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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이회]어수룩한 촌사람

작성자하준호|작성시간26.06.08|조회수11 목록 댓글 0

어수룩한 촌사람

서울 종로에서 가장 큰 원앙포목점의 곽첨지는 악덕 상인이다. 촌사람이 오면 물건값을 속이고 바가지를 왕창 씌운다.

조강지처를 쫓아낸 후 첩을 둘이나 두고 화류계 출신 첫째 첩에겐 기생집을 차려줬고, 둘째 첩에겐 돈놀이를 시켰다.

어느 날 어수룩한 촌사람이 머슴을 데리고 포목점에 들어왔다.
곽첨지는 육감적으로 봉 하나가 걸려들었다고 쾌재를 부르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촌사람은 맏딸 시집보낼 혼숫감이라며 옷감과 이불감을 산더미처럼 골랐다.
곽첨지는 흘끔 촌사람을 보며 목록을 쓰고 주판알을 튕겨 나갔다.

“전부 430냥입니다요. 이문은 하나도 안 남겼습니다요.”
“끝다리는 떼버립시다. 내후년에 둘째 치울 때는 에누리 한푼 안 하리다.”

“이렇게 팔면 밑지는 장산데….”
곽첨지는 짐짓 인상을 쓰면서 400냥에 합의를 봤다. 포목점 시동들이 보따리를 꾸리는데
촌사람 왈

“돈을 제법 가지고 나왔는데 패물 장만하 느라 다 써버렸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하고는 데리고 온 머슴에게
“만석아, 얼른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400냥만 받아 오너라.” 명했다.
그러자 총각 머슴은
“나으리, 그래도 한두자 적어 주시지오.”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촌사람은 혀를 찼다.

“네놈이 집사람에게 신용을 단단히 잃은 모양이구나.”

그 모양새에 눈치 빠른 곽첨지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요.”
라며 지필묵을 꺼내왔다.
촌사람이 소매를 걷자 오른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끓는 물에 손을 데서….”

그가 붕대 감은 손으로 붓을 잡으려 애쓰자 곽첨지가
“제가 받아 적을 테니 말씀만 하시라”
며 얼른 붓을 받아들었다.
촌사람은 헛기침 후 문구를 불렀다.

“임자, 이 사람 편에 400냥만 얼른 보내시오.”

곽첨지가 쓴 편지를 받아든 머슴이 휑하니 포목점을 나갔다. 곽첨지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촌사람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두사람은 포목점 뒤 순라 골목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곁들여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한데 화장실에 간 촌사람은 오지 않았고, 지겹게 기다리던 곽첨지가 화장실을 뒤져봐도 촌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포목점으로 돌아가 봐도 촌사람은 없고 돈 가지러 간 머슴도 오지 않았고 혼수 보따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곽첨지는 안심했다.

“촌놈 여편네가 당장 400냥을 무슨 수로 구하겠어. 내일 오겠지.”

그날 저녁, 첫째 첩에게 간 곽첨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니 영감, 점심 나절에 갑자기 400냥은 뭣에 쓰려고….”

깜짝 놀란 곽첨지는 대답도 안하고 돌아나와 돈놀이하는 둘째 첩에게 달려갔다.
“영감 필적으로 그 사람 편에 400냥을 보내라고 했잖아요.”곽첨지의 탐욕이 불러온 이 기막힌 사기극의 결말은, 그의 악행에 걸맞은 비참한 파멸로 끝을 맺게 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기절초풍한 곽첨지의 파멸
"영감 필적으로 그 사람 편에 400냥을 보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머슴이라는 총각에게 두말없이 내주었지요."
둘째 첩의 말에 곽첨지는 눈앞이 노랗고 뒷목이 뻣뻣해졌습니다.
자기가 낮에 붕대 감은 촌놈 대신 받아 적어준 그 편지, **"임자, 이 사람 편에 400냥만 얼른 보내시오"**가 결국 자기 목을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내 도끼에 내 발등을 찍었구나! 그놈이 내 돈을 가로채려고 연극을 한 것이었어!"
곽첨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포목점에 덩그러니 남겨진 혼수 보따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풀포기에 불과했고, 어수룩해 보이던 촌놈과 머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 (권선징악의 결말)
곽첨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첩들의 배신과 가산 탕진
피 같은 돈 400냥을 생으로 날린 곽첨지는 화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돈을 보고 꼬였던 첩들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할 리 만무했습니다. 기생집을 차려준 첫째 첩은 장사가 잘되자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했고, 돈놀이를 하던 둘째 첩은 곽첨지가 쓰러진 틈을 타 남은 재산을 가로채 달아나 버렸습니다.
조강지처의 부재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줄 사람은 조강지처뿐이라지만, 이미 제 손으로 매정하게 쫓아냈으니 돌아갈 곳도 없었습니다.
원앙포목점의 몰락
결국 종로에서 가장 크다던 원앙포목점은 빚더미에 앉아 문을 닫게 되었고, 평생 남에게 바가지를 씌우며 악착같이 모은 재산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남긴 교훈
곽첨지는 늙고 병든 몸으로 종로 거리를 헤매며 **"사람을 속이면 결국 제 손으로 파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반면, 곽첨지에게 당했던 종로 사람들은 "인과응보"라며 고소해했다는 시원한 결말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옮겨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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