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조조가 여백사를 죽인 부분을 좀 더 살펴보자. 조조가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창망히 도피하던 중 자신을 구해준 진궁과 함께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묵게 된다. 마침 집안에 술이 떨어진 여백사는 나귀를 타고 술을 구하러 서촌으로 간다. 집에 남은 두 사람은 홀연 집 뒤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칼 가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들을 해치려는 것으로 오판하고 여백사의 여덟 식구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러나 부엌에서 도살하려고 결박시켜둔 돼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비로소 자신들의 접대를 준비하던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급히 집을 나와 달아나던 두 사람은 때마침 술을 구해 돌아오는 여백사를 만나게 된다. 일이 있어 급히 떠난다고 속인 조조는 여백사가 등을 돌리자마자 여백사마저 죽여버린다. 이에 진궁이 크게 놀란다. "알면서도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불의요!" 이에 조조는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으리라!" 하고 대답한다. 그제야 진궁은 조조란 인물이 일개 이리의 마음을 가진 도당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묘사된 이야기는 의심 많고 잔인하며 악독한 조조의 내심세계를 유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삼국지 무제기를 비롯한 사전의 원문에는 이 방면에 관한 기록이 없고, 배송지의 주에서 세 사람의 설명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 또한 제각기 내용이 다르다.
첫째는 왕침의 위서를 인용한 내용으로, '태조는 동탁이 끝내 실패하리라 단정하고 벼슬을 받지 않고 향리로 달아났다. 따르는 몇 명의 수하와 연고가 있는 성고의 여백사 집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 백사는 부재중이었는데, 백사의 아들이 빈객들과 함께 태조를 협박하여 말과 물건을 뺏으려 함에 태조가 칼을 쥐고 몇 명을 쳐 죽였다.'라는 기록이다.
다음은 곽예의 세어로, '태조가 백사의 집을 지나갈 때, 백사는 집을 나갔고 아들 다섯이 모두 있었는데, 빈주의 예를 갖추었다. 태조는 스스로 동탁의 명을 어겼기에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심을 품고 야밤에 검을 쥐고 여덟 사람을 죽이고는 도망쳐 버렸다.'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손성의 잡기를 보면, '태조가 그 집에서 나는 식기 소리를 듣고는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되자 그들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슬픈 어조로 이르기를, "차라리 내가 남을 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버리도록 하지는 않으리라!" 하고는 가버렸다.' 고 하였다.
위서를 쓴 왕침은 위나라 조저의 비서감 벼슬을 지낸 사람이고 세어를 지은 곽예와 잡기를 지은 손성은 둘 다 진나라 사람이다. 시대적 선후를 따지더라도 왕침이 조금 빠르고 기록도 비교적 이치에 합당하기에 왕침의 기록이 사실에 접근한다고 생각한다. 또 진나라나 남북조 시대의 사람들은 '기록에서 빠뜨린 소문이나 사건'들을 수집할 때, 역사적 진실성 여부보다는 기이한 것만을 좋아해서 왕왕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일찍이 손성이나 배송지 같은 사람은, '대개 기이함을 좋아하고 정실로 흐르는 경우가 많음으로 말미암아 합리성이 손상되는 표현임을 몰랐을 것이다.' 라고 비평했다.
만약 왕침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비교적 가까운 것이라면 나관중이 묘사한 정경은 역사적 사실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조조의 살인 동기도 자위책에서 나온 것이므로 오판으로 살인했다고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왕침이 위나라의 비서감 출신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유일생은 진가삼국종횡담 에서 '위나라의 존엄성을 위해 곡필했을 우려가 있으므로 차라리 진나라 출신인 곽예나 손성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이런 형편 때문에 나관중도 그들이 묘사한 기초를 근거로 수많은 허구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곽예나 손성의 기록에는 단지 여백사의 집안사람들만 죽였다고 했지 여백사까지 죽였다고 하진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심 때문에 여백사의 여덟 식구에 대한 피살로 이어졌지만 그토록 깐깐한 진궁조차 양해할 정도의 상황이었고 특히 추격당하는 처지에 놓인 비상사태였음을 고려해야한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집안 식구들이 돼지를 잡아 자신을 대접하려 했다는 사실은 물론 이웃마을까지 가서 술과 안주를 사오는 여백사의 열정까지 파악한 조조가, 사람을 착각하기는 커녕 한술 더 떠 속임수까지 동원하여 여백사를 죽인 건 대체 무슨 짖이란 말인가? 독사 같은 심장을 지닌 악독함은 물론이려니와 진궁이 꾸짖을 때도 태연히 "내가 남을 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고 내뱉은 몸서리치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여백사를 죽인 사건에 관하여 곽예, 손성의 기록에는 한 마디의 암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또 한 가지, '차라리 나로 하여금 ,.,. ' 이란 구절도 비록 손성의 기록을 근거로 나온 것이지만, 손성의 기록에는 여씨 집안사람들을 오판으로 죽인 상황 아래 부득이해서 나온 처창한 심정의 말인 반면, 나관중의 묘사에선 진궁이 불의라고 꾸짖는 정황 아래 공공연히 선포된 말이라는 사실이다. 나관중은 이를 계기로 극단적 이기주의에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조조의 심사를 너무도 치밀하게 표현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나관중이 왕침의 기록을 믿지 않고 곽예, 손성의 기록만 믿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곽예와 손성 두 사람의 기록이 인물묘사에 있어 좀 더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그 자료를 기초로 개조, 가공, 윤색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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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게임폐인』삼국지만세!! 작성시간 10.08.27 오랜만이네요 백가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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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동윤 작성시간 10.08.28 나관중의 농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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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삼조[潤荷]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8.28 그래도 내용은 훌륭하게 구상한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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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스겔 작성시간 10.08.29 여백사까지 죽이면서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운운' 하는 장면은 난세의 간웅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딱히...
나관중의 농간은 상식적으로 이해해줄수 없는 서주대학살을 묻어버린 점을 들어야겠지요. 이건 거의 동탁에 수렴하는 행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