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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

작성자尋山|작성시간26.06.06|조회수50 목록 댓글 6

좋은 인연

오늘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로, "수염(까끄라기)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망종(芒種)이다.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망종일을 맞이하여 좋은 인연의 씨앗을 뿌려서 좋은 선연(善緣)을 맺고 삼생삼세(三生三世)에 선과(善果)을 거두시라고 인연에 대해서 살펴보자.

온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만물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 해서 나는 이것을 인연(因緣)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자연과의 만남이나 사람과의 만남 및 각종 동.식물과 각종 사물이나 만상(萬象)과의 만남 등 모든 만남은 이같은 인연때문에 만나지는 것이다. 하여 모든 만남은 모두 인연이 있어 만나지는 것이며,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지고, 또 때가 되면 저절로 풀어지게 되기에 억지로 이루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때가 되어야만 저절로 그렇게 된다.

자연(自然)이란 뜻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에서 알수있듯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온 우주 만상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해서 억지로 되지않고 인연이 있어 때가 되면 스스로 만나지고 인연이 다하면 저절로 헤어진다.

해서, 이것을 잘 알지못했던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마치 어떤 신이 있어 그리되는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알라의 뜻[인샬라(Inshallah)]'이라고 했고, 중국인들은 '하늘의 뜻{天意)'라고 했으며, 우리 선조들은 '조상님들의 뜻', 또는 '신명(神明)의 뜻'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럼, 이같은 인연은 어찌해서 생겨나는가? 모든 인연은 모두 다 자기가 삼생삼세(三生三世)에서 스스로 심고 가꾼 것의 결실(結實)이다.

즉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인연이 이루어질
것이고 나쁜 짓을 많이 하면 나쁜 인연이 맺어진다. 즉 '선인선과(善人善果)'요 '악인악과(惡人惡果)'다. 이를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도 한다.

이 삼생삼세(三生三世)의 행위도 물론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즉 전생에서 좋은 일을 한 자는 금생에서 그대로 복을 받아 좋은 인연이 되어 나타나고 악행을 한 자는 금생에서 그 벌을 받아 그 댓가를 치루게 되며, 또 금생에서 복을 짓는 자는 내생에서 그 수확을 거두게 되어서 더 좋은 복을 받게 되고 악행을 한 자는 내생에서 그 벌을 그대로 받아서 험한 댓가를 치루게 된다. 하여 불가의 경전인 '불설삼세인과경(佛說三世因果經)'에서는 저 유명한 인과응보의 구절이 나온다.

"어느 날, 미모의 장자부인이 허구 헌 날,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몸에 피가 낭자한 채로 석가모니를 찾아 뵙고 슬프게 울면서 말했다.

'자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허구헌날 남편에게 맞아야 합니까? 제가 인물이 못난 것도 아니고, 아내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부도(婦道)를 지키고, 자녀교육에도 전연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울면서 하소연을 하였다.

이 말을 듣고난 석가모니는 '내 말을 잘 듣고 전생 인과(因果)를 깨달으라'라고 하면서 팔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자 오늘날 홀로그램을 방불하는 영상으로 어느 대궐이 허공에 떴는데 석가는 이어서 말했다.

'너는 전생에 저 대궐의 공주였다. 공주가 성질이 못되어서 허구헌날 아무 잘못도 없는 시녀를 꼬집고 때리고 피를 흘리게 하는 등 못된 짓을 하였느니라. 시녀는 상전 앞이라, 한 마디 항변도 못하고 그대로 한을 품고 살다가 죽었느니라.
시녀는 전생의 한이 풀리지 않은 인과(因果)로 금생에 너의 남편이 되었고, 꼬집던 공주는 바로 너다. 너는 전생에 뿌린 씨를 금생에 받는 것이다. 네가 전생에 시녀를 때리고 꼬집은 것 만큼, 네 남편이 너를 때리는 것이다. 전생으로부터의 인연과보(因緣果報)를 이제는 알겠느냐?
시녀가 너에게 꼬집힌 한을 품고 죽었듯이, 네가 또 금생에 한을 품고 죽으면, 내생에 또 네 남편에게 앙갚음을 할 것이며, 세세생생{世世生生) 주거니 받거니 앙갚음이 계속되느니라. 이제 인과를 깨달았거든, 너는 금생에 또다시 원결(寃結)을 맺지말고, 지극정성으로 진참회(眞懺懷)하여 다겁생래(多劫生來)을 두고 이어온 갚음을 금생에서 딱 끝내거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깊이 참회하고 깊이 생각한 장자부인은 부처님께 '제가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을까요?'하고 여쭈니까, 부처는 아난을 불러서 마하바사바제 비구니에게 안내케 했다.

즉시 장자부인은 삭발하고 비구니가 되어 부처님의 가르치심대로 열심히 수행하였다고 한다." 해서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즉 '삼세 인연설'이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바로 미래로 이어지는 통로다. 해서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축생 같은 짓을 하면 축생이 되고, 고귀하고 거룩한 행을 하면 선신(善神)이 된다.

석가모니 당시 말리카 왕비는 원래 꽃동산을 일구는 하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탁발 나온 수행자를 만나서 기쁜 마음으로 공양을 올렸다. 공양물이 있어도 공양 받을 만한 이가 없거나, 공양 받을 만한 이가 있어도 공양물이 없으면 보시(布施)하기가 어렵다. 그날은 마침 공양물도 있고, 공양 받을 만한 이도 있었기에 즐겁게 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꽃동산을 가꾸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혼자서 지친 모습으로 꽃동산에 온 것을 보고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그 사람이 바로 파세나디 왕이었다.

사냥터에서 홀로 벗어나 목마르고 지친 몸으로 헤매고 있던 왕에게 친절을 베푼 공덕으로 말리카는 인생 역전이 시작된다. 꽃동산의 하녀에서 하루아침에 왕비라는 최고의 신분이 된 말리카 왕비의 이야기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재미와 아울러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말리카 왕비는 어느 날 부처를 찾아와서 여쭙는다.
“부처님이시여, 똑같은 사람인데 왜 어떤 사람은 예쁘고 어떤 사람은 추하며,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며, 또 어떤 사람은 고귀하고 어떤 사람은 천하게 태어납니까?” 즉 미추(美醜), 빈부(貧富), 귀천(貴賤)에 대해 여쭙자, 
부처께서 말씀하시길, “과거 생에 성질을 잘 낸 사람은 추하게 태어나고, 과거 생에 베풀기를 싫어하고 인색했던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과거 생에 남을 시기질투한 사람은 천박하게 태어난다.”고 했다.

즉 과거 생에 행한 대로 내가 이 몸을 받는다, 자기가 마음 연습한 그대로 받는다는 것이다. 부처의 말씀을 듣고 말리카 왕비가 말씀드리길, “그럼 저는 틀림없이 전생에 성질을 잘 냈군요. 그래서 이렇게 추하게 태어났어요.”라고 했다. 말리카 왕비는 얼굴이 그리 예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말리카 왕비는 또 부처께 말씀드리길, “부처님, 그러나 저는 다행스럽게도 과거 생에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질투하지 않고 찬탄하고 같이 기뻐했기에 이렇게 고귀함과 부유함을 갖추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부처께서 “그렇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모와 부유함, 그리고 고귀함을 다 갖추고 싶나요? 

미인이 되고 싶으면 성질을 내지 말고 방긋방긋 웃으면 된다. 똑같은 얼굴이라도 웃으면 더 예뻐 보이고, 찡그리고 성내면 추하게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자가 되고 싶으면 인색하게 굴지 말고 베풀면 된다. 역설적이지만, 베풀면 오히려 부자가 된다. 주는 마음은 부유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베풀면 자기 마음이 먼저 부유해지고 현실 또한 부유해진다. 마음이 먼저요, 현실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면,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그런데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고귀한 마음일까? 천박한 마음일까? 
당연히 천박한 마음이다. 해서 이같이 천박한 마음을 연습하면 천박해지는 것이다. 내생까지 갈 것도 없다. 요즘은 뭐든지 빨라져서 인과법도 빨라진 듯하다. 금생에 상당부분 받게 되어 있고 그같은 경우를 나는 주위에서 많이 보게된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법칙을 일깨워주는 종교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인과와 윤회를 믿는 것이다.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거다. 모든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쓸데없이 점쟁이나 신(神) 따위를 믿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왜나하면, 자연의 법칙은 음양제로이기에 절대로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깊이 새겨야한다.

초기 경전인《잡아함경(雜阿含)》권15(卷十五)에 "부처께서 이르시기를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受者是(금생수자시: 금생에 겪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요.
欲知來生事(욕지내생사: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금생에 짓는 업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교설했다."라고 나오고 이를 받아서
후기 후기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법화경(妙法蓮華經)과 남종선(南宗禪)의 개창자 육조혜능의 설법을 기록한 유일한 책으로 불조(佛祖) 석가모니 이래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깨달음인 돈오점수 와는 매우 다른 돈오돈수를 주장한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제자인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가 책으로 편찬한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알수가 있고)요.

이 구절은 과거의 업(Karma)이 현재의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이나 겪고 있는 고난과 행복은 모두 내가 과거(전생)에 지은 행동의 결과라는 가르침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구절인 "욕지내생사 금생작자시(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생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수가 있다)"는 미래의 운명은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인과(因果)의 도리를 깨달아 현생(現生)의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보고 내생(來生)을 위한 선근(善根)을 쌓아가야 한다. 선근을 쌓되 무엇보다도 무주상(無住相)으로 쌓은 바 없이 쌓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노스님께서 자신의 전생사를 살펴보니 남의 것을 훔친 과보가 있었다. 틀림없이 그 과보를 받으러 올 것이라 생각하여 평생 방석 밑에 돈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도둑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왔다. 도둑은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그래서 얼른 돈을 주면서 ‘아이고, 이제야 빚을 갚았구나’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난다. 긍정적인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으로 풀어 나간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다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려서 보시를 행하고, 분노를 삭혀서 자비를 베풀며, 지계를 실천하여 어리석음을 없애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보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며 남을 용서한다는 것(자비를 베푼다는 것) 또한 가슴 벅찬 일이다. .

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마음에서 즐겁고 괴로운 모든 생각들이 한 순간이며 그 실체가 본래 머무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마음을 바꾸는 것도 내 자신의 몫인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각성! 그 각성을 통해 마음을 비워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세세생생 인과 속에 살아가는 인생사. 후회 없는 삶, 매 순간, 한 호흡지간에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 이(是)렇게 하는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유가(儒家)에서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으니,
공구(孔丘)는 “欲知未來(욕지미래) 先察已然(선찰이연):미래를 알고자 하면 먼저 이미 그러하였음을 살피라)"고 하면서, “明鏡所以察形(명경소이찰형:밝은 거울은 모양을 살피는 것)이요, 往古所以知今(왕고소이지금: 지나간 옛일은 현재를 아는 까닭이 된다)이다”라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지만, 내 안에 있는 성찰의 촛불은 마치 석가 생존시의 '빈자일등(貧者一燈)처럼 모진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

《현우경(賢愚經)》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인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여인 난타(難陀)가 온 정성을 다해 바친 작은 등불 하나가 부유한 사람들이 바친 수많은 등불보다 꺼지지 않고 끝까지 밝게 빛났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부처님에게 바친 등불 하나가 부귀한 사람들이 바친 만개의 등불보다 공덕이 크다는 것으로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참다운 마음과 정성이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는데, 난타는 사람들이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라고.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
'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한 양이야'하면서 기름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와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유일하게도 난타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같이 좋은 인연은 내 안에 있는 빛과 같다.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빛과 같은 인연.
 
여름밤 밤하늘을 수놓은 무공해의 반딧불이처럼
좋은 인연은 내 안에서 빛을 밝힌다.

우리 모두 이같이 좋은 인연을 맺고 가꾸어가야만 한다.
 
나훈아 - 인연
https://youtu.be/EdxBjWwWXhk?si=27bX_FDGy3yETY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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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尋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 작성자천봉산(김종왕) | 작성시간 26.06.07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尋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고운 주말되세요
  • 작성자일출(성인영) | 작성시간 26.06.07 항상 좋은글로 마음 다스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尋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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