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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이야기

임진왜란 전의 湖叟公과 여러 賢人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 詩-1

작성자인계|작성시간16.06.16|조회수68 댓글 1

           임진왜란 전의 湖叟公과 여러 賢人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 -1

                                                  (단석산(斷石山)에서의 지은 詩)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해인 1590716일에 류정(柳汀), 김광복(金光福), 김춘룡(金春龍), 정삼고(鄭三顧), 김인제(金仁濟), 정세아(鄭世雅), 조덕기(曺德驥), 금란수(琴蘭秀) 등 사우(士友)들이 송호정사에서

왜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점과 대비책을 논의하고, 이튿날 단석산에 올라 김유신이 돌을 자른 흔적을 보고 감개에 젖어 시를 읊었다. 송호유집에서 발췌하여 이기한다.

 

1.단석산(斷石山)에서

                                            단석산 표석




                        김유신장군이 6년간 수도 끝에 용천검을 얻어 절단한 바위



자형의 거대한 자연암벽 위에 지붕을 덮어 만든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자형의 거대한 암벽 못지않게 장관을 이루는 것은 석굴의 바위면에 조각된 1구의 부처상과 9구의

 보살상이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고신라 불교미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o조덕기(曺德驥)가 직접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모두가 천()자 운()을 가지고 절구(絶句) 한 수씩을 읊었다.

 

             酬國誠心自小年    나라위한 정성은 소년 시절부터 품었고

             丈夫高節命于天    대장부 높은 절개 하늘로부터 타고 났네

             丹忱可學金元帥    열렬한 충성 김 원수를 배울 만하니

             一片心懷一國全    가슴 속 일편단심 온 나라가 온전하였네

 

             磨劍石頭問幾年    돌 머리에 칼을 간 것이 몇 년이던가

             堂堂忠孝己通天    당당한 충효는 이미 하늘에 통 하였네

             讀兵半夜神書授    한밤중에 신령이 준 병서를 읽어

             三國乾坤節義全    삼국의 천지에서 절의 완전하였네

                                                         -위는 조덕기(曺德驥)이다

 

             神翁書授讀兵年    신령이 준 병서를 읽던 때에

             貫日孤忠已感天    해를 꿰뚫는 충정 이미 하늘을 감동시켰고

             百鍊龍泉能斷石    백 번 단련한 용천검으로 돌을 끊었으니

             萬旗圍壘一無全    일만 깃발의 적진이 하나도 온전하지 못했네

                                                         - 위는 정세아(鄭世雅)이다

 

             酬國誠心自少年    어려서부터 나라에 갚으려는 충성스런 이내 마음

             丈夫高節命于天    장부의 높은 절개 하늘의 명이로다.

             丹忱可學金元帥    피 끓는 정성을 김원수에 배워두고

             一片心懷一國全    일편단심 굳은 마음 온 나라 보전되네

                                                 -위는 류정(柳汀)이다.-

 

 

             磨盡神刀己十年    신령이 내려준 칼을 간 것이 십 년을 넘어

             龍光直射斗牛天    용천금의 섬광이 두우성을 비추었네

             忘身報國心前定    나라 위해 몸 바칠 마음 미리 정하여

             然後能期萬死全    만 번 죽어 온전히 하기를 기약할 수 있으리

                                                           -위는 김춘룡(金春龍)의 시이다-

 

             雲岑片石斷何年    구름 낀 봉우리 조각돌 어느 해 잘랐던가

             志士丹忠自感天    지사의 붉은 충정 하늘이 감동했네

             寶氣如虹牛斗晦    보검의 기운 무지개같이 두우성에 뻗혔고

             山河一統劍頭全    산하의 통일이 칼머리에서 온전하였네

                                                          -위는 금난수(琴蘭秀)의 시이다.-

 

             劍術如神鍊石年    신과 같은 검술 돌을 잘라 단련하던 때

             至誠必也補蒼天    지극한 충성 반드시 하늘을 기웠으리

             靑龍刀面蘇苔缺    청룡도 칼날에는 녹슬어 이끼 끼었고

             白馬江頭義獨全    백마강 머리에서 의리 홀로 보전되었네

                                                         -위는 정삼고(鄭三顧)의 시이다.-

 

   o()

   o단석산(斷石山)의 전설 :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에 있으며, 경주의 오악(五嶽)의 하나

이다. 일명 月生山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김유신이 15세 때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의 뜻을 품고, 이 산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께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 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어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당시 화랑들이 이 산에서 수도하였는데 김유신이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를 베어 산더미같이 쌓였다고 한다. 그 아래에는 단석사가 창건되었고 이산도 단석산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신선사(神仙寺)가 있다.

   o용천금(龍泉劍)-고대의 보검으로 김유신이 신령으로부터 받은 칼을 비유한 것이다.

오나라 때 북두칠성과 견우성 사이에 늘 보랏빛 기운이 감돌기에 장화(張華)豫章占星家 雷煥에게 물었더니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豊城의 감옥 터 땅속에서 춘추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보검인

용천검과 太阿劍을 발굴했다고 한다.

 

   o유정(柳汀)(1537~1597) : 관향은 문화(文化), 자는 여원(汝元), 호 송호(松壕). 1592(선조 25) 4

18일부터 아들(영춘)과 조카(백춘, 득춘)를 데리고 의병장 윤홍명(尹弘鳴이응춘(李應春장희춘(蔣希春)과 함께 항전하다가 1597961세로 전사하였다.

   o조덕기(曺德驥) :관향은 창녕. 자는 여수(汝售) 또는 언성(彦成). 호는 풍계(楓溪), 임 진왜란 때 창의하다.

   o정세아(鄭世雅)(1535~1612)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 시호는 강의(剛義),

영천(永川)에서 세거(世居)하였다. 여러 의병대장들과 합세하여 영천성과 경주성을 수복하였다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증 병조판서

   o김춘룡(金春龍)(1558~) : 자는 원서(元瑞), 호는 지파(杏坡), 본관은 경주이다. 군자감부정 응허(應虛)의 아들로 경주시 안강읍 출신이다. 서애 류성룡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동생 김경룡(金慶龍)과 함께 의

병에 참여하였다. 송라도 찰방을 지냈다.

   o금란수(琴蘭秀)(1530~1606) : 관향은 봉화,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성재(惺惺齋) 계문인, 생원,

유재란 때 창의, 봉화 현감 역임, 증 좌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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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당지945 | 작성시간 16.06.22 호수공께서 많은 문인들과 국란 직전에 예측하시고 여러곳 관람하시고 시문쓰섰고 임란때 창의 하신분의
    각 문중선조님의 업적을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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