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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지식

[이벤트]삼국지 도시 알아보기- 강릉, 강하, 양양

작성자『무고령』周瑜의 知慧|작성시간06.01.12|조회수947 목록 댓글 0
▧강릉
현명 형주 남군에 속하며, 군의 수부가 있었다. 성터는 원래 지금의 호북성 강릉에 위치해 있었다.
후한의 형주 남부 중심도시.

적벽의 전투 이후 위나라의 조인이 지켰는데, 주유의 공격으로 도망가 대신 주유가 남군태수가 되어 강릉에 주둔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게 되자. 대신 관우가 주둔하고 북벌의 근거지가 되었다. 하지만 219년 자리를 맡겼던 남군태수 미방은 여몽의 계략으로 오에게 배반당하고 이후 오의 형주 주군이 되었다. 남조 양의 수도가 되었던 곳이다.

▧ 강하
군명 형주에 속하며 14개 현을 관할하였다. 수부 소재지는 서릉현이며 지금의 호북성 신주 서쪽에 있었다. 동한말 수부를 사선으로 옮겼는데 지금의 호북성 무창 서남쪽이다. 삼국시대 위와 오 두나라는 각각 강하군을 설치하였다. 위의 강하군은 수부 소재지가 상창이었고 지금의 호북성 운몽 서남쪽이다. 오의 강하군은 수부 소재지가 무창이었고 지금의 호북성 악성이다.
후한 형주 강하군 중심도시는 서릉
하지만 유표의 강하태수 황조는 하구에 주둔했다. 이곳은 현재 무한시에 해당됨, 손책,손권이 여러번 공격해 208년 드디어 아버지의 원수 황조를 꺾은 장소이다. 적벽의 싸움후. 하구는 오의 영토가 되고 정보의 용장이 오의 강하태수가 되어 다스린다. 한편 위의 강하태수는 안릉을 중심도시로 하고, 문빙이 태수가 되어 오랫동안 다스렸다.

▧ 양양
현명 형주 남군에 속하며 성터는 원래 지금의 호북성 양번에 위치해 있었다. 동한말에 남군과 남양군의 일부를 합하여, 양양군을 설치했는데 그 수부는 양양에 두었다. 그 당시 형주의 수부 역시 양양이었다.
후한의 형주남군에 속한다. 후한말에 형주민이 된 유표가 본거지로 삼았다. 취임당시, 유표는 형주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괴월의 헌책으로 양양에 머물렀다. 후에 손견이 유표를 공격해, 양양이 포위중일 때 전사한다. 208년 유표의 후계자인 유종의 항복으로 이 땅은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남북조때의 쟁탈전, 원과 남송의 공방 등 옛부터 여러번 남북세력의 대결장이 됐다.

출처- 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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