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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지식

[인물열전][정사]위서 만총전

작성자[평동장군] 삼조_┌龍┐|작성시간04.12.15|조회수252 목록 댓글 0
만총은 자가 백녕이고, 산양군 창읍현 사람이다. 열여덟 살 때, 군의 독우가 되었다. 당시 군 안의 이삭등이 각각 사병을 끼고 평민들에게 해를 끼쳤다. 태수는 만총을 시켜 그들을 규찰하도록 했다. 이삭 등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다시는 약탈하지 않기로 했다. 만총은 고평현의 현령을 대행했다. 고평현 사람 장포가 군의 도독이 되자 탐욕스럽게 직책을 더럽히고 뇌물을 받아 행정을 어지럽혔다. 만총은 그가 관사에 있을 때를 이용하여 관리와 병졸들을 인솔하여 그를 붙잡아 범한 죄를 문책했고, 그날 중에 조사를 끝내자 그대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조조가 연주를 지배하게 되자 만총을 불러서 종사로 삼았다. 대장군이 되자, 만총을 초빙하여 서조속으 관장하도록 하였으며, 하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그 당시 조홍은 조조의 일족으로 친애받는 높은 신분이었기 때문에 빈객들 중 현의 경계안에서 자주 법을 범하는 자가 있었다. 만총은 그들을 붙잡아 죄를 다스렸다. 조홍이 만총에게 편지를 보내 사정을 말했지만, 만총은 응대하지 않았다. 조홍은 조조에게 말하였고, 조조는 허현의 책임자를 불렀다. 만총은 조조가 장차 그 죄를 범한 자들을 용서하려고 할 것임을 알고, 재빨리 그들을 죽였다. 조조는 기뻐하며 말했다. "정사를 관리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전에 태위를 역임했던 양표가 체포되어 현의 옥으로 보내졌다. 상서령 순욱, 소부 공융 등은 모두 만총에게 부탁했다. "단지 죄상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에 그치고 형벌을 가하지는 마시오." 만총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법에 따라서 심문했다. 며칠이 지나, 만총은 조조에게 만나기를 요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표를 심문했지만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사형에 처해야만 되는 자는 먼저 그의 죄를 명백히 밝혀야만 하는데, 이 사람은 사해 안에서 명성이 있으므로 만일 죄가 명확하지 않으면 명공은 반드시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사로이 명공 때문에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그 날 중에 양표를 사면하여 석방시켰다. 처음에 순욱과 공융은 만총이 양표를 엄하게 심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매우 화를 냈었지만,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되자 오히려 만총에게 감사했다. 당시 원소는 하삭 일대에서 매우 강대하였다. 여남은 원소의 본적이 있는 군으로 문생이나 빈객이 각 현에 분포하여 병사를 끼고 저항하고 있었다. 조조는 이 점을 걱정하여 만총을 여남태수로 임명했다. 만총은 자기에게 복종하는 자 5백 명을 모았으며, 그들을 인솔하여 20여 성벽을 공략시키고, 아직 투항하지 않는 우두머리를 유인하여 앉는 자리에서 10여 명을 죽이자, 단번에 모두 평정되었다. 인구 2만명과 병사 2천명을 얻었는데, 그들에게 밭으로 나가서 경작하도록 명령했다. 건안 13년(208), 조조를 수행하여 형주를 정벌하였다. 대군이 돌아올 때, 조조는 만총을 남겨 분위장군을 대행하여 당양에 주둔하도록 했다. 손권이 동쪽의 변방지역에서 자주 소란을 일으켰으므로, 다시 만총을 소환하여 여남태수로 임명하고, 관내후의 직위를 주었다. 관우가 양양을 포위했을 때, 만총은 정남장군 조인을 도와 번성에 주둔하여 그에게 저항했다. 그러나 좌장군 우금 등의 군대는 폭우로 물이 불어나서 관우에게 전멸되었다. 관우는 급히 번성을 공격하였다. 번성은 물에 잠겨 자주 붕괴되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안색을 잃었다. 어떤 사람이 조인에게 말했다. "지금의 위험은 우리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관우의 포위진이 합쳐지지 않는 틈을 타서 가벼운 배를 타고 밤에 달아나십시오. 비록 성을 잃을지라도, 생명은 보존할 수 있습니다." 만총이 말했다. "산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관우가 파견한 다른 군대는 이미 업성 아래에 주둔해 있으며, 허성 남쪽 지역의 백성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우가 지금 감히 즉시 진격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 군대가 그들의 뒤를 끊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만일 도주한다면 홍하 이남 지역은 다시는 위나라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잠시 기다려야만 합니다." 조인이 말했다. "알겠소!" 만총은 백마를 물속 깊숙이 잠기게 하여 제품으로 삼고는 군사들과 함께 맹새했다. 마침 서황 등의 구원병이 도착했으므로 만총은 전력을 다해 싸워서 공을 세웠다. 관우는 곧 물러났다. 만총은 승진하여 안창정후로 봉해졌다.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양무장군으로 옮겼다. 강릉에서 오나라를 격파한 공이 있었으므로, 다시 복파장군으로 임명되어 신야에 주둔했다. 대군이 남쪽 정벌을 위해 정호에 도착했다. 만총은 군사들을 인솔하여 전방에 있으면서, 적과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만총이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매우 사납소. 적군은 반드시 와서 우리 군에 불을 지를 것이오. 이에 준비해야만 하오." 각 군은 모두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한밤중에 적군은 과연 복병을 10개 부대로 나누어 보내 밤을 틈타 불을 지르려고 했다. 만총은 복병을 배치하여 그들을 무찔렀다. 승진하여 남향후로 봉해졌다. 황초 3년(222), 만총이 절월을 빌리는 것을 허락했다. 5년(224), 전장군으로 승진했다. 명제가 즉위하자 창읍후로 승진하여 봉해졌다. 태화2년(228), 예주자사를 겸임하였다. 3년(229) 봄, 투항한 사람들이 오나라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장강 북쪾으로 사냥을 가자려고 선전하면서 손권이 직접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만총은 그들이 반드시 서양을 습격할 것으로 추측하고 대비를 했다. 손권은 그것을 듣고 물러나 돌아갔다. 가을, 조정에서는 조휴로 하여금 여강에서 남쪽으로 합비로 들어가도록 하고, 만총으로 하여금 하구로 가도록 했다. --- 조휴는 비록 명석하고 과단성이 있지만 용병이 매우 적고, 지금 그가 행진하는 길은 뒤쪽으로는 호수가 있고 옆쪽으로는 강이 있어 전진하기는 쉽지만 물러나기는 어려운데, 이것이 병법에서 말하는 와지입니다. 그러나 만일 무강구로 들어간다면 방비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 만총의 상소문이 미처 보고되지 않았을 때, 조휴는 그대로 깊숙이 들어갔다. 적군은 과연 무강구로부터 협석을 끊어서 조휴가 돌아갈 길을 차단하였다. 조휴는 싸움이 불리하였으므로 물러나 돌아가려 했다. 마침 주령 등이 뒤에서 끊어진 길로 와서 적과 서로 만났다. 적군은 놀라 달아났으므로 조휴의 군대는 돌아오게 되었다. 이 해에 조휴가 세상을 떠났고, 만총은 전장군으로써 도독양주제군사를 대행했다. 여남군의 병사와 백성들은 만총을 열렬히 사마했으므로 나이든 자와 어린 아이가 서로 따르면서 길로 달려나와 멈추게 할 수 없었다. 호군은 표를 올려서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자를 죽이려고 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만총에서 친위병 천명의 수행을 허락하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묻는것이 없었다. 4년(230), 만총은 정동장군으로 임명됐다. 그해 겨울, 손권이 합비를 공격하려 한다고 선전했다. 만총은 표를 올려 연주와 예주의 각 군대를 소집하도록 하였다. 적군은 매우 빨리 물러났다. 만총은 병사의 움직임을 멈추라는 조서를 받았지만, 적군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가 갑자기 돌아간 것은 본의가 아니고, 반드시 거짓으로 물러나서 우리 구원병을 멈추게 한 연후에 허점을 이용하여 재차 돌아와 공격하고, 준비하지 못한 틈을 타서 습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구원병을 멈추지 말자가 표를 올렸다. 10여일이 지난 후, 손권은 과연 다시 와서 합비성에 이르렀으나, 공랴할 수 없었으므로 되돌아갔다. 그 이듬해, 오나라 장수 손포가 양주로 사람을 보내 항복을 원하였는데, 편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길이 ㅁㄹ어서 스스로는 나갈 수 없으니, 군대가 와서 영접하기를 원하오. --- 자사 왕릉은 손포의 편지를 상정하고, 병마를 갖고 그를 맞이하기를 청했다. 만총은 틀림없이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병사를 주지 않고 왕릉을 위해 편지를 써서 말했다. --- 그대가 그른 것과 옳은 것을 식벽할 줄 알고, 화를 피하여 순조로운 데로 나가려고 하고, 폭력을 떠나 도덕이 있는 군주에게로 돌아오려고 하는 것은 매우 칭찬할 만하오. 그러나 지금 병사를 파견하여 맞이하려고 하는 것은 병력이 적으면 서로 호위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병력이 많으면 일은 반드시 먼 곳까지 들리게 될 것이오. 우선 비밀리에 겨획하여 본래의 뜻을 이루도록 하시오. 때에 임하여 절도있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 만총은 조서를 받고 조정으로 들어가야만 했으므로, 남아있는 부의 장리에게 명령했다. "만일 왕릉이 가서 영접하려고 한다면, 병사를 주지 마시오." 왕릉은 후에 병사를 요구했지만, 얻지 못하였으므로 단지 한명의 독장에 보병과 기병 7백명을 보내 손포를 맞이하러 갔다. 손포가 밤에 매복하여 습격하였으므로 독장은 도주하였고, 반 수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 이전에 만총은 왕릉과 함께 일을 처리하는데 어그러지게 됐다. 왕릉의 지지자들은 만총이 게으르고 늙고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그 때문에 명제를 그를 불러, 그의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강함을 확인하고서 돌려보내려 했다. 만총은 여러 차례 상주하여 남아 있기를 청하였으나 조서를 내려 대답했다. --- 옛날 염파(전국시대 조나라의 무장)는 강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무리한 식사를 했고, 마원(후한시대 무장)은 말안장에서 살다시피 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늙지도 않았으면서 스스로 이미 늙었다고 하니 어찌 이리 염파, 마원과 상반되는가? 변방지역을 안정되게 하여 이 중원에 은혜를 주려는 생각을 하라. --- 다음해, 오나라 장수 육손이 여강으로 향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발리 구원하러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만총이 말했다. "여강이 비록 작지만, 자웃가 우수하고 병사도 정예이므로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 또 적군은 배를 버리고 2백 리 들어가 후미와의 사이를 텅 비게하여 우리 군을 유인하려고 합니다. 지금 그들의 진격에 따라야만 합니다. 단지 그들이 도주하여 이를 수 없게 될 것이 걱정될 뿐입니다." 군대를 정돈하여 직접 양의구로 달려갔다. 적군은 위나라 대군이 동쪽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 밤에 달아났다. 당시 손권은 해마다 공격해 올 계획을 품고 있었다. 청룡 원년(233), 만총이 상소를 올려 말했다. --- 합비성은 남쪽으로는 강호에 다다라 있고, 북쪽으로는 수춘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적이 포위하여 공격할 때 수세에 의거하여 우수한 형세를 차지하는데, 우리 관병이 그들을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적군의 주력 부대를 무찌른 연후에 포위망을 풀 수 있을것입니다. 적군이 가서 공격하기는 매우 쉽지만, 병사들이 가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성안의 병사를 이동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의 서쪽 30리 쯤 되는 곳에는 기이하고 험준한 요새가 있어 의지할 수 있고, 다시 성을 세워 굳게 지킨다면, 이것은 적을 평질 끌어내서 그들의 퇴로를 막는 것이므로 계략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 호군장군 장제는 이 계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천하에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적군의 연기를 보고 성을 부수는 것으로, 이것은 공격을 받지도 않고 스스로 함락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적의 침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회북에서 지켜야만 합니다." 명제는 장제의 건의를 비준하지 않았다. 만총이 재차 상주하여 말했다. --- 손자는 `군대를 다룰 때는 지략을 운용하여 변화가 가득한 싸움이 되게 해야 한다. 때문에 힘이 있지만 연약하여 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형세로 교만해지도록 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적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외형과 실질이 반드시 서로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손자는 또 `적을 잘 유인하는 사람은 약한 외관을 보인다` 고 했습니다. 지금 적군은 아직 으리지 않았지만 성을 내지로 옮기고 있는데, 이것은 이른바 형체를 드러내 적을 유인하는 것입니다. 적군을 물에서 멀리 떨어지게 유인하고, 유리한 시기를 선택하여 병사를 움직여 밖에서 싸워 승리하면 복이 국내에 생길것입니다. --- 상서 조지는 만총의 계책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였고, 명제는 조서를 내려 받아들인다고 응답했다. 그 해, 손권은 직접 출동하여 신성을 포위하려고 했는데, 그곳은 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20일이 지나도록 감히 배를 띄워 진격하지 못했다. 만총은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손권은 우리가 옮긴 옛 성을 차지하고, 반드시 그의 군대속에서 스스로 위세있는 말을 할 것입니다. 지금 대거 진격해 오는 것은 일체의 성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감히 성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해안으로 올라와 병력을 과시하고 여유가 있음을 나타낼것입니다." 즉시 보병과 기병 6천 명을 은밀히 파견하여 합비성의 은폐된 곳에 매복시켜 손권을 기다리게 했다. 손권은 과연 해안으로 올라와 병력을 과시하였다. 만총은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 그들을 공격하여 수백 명의 머리를 베었다. 그 중에는 물속으로 도망가다가 죽은 자도 있었다. 다음해, 손권은 직접 인솔하는 병력이 10만 명이라고 부르며 합비의 신성에 도착했다. 만총은 급히 달려가서 수십 명의 장사를 소집하여 소나무를 베어 거(炬 : 싸리나 갈대 같은 것을 묶어서 길을 밝히거나 화톳불을 놓는 물건)를 만들고, 마유(삼씨로 만든 기름)를 흐르게 하여 바람 방향에 실어 불을 놓아서 성을 공격하는 적의 무기를 불태웠으며, 화살을 쏴 손권의 조카 손태를 죽였다. 그 결과, 적군이 물러났다. 3년(235) 봄, 손권은 수천 명의 병사를 파견하여 강북에서 밭농사를 하도록 했다. 8월이 되자, 만총은 밭에서 수확을 거두게 되어 남녀는 들에 흩어져 있고, 적의 주둔하고 있는 병사는 성을 떠나고, 멀리 있는 자는 수백리 먼곳에 있을 것이므로 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리를 파견하여 삼군을 인솔하여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도록 했다. 군은 각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격파하고 곡물을 불태우고 돌아왔다. 명제는 조서를 내려 그들을 칭찬하였으며, 획득한 전리품을 모두 장수와 병사들에게 상으로 주었다. 경초 2년(238), 만총은 나이가 들어서 소환되어 태위로 승진하여 임명되었다. 만총은 산업을 경영하지 않았으므로 집에는 남아있는 재산이 없었다. 명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 그대는 외지에서 병사들을 통솔하며 공적인 일에 전념하여 걱정하였으며, 행부, 제준의 품격이 있다. 밭 10이랑, 곡식 5백석, 돈 20만 전을 하사한다. 이것으로 그대의 청렴, 충성, 검소, 절약하는 절의를 밝히라.--- 만총은 앞뒤로 식읍이 증가하여 총 9천 6백호가 되었으며, 아들과 손자 두명이 정후로 봉해졌다. 정시 3년(242)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경후라고 했다. 아들 만위가 뒤를 이었다. 만위는 법도와 격식을 준수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관직이 위위에 이르렀다. 출처 - 공지글 정사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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