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몸시12.
나 요즈음 너무 들통나 있다
점심때
오천원짜리 꼬리곰탕을
건강을 핑계로 그러는 것까지
인사동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닫아 건 겨울 창문 틈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다 내다보고들 있다
나 요즈음 너무 들통나 있다
꼬리곰탕 같은 거로나 들통나 있다
이를테면
화계사 절마당 기막히게 이쁜
산수유 한 그루
그런 것들과의 은밀한 관계 같은 거나
남몰래 하고 있는
기막히게 좋은 일 같은 게 그런 게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빗장 걸어 둔 조그만 광 같은 걸
하나 갖고 싶다
습기 차고 눅눅해도
나만의 곳간 같은 걸
하나 갖고 싶다
녹이 시퍼렇게 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정신의 칼!
그런 걸 하나 갖고 싶다
한 그루 나무
도저를 다 열어놓은 채 잠가둔
서랍이 하나씩은 꼭 있는 법이다
그런 곳간이 하나씩은 꼭 있는 법이다
저를 다 열어놓은 채 잠가둔!
몸詩 13 ㅡ 눈 내리는 숲이 되어
아직은 이른 저녁
참으로 이런 눈은 오래간만이라서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서
한 잔의 생맥주를 혼자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길을 첫번째로 꺾게 하고
다시 눈 내리는 숲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길을 두번째로 꺾게 했다
그동안 내가 겪었을
눈 내리는 밤의 다른 추억들도
내리는 눈으로 다 지워지고
그렇게 눈 내리는 숲으로만 갔다
그렇게 가서 나도
한 그루 가문비나무로 서 있게 되었다
붙박이로 서 있게 되었다
눈 내리는 숲이 되었다
즐겁게 그쪽 몸이 되는
즐겁게 그쪽 몸이 내 몸이 되는
아름다운 굴종을 알았다
네가 어서 와서
그렇게 나를 안아주길 기다린다
눈 내리는 숲이 되어
몸詩 14 ㅡ 마을
아직은 雨期가 아니다
자자하던 소문의 꽃잎들 지고
사랑의 작은 열매들
푸른 이파리 속에 숨어 깊게 숨어
햇살을 조금씩 훔치고 있다
아직은 부끄러움을 탈 때이다
햇살을 조금씩 훔치고 있다
누가 맨발로 강을 건너고
신발 벗어든 채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돌아오고 있다
모두 용서할 것이다
오래 비워두었던 자리가
부끄럽게 채워질 것이다
모두 용서할 것이다
저녁이 올 때까지
뻐꾸기는 두 번만 울었으며
아무도 마을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떠도는 자여
그대도 돌아오거라
한 사날 허락하거라
머물러 속옷을 갈아입자
곧 雨期가 올 것이다
몸시 17 * 一 和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온 맨발
풀잎은
영혼의 깃털
고맙다
서로 편히 앉아 쉬고 있다
허락하고 있다
몸시 24 ㅡ 고향에 가서
바알간 초록시금치 밑둥
아침 산책 나온
바알간 오리발 맨발
채마밭을 지나
바알간 볼의 소년이
새운동화를 신고
읍내
학교로 간다
도시락이 따뜻하다
아직은
미워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아직은
마알간 속살로 기다리고 있는 게
더 많다
몸詩 25 ㅡ 추억
추억이란 말이 왜 촌스럽니
추억도 몸이야
누구도 지울 수 없음이야
그래
우리는 온몸으로 살았기 때문이야
맨몸으로 살았기 때문이야
죽지 않고서야 어떻게
몸이 지워질 수 있니
뿐이랴, 뿐이랴,
죽어서도 살아있는 몸이 있지 않니
영혼결혼식이라는 게 있지 않니
지난 여름
한 남자를 바다에 묻고 온 한 여자가
영혼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그 바다로 아득히 가고 있다
먼지 날리는 길,
망초꽃 하나가 깊게 흔들리다가
허리 펴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게 보인다
추억이란 말이 왜 촌스럽니
지워지지 않는 一生이야
누구도 지울 수 없음이야
몸이야
몸시 26 ㅡ 字眼
입술이든 자궁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아, 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몸시 32 ㅡ 풀잎
내가 그들을 먹은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먹었다
기쁘다!
먹힐 수 있음의 기쁨을 아느냐
오랜만에 나는 아주 잘 먹혔다
나는 요즈음 먹힌다 이렇게
어딜 가서나 먹힌다 누구에게나
내가 참 맛있게는 되었나 보다
소여물을 썰면서
작두에 풀을 먹이면서
아버지는
풀잎이 잘 먹힌다고 하셨다
고마우신 아버지
맛있는 아버지
고마우신 풀잎!
몸시 36 ㅡ 물속엔 꽃의 두근거림이 있다
기억나지 않지만 물 속엔 깨끗한 물 속엔 꽃의 두근거림이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른 새벽에 봄날 새벽에 안개를 헤치고 가서 풀밭을 한참 걸어가서 물가에 당도하여서 젖은 발로 그걸 보고 들었다고!
그는 다시 말했다 햇살이 그의 따뜻한 혀로 이슬들 핥기 시작한 바라 그때쯤, 마침내 물 속에서 솟아오른 꽃을 두고 오, 물이 알을 낳았다고!
그러니까 꽃은 알이다 그러니까 물은 자궁이다 두근거림이란 회임한 내 아내의 배에 귀를 대고 내가 듣던 바로 그런 소리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상처를 핥아 다오, 물 속 꽃의 두근거림아!
몸시 37 ㅡ 새벽
집에
한 여자를 두고 있는 내가
밖에서 또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다
여자들은 가장 좋은 내 상징이다
나의 집이다 세상이다
상징은 새것이라야 정신이 든다
정신이 드는 새벽 공기 같은 여자!
그러나 곧 떠나야 할 나의 문패들이다
새벽은 곧 한낮으로 저녁으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자신만이 가장 온전하다고 믿는다
자신만이 새벽이라고 믿는다 언제나
배반은 저쪽이 가장 온전하다고 믿을 때
새벽이라고 믿을 때
가장 배반다워진다 빈틈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배반한다 새벽을 만든다
바람둥이다
이 세상 여자들 다 만나고나면
나는 죽을 것인가
죽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누구와 합장될 것인가
오, 그때도 새벽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혼자이다 죽어서도 나는
몸詩 41 ㅡ 신발무덤
어느 고물상에 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더 이상 신어 줄 사람이 없는
그 사람들은 이제 죽었거나
어디에 사는지를 찾을 수가 없는
찾아 온다 해도
서로가 이름을 잊은
얼굴을 잊은, 문수가 달라진
신발 쓰레기들을 보았다
신발무덤을 나는 보았다
리본이 달린 어린 아이의 빨간 구두도 있었다
가장 큰 적막을 만났다
최초라고 말하고 싶었다
너는 내게 말했다
-이 공간에 놓인 신발들은 이미 이 공간에
친숙하다고! 신발들의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고!
나는 그날
새 구두를 한 켤레 사서 신었다
몸 詩 52 ㅡ 새가 되는 길
이른 새벽마다
나의 뜨락엔
한 마리씩의 새들이
어김없이 날아와 앉는다
그 가운데서 내가 알 수 있는
새의 이름은
참새와 까치밖에 없지만
하얀 꽁지를 단 아주 아름다운
새도 있다
나는 십 년이 넘게
도봉산 화계사 절 밑 마을에 살고 있다
새들과 말하고 싶지만
나는 십 년이 넘게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성자 거지 프란치스코가
새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
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
뜨락의 작은 나무 하나도 나뭇가지도
한 마리 새를 평안히 앉힐 수 있는
<몸으로,
열심히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몸 詩 55 ㅡ 상처
속으로만 입고 있던 상처를 요즈음엔 몸에도 내고 다닌다 흉하다고 사람들은 피한다 그럴수록 나는 나의 꽃이라고 향내가 있다고 다가가 부벼댄다 사람들은 혼비백산 도망친다 요즈음 나의 상처는 속엣 것이 넘쳐! 밖으로 기어나고 있음이 분명한데 사람들은 自害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몸에다 칼을 댄 적이 없다 꽃이 피는 순서는 밖에서 안이 아니다 고마우신 햇살과 단비도 있으셨겠지만 안에서 밖이다 일단은 고여서 밖이다 눈으로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이 되는 빠듯한 충만의 순서! 나는 그걸 아직 믿고있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그걸 아직 믿고 있다
몸시63 ㅡ 맨몸
이 여름이 나는
난감하다
내 주장대로 하자면
몸과 마음이 그 질량이
늘 같아야 하는 것인데
몸이 많이 축나 있다
어제도 허리띠 구멍을 또 하나
줄였다
어디가 아픈게 분명하다
아니, 나는 알고 있다
마음이 몸을 파먹어 그렇다
따지면 마음도 야위어 그렇다
마음이 배고파 그렇다
몸은 내 마음의 밥
이 여름이 나는
난감하다
더워도 벗을 수 없다
모두 다 들켜버리는 맨몸의 바다
그걸, 그 귀한 걸
이 여름엔 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슬퍼할까 봐 그렇다
몸 詩 66 ㅡ병원에서
몸이 놀랬다
내가 그를 하인으로 부린 탓이다
새경도 주지 않았다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제 끼에 밥먹고
제 끼에 잠자고
제 때에 일어났다
몸이 눈 떴다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몸시78 ㅡ 병에 대하여
나는 지금 병이 깊지만 나의 몽매를 몸으로 깨우치는 이 전폭의 매질이 오히려 안락하다
비로소 나는 감추었던 것들 다 몸으로 불고 있다
이렇게 편안한 걸 괜히 그랬다 어둠만 골라 디뎠다
나는 나의 병을 끝까지 데리고 가리라 그와 함께 놀리라 나는 분명히 쾌차할 것이다
벌써 순백의 은총 하나가 내 곁에 당도해 있다
그는 맨발로 걸어왔다 우리집엔 요즈음 천사 한 분이 와 계시다
우리 식구들은 그 아기 天使의 옹알이 소리로 교감하는 성가족이 되어 있다 아무 부족함이 없다
우리집의 말씀은 우리집의 構文은 날마다 '최초의 사물앞에 최초로 서 있다'
그분께서 내게 그와 함께 걸음마를 가르치신다
정진규 시인 "스스로도 대견… 시인 된 것 한번도 후회 안해"
등단 50주년·… 몸·산문詩로 독자적 세계 구축
'목욕을 시켰는지 목에 뽀얗게 분을 바른 아이가 하나, 사람의 알인 아이가 하나 해질 무렵 골목길 문간에 나앉아 터질 듯한 포도알을 한 알씩 입에 따 넣고 있었다 한 알씩 포도라는 이름이 그의 입 안에서 맛있게 지워져 가고 있었다 이름이 지워져 간다는 것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포도를 먹는 아이_알ㆍ7'에서)
정진규(71) 시인이 올해로 등단 50주년이 됐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심미적 감각으로 한국 현대시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한국시인협회장(1998~2000)을 지냈고 월간 '현대시학' 주간을 22년째 맡고 있는 시단의 중추이기도 하다.
15일 서울 종로구 현대시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50년 동안 한 길을 줄곧 걸어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하다"며 "시인으로 사는 게 쉽진 않았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교사, 회사원 생활을 거쳐 지금의 잡지사 경영에 이르기까지 등단 이래 늘 노동을 해온 시인의 이력을 떠올리면 그의 성실한 작품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정진규 시인은 "시인이라면 입장과 편을 가르지 말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시''를 쓰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정씨의 시 세계는 '몸 시(詩)'와 산문시로 대변된다. 몸시는 그가 "정신과 육체, 시간과 영원이 합일된 세계가 몸이며, 이런 몸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시"라는 특유의 시론에 기반해 만든 말로, 시집 <몸詩>(1994) 발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평론가 유성호씨는 "몸시는 사물의 미동(微動)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존재의 근원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한다. 산문시라는 형식 면에서 정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행갈이 없이 시적 리듬을 구현하는데 힘써 왔다. 정씨는 "요즘 시인들 사이에서 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산문시 양식이 보편화됐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시 잡지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젊은 시인들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는 그는 김기택, 이덕규, 손택수, 문태준, 김경주씨 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는 감각이 신선하고 소재가 다양하지만 그렇다보니 질서가 흐트러질 때가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2007년 경기 안성시 생가로 이사했다. 택호를 석가헌(夕佳軒ㆍ저녁이 아름다운 집)으로 정하고 직접 쓴 현판을 달았다. 그의 붓글씨는 아호 경산(絅山)을 따서 '경산체'로 불릴 만큼 정평이 있다. 음악, 무용에도 조예가 깊어 2006년 고려대에서 열린 조지훈 시비 제막식 때는 50m짜리 천 위에서 풍물에 맞춰 붓으로 즉흥시를 쓰는 '먹춤' 공연을 하기도 했다.
정씨는 "자연과 밀착해 살면서 또다른 시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가펴낸 14번째 시집 <공기는 내 사랑>을 들추면 씨앗을 심다가 흙의 관능적 감촉에 감동하고('씨를 뿌리다'), 가을에 익힐 것만 남기고 감을 떨어내는 감나무를 보며 인생을 되돌아보는('풀 뽑다 말고')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는 "4년에 한 번 꼴로 내던 시집을 귀향 후 2년 만에 냈다"며 "올 상반기엔 첫 동시집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의 매력은 제대로 된 청소년기의 시 교육에서부터!
시를 읽는 능력, 감상 및 이해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왜 이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시심전심]은 청소년계간문예지 “풋”에 연재된 원고를 수정 보완해 만든 ‘시’ 참고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시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이 책의 대상이다.
저자 정끝별은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시집과 시론집을 냈고, 명지대 국문과 교수이다. 그녀는 해석의 여지가 많고, 잘못 읽었거나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이 많은 시 마흔 편을 담았다. 시가 시인 까닭을 독자 스스로가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시 읽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각주를 달고, 용어의 사전적 뜻을 적어 도움을 주고자 한다. 여러 편의 시를 제시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감상과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 요구한다. 이는 시와 좀 더 친해지고, 좋은 시와 의미 있는 시를 찾기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출판사서평 TOP
시는 결국, 마음이다! 마음을 읽으면 시도 쉽다!
그리하여,
국어 교과서 시 읽기, 이렇게 하면 앞선다!
정끝별의 [시심전심],
‘국어 교과서 시 읽기’에서 ‘세상 모든 시 읽기’로의 길라잡이
시를 어려워하고 시를 두려워하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을 위해 여기 한 사람이 나섰다.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시를 가르치며 사는, 시인임과 동시에 명지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의 ‘이심전심’에서 제목을 딴 이번 책 [시심전심], 은 입시를 앞둔 중고등학생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시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 마땅한 책이기도 하다. 시를 어려워하고 시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비단 청소년들만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청소년문학문화잡지 계간 [풋,], 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원고를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하여 내용을 보다 탄탄하게 구성한데다 감각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게 편집 방식에도 묘미를 둔 새로운 방식의 시 읽기 참고서다. 책 읽기도 훈련에 따라 그 깊이와 넓이가 무궁무진하게 심화되고 증폭하듯이 시 읽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나름의 요령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 현대 시사의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시단에 배출된 시인들은 많고, 지금도 많이 배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많이 배출될 것이다. 물론 시 역시도 많이 발표되었고, 지금도 많이 발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많이 발표될 것이다. 자,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이 모든 시인들과 시들을 그때그때 어떻게 다 읽고 어떻게 다 해석해낼 것인가의 문제를 짚어보자. 특히 난해하기로 소문이 난 우리 현대시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인가.
고지는 멀리 있고 그 길은 험하다지만, 고지를 만들어 세운 것도 그 길을 앞서 걸어갔던 것도 다 사람의 일이며 우리가 한 일이다. 이 책은 그 할 수 있음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더 높고 너 가파른 시의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북돋아줄 수 있는 희망의 바이블이다. 일단 이 책에 실린 마흔 명의 시인과 시를 알아보고 읽어보자. 이들 시인들의 이력을 살피고 시들의 마음결을 내 몸에 지도로 새겨보자. 세상 모든 시로 가는 길 위에서 이들은 분명 시 읽기의 끼닛거리를 대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자, 그렇다면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 읽기’를 넘어서서 ‘세상 모든 시 읽기’의 길라잡이로 앞선 정끝별의 [시심전심], , 과연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천하무적 시 읽기’의 노하우
이 책은 시를 읽는 능력, 시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어 하나하나를 꿈꿀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열린 상상력, 그것들을 엮어 한 편의 시로 종합해낼 수 있는 논리적인 사유야말로 시를 읽는 데 필수적인 능력임에 틀림없음으로 이를 키워주고자 시 한 편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시 읽기의 해부 과정을 거쳤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총 5부로 나누어 시인 마흔 명의 시 마흔 편을 다루고 있다. 김소월 시인에서부터 가장 젊은 장석남 시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시사를 총망라하여 국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들을 텍스트로 삼은 것이다. 또한 시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자주 실렸을뿐더러 그동안 잘못 읽어왔거나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이 많은 시들, 그러니까 해석의 여지가 많은 시들을 골랐다. 사실, 우리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시를 나름의 감각과 논리로 풀어낼 수 있는 내공이 쌓였을 때, 쉽고 좋은 시의 매력은 보너스처럼 거저 찾아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그간 쉽게 접했던 시 해설서 그 이상을 넘어선다.
시를 말하는 방식은 둘씩 짝을 지어 ‘수능(언어) 지문의 세트 형식’으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사랑’을 주제로 한 1부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과 이성복의 "꽃피는 시절" 을, ‘청춘’을 주제로 한 5부에서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와 박두진의 "청산도" 를 나란히 놓고 비교 분석 하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 대입 수학능력시험은 두 편 이상의 시를 제시한 후 그 시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시를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에 표현 능력까지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 편의 말미에 “그리고 여기”를 덧붙인 까닭은 제시된 시를 꼼꼼하게 촘촘하게 해석해보는 일로 말미암아, 제시된 시 이외의 시들을 자발적으로 찾아 읽게 이끌어 보다 심화된 학습 능력을 유도해보기 위해서였다. 좋은 시는 또다른 좋은 시를 부르는 법이 아닌가.
이 책에 있어 ‘읽는 책’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보는 책’의 기능이 추가된다면 머릿속에 시 한 편을 ‘그림’처럼 정리하게 할 수 있을 터, 하단 부분을 메모패드로 구성했다. 그리하여 시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필자의 각주는 기호 대신 선을 활용하여 해당 부분 본문과 연계, 한층 보기 쉽게 하였다. 어려운 시어들은 표준국어대사전으로부터 뜻을 풀어놓았고, 헷갈리기 쉬운 한자들은 음과 뜻을 정리해 본문 속 문장들을 읽어나가면서 숙지하도록 정리했다. 또한 해설에 사용된 어려운 용어들의 사전적 뜻을 편집자주로 달았다. 한 손에 연필을 들고 저마다의 메모패드에 저마다의 공부거리를 작성해나간다면 좋은 국어 교과서이자 시 참고서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TOP
1. 사랑, 영원히 변치 않는 이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 진달래꽃
김소월,"진달래꽃" - 이성복,"꽃피는 시절"
어떻게 오시는 그 누구시기에
한용운,"알 수 없어요" - 오규원,"버스 정거장에서"
‘서러웁게’ 차갑고 ‘길다랗게’ 파리한
백석,"멧새 소리" - 박용래,"월훈"
온종일 울렁이며 내어 미는 그네, 아니 사랑
서정주,"추천사-춘향의 말 1 " - 장석남,"배를 매며"
2. 시의 형이상학적 깊이와 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바람 다시 읽기
윤동주,"서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마종기,"바람의 말"
‘까마득한’ 날에 부르는 ‘아득한’ 노래
이육사,"광야" - 고은,"눈길"
‘열렬한 고독’과 대면하는 생명의 진리
유치환,"생명의 서書" - 김남조,"겨울바다"
모호하게 살아 있는 ‘눈’
김수영,"눈" - 최승호,"대설주의보"
3. 시의 새로움을 위하여
그림처럼 그린, 근대를 향한 무서운 노래
이상,"오감도 시제1호" - 황지우,"호명"
상호텍스트적 맥락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
이용악,"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정진규,"몸시詩.32-풀잎"
나비의 ‘허리’를 보다!
김기림,"바다와 나비" - 송찬호,"나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삼월의 눈
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혜순,"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4. 시의 여백과 미의식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차고 슬픈 것’의 정체
정지용,"유리창 1" - 김현승,"눈물"
구름에 달은 어떻게 가는가
박목월,"나그네"
- 김사인,"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가을 강에 타는 울음은 어디서 오는가
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 강" - 김용택,"섬진강 5"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서 읽어내는 아름다운 내용
김종삼,"북 치는 소년" - 남진우,"김종삼"
5. 청춘의 노래를 들어라!
‘마돈나’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
이상화,"나의 침실로" - 박두진,"청산도"
청춘의 백미, 절망의 절창으로서 ‘비애’
오장환,"The last train" - 최승자,"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새파란 청춘의 언어로 노래하는 ‘페시미즘의 미래’
박인환,"목마와 숙녀" - 기형도,"그집 앞"
농악과 춤에 깃든 ‘우리’의 신명
신경림,"농무" - 정호승,"맹인 부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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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을 숨겨놓은 채 생생한 이미지만을 보여주고 있는 시가 또 한 편 있다. 박용래(1925~1980) 시인의"월훈" 이다. 묘사되는 시 속의 마을은 첩첩산중에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다. 그 마을 외딴집의 ‘노르스름하게 익은 모과 빛 저녁 창문’ 안에서는 노인이 혼자 ‘기인 밤’을 견뎌내고 있다. 밤중에 일어나 혼자서 무나 고구마를 깎는 노인의 행위에는 고독과 적막이 배어난다. 간간이 들리는 밭은기침 소리조차 없을 때 들려오는 ‘겨울 귀뚜라미 소리’는, 백석의 ‘멧새 소리’처럼, 외부와 소통하고자 하는 적막한 고독을 강조한다. 특히 노인과 오버랩된 철 지난 겨울 귀뚜라미를 통해 죽음 혹은 사멸의 이미지도 암시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각적 이미지 ‘월훈(달무리, 달그림자)’을 제목으로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각적 이미지에 겹쳐놓은 다른 이미지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달무리가 거느린 짚오라기의 설렘과 이름 모를 새들의 온기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달무리를 거느린 함박눈이 창호지 문살에 들이치는 소리를 상상해보라. ‘모과 빛’ 창문에 깃드는 ‘겨울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대비되어 들릴 듯 말 듯, 어룽이듯 따뜻하게 들릴 것만 같다. 적막할수록, 외로울수록, 그리울수록 그 소리는 클 것만 같다.
-‘서러웁게’ 차갑고 ‘길다랗게’ 파리한
(/ '백석, "멧새 소리" - 박용래, "월훈"' 중에서)
무엇보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를 정말로 좋아할 수 있도록, 시의 맛과 시의 정신을 느끼면서 풍요롭게 ‘맘껏’ 상상하며 읽어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 참고서들부터 덮어라. 모든 시 구절에 밑줄 긋고 달아놓은 단답형 해석부터 덮어라. 그리고 먼저 읽어라, 느껴라, 상상하라, 그리고 궁금해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시가, 여러분 앞에!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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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이래 시작과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4년 유심작품상과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1996), [흰 책](2000), [삼천갑자 복사빛](2005), [와락](2008), [은는이가](2014)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1997),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1999, 2008), [오룩의 노래](2001), [파이의 시학](2010), [시심전심](2011)
시 해설 선집 |[행복](2001), [시가 말을 걸어요](2004), [사랑아, 나를 몰아 어디로 가려느냐](2004), [밥](2007),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008),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2](2012)
[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2007)
다섯번째 패를 돌린다
이렇다 할 도박력도 없이
이렇다 할 판돈도 없이
발바닥에 젖꼭지가 돋거나
손바닥에 닭살이 돋거나
정끝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이래 시작과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4년 유심작품상과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1996), [흰 책](2000), [삼천갑자 복사빛](2005), [와락](2008), [은는이가](2014)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1997),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1999, 2008), [오룩의 노래...
[교양이 경쟁력이다]
금지의 위반, 시대의 전복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연극은 가냘픈 몸과 느린 움직임으로, 시간과 공간상의 모든 거리가 수축되어 가는 세상에 저항한다. 억압 없는 매개와 소통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복제될 수 없는 몸’을 지닌 연극이 시대를 거슬러 존재해야 하는 처절한 이유 아닐까.
0. 연극의 이해란 무엇인가 0.1 연극을 이해하는 일은 공연을 통해 시작되지만 공연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사라지는 연극 공연을 이해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공연은 시작되자마자 즉시 흔들리고 무너져버린다. 사라진다는 것, 일회적이라는 것, 나약하다는 것,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 복사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의 몸으로 한다는 것,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 글을 몰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연극예술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관객이 애써 기억해낸 공연이란 ‘얼음에 갇힌 강물과 같이 잠시 머무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사라진 공연을 글로, 말로 다시 세우고 이해한단 말인가? 공연은 불안하게 긴장하고 있는 존재와 같아 연극을 이해하려면 역시 그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긴 호흡이란 산에 오를 때 몸이 내는 소리와 같다. 관객이 연극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연극 공연을 통해 바로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것, 곧 자신의 내면 풍경을 읽는 것이다. 0.2 그런 점에서 연극을 이해하려는 것은 다른 장르와 비교해 많은 약점을 지닌, 패배할 줄 뻔히 알면서 하는 시도와 같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공연을 끝낸 연출가와 배우들을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따라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 하나 남기지 않음에도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연극의 이해란 이처럼 관객으로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의 외로운 등판을 떠올리며 무대 앞에 서는 일이다. 공연은 도판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니체의 아름다운 글귀대로 “마음의 바닥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섬세한 손가락과 눈으로” 공연을 읽고 부수고 다시 세워야 한다. 0.3 연극 공연은 관객에게나 연극평론가에게나, 읽어야 하는 한 권의 두툼한 책과 같다. 연극은 일회적이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아니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나약한 예술이다. 그러므로 연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공연의 허무 속에서 그 허무에 직면해 그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이다. 관객은 막이 내리고 난 뒤 남겨진 허물어진 조각들을 가지고 새로운 연극 언어를 스스로 건축해야 한다. 1. 극장에 대하여 1.1 극장은 어둡다. 극장 바깥의 밝음과 대비되는 곳이다. 어떤 사회에나 극장은 존재한다. 실외에 있는 극장, 실내에 있는 극장, 혹은 원형, 혹은 사각형으로. 극장은 항상 변모해왔다. 이런 변모는 국가·사회·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극장이 있는 곳에는 연극을 하는 이들이 모인 극단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극장은 고정적인데 반해 극단은 유동적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돈다. 우리의 남사당이 그렇고, 서양의 코메디아 델아르테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를 유랑극단이라 한다. 반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한곳에 머무는 이들이다. 이런 경우 누가 누구를 유혹하겠는가? 떠도는 자가 멈추어 있는 자를 유혹하게 마련이다. 옛날 유랑극단 시절에는 연극 한 편에 홀려 보따리 싸들고 집을 뛰쳐나와 극단에 들어간 이들이 많았다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연극에 매혹되고, 연극하는 떠도는 삶에 유혹당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현대식 극장 ‘원각사’(위)와 신파극의 주 무대였던 ‘동양극장’
1.2 군사독재 시절, 우리 사회에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라는 것이 있었다. 극장이 극장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식당이 되어버린 예라 하겠다. 그곳은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는 광고 문안처럼 퇴폐의 온상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소극장은 후미진 건물 지하에 들어서는 반면, 국가가 지은 어마어마한 극장들은 대중이 이용하기 불편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이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각 시·도, 지역마다 건립된 문예회관, 구민회관 내의 극장들 역시 일정한 형태의 외벽과 비슷한 모양새의 무대공간을 갖고 있다. 극장으로서의 다양성은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극장을 우리 삶과 가까운 곳으로, 한복판으로 옮겨놓는 것이야말로 연극과 극장을 부흥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극장은 기계가 제품을 생산해 내는 공장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은, 멀리서 생산된 제품이 분류되어 지금 이곳에서 유통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멀리 외진 곳에, 휘황찬란하게 자리잡고 있는 극장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1.3 왜 극장이 필요한가? 밝은 곳이 일터라면 어두운 극장은 놀고 꿈꾸는 곳이다. 일하는 공간이 효용을 얻기 위해 조건에 억압당하는 곳이라면, 놀고 꿈꾸는 공간은 효용이 아닌 무용(無用), 억압이 아닌 즐거움을 낳는 곳이다. 극장에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상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밝은 곳에서 소통하는 언어와 어두운 곳에서 소통하는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밝은 곳에서의 걸음걸이가 직립보행이라면, 어두운 곳에서의 그것은 몸을 뒤틀고, 뒹굴고, 기고, 뛰고, 날고 하는 짓이다. 당연히 극장에는 후자의 몸짓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1.4 연극의 장(場)인 극장과 교육의 장인 교실을 비교해보는 것도 연극의 특성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극장에 오는 걸음걸이와 학교로 가는 걸음걸이는 같지 않다. 연극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이라면, 교육은 반듯한 걸음걸이를 요구한다. 뒤틀림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것이 연극이라면, 교육은 학생들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는 직선적 통로다. 연극이 옷을 벗어 헐벗은 몸을 빛내는 일이라면, 교육은 옷을 입어 몸을 가리는 일과 같다. 교육이 포상과 훈장으로 존재의 상처를 가린다면, 연극이 있는 극장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상처를 드러내 있는 그대로 비춘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처가 꽃이 되는’(정진규, ‘몸시’ 55) 바로 그것이다. 학교라는 제도에 입문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좌측통행’ ‘앞으로 나란히’ 같은 말들일 것이다. 교육이 있는 교실은 학생들에게 먼저, 모든 사물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사물에 고정된 이름이 있다는 것, 고정된 쓰임새가 있다는 것, 사물은 고정된 자리에 놓여야 한다는 것. 이렇듯 교육과 교실은 사물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문화적이다. 아니,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교육과 교실이 문화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한 단선적인 길이라면, 극장은 자연적인 것으로 우회하기 위한 깊고 넓은 공간이다. 사유하고 꿈꾸며, 그것들을 드러내는 곳, 그곳이 바로 극장 공간이다. 1.5 사유하고 꿈꾼다는 면에서 극장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허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극장에게 이 같은 기능을 부여했다고도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이 이와 같은 기능을 얻어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극장에서의 꿈과 극장 바깥에서의 윤리는 서로 감시한다. 사회는 부여하면서 극장을 감시하고 극장은 얻어내면서 사회를 반성케 한다. 극장 안의 꿈은 사회를 감시해서 반성하게 하고, 극장 밖의 윤리는 극장 안의 꿈을 가능케 한다. 그러므로 극장에서 교육을 하면 교육받는 대다수는 졸기 마련이다. 꿈꾸는 장소에서 교육이란 듣는 이의 몸을 극도로 피로하게 만든다. 고개를 떨군 채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 행해지는 예비군 혹은 민방위 교육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2. 배우에 대하여
연극은 철저히 배우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슬로베니아 출신 연출가 토마스 판두르 작 ‘신곡-지옥, 연옥과 천국’ 중 ‘연옥’
2.1 연기는 혹은 놀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연기와 놀이 모두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극은 몸으로 하는 예술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몸으로 하는 연기를, 놀이를, 배우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연극에서 몸의 회복이란 서양 연극식으로 말하면 디오니소스의 재발견, 그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연극의 신은 디오니소스다.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는 애초부터 몸에 상처를 내기 위해 술을 마시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다. 그는 다른 신들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는 것에 고통과 불만을 느껴 주위에 몰려든 제자들에게 술의 미학을 가르치는 방탕한 술꾼 ‘호모 비뷔러스(homo bibulus)’다. 그는 때로 광포하고 무절제했으며 피에 굶주린 자이기도 했다. 한 축제에서 그와 그의 제자들이 광란의 주연을 벌이자 팬테우스 왕은 그들을 내쫓아버렸다. 디오니소스는 나중에 그 나라의 모든 여인들을 취하게 하고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광란의 소용돌이 가운데 왕에게 덤벼들게 했다. 팬테우스 왕은 어머니를 비롯한 여인들의 손에 갈가리 찢겨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디오니소스는 이렇게 삶의 일상적 구속과 한계를 파괴하는 극단의 황홀감을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인간은 이때 자신의 모든 상징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자극받는다. 그것이 바로 상징으로서의 몸짓이다. 놀이하는 몸, 상승하고 추락하는 춤의 움직임이 여기서 태어난다. 몸이 상징성을 잃어버리면 타락하고 추락한다. 몸의 상징이 과거에 묶이면 제의가 되고, 미래와 연결되면 환상이 된다. 하비 콕스에 따르면 축제는 제의와 환상의 결합이다. 축제는 몸에 관한, 몸으로만 이루어지는 행위의 결과이며 절정에 오른 행동양식이다. 상징으로서의 몸짓은 정상적인 몸짓이 아니라 ‘지나친’ 몸짓이다. 축제는 그러한 내용적 측면을 유도해내기 위해 그를 표현할 실제 도구인 몸에 부딪힌다. 서양 연극의 기원인 디오니소스 찬가는 인간의 몸이 지닌 모든 상징의 소산자, 능산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하는 노래다. 상징은 광란, 광기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때 솟구쳐나오는 행위가 춤이다. 춤은 지적인 질서가 아니라 몸의 질서다. 2.2 여기 한 배우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사팔뜨기였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구구단을 외울 때마다, 학우들은 ‘사팔(4 8)’에 ‘32’라고 외치는 대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집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거울을 무수히 깨뜨렸던 그는 교실을 박차고 나와 떠돌다 영화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안은 어두워 남들이 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대신 화면의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유일하게 극장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어두운 극장 안에 슬그머니 숨어들어 자신의 아름다움이 아닌 상처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보여지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그를 배우로 만든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는 화면 속의 배우를 본 것이 아니라 화면 안으로 들어간, 변모한 자기자신을 본 것이다. 극장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그러나 그는 결국 변모가 아닌 정체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경험을 상품으로 만든 모노 드라마만 몇년간 공연하다 마흔넷의 나이로 요절할 수밖에 없었다). 2.3 연극은 인간에게 놀이를 통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자기와 타인, 그리고 주변 환경과 조정·동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배우란 그 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연극의 특성은 참여하는 이들을 기쁨 속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한 해방의 몸짓이 있기 때문이다.
2.4 전래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자유롭기 위한 놀이의 원칙을 설명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을 금지당할 때 병이 생기고, 금지를 위반할 수 있을 때 삶은 다시 회복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개인의 표현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회에서 이야기, 놀이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배우다. 2.5 배우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이라 정의할 수 있다. 주어진 역할이란 일상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거칠게 말해 일상에서의 역할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로써 이른바 ‘주어진 역할’을 반성케 한다. 카뮈의 말을 빌리면, 배우는 정체성을 무력화시키고, 스러지는 것 속에서 군림한다. 배우는 역할을 확인시키고 그 역할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당한다. 우리 사회는 인물과 가면에 관한 사회학적 이해가 잘못되어 있다. 가면이란 단어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깃들어 있어, 뭔가 거짓된 것이란 선입견이 퍼져 있다. 그러나 ‘가면’과 ‘인물’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다. 가면이란 뜻을 지닌 ‘persona’에서 인물 ‘person’이란 단어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인물이란 일상생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가면을 잘 쓰고 그 가면에 맞게 행동해야만 하는 이를 의미한다. 주어진 역할과 그 가면은 참여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끊임없이 반성토록 요구한다. 그리고 이 반성적 요구는 개인에게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놀고 있네’ ‘놀아나다’와 같은 비속어, ‘연극하지 마’와 같은 언어들에서 놀이와 연극에 대한 우리의 숨은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말과 표현 속에는 엄숙한 기존 질서만을 사회의 적자(嫡子)로 옹호하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결국 이런 말은 연극에 대한 몰이해와 연극을 부정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것은 그대로 교사와 학생에게 전달된다. 학교는 이데올로기를 수행하고, 학생은 반발한다. 2.6 연극과 예술의 경험 : 과연 의식 속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가? 연극은 사소한 이야기, 일상적 이야기, 사소한 짓, 일상적 행위들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허구라는 인식 안에서 가능하다. 이를 통해 억압과 수동에서 탈피할 수 있고 상황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그 속에서 ‘세속적 트임’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연극은 일상적 삶의 새로운 근원과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게 하며, 몸으로 행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연극에 대하여 3.1 연극은 모순 어법으로 하는 사유이며 은유다. 세계의 질서란 ‘정체성의 분명함’을 통해 가능해진다. 정체성의 위기는 세계 질서의 위기와 같다. 배우를 포함하여 연극예술은, 그 정체성의 위기를 벗어난 여러 삶을 당당하게 사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울고불고하네. 멍청이뿐인 크나큰 무대로 나오게 되어 우는 것이네.”(리어왕 4막 6장 중) 세계를 멍청이들이 모인 무대라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울고불고한다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상을 알고 있다는, 오래 산 어른보다는 방금 태어난 아기가 더 현명함을 말해주는 모순 어법이다. “사람살이는 걸어다니는 그림자, 불쌍한 광대다. 무대 위에서 한껏 재보고 큰소리쳐도 종치면 끝장이다. 천지가 지껄이는 이야기, 소리와 노여움은 요란하지만 의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맥베스’ 5막 5장 중) 사람을 그림자, 광대로 여기고, 세상을 연극의 무대라 여긴다. 말하고 소리치는 것, 모두 종치면 끝장이라는 것, 세상은 그렇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모순 어법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무의미가 아니다. 연극을 세상의 거울이라 할 때, 거울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좌우를 바꾸어 보여준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이다. 그 거울이 온전치 않고 깨져 있다면 되비친, 즉 재현되는 세상의 모습 또한 조각조각 파편이 돼 있을 것이다.
백설공주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해 큰 인기를 모은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
3.2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기록, 저장, 반복과 그 확장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전화는 목소리의, 칼과 쟁기는 팔의,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연극은 배우를 통해 현실과 꿈을 기억시킨다. 연극에서 기록, 저장, 반복 그리고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도구는 우선 배우임이 틀림없다. 연극예술은 바로 배우를 통해 세상을 번역해 기억하고, 관객은 그것을 보고 세상을 달리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의 생명인 배우의 연기는 흐르는 말(言)과 같다. 연극은 인쇄물로 남는 글이 아니다. 연극이 말처럼 흐른다는 면에서 연극예술은 물과 같이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배우는 유랑한다. 떠돈다는 면에서 배우들은 무정부주의적이다. 떠도는 삶의 극단적인 태도가 아나키즘이다. 중앙의 제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키며 사는 태도를 말한다.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데에 따라서 뜻이 생겨나는 것. 음악과 영화와 같은 예술과 비교해서 연극은 완벽한 저장과 반복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연극예술은 대한민국 정부만이 구분하고 있는 장르에 따르면 무형문화재에 속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 연극에는 문화부가 생활비를 보조하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란 것이 없다. 연극은 ‘그대로’의 전승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3.3 연극의 주된 법칙은 ‘배우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연극은 배우의 연기를 관객이 봄으로써 이해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연극 최초의 저장 방법은 배우의 몸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연극에서 배우의 몸은 왕이다. 몸에 의미를 담게 되면 그 몸은 춤이란 언어로 변한다. 춤은 배우 몸의 격렬함, 그 욕망에 다름 아니다. 격렬함이란 바로 ‘누르는 짓’이다. 그래서 표현(expression)이란 욕망을 눌러(press) 밖으로(ex) 내보내는 일이 된다. 연극을 몸으로 하는 가장 직접적인 예술이라 함은 몸 이외에 다른 매체, 즉 미디어가 없다는 뜻이다. 미디어가 없을 때 비매개적, 즉 직접적(im/mediat)인 예술이 된다. 음성적인 말 이전에 연극은 배우가 몸의 격렬함으로 뜻을 만들어 시각적으로 전하고 이야기를 설명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 올라가면 연극과 춤은 같은 뿌리를 지닌다. 특히 동양 연극과 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의 코드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그 속에 ‘몸부림’ ‘몸서리’ 같은 언어가 있다. 몸 바깥의 가면은 배우의 덧없이 사라져가는 영광의 몸을 대신하는 또 다른 저장의 하드웨어가 된다. 연극과 춤에서 가면은 배우의 몸을 숨기면서도, 곧 몸의 부재 가운데서도 다양한 발언이 가능토록 하기 위해 고안된 훌륭한 저장 방법이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고통과 잔혹함이라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관객은 배우의 몸이 그려낸 실존을 보며 전율한다. 3.4 오늘날 연극의 문제는 무엇인가? 오늘날 현대연극의 문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는 배우의 몸이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놀랄 정도로 증가한 기억, 저장, 확장의 양과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미 우리 시대 과학의 발전은 윤리뿐만 아니라 미학의 문제까지도 변화시켜 버렸다. 이것이 현대연극에 서 배우가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 분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몸의 위기와 같은 분열은 경계의 와해를 뜻한다. 물론 몇몇 연출가들이 새로운 매체와 협력해 저장과 반복의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연극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많은 연극배우들이 연극무대와 저장·반복이 가능한 텔레비전이며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분열된 증후의 한 가지 예에 속한다. 스턴트맨이란 직업은 바로 이러한 확장의 한 부분을 대신해주는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연극예술이 영화와 비교해 훨씬 뒤져 있는 것은 이 기록과 저장 그리고 반복의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일회적이고 그래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연극의 순수와 위와 같은 메커니즘이 놀라울 정도로 증식하는 시대는 서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저장·반복되지 않는 연극은 소비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되지 않는 형태의 예술이 주변 예술로의 전락이라는 위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이것이 옛 권위와 영화를 계속 누리지 못하는 현대연극의 가슴 아픈 자백이다. 3.5 배우로 하여금 많은 기억을 저장하고 반복하게 하는 것은 과학의 시대가 요구하는 고통스런 일이다. 저장과 반복의 확장이 강화될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더 이상 배우는 자신이 저장하는 내용의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턴트맨이나 대역, 새로운 매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연극은 다시금 배우의 몸, 우리들의 몸으로 매우 느리게 되돌아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느린 몸, 느린 움직임이다. 보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느린 동작으로, 현대연극은 보이지 않는 매체, 빠른 시대와 싸우고 있다.
안치운
중앙대 졸업후 프랑스 뉴벨 소르본느 대학 연극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서강대 대학원 강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연극제도와 연극읽기’ ‘한국연극의 지형학’ ‘공연예술과 실제비평’ ‘연극, 반연극, 비연극’ ‘옛길’ 등이 있다.
이제 연극은 가냘픈 몸과 느린 움직임으로, 시간과 공간상의 모든 거리가 수축되는 세상에 저항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융단폭격은 인간 경험을 무거리(無距離)의 단조로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렇게 무거리성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은 모든 사물이 폭발해버리는 것보다 더 섬뜩한 일 아닐까. 상징적 교환으로서 연극의 구체성은 무엇보다 기호학적 질서의 일의성에 반하는 다의성에 있다. 억압 없는 매개와 소통을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복제되지 않는 몸을 지닌 연극이 시대와 어긋나면서도 처절하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끝)
글: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학 / 연극평론가 viaantica@hana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