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性情)
유협은 글을 잘 쓰려면 성정을 잘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통해 감정과 이성이 밖으로 드러나므로 한사코 성정을 도야(陶冶) 하라고 말한다.
감정의 움직임으로 언어가 형성되고 이성이 발동함으로 문장이 구현된다. 이는 감정과 이성이 저 깊은 내부에서 밖으로 드러나고 내용이 안에서 바깥으로 나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재능에는 평범한 것과 뛰어난 것이 있고, 기질에는 강건한 것과 유순한 것이 있으며 학식에는 천박한 것과 심원한 것이 있고, 습관에는 정아(正雅)한 것과 비속화 것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성정(性情)으로부터 조성되고 관습과 풍습에 의해 도야된다
夫情動而言形,理發而文見,蓋沿隱以至顯,因內而符外者也。然才有庸儁,氣有剛柔,學有淺深,習有雅鄭,並情性所鑠,陶染所凝,
성정이란 개념은 성리학에서 많이 다룬 핵심 개념이다. 성은 본성이고 정은 성이 외부 사물과 접촉할 때 드러나는 마음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성(性)을 이(理)로 보았고, 정(情)을 기(氣)로 보았다. 이(理)는 이성(理性)을 말하고 성품(性品)이다. 기(氣)는 감정을 말하고 기질(氣質)이다. 조선 성리학에서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주장했고, 이율곡은 이기일원론을 주장했다. 이황은 이(理)를 기(氣) 보다 우위에 두었고, 이율곡은 이기(理氣)의 혼연한 통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이기가 서로 갈라져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상리(不相離)를 기본으로 삼았다. 나는 생각한다.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지구는 성질만 다르지 하나의 우주를 이루려면 서로 음양강유의 성질이 엉겨야 하나를 이룰 수 있듯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퇴계와 율곡 보다 백년 앞서 태어나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해례본에서도 이기론(理氣論)를 언급한다. 이 문장을 꼭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성과 감정이 말과 글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해례본에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말해 놓았다.
“초성, 중성, 종성 글자가 어울려 이루어진 글자로 말할 것 같으면 또한 동과 정이 서로 뿌리가 되고 음과 양이 엇바뀌어 변하는 뜻이 있으니, 동이란 하늘(天, 초성)이요, 정이란 땅(地, 종성)이며 동과 정을 겸한 것은 사람(人, 중성)이다. 대개 오행이 하늘에 있어서는 신(神)의 운행이요, 땅에 있어서는 바탕(質)의 이룸이요, 사람에 있어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신(神)의 운행이요,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장이 바탕(質)의 이룸이다. 초성에는 발동의 뜻이 있으니 하늘이 하는일이요, 종성에는 그치고 정해지는 뜻이 있으니 땅(地)이 하는 일이다. 중성은 초성의 생겨남을 받아, 종성의 이룸을 이어주니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하나의 말씨와 글씨를 만들려면 하늘과 땅 즉 음과 양의 두 씨가 있어야 하는데, 하늘씨가 초성이고 땅의씨가 종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성과 종성 이 두 씨가 엄마 자궁과 같은 역활을 하는 중성(中聲)에서 만나 마침내 한 글씨와 말씨가 생겨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퇴계와 율곡이 말한 불상리(不相離)의 이기론과 같다.
그런데 하늘소리 초성은 인의예지신의 신(神)을 주관하고, 땅의소리 종성은 간심비폐장의 오장에서 주관한다고 말한다. 옛 동양의학에서는 사람 몸을 하늘과 땅으로 천지를 구분하였는데, 머리를 하늘로 삼고 오장이 있는 아래쪽 몸을 땅으로 구분했다. 그래서 머리는 신경계를 주관하는 뇌가 있기 때문에 신기(神氣)를 주도한다고 했고, 오장은 땅에서 섭취하는 물과 곡식을 소화시켜 정미(精微)한 에너지를 만든다해서 정기(精氣)를 주관한다고 했다. 그렇게해서 사람몸은 정기(精氣)와 신기(神氣)의 정신이 통일되어 기합(氣合)을 이룬 기물(氣物)이라고 했다.
그래서 훈민정음해례본에서 말하는 삼성의 이기론은 머리 쪽에서 인의예지신의 초성이 발동하는데 이것을 이성(理性)의 이(理)를 말한 것이고, 오장에서 발동하는 종성은 오감 오미 오정의 감정(感情)을 다루는 기(氣)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초성은 말과 글에 이성(理性)이 담긴 씨로서 뜻(意)이 발동하고, 종성은 감정(感情)의 씨로서 말과 글에 맛(味)을 주관한다는 것이다. 한국말과 글은 이렇게 뜻과 맛 즉 의미(意味)를 품은 두 씨가 가운뎃소리 중성 모음에서 만나 뜻과 맛이 담긴 말씨와 글씨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음악은 뜻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큰 장점있다. 아니다! 만물의 소리와 표정들이 지닌 실질적인 도량형(度量衝)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타!!! 한국말과 글은 의미가 실질적으로 전달되므로 말과 글이 품고 있는 성정머리가 그대로 드러나 그 사람의 성정을 그대로 알아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그 성품과 기질을 환하게 들여다 보이니 유협은 성정을 도야하라고 말한 것이다. 서예가들은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말한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성정이란 말이다.
유협은 말하기를, 성정은 재능,기질,학식,습관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성정은 저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도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능의 잘나고 못남과 강건하고 유순한 기질과 배움의 깊고 얕음과 바르고 못된 습관들을 얼마든지 노력을 통해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30대 좋은 시절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독공을 간 이유가 바로 못난 성정을 도야하기 위해서였다. 재주와 기질과 학식과 습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한사코 성정을 성찰하고 계량하면서 하나씩 고쳐 나갔다. 재능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선대 명창들의 뛰어난 재능을 훔쳐 듣기 바뻤고, 투박하고 거친 기질은 산천에 널부러진 꽃과 새와 바위와 물과 나무들의 표정과 습성들을 통해 야(野)한 성질을 순화시켰다. 아둔한 지혜는 수많은 독서와 명상을 통해 밝게 했으며, 이러한 것들이 엄격한 성찰을 통해 철저히 실천하는 습성을 유지한 덕분에 부족한 것들이 조금은 세련되여 갔던 것 같다.
나는 소년 목소리 같이 가늘고 여린 목소리를 두텁고 실하게 바꾸려고 무리한 발성법을 수년간 무모하리만큼 철저하게 수행했다. 마치 아름드리 나무가 다양한 판재를 켜서 용도에 맞는 기물을 자유자재로 만들듯이, 풍부한 성량으로 폭넓은 성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었다. 스승이신 성우향 명창께선 얇은 내 목소리에 훈도하시길, “땅을 호미로 깔짝 깔짝 파서 일궈 갖고 어디 곡식이 야물게 나오것냐, 쟁기로 푹푹 파 재깨서 거름을 잘 헌 밭에서 열매가 야무지게 영글제!” “머시메가 되아갖고 가시내 맨키로 얍싹흐게 소리허믄 쓰것냐. 도봉산 밀고 가드끼 푹푹 파서 밀고 가란 말이여”라고 일러주셨는디, 그렇게 되기까지 20년이나 걸렸다. 그래도 겨우 흉을 낼 뿐이니 참 어렵고 징헌 공부였다. 붓글씨 쓰는 서론(書論)에서도 코끼리가 강을 묵직하게 밟고 건너 가듯이 글을 써라고 말한다. 향상도하(香象渡河)라는 말이다. 개미의 걸음과 코끼리의 걸음은 다르다. 때로는 개미 처럼 가볍고 코끼리 처럼 육중해야겠지만, 이쑤씨게로는 경회루 대들보로 사용할 수 없듯이, 소용(所用)의 경계에서 대소경중(大小輕重)의 구별이 있는 법이다.
무언가를 개선하여 질을 높여 간다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 표면의 탈바꿈은 임시 방편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환골탈퇴의 진일보를 원한다면 근원이 되는 성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모든 것은 성정에서 비롯된다고 유협은 결론을 짓는다.
“각 사람의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재능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질은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충실하게 하고 사상과 감정은 언어와 문장을 확립하게 한다. 이렇듯 훌륭한 작품을 산출함에 있어 그 사람의 성정(性情)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
才力居中,肇自血氣;氣以實志,
志以定言,吐納英華,莫非情性,
사진, 경주 남산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