님께서는 공양하셨느냐?"고 물었드니 "예, 방금 식은밥 한 덩이로 했습니다"라고 답한다.
하여 미안한 마음에 "저희는 배도 고프지 않고 또 방금 홍시도 먹었으니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일어설려고 했드니 또다시 팔을 붙잡고 억지로 주저앉힌다. 그렇게 해서 뜻하지 않는 따뜻한 공양을 받고 나오는데 어느새 차를 가지고 와서 "백양사까지는 길이 머니 모셔다 드릴테니 타시란다."
식은 밥으로 공양을 하면서 철야수련하시는 분의 시간을 뺐음 안되겠기에 이것만은 한사코 사양하고 3km를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헤어지면서 몹시 섭섭해 하드니 "이 담에 여기를 오시면 꼭 들리셔서 좋은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기에 오랫동안 못본 암주 얼굴도 볼겸해서 올라가볼려고 했드니 가는 길을 차단기로 막아놓았다. 게다가 이미 저녁 6시간을 지났기에 걸어갔다오기도 뭣해서 부득이 다음기회로 미루고 백양사를 출발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공양간에서 공양을 하지않고 걸어서 갔다올걸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절밥은 진수성찬보다 맛있다. 특히 밥과 나물이.
백양사의 공양은 다른 절에 비하면 거의 호텔급으로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다.
(4) 대웅전 팔작지붕과 백암산 백학봉
쌍계의 서쪽 극락교를 지나면 ‘만암대종사 고불총림도량’이라고 쓴 긴 돌기둥이 있다. 만암종헌선사는 1917년 주지로 와서 대웅전과 사천왕문 등 10여 년에 걸친 중창불사로 백양사를 크게 일으킨 스님이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보는 백암산 백학봉은 참 아름답다. 보는 위치가 대웅전과 멀면 주변이 산만하고, 너무 가까우면 백학봉이 가려 멋이 없다. 대웅전과의 거리조절에 성공하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때가 대웅전 팔작지붕의 나래를 펼친 당당한 모습과 우뚝 선 백학봉이 한 눈에 들어와 탄성을 자아낸다. ‘大雄殿(대웅전)’ 편액은 천은사 일주문 현판 하나로 천은사의 화재를 막았던 천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로 ‘大’는 오른 발을 힘차게 내딛고 가는 사람처럼, ‘雄’과 ‘殿’도 함께 따라 움직이는 듯 글씨가 생동감과 재미를 준다.
원교 이광사의 글씨는 언제봐도 멋지다!
대웅전 천장에는 용과 동자, 천인, 새가 하늘을 날며 불보살님을 찬탄·공양하는 모습이다. <화엄경>에 “불보살님께 올리는 공양은 불보살님의 자비심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내게 돌아오는 공덕 또한 무량무변하다”고 했다.
(5) 가려움은 절대 못 참겠다’는 듯 등을 긁는 것 같은 나한상(대웅전).
대웅전 좌측에 있는 나한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두 눈이 먼 천안제일 아나율존자가 바늘에 실을 꿰려고 안간힘을 쓴다. 살짝 기울인 고개, 찡그려 주름진 얼굴, 곧 꿰일 듯 말 듯 계속 허탕을 치니 계면쩍은 미소가 흐른다. 또한 등을 긁는 나한의 표정을 보면 내 등이 가려워 지는 듯하다. 참선을 하다말고 가려움에 지팡이로 긁어보지만 그곳이 아니듯 싶어, 입은 비뚤어지고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눈빛은 생사의 괴로움은 벗어던졌으나 가려움은 절대 못 참겠다는 듯 재미있다.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쌍계루를 백학봉과 함께 멀리서 볼 수 있는 징검다리이다. 불교에서의 다리는 계율을 지키고 법을 배워 윤회를 벗어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백양사의 징검다리는 계율을 상징하는 다리로, <등집중덕삼매경>에 “계율은 부처님의 법에 따라 확립되고 그것으로써 광명을 삼게 된다. 부처님의 법은 곧 계율의 다리로 보살의 도를 확립한다”고 했다.
해서 징검다리를 건너듯 나의 행동이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다리를 중간 쯤 건너서 바라보면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가 어우러져 연못에 비치는 아름다움은 그저 그만이다
(6)백양사의 사찰 음식
민폐가 될까봐 웬만해서는 절밥을 먹지 않지만
백양사 공양간 음식은 맛있다고 소문이 난 탓에
시간 절약상 공양을 했는데 깔끔하니 맛있다.
이 절의 비구니 정관스님이 사찰 음식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불자인 프랑스 출신의 유명 셰프인 Éric Ripert과도 친분이 있으며, 미국에서 그가 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넷플릭스의 음식 다큐멘터리인 Chef's Table의 시즌 3에도 출연하여 이 때문에 베를린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기도 하였다. 정관스님은 MBC 손현주의 간이역 2021년 7월 3일 에피소드에서도 인근 백양사역에서 기차를 타러 온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백양사 고불매를 탐매하고 내려오는데 석양에 비친 사하촌과 사하촌 옆으로 빠져나가는 하천변의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의 벚꽃이 만개하여 바람이 불때마다 꽃비를 내려주는게 참으로 멋지고 환상적이다.
https://www.instagram.com/p/DWrAA2dkqIM/?igsh=MXN1MW53emtzOThy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