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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교육과 선거 제도

작성자정재문|작성시간14.05.28|조회수180 목록 댓글 4

많은 분들이 기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저 스스로 배우고자 조사했고 정리하여 올립니다.

 

1. 교육기관

   가. 향교 

   인문교육기관으로 전국의 모든 군현에 향교를 설치하여 국비로 가르쳤다. 향교에는 양인 이상의 신분으로서 준수한 재능을 가진 남자(8세 이상)가 입학하여 교생(校生)이 되었다. 교생들은 여름 농번기에는 방학을 맞아 농사를 돌보고,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기숙사인 재(齋)에 들어가 기거하면서 <소학>,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 5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등 유학경전을 공부했다. 매년 두 번씩 시험을 치러 우등자는 생원, 진사시험의 초시를 면제해 주고 성적 미달의 낙강생(落講生)은 군역을 지도록 했다.

   한편, 서울에도 네 군데에 학교를 세워 이를 부학(部學)이라 했는데 서학, 동학, 남학, 중학이 그것이다. 부학의 정원은 각각 100명이며, 교육내용은 향교와 같았다.

   향교와 부학을 다닌 학생들은 유학(幼學)으로 불리면서 사회적 존경을 받았고,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 중에서 생원(生員)과 진사(進士)가 된 사람은 문과에 다시 응시하거나 직접 낮은 관직을 얻기도 했으나, 더 높은 학문을 원하는 사람은 최고학부인 성균관에 입학했다. 성균관의 정원은 생원, 진사 각각 100명씩 모두 200명이었다. 성균관 유생은 성적이 우수한 자는 문과의 초시를 면제해 주고 직접 2차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으며, 또 50세까지 착실하게 공부한 학생은 과거를 치르지 않아도 벼슬을 주는 일이 있었다.

  

 나. 서원 : 조선 초기에는 국비로 운영되는 관학이 우세했지만 16세기 이후로는 지방의 사족들이 자기 고을에 세운 서원이 점점 늘어나 사학과 관학이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 서원의 구조와 교육내용은 향교와 비슷했지만, 사당에 모신 선현(先賢)이 서원마다 달라서 독특한 학풍을 이루고 있었다. 서원에 입학한 학생은 스스로 학비를 부담했다.

 

  다. 서당 : 향교와 서원이 대체로 군현을 단위로 설치된 교육기관이라면, 군현 밑의 마을을 단위로 설치된 초등교육기관이 서당이다. 서당에는 <천자문>을 비롯하여 초보적인 유교경전을 가르쳤다.

  

 라. 잡학 교육기관 : 해당 기술관청에서 직접 교육했다.

        - 사역원(司譯院) :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 : 의학

        - 관상감(觀象監) : 천문, 지리, 명과, 도학

        - 호조 : 산학(算學)

        - 형조 : 율학(律學)

        - 도화서 : 화학(畵學)

        잡학생의 정원은 중앙이 285명, 지방이 약 6천 명이었으며 평민자제들이 주로 배웠으나, 의학과 역학(譯學)은 양반 자제들도 많이 배웠다.

 

2. 선거제도

    조선시대 인재등용 대원칙은 입현무방(立賢無方 : 어진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과 유재시용(惟材是用 : 오직 재주 있는 사람을 등용한다)이었다.

  

 가. 고시(考試)

        - 생원과 : 경학(4서와 5경)에 뛰어난 인재를 선발

        - 진사과 : 문학적 재능(부(賦), 고시(古詩), 명(銘), 잠(箴) 중의 하나)이 뛰어난 인재를 선발

          생원과 진사는 3년마다 각각 100 명씩 선발했다. 이를 소과(小科) 혹은 사마시(司馬試)라고도 불렀다. 생원과 진사가 되면 바로 하급관원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문과에 다시 응시하거나 성균관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마시는 1차 시험인 초시에서 7배수를 뽑았는데, 이는 각 도의 인구비율로 강제 배분되었다. 그러나 2차 시험인 복시에서는 도별 안배를 없애고 성적순으로 뽑았다.  그리고 합격자에게는 흰 종이에 쓴 합격증을 주었는데 이를 백패(白牌)라고 한다.

        - 문과 : 고급 문관을 선발하는 문과는 3년마다 선발하는 정기시험과 수시로 시험하는 별시, 증광시(增廣試), 임금이  성균관에서 문묘를 배알하고 치르는 알성시(謁聖試),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경과(慶科)가 있었다. 정기시험에는 1만명 이상의 지원자들이 경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33명을 뽑는데, 초시에서는 7배수인 240명을 각도의 인구비율로 뽑았다. 2차시험인 복시에서는 도별 안배를 없애고 성적순으로 뽑았으며, 궁궐에서 치르는 3차시험인 전시(殿試)에서는 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의 등급을 정하여 그 등급에 따라 6품에서 9품의 품계를 받았다. 문과 합격자에게 주는 증서는 붉은 종이에 써서 이를 홍패(紅牌)라고 불렀다.

        - 무과 : 3년마다 28명을 뽑았다. 초시에는 활쏘기, 복시는 4서 5경 등에서 하나, 전시에서는 기보격구(驥步擊毬)를 보았다.

        - 잡과 : 3년마다 역과(譯科) 19명, 의과 9명, 음양과 9명, 율과 9명 도합 46명을 뽑았다.  이들이 다시 문과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3품 이상의 진급도 가능했다.

  

 나. 취재(取才) : 과거시험 이외에 간단한 시험으로 하급관리나 하급기술원이 되는 시험이 있었는데 이를 취재라고 불렀다. 취재로 임명되는 관리로는 수령, 외교관, 역승, 도승, 서제, 음자제, 녹사, 도류, 서리, 의학, 한학, 몽학, 왜학, 여진학,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율학, 산학, 화원, 악생, 악공 등이 이에 해당했다.

 

   한편, 관리채용방법의 하나로 천거제도가 있었다. 이는 학문이 높으면서도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를 발탁하기 위함인데, 대개 3품 이상의 고관이 천거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천거된 사람은 간단한 시험을 치른 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천거된 자가 죄를 지으면 천거한 사람도 벌을 받게 되어 아무나 함부로 천거하지는 못했다.

                                                                        - 출처 : <다시 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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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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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희야 | 작성시간 14.05.28 알찬 내용 감사합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 작성자마당지945 | 작성시간 14.05.29 좋은 자료 올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솔밭향기 | 작성시간 14.06.09 그렇구나~!
    나도 향교며 원사당을
    두루 다니며 배우며 익히고
    그리고 공자사당이며 이화에 월백하고,
    퇴계방 해서 두루 다니며 배우긴 했어도 재문이처럼
    정리하여 실지못했는걸 미안하게 느끼면서 좋은 자료
    잘 보았다~!
    고맙다~!
  • 작성자정재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6.09 책을 읽다가 자료가 있길래 정리했을 뿐입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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