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주소
이동아
낡은 처마 끝에서
꿀물 같은 불빛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길손의 발
붙드는 낮은 노래에
내 안의 적막이
허물어지는 소리
멀리 서서
낯선 눈으로 집 구경할 때
담장 너머
부딪치던 웃음과 비린 눈물들
생채기마다
닳아진 구두굽의 각도가 되어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남는다
상처 난 가슴 안고
돌아오는 저녁
그분은 마른 늑골 토닥이며
사립문 빗장 풀고
마른 나무에 불 지핀다
어둠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뜬눈으로 밤 지키는 문간방
생각만 해도
가슴에는 이미 풍악이 울려
살진 송아지 잡으러 나서는
늙은 아버지의 실루엣
시방 마당 가득
가장 따뜻한 볕이 와서 눕는다
귀가(歸家)
상처 난 가슴으로 돌아오는 저녁
그분은 마른 늑골 토닥이며
사립문 빗장 풀고 군불 지핀다
생채기 가득한 발목 위로
시방, 가장 따뜻한 볕이 와서 눕는다
우리 집
이동아
낡은 처마 끝에서
꿀물 같은 불빛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길손의 발 붙드는 주막의 낮은 노래
내 안의 적막이 허물어지는 소리
멀리 서서 낯선 눈으로 집 구경한다
담장 너머 부딪치던 웃음과
비린 눈물 숨기고 싶던 생채기들이
닳고 닦여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남는다
상처 난 가슴 안고 돌아오는 저녁
그분은 마른 늑골 토닥이며
사립문 빗장 풀고 마른 나무에 불 지핀다
어둠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뜬눈으로 밤 지키는 임의 거처
생각만 해도 가슴엔 이미 풍악이 울리고
살진 송아지 잡아 돌아온 아들 맞는
아버지의 손길이 혈맥 타고 흐른다
시방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의 주소 가졌다
시조/우리 집
낡은 처마 끝머리 꿀물 같은 등불 걸고
적막을 허무는가 길손 발길 붙드는데
담장 너머 비린 눈물도 보석 되어 닦인다
마른 늑골 토닥이며 빗장 푸는 그분의 손
어둠이 삼키잖게 밤새 뜬눈 지키시니
풍악 소리 혈맥을 타고 살진 소를 잡는다
시방 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주소 가졌네
이동아
우리 집 생각만 해도 낡은 처마 끝에서
따스한 불빛이 꿀물처럼 새어 나온다
지친 길손의 발길 붙드는 주막의 노래처럼
내 안의 적막 허물고 솟구치는 웅장한 환희
멀리 서서 낯선 눈으로 우리 집 바라본다
담장 너머 함께 부딪친 웃음과 비린 눈물,
숨기고 싶던 부끄러운 상처들까지 보석으로 닦여
비로소 집은 내 생의 지워지지 않는 고향이 된다
상처 난 가슴 안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그분은 토닥토닥 내 마른 늑골 다독이며
언제나 사립문 빗장 풀고 불꽃 지핀다
어둠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뜬눈으로 밤 지키는
그분의 거처, 나의 집
우라집 생각만 해도 가슴엔 이미 풍악이 울리고
살진 송아지 잡아 죽음에서 돌아온 아들 기리는
아버지의 융숭한 즐거움이 내 혈맥 타고 흐른다
시방,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의 주소 가졌다