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댓글 질문
내가 만약 삼국지의 한 장수라면, 유언과 유표 중 누구를 주군으로 섬길 것인가?
유언(劉焉, ? ~ 194년)
어릴 적부터 지방의 관리로 근무하였고, 종실이었기 때문에 중랑(中郞)으로 임명되었지만, 스승의 죽음으로 잠시 관직을 떠나 학문을 닦았다. 이후 관직에 추천되어 태상(太常)에까지 올랐다.
한실의 정치가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지자 청렴하고 명망있는 신하로 하여금 지방을 통치하도록 조정에 건의하고, 내심 교주목(交州牧)을 희망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마침 익주(益州)가 혼란스러워지자 익주목 감군사자(監軍使者)에 임명되어 익주를 평정했다.
그러나 내심 야망을 품고 수도 낙양(洛陽)으로 가는 가도를 끊고 황실에서 파견한 사자를 살해하였다. 마등(馬騰)이 모반을 하자, 유언은 아들 유범(劉範)과 함께 마등의 뜻에 동참하여 장안(長安)을 습격했으나 실패하여, 마등은 패퇴하고 유범은 살해되었으며, 황도에 있던 유언의 아들 유탄(劉誕)은 사형에 처해졌다.
194년, 유언은 그가 지시하여 만들어진 황제용 수레들과 민가들이 낙뢰에 의해 불태워지고, 아들들을 잃은 슬픔까지 더해져 악성 종양으로 숨졌다. 유언이 죽자, 그의 아들 유장(劉璋)을 익주자사로 천거했고, 조정에서는 그를 익주목으로 임명했다.
유표(劉表, 142년 ~ 208년 음력 8월)
처음에는 후한의 대장군 하진(何進)을 섬겼다. 영제(靈帝) 사후, 칙서에 따라 형주자사 왕예(王叡)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향했다.
그러나 형주의 주도(州都)였던 양양(襄陽)은 도적이 점거하고, 토호들은 후한 조정의 지배를 거부하여 제멋대로 할거하고 있었다. 유표는 지역의 유력 호족이었던 채모(蔡瑁), 괴월(蒯越), 괴량(蒯良) 등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조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지역의 불손한 무리를 진압하고, 형주 북부를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한다.
190년 반동탁연합군에 가담한다. 원술의 명을 받은 손견의 격퇴시킨다. 원소와 조조의 싸움에서 조조를 지원한다.
197년 장제가 쳐들어오자, 장제를 전사시키고 격파한다. 이로써 유표는 남으로 영릉, 계양, 북으로 한천을 거두어 땅이 수천 리에 달하고, 병력은 10여만에 이르렀다.
200년 관도 전투에서는 원소에게서 구원을 요청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후 여남에서 유비가 몸을 의탁해 오자, 그를 받아들였다. 조조가 요동에 원정한 사이, 유비는 조조의 본거지를 급습하자고 진언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
208년 8월 조조가 형주에 침공을 개시하기 직전에 병사했다. 향년 67세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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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장군』관우§開化 작성시간 10.01.18 유언이 나은듯...유언 밑에가서 촉의 정세를 바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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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평북장군』Miku 작성시간 10.01.19 개인의 능력은 유표가 조금이나마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름 강하팔준으로 불렸던 인재이고 그 기반도 요충지인 형주.. 게다가 난세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제 생각과도 어느 정도 맞아서 유표가 저에게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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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도』삼조 작성시간 10.01.19 그런데 유언이 죽을때면.. 유언의 유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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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우장군』관우§開化 작성시간 10.01.20 ㅋㅋㅋ유언의 유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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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문장군』황혼™ 작성시간 10.01.19 유언에게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