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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인물」]촉서-<마량전>

작성자『오관중랑장』 猛將 夏候惇|작성시간07.08.20|조회수386 목록 댓글 0



마량은 자가 계상(季常)이고, 양양군 의성현 사람이다.

마량의 형제 다섯 명은 모두 재능과 명성이 있었고, 고향 마을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가요로 만들었다.

'마씨(馬氏)의 오상(五常) - 다섯 명의 뛰어난 형제들이 모두 자에 상(常)을 썼으므로 오상이라고 함 - 중에서, 백미(白眉)가 가장 훌륭하구나!'

마량의 눈썹 가운데 흰색 털이 있었기 때문에 '백미'라고 불렀다.

유비가 형주를 다스릴 때, 마량을 초빙하여 종사로 임명했다.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자 제갈양 또 한 뒤따라갔는데, 마량은 형주에 머물면서 제갈양에게 편지를 보냈다.

- 낙성은 벌써 함락되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준 복입니다. 존경하는 형은 시기의 필요에 순응하여 세상을 보좌하고 대업을 수립하였으며, 국가를 빛냈으므로 성공할 징조를 볼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국면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빼어 난 사려이고, 판단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명찰함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재능있는 자를 선발한다면 시대의 요구에 적합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광휘를 사방으로 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즐겁게 느끼도록 하며, 덕을 부지런히 천지에 이르게 하여 그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듣는데 한가롭게 하고 세상이 도리에 복종하며, 고아하고 오묘한 음악을 일제히 연주하고 정풍(鄭風)과 위풍(衛風)과 같은 소리를 바르게 하여 모든 의견이 국가의 대사에 이로우면 서로 다투지 않는다면, 이것은 관현악의 지고한 소리이며 백아(伯牙)와 사광(師曠)이 연주한 악곡일 것입니다. 비록 종자기(鐘子期)처럼 음악을 알지는 못하지만 감히 박자를 치지 않겠습니까! -

주석) 마량은 제갈양과 의형제를 맺었으므로 친분관계가 돈독했다. 제갈양이 연장이었기에 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유비는 마량을 불러 좌장군의 속관에 임명했다.

후에 마량을 오나라에 사자로 파견했다. 마량이 제갈양에게 말했다. "현재 저는 국가의 사명을 담당하여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원컨대 저를 손장군(손권)에게 소개시켜 주십시오." 제갈양이 말했다.

"그대가 직접 편지를 써 보내시오."

마량은 곧바로 초고를 만들어 보냈다.

- 저희 군주께서는 연(椽)인 저 마량을 파견하여 우호관계를 지속시켜 곤오(昆吾): 하시대의 제후)와 시위(豕韋 : 하시대의 제후)의 훈공을 받아 잇도록 했습니다.
이사람은 재능과 덕망이 출중한 인산이며, 형초(荊楚) 지방의 유명한 사람으로, 부화함은 적으므로 최후까지 지속시키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마음을 낮추어 받아들임으로써 그로 하여금 임무를 완성하도록 하십시오.

손권은 경의를 갖고 마량을 대접하였다.

유비는 제(帝)의 존호를 칭한 이후, 마량을 시중으로 임명했다. 유비는 오나라를 정벌할 때, 마량을 파견하여 오계(五溪)의 이민족들을 귀순 시키도록 했다. 이민족의 우두머리는 모두 촉나라의 관위(官位)를 나타내는 관인과 칭호를 받고 모두 그의 생각처럼 했다. 마침 유비가 이릉(夷陵)에서 패배했고 마량 역시 살해되었다. 유비는 마양의 아들 마병(馬秉)을 기도위로 임명했다.

마양의 동생 마속은 자가 유상이다.

형주종사의 신분으로 유비를 따라 촉군으로 들어가 면죽현, 성도현의 현령, 월수군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마속은 일반 사람들을 뛰어넘는 걸출한 재능을 갖고있고, 군사전략에 관한 논의를 좋아하였으며, 승상 제갈양은 그를 높이 평가했다.

유비는 임종할 무렵. 제갈량에게 말했다.

"마속은 말이 실질을 넘고 있어, 크게 사용할수 없소. 그대는 그를 잘 살펴보시오 !! "

제갈양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마속을 참군으로 임명하여 불러서 담론을 하면 밤까지 이어졌다.

건흥6년(228)에 제갈량은 기산으로 출병했다. 그 당시 경험이 풍부한 장수로는, 위연과 오일(오의)등이 있었다. 논의하는 자들은 모두 이들을 선봉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은 사람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마속을 발탁하여, 병사들을 인솔해 전방에 위치하도록 하고 위나라 장수 장합과 가정에서 싸워서, 장합에게 격파되었다.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갈량은 전진하여 의지할곳이 없었으므로, 한중으로 후퇴하였다.

마속은 투옥되었다가 죽었다. 제갈량은 이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마량이 죽은때는 36세였고, 마속이 죽은때는 40세였다.

 

 

출처-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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