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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이야기

양산통도사 향완(香垸)에 송간(松磵 8世)공 부자분의 명문이 발견 되다.

작성자인계|작성시간14.07.12|조회수56 목록 댓글 1

양산통도사 향완()에 송간(松磵 8)공 부자분의 명문이 발견 되다.

 

  고려 말기에 우리의 송간(松磵)(仁彦 8)공께서는 전공판서(典工判書)를 하시다가 조선조에 가선대부 호조(嘉善大夫 戶曹)를 하시면서 양산통도사(梁山通道寺)에 아드님이신 휘 광후(光厚 9) 부자분이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垸)을 시주(施主) 하심이 그 향완에 명문으로 기록 되어 있음을 정인환씨가 발견했다고 한다

   족보에는 전공판서(典工判書)로만 기록되어 있으나 명문(銘文)으로 보아 송간()공께서 전공판서에 이어 호조판서를 하심이 기록으로 나타나서 좋은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명문(銘文)>

  그 향왕(香垸)깥으로 벌어진 구연 전부의 밑부분에는 시주가선대부호조정인언 자○○ 정광후 정방사 시납 통도사(施主嘉善大夫戶曹鄭仁彦 子○○ 鄭光厚 淨房寺 施納 通度寺)’라는 연점각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목되는데 시주자 이름과 정방사, 그리고 시납 통도사 명문이 확인되었다.

 

<송간(松磵)공과 포은(圃隱)선생의 관계>

  송간(松磵)(仁彦 8)공께서는 고려조(高麗朝)에 봉익대부 전공판서(奉翊大夫 典工判書)를 하셨고,  포은(圃隱)(夢周11)선생은 공양왕(恭讓王)때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과 익양군충의백에 계시다가 1392(공양왕 2) 4월에 돌아가셨으니 송간(松磵)공과 포(圃隱)선생이 함께 조정에 출사하셨다.

  그리고 송간공이 포은선생의 종증조부이시다.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垸)의 설명서>
  현재 20111223일 보물 제1735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찰에서 사용하던 예술적 가치가 높은 불기(佛器)로서 통도사성보박물관 내 역사유물실에 보관되어 있다.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 )은 그릇 모양의 몸체와 나팔모양의 높은 받침으로 구성된 형식으로서 노부(爐部:몸체)와 대부(臺部:다리부분)를 별도로 주조해 결합한 고배형(高杯形) 향완이다.
  바깥으로 벌어진 몸체의 전부 상면에 쌍구체의 유려한 당초문을 화려하게 시문하였으며, 몸체 사면에는 여의두곽(如意頭廓)을 만들어 그 내부에 네 글자의 굵은 범자문(梵字文)을 입사하였다. 이 향완은 기본적인 외형과 은입사, 세부 문양에서 고려 후기 향완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깥으로 벌어진 구연 전부의 밑부분에는 시주 가선대부 호조 정인언 자○○ 정광후 정방사 시납 통도사(施主嘉善大夫戶曹鄭仁彦子○○鄭光厚淨房寺施納通度寺)’라는 연점각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목되는데 시주자 이름과 정방사, 그리고 시납 통도사 명문이 확인된다.
 가선대부의 직명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시납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향완에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와서 별도의 시주자 명단을 다시 추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완에 보이는 여러 가지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이 작품은 단정한 외형과 대부의 균형 잡힌 모습, 노부의 유려한 연당초문, 그에 비해 약화된 여의두곽 안의 범자문 등으로 미루어 14세기 중엽에서 후반 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선시대 전기의 향완이라고 알려져 왔던 지금까지의 견해와 달리 이 통도사 소장 향완은 앞서와 같은 고려 후기 향완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으로 새롭게 파악될 수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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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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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재문 | 작성시간 14.07.12 조상님께서 시주하신 향완이 남아 있다니 놀랍습니다.
    언젠가 밀양 표충사에 들렀다가 그 곳에 있는 청동은입사향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을 떼지 못 한 적이 있습니다. 통도사 성보
    박물관에 들러 그 향완을 꼭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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