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을 중시한 인물
제갈량의 형. 풍모가 당당하고 사려 깊은 성격에다 성실함과 넓은 도량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서주 출신이었지만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하고, 동생 제갈량, 제갈균은 숙부 제갈현에게 의지해 예장으로 가게 되어 형제 간에 생이별을 한다. 손책이 죽고 손권 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손권의 매제에 해당되는 곡아의 홍자가 추천해 노숙 등과 함께 빈객으로 대우받다가 이윽고 손권의 장사가 된다.
제갈근은 손권에게 의견을 개진할 때 결코 강경한 말이나 격렬한 어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말로 다른 사물에 잘 견주어 상대방을 깨닫도록 했다. 그래서 손권도 그를 존중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상의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제갈근은 다른 가신을 위해 중재하는 일도 많았다. 손권이 부하 주치에게 강한 불신을 품고 있을 때 주치가 손권의 부친인 손견 시대부터 중신이기 때문에 손권은 직접 추궁하지 못한 채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제갈근은 손권의 마음을 알아채고 먼저 손권의 불만을 말하게 하고, 다음으로 주치의 입장에 서서 변명했다. 그러자 손권은 '과연, 내가 납득이 간다. 덕이 있는 자는 남에게 화합을 준다더니 귀공과 같은 인물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며 웃었다.
또한 교위 은모가 손권의 노여움을 사서 그 죄를 묻게 되었을 때 많은 가신이 그의 구명을 위해 의견을 냈으나 손권은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 제갈근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손권은 그에게 왜 의견을 말하지 않는지 묻는다. 그러자 제갈근은 자리에서 내려와 엎드리며 '은모와는 고생을 함께 해온 사이인데도 그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고, 지금 그를 구제할 수도 없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대답했다. 이에 감동한 손권은 '제갈근을 보아서' 라고 말하며 은모를 용서한다.
손권의 신뢰에 부응하다
제갈근은 동생 제갈량이 유비의 가신이 되었으므로 유비 진영에 대한 사자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국 사자로서 절도를 지키고 제갈량과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사적은 대면은 절대 하지 않았다. '유비에게 돌아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손권에게 충고하는 자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손권의 신뢰가 절대적이어서 '나와 제갈근은 목숨을 초월한 신뢰로 연결되어 있다. 그가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나 또한 그를 배신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고 말하고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222년 위와 국교가 단절되고 동료 주연이 위의 조진, 하후상의 군세에게 포위되자 대군을 이끌고 구원에 나선다. 제갈근의 전략은 계획을 면밀하게 자고 임기응변의 전술을 취했기 때문에 손권을 애타도록 만들었지만 결국 적군을 패주시키고 만다. 화려한 전공은 아니었지만 병사를 잃지 않고 영토를 지킨 점을 높이 사 좌장군으로 승진. 229년 손권이 황제에 즉위하자 대장군 좌도호가 되어 육손과 함께 전군의 지휘를 맡게 된다. 손권으로부터는 자신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거리낌없이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칙명을 받고 수많은 진언을 한다.
제갈근은 '남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가지고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듯이 매우 사려 깊은 인물이었지만 자식 제갈각은 재능을 뽐내는 경우가 많아 가문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241년 68세로 사망한다.
성과가 없는 사자 역할
연의에서도 성격과 능력은 차이가 나지 않지만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사자 역할이 많다. 주유의 명령으로 오에 사자로 파견된 제갈량을 손권에게 돌아서도록 설득하지만 제갈량은 전혀 상대하지 않는다. 또한 손권의 자식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켜야 한다고 사자가 되어 관우에게로 가지만 개의 자식에게 호랑이의 딸을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그뒤 관우가 맥성에서 손권에게 포위당했을 때도 항복을 때도 항복을 권하는 사자로 나서고 유비가 관우의 우너수를 갚기 위해 오를 침공했을 때도 화평을 위한 사신으로 나가지만 모두 헛걸음으로 끝나고 만다.
후년에는 무장으로서 활약도 많아져 육손과 함께 몇 차례 위군과 싸우는데 한번은 조비군을 철퇴시켜 사마의가 이끄는 군세와 서로 이기고 지는 호각의 승부를 계속한다.
또한 제갈근의 얼굴이 갸름해서 마치 당나귀와 비슷하기 때문에 손권이 당나귀 얼굴에 '제갈자유' 라고 쓴 표찰을 붙여놓고 놀리고 있을 때 아들 제갈각이 붓을 빌려 그 말에 '지려'라고 써넣어 모두 감탄하게 만들고 그 당나귀를 하사받았다는 일화는 정사에도 나온다.
출처 - 삼국지 인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