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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민속학 강좌

병마용과 진시황릉

작성자이퇴강|작성시간16.12.16|조회수54 목록 댓글 0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 시황제(B.C 210년 사망) 의 능묘로 1974년 처음 발굴되었다. 이 능묘에는 적갈색의 병마용(兵馬俑)들이 대열을 이루어 둘러싸여 있었는데 크고 작은 병사들의 모습과 병마, 무기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걸작품이어서 큰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진시황릉은 서안시 임동구 (臨潼區) 중심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하하촌(下河村)에 위치하고 있다. 병마용 갱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호갱은 당시 농민이 발견한 것이고, 후에 2, 3호갱이 발견되었다.

1호갱은 세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동서 길이가 230m, 넓이는 62m로 총 면적이 16㎢이다. 2호갱은 면적이 약6000㎡이며,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3호갱은 면적이 520㎡ 으로 凹모양이며, 병마용들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역시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진시황릉은 기원전 246년부터 208년까지, 무려 36년에 걸쳐 70만 명을 동원하여 건설한 능묘이다. 진시황릉을 기점으로 중국은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여 통치자를 후장(厚葬)하는 풍습이 낳게 되었다. 1987년 진시황릉은 병마용과 더불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진시황이 사후에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진시황릉 병마용

 

 

 

 

중국은 지금 발전하고 있다. 더욱 거대해지고 있다. 북경의 천안문에 높이 걸린 구호가 생각이 난다. '世界人民大團結萬歲'-. 중국의 그 거대한 국체(國體)와 국력(國力)으로 세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거대해질 때 우리는 별로 편치를 못했다. 침공을 당하거나 종속적인 관계에 함몰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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