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주점에서--1차수정
-귄터그라스의 ‘양철북’을 읽고
윤재남
도마와 식칼, 그리고 양파
수만 겹의 껍질을 벗기고
아무 뜻 없이 썰다 보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것을 슬픔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슬픔을 기념일로 만들고
누군가는 콘텐츠로 바꾼다
화면 앞에서만 배우는 추모
뉴스를 넘기다 멈춘 손가락은
끝내 이름을 읽지 못한 채 지나간다
사람들은 감정을 결제하듯 소비한다
4.3, 4.19, 5.18
이름 대신 날짜로 남은 것들
우리는 무엇을 기억이라 부르는가
무엇을 위로라고 착각하는가
나는 늘 바깥에 서 있었다
촛불이 흔들리던 밤
광장은 텔레비전 속에 있었다
말들은 화면 너머에서만 들려왔다
양파를 벗기듯
기록을 들춰볼수록
벗겨지지 않는 것이 있다
몸 안쪽을 찌른다
남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통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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