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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이야기

임진왜란 전의 湖叟公과 여러 賢人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 詩-3

작성자인계|작성시간16.06.17|조회수61 목록 댓글 0

             임진왜란 전의 湖叟公과 여러 賢人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 -3

                                        (불국사(佛國寺) 영지루(影池樓)에서 지은 시)

 

3.불국사(佛國寺) 영지루(影池樓)에서

1590716일에 류정(柳汀), 김광복(金光福), 김춘룡(金春龍), 정삼고(鄭三顧), 김인제(金仁濟), 정세아(鄭世雅), 조덕기(曺德驥), 금란수(琴蘭秀) 등 사우들이 송호정사에서 왜적의 침략의 대비책을 논의하고, 717일에 단석산에 올라 김유신이 돌을 자른 흔적을 보고 감개에 젖어 시를 읊었고. 1590728일 일행은 치술령에 올라가 대마도를 바라보며 절구(絶句) 한 수 씩을 읊었다.

그리고 15908월 초하루에 불국사에 일행이 도착하니 동남지방의 선비들이 약속한 듯이 모였다. 김응하(琻應河), 이태립(李台立), 이눌(李訥), 견천지(堅川至), 이계수(李繼秀), 윤홍명(尹弘鳴), 장희춘(蔣希春), 김응생(金應生), 20여명의 친구들이 술을 들고 영지(影池)의 영지루(影池樓)에 올라서 각각 래()자 운()을 가지고 절구(絶句) 한 수를 읊었다.


                                                                      무영탑의 전설을 간직한 영지

    

                                        불국사의 석가탑이 못에 비치기를 기다리다 아사녀가 빠져 죽은 영지.

                                                  저 멀리 토함산 불국사에는 석가탑이 자리하고 있다.


                                    아사달이 아사녀의 모습을 생각하며 조각했다는 전설이 깃 들인 석불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의 건립연대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751)으로 추정된다.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예이다.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조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良友不期來    좋은 친구들이 약속한 듯이 와서

               登樓笑把盃    누각에 올라 웃으며 술잔을 잡네

               群賢次第坐    여러 훌륭한 분들 차례로 앉으니

               摠是濟川才    모두 다 냇물을 건널 인재들이네

                                                     -위의 시는 정세아(鄭世雅)이다.-

 

               群賢有意來     여러 현인이 뜻을 품고서 와서

               抱瑟又傾盃    거문고 안고 또 술잔 기울였네

               經國安民策     나라 경영하고 백성 편안케 할 계책

               推枰更試才     혜아려 보면서 또 재능을 시험하세

                                                      -위 시는 류정(柳汀)이다.-

 

 

               多士遠方來    선비들이 먼 곳에서 왔기에

               携襟更勸盃    옷깃 끌며 다시 솔잔 권하네

               韋編皆講術    책 끈이 닳도록 다 강론하였으니

               笑問禦戒才    웃으며 적을 막을 인재를 묻노라.

                                                   -위는 조덕기(曺德驥)이다.-

 

               多士自何來     많은 선비들 어디에서 왔던가

               風雲影玉盃    풍운이 옥 술잔에 비쳐지네

               聖朝培養澤     성스러운 조정에서 배양한 은택

               最樂育英才     영재를 기르는 것이 가장 즐겁다네

                                                    -위 시는 琴蘭秀이다.

 

               君子四方來    군자들이 사방에서 왔으니

               豈無獻百盃    어찌 백잔의 술을 올리지 않으랴

               詩書磨壯志    시서 공부하여 장대한 뜻 갈고닦은

               文武必兼才    문무를 다 겸비한 인재들일세

                                                    -위는 김광복(金光福)이다.-

 

               不遠海山來    산천 멀다하지 않고 왔으니

               那無酒一盃    어찌 한 잔 술이 없을손가

               新亭非此地    새 정자 이곳 때문이 아니고

               憂國訪英才    나라 걱정에 영재를 찾아 왔다오

                                                    -위는 이눌(李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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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영지(影池)의 전설 : 경주시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연못이다.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불국사 석가탑을 지으려고 불러온 백제 장인 아사달(阿斯達)의 아내 아사녀(阿斯女)가 남편을 찾아 왔을 때 절의 스님이 탑의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만날 수 없으며 탑이 완공되면 못에 탑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 하였다. 아사녀는 날마다 못을 들어다보며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으나 몇 달이 지나도 보이지 않으므로 마침내 아사녀는 아사달의 이름을 부르며 못에 빠져 죽었다. 공사를 마친 아사달은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고 영지로 달려갔으나 아사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슬퍼하던 이사달은 영지 주변에서 바위에 아사녀의 모습을 조각한 뒤 못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에 석가탑을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영탑이라고 하고 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o냇물을 건널 인재 :나라의 재상이나 장수를 비유하는 말이다. 은나라 고종이 부열을 재상으로 삼으면서 내가 만일 큰 내를 건너게 되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겠다라고 한 말이다.

   o부열(傅說)은 은나라 고종 때 토목공사 일꾼이 있었는데 재상(宰相)에 등용되어 중흥(中興)의 대업(大業)을 이루었는데 크게 기여 하였다. 고종이 백방으로 인재를 구하는데 부암이란 곳에서 죄수들과 성을 쌓고 있는 부열을 발견하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말해주오 내가 내()을 건넌다면() 그대를 배와 노(舟楫)로 삼으리다(書傳)>고 한 것에서 원용하여 성 쌓는 일꾼 중에도 부영과 같은 훌륭한 인재가 있는데. 오늘 불국사 시회 모임에 참석한 22賢人들은 모두 재상감이라고 말 하고자함.

 

   o정세아(鄭世雅)(1535~1612)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

시호는 강의(剛義), 영천(永川)에서 세거(世居)하였다. 여러 의병대장들과 합세하여 영천성과 경주성을 수복하였다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증 병조판서

   o유정(柳汀)(1537~1597) : 관향은 문화(文化), 자는 여원(汝元), 호 송호(松壕). 1592(선조 25) 418일부터 아들(영춘)과 조카(백춘, 득춘)를 데리고 의병장 윤홍명(尹弘鳴이응춘(李應春장희춘(蔣希春)과 함께 항전하다가 1597961세로 전사하였다.

   o조덕기(曺德驥) :관향은 창녕. 자는 여수(汝售) 또는 언성(彦成). 호는 풍계(楓溪), 임진왜란 때 창의하다.

   o금란수(琴蘭秀)(1530~1606) : 관향은 봉화,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성재(惺惺齋) 퇴계문인, 생원, 정유재란 때 창의, 봉화 현감 역임, 증 좌승지.

   o김광복(金光福)(1529~) : 자는 경원(景源), 호는 죽포(竹圃)이다. 우계당 김순(金洵)의 아들. 포항시기계면 출신. 임진왜란 때 부친의 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경주성, 서생포, 등 여러 전투에 참가선무원종공신 2등 책록 됨 뒤에 병조참판에 증직됨, 경주 학남사(鶴南祠)에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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