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대장 왕초의 비망록: 1959년 봄, 우리들의 민주주의
한 상 원
담임이 임명한 친구가 반장을
못하겠다고 양위를 하였으므로
투표가 공고되었다.
역사의 거대한 폭풍이었던 4·19 혁명이 일어나기 꼭 1년 전인 1959년 4월, 우리들의 초등학교 교정에도 한바탕 뜨거운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어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어린이 회장 선거는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기를 쓰며 출마한 두세 명의 후보들 사이에서 나는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학교 발전과 동급생들의 편의를 온몸으로 실천하겠다는 거창한 공약도 내걸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동네 친구들을 대거 동원해 상대 진역의 아이들을 내 편으로 포섭하기도 하고, 코 묻은 돈으로 과자를 사서 돌리는 나름의 ‘선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치열했던 경합의 끝은 짜릿한 승리였다. 내가 어린이 회장이 되었고, 끝까지 각을 세우던 라이벌 경쟁자는 부회장이 되었다.
당선 이튿날, 첫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에 울려 퍼진 “차렷, 경례!” 소리는 이전과 다르게 유렁차고 묵직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의 역할은 임명장을 받은 순간부터 시작되는 법이었다. 나는 나를 찍지 않은 반대편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쉬는 시간과 체육 시간이 되면 일부러 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가 슬며시 몸을 섞었다.
결정적인 기회는 체육 시간 씨름판에서 찾아왔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이벌이자 부회장인 녀석과 삿바를 맞잡았다. 첫째 판은 나의 특기인 호쾌한 업어치기로 모래판에 메치며 기세를 제압했다. 그러나 이어진 둘째 판, 나는 힘을 주는 척하다가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며시 져주었다.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소년만의 깊은 배려였다. 모래를 털고 일어난 녀석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비로소 교실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얼마 후, 반이 진학반과 비진학반으로 나뉘는 조직의 변화가 생겼다. 나는 과감히 비진학반의 통솔권을 부회장에게 일임하는 ‘협치’를 선택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내 쪽의 정보원 친구들로부터 그쪽 동향이 실시간으로 보고되곤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소년들의 세계에서 서열을 정리하는 최종 관문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중간지점의 공터에서, 권투와 씨름과 태권도가 뒤섞인 이른바 ‘종합무술 대결’로 편가름을 확실히 내기로 합의했다.
그야말로 대혈전이었다. 나는 초반 1, 2회전 동안은 철저히 방어하며 힘을 비축했다. 상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한 후반전, 나는 모아두었던 힘을 폭발시키며 맹렬한 반격을 퍼부었다. 상대 대표는 나의 완벽한 공세 앞에 보기 좋게 항복을 선언했다.
이 드라마 같은 대결의 하이라이트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마침 우리 집에 오시던 이모할머니께서 골목길에서 벌어진 이 거대한 전투를 숨죽여 구경하셨던 것이다. 흙먼지 속에서 뒹굴던 녀석 중 하나가 당신의 조카손주라는 것을 확인하신 이모할머니는 저녁 밥상에서 이 무용담을 한 편의 판소리처럼 풀어놓으셨다. 그 덕에 동생들과 온 가족이 나의 '천하통일'을 알게 되었고, 안방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이후 졸업식 날까지 우리 학급의 평화는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졸업식 날, 내 손에는 체육공로상과 학급통솔 우수상이 쥐어져 있었다. 소년 시절을 마무리하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나는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로도 이겼고, 정정당당한 격투기와 씨름으로도 이겼으며, 마음을 움직이는 인기투표로도 이겼다. 상대를 윽박지르는 폭력이 아니라, 힘을 보일 때와 져줄 때를 아는 지혜로 나는 초등학교의 진정한 '왕초'가 되었다.
격동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인 1959년의 눈부신 봄날, 그 시절 우리들의 골목길에는 양보와 화합, 그리고 당당한 승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요지음 정치판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어요~.~
2026.6.17
동탄에서 귀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