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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영역에 가 닿은 시간

작성자울산바위|작성시간26.06.14|조회수29 목록 댓글 0

 

아내의 영역에 가 닿은 시간

 

​일주일 전 비가 내리던 날, 아내가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얼굴에는 타박상을 입고 오른쪽 팔뚝에는 금이 가 반깁스를 한 상태다. 

 

그날 이후, 우리 집 부엌 풍경은 조금 특별하게 바뀌었다.

 

​원래 밥은 내가 잘하니 문제없었지만, 반찬 만들기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이제는 아내가 왼손으로 꼼꼼히 방향을 제시하면, 나는 그 지시에 따라 칼질을 하고 양념을 넣어 보글보글 끓여낸다. 

 

밥상을 차리는 일도 처음엔 서툴렀지만, 아내의 든든한 코칭 덕분에 이제는 제법 숙달되었다.

 

​하지만 설거지만큼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찬물로 슥슥 씻어 엎어두었는데, 물기가 마르고 난 뒤 그릇을 본 아내에게 대충 한다며 핀잔을 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릇마다 흐릿한 얼룩과 티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던 것이다.

 

​오기가 생겨 나만의 ‘설거지 노하우’를 개발했다.

 

​우선 찬물로 1차 애벌설거지를 한 뒤, 세제를 묻혀 그릇을 꼼꼼히 문질러 쌓아둔다. 

 

그러고는 맑은 물에 얇은 행주로 그릇을 닦아가며 헹궈 건조대에 올린다.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렬해두고, 마지막으로 행주를 깨끗이 빨아 짜서 널고 싱크대 주변까지 말끔히 정리 정돈하는 코스다.

 

​이렇게 직접 해보니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내가 해온 가사 노동은 끝도 없고,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을. 

 

아내가 지난 50년 동안 묵묵히 지켜온 그 영역에 아주 조금 발을 들여놓았을 뿐인데, 그간의 고충과 무게가 가슴 깊이 전해져 온다.

 

​고된 노동 뒤에 찾아오는 작고 소중한 기쁨도 알게 되었다. 

 

그릇들이 깨끗하게 건조되어 반들반들 빛을 낼 때, 잘 마른 빨래를 걷어 올릴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뽀송뽀송한 감각이 여전히 손가락 끝에 아른거린다.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깊이 배우는 요즘이다.

 

2016.6.14

​동탄에서, 

한상원(귀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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