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삼국지지식

[이벤트]삼국지 도시 알아보기(신야, 무릉, 계양)

작성자『무고령』周瑜의 知慧|작성시간06.01.13|조회수252 목록 댓글 0
▧ 신야
형주 남군에 속하며 성터는 원래 지금의 호북성 양번에 위치해 있었다. 동한말에 남군과 남양군의 일부를 합하여 양양부를 설치했는데 그 수부는 양양에 두었다. 그 당시 형주의 수부 역시 양양이었다.

후한의 형주 남부군에 속한다.

후한말에 형주민이 된 유표가 본거지로 삼았다. 취임 당시 유표는 형주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괴월의 헌책으로 양양에 머물렀다. 후에 손견이 유표를 공격해 양양이 포위중일때 전사한다. 208년 유표의 후계자인 유종의 항복으로 이 땅은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남북조때의 쟁탈전, 원과 남송의 공방등 옛부터 여러번 남북 세력의 대결장이 되었다.

▧ 무릉
군명 형주에 속하며 12개 현을 관할하였다. 수부의 소재는 임완이며 지금의 호남성 상덕 서쪽에 있다.

후한 오 서진의 형주 무릉군

이 근처는 오계만이라는 이민족의 거주지. 적벽의 전투후. 유비는 무릉태수 금선을 격파하고 이곳을 차지하지만, 219년 관우의 죽음으로 오의 영토가 된다. 이후 오계만은 항상 오와 적대적인 관계로 반준에게 토벌당했다.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는 전쟁에서, 유비가 마량을 파견해 오계만을 아군으로 만들고, 촉 멸망후 오계만이 위와 통해 오를 배반했던 기록이 역사적으로 남아있다.


▧ 계양
군명 형주에 속하며, 11개 현을 관할하였다. 수부 소재지는 침현이며 지금의 호남성 침주에 있었다.
후한 오 서진의 형주 계양군 중심도시인 침현은 항우의 방해가 되던 의제를 보낸 장소(도중에 살해됨.) 적벽의 전투 이후 유비는 조범을 격파해 이곳을 차지하고 조운을 신태수로 임명했다. 조범 형의 미망인과의 조운이 거절한것은 유명하다. 215년 오와 촉의 형주 분할 이후에는 오의 영지가 된다.

출처-파성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